알마티 명소 여행 - 판필로바 28인 공원  (2003.1.23)

까작스딴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십중 팔구는 알마티를 찾아 오시는 분입니다. 알마티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도 저마다의 특색과 볼거리들이 있긴 하지만 인구 110만의 까작스딴 최대 국제 도시 알마티 만큼 다양하고 화려한 자연 경관과 역사적 흔적을 가진 곳은 없습니다.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저로서도...1년에 2차례 이상 알마티에 내려 갈 때마다 아름답고 재미있는 도시 알마티에 대한 호기심을 늘 가진 채 방문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알마티의 많은 명소들을 이미 소개해 드렸지만....오늘은 판필로바 28공원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알마티에 사는 사람들조차도...입을 모아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는 곳입니다.

알마티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식물원입니다. 남쪽으로 천산 산맥의 산줄기가 도시를 내려다 보듯 둘러싸고 있는데... 여름에도 만년설로 반짝이는 이 산맥은 알마티 시에서 봤을 때 눈 앞에 보이는 탈까르 봉 만 해도 해발 4973 미터에 이르는 높은 봉우리 들입니다.  천산 산맥은 해발 6995 미터의 까작스딴 최고봉 칸 텡그리 산 을 거쳐 끼르끼즈스딴, 중국 쪽으로 뻗어...결국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 쪽으로 연결되는 산맥입니다.

그 천산 산맥 아래...세계 대전 당시 조성되어졌다는 알마티 시가 자리 잡고 있는데 아름드리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쭉쭉 뻗어 있고..가는 곳마다 울창한 나무 숲들을 이루고 있어...이렇게 나무를 많이 가진 100만 인구 도시가 세계에 또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식물원 같은 도시 안에도 특별히 공원이라고 지칭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가장 잘 알려진 공원 두 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판필로프 28인 공원'과 '중앙(고리끼) 공원'입니다. 판필로바 28인 공원(이하 28인 공원) 은 알마티의 고골리아와 똘레비 사이의 뿌시끼나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다스띡-똘레비에서 바라 본 28인 공원 입구의 모습인데요...이 입구에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이 동상에서 이 공원의 이름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216 보병사단의 지휘관인 이반 판필로프 장군이기 때문입니다.

판필로프 라는 이름에서 따 온 판필로바 공원은 참혹했던 전쟁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41년 2차 세계 대전 당시 모스크바 근교 까지 독일군이 치고 들어 왔을 때 316 보병 사단의 1075연대 소속의 28 명의 병사들이 독일군 탱크 50 대에 저항하면서 끝까지 후퇴하지 않고 저지하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 28인의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소속되었던 316 보병 사단이 처음 창설되었던 도시...바로 이 알마티에 '28인' 이라는 단어를 붙인 공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2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를 침공해 들어갔던 독일은 결국 러시아 군의 강력한 저항과 시베리아의 눈보라와 혹한을 이기지 못하고 퇴주하고 맙니다. 당시 러시아라는 나라 속에는 여러 민족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이미 1731년 스스로가 원해 러시아에 병합되었던 까작 민족들도 이 위대한 애국 전쟁(2차 세계 대전)을 맞아 전쟁터로 나갔고 많은 까작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 독립된 까작스딴 공화국에서도 소비에트 시절 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며 지켰던 '5월 9일 승전 기념일'을 없애지 않고 러시아나 다른 나라들과 함께 기억하며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인해...까작스딴 독립 후 알마티의 다른 도로 이름들은 모두 까작식으로 개명되었지만...이 공원의 이름만은 그대로 '이반 판필로프' 라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장군 이름에서 따온 것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까작인들도 그 전쟁의 승리를 그들의 승리로 받아 들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겠지요.

판필로프 장군 동상의 뒤를 돌아 공원으로 들어가는 보도 블록 좌우에서 자그마하게 이름이 적힌 작은 돌 비석들을 일렬로 쭉 정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이것 역시 그 날의 병사들을 기억하는 것들입니다.

판필로바 28인 공원 의 이름을 이제 아셨으니...좀 더 편안한 맘으로 공원 내부를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공원은 키 큰 높은 나무들로 가득하고 낙엽수와 상록수들이 섞인 말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스타나는 도시가 조성된지 이제 겨우 5-6년밖에 되지 않은 탓에 도시 안에서 키 큰 나무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겨우 몇 그루 될까요?...알마티에 올 때마다 늘 부러운게 이렇게 쭉쭉 하늘을 향해 쏟아 있는 나무들과 여유있는 휴식 공간들입니다.

이곳은 한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어서...저녁 때가 되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오는 엄마들, 데이트를 위해 모여 드는 젊은 연인들, 오랜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늘 붐빕니다.

벤치에 앉아서 싱그럽게 불어 오는 숲 속의 바람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이 곳이 더욱 유명한 이유는 바로...이 공원 안에 알마티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원 중앙에는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 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언젠가 이 공원에서 거닐다 예배당의 종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정교회....'올바른 교회' 라는 이름을 가진 동방 교회를 볼 때마다 전 늘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동방 교회' 즉... 정교회 역시 교회사 안에서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교회의 한 줄기 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대로 1054년 로마 교황청의 교황권을 둘러 싼 대립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던 로마 교회는 교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서로마 교회(카톨릭 교회) 와 비잔틴 제국의 동로마(정교회) 교회 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 유명한 콘스탄틴 대제가 330년 경 로마 제국의 수도를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긴 후로... 하나의 로마 제국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쪽과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쪽이 서서히 이질화되기 시작했고...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 뒤에 둘로 분리되어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 다른 황제에 의해 통치되어 졌습니다.

그러다가...서로마가 476년에 먼저 멸망하게 되고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이 유일하게 남은 로마 제국이 되지요 하지만...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고 해서 서쪽의 로마 교회가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 이미 교회는 모든 유럽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서로마 제국에 이어 들어서는 프랑크 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로마 교황을 절대적으로 섬기고 보호하게 되지요. 동로마 제국 역시...1453년 멸망할 때까지 1100 년동안 지속되면서 동로마 교회(정교회)를 보호하면서 서방에서 끊어진 고전 문명들을 동방에서 부활시키는데...제국은 11세기 까지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까작스딴에 있는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는데....전에 말씀드린대로...988년 러시아의 군주 블라지미르가 비잔틴 황제의 여동생과 결혼할 때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러시아는 동방 교회의 전통을 받아 들였고 이후 정교회는 러시아에서 찬란한 전성 시대를 구가하게 됩니다.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뒤에는 그 후계자로서 제 3의 로마를 자처했던 러시아...러시아 황제의 이름을 짜르(Tsar, Czar)라고 부르는 데에는 로마 황제의 칭호와 연관성이 있다고 얘기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 민족의 나라 까작스딴  알마티에서 동방 교회의 건물을 보게 될 줄이이야....처음 이 교회 건물을 봤을 때...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서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보면...소비에트 연방이 있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었겠지요.

높이 50 미터에 이르는 이 웅장한 교회당은 1904년에 건축된 것인데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1911년 리히터 강도 10의 대지진이 알마티를 덮쳤을 때에도 부서지지 않고 견뎠다고 하는데...1917 볼세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시절에는 예배가 드려지지 않고 있다가 1995년 러시아 정교회로 반환된 후 1997년부터 다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물론...정교회는 많은 부분에서 형식(껍데기)만 남은 교회로 전락했습니다. 제가 이 젠코프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 들어갔을 때에도 한참 예배(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높은 단 위에 서 있는 사제는 긴 가운을 걸치고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웅변하듯 얘기 하고 있습니다(목소리가 얼마나 호소적인지....) 아래에 모여 든 사람들은 연신 성호를 긋고 손을 모은 채 사제의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교회당 내부에는 의자가 없고 모두 중앙에 있는 단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서 있습니다. 교회 내부 벽면으로 돌아가면서 아기 예수, 사도, 마리아를 표현한 성화들이 가득 차 있고... 그 앞에는 촛불들이 밝혀져 있습니다. 사제는 아무리 젊더라도 수염을 기르고...제사장을 연상 시키는 화려한 의복을 하고 있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찬송이 울러 퍼지는데...잘 공명되는 교회당 안 위쪽에 자리 잡은 발코니에서 '호르' 라고 부르는 전문 성가대가 지상의 소리로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화음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전....혹시나... 성경책을 들고 이곳에 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혹시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이곳에 모여 들어 서 있을 뿐이었고 마치...우리 나라의 많은 할머니들이 큰 나무나 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이 곳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관습일 뿐이었습니다.

1517년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모든 교회가 이와 유사한 모습이었겠지요? 교회에 가면 사제는 일반 신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고 얘기합니다. 라틴어를 알지 못하는 평신도들은 성경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성도....이 상황 속에서 성경에서 말하지 않고 있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의 권위가 생겨 나고 마치 사제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처럼 서 있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고...그 분의 죽으심과 부활로 지금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이 길은 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교회는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죠...

"오직 성경으로..오직 믿음으로..."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많은 성직자들은 성경을 직접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출판 등 과학 기술의 진보로 쉬운 언어로 적혀진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오랫동안 감취어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은 비로소 다시 읽혀지게 되었습니다. 마치....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학사 에스라에 의해 다시 읽혔던 율법책처럼....성경은 높은 교권의 울타리에 가로 막혀 왜곡되게 해석되고 제대로 읽혀지지 않았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성도들의 손에 그들의 언어로 적힌 성경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같은 시각으로... 서로마 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는 카톨릭 교회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읽는 일보다는 오히려 교리 공부에 치중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을 던져 봅니다.

물론 교황의 종교 다원주의적 발언(어떤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과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기 전부터 있어 왔던 마리아 신성 관습들은 개신교회에서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문제이지만....카톨릭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 개인 개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수 천년의 교회 전통 속에 그들이 들어 와 있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훈련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카톨릭 교회가 개신교회보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옳은 일들을 한국 사회에서 해 왔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선행이...그들의 의가...참 말씀 위에 서 있지 않다면...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쨋든 동방 교회(정교회)를 보면 볼수록...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앞으로 어떻게 세계의 역사를 움직여 가실까' 하고... 고개가 숙여지게 됩니다.

동방 교회 즉, 동로마 교회는 서로마 교회와 갈라진 후로 계속 주도권 다툼을 벌였습니다. 사실...동로마 교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과 사도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 로마에서 공인되기 전까지 기독교의 기본 신학을 정립했던 안디옥 교구와 알렉산드리아 교구가 있는 지역이기에... 그야말로....기독교의 산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고 이 곳 출신의 주교들은 이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해 준 복음을 받은 서로마 교회 (로마 교황청 지역) 가 정치적 상황을 앞세워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지금 동로마 교회(동방교회, 정교회)에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관습과 공허한 것만이 교회당 속에 남아 있게 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 판필로바 공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판필로바 공원의 아름다운 정교회당을 뒤로 하고...조금 더 산책을 하면....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죽어간 많은 병사들을 기념하고 특별히...모스크바 인근에서 독일군 탱크를 막아 끝까지 저항했던 그 날의 28명의 용사들을 기억하는 특별한 장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수류탄을 잡고 총을 겨누면서 ...앞으로 돌진하는 병사들의 얼굴이 뚜렷한 청동 조각상 아래에는 '위대한 러시아' 라는 단어가 적혀 있지만....까작스딴 독립 후에도 이 장소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건....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지만...이렇게 청동 조각상을 만들고 특별히 '꺼지지 않는 불꽃' 이라고 불리는 불이 타오르고 있어 판필로바 공원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위에서 보신 청동 조각상 앞에 서서 맞은 편을 바라 본 모습입니다.  죽어간 순국 선열들을 기념함을 알리는 조각문 뒤로 타오르는 불꽃이 보이시나요?

저 불꽃이 바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몰한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 이라는 불꽃입니다.

까작스딴에서 열리는 결혼식에는 특별한 풍습이 있습니다. 언제가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지만...결혼식이나 피로연 자체도 좀 독특하지만....무엇보다 눈에 자주 띄는 것은 결혼식 직후... 신랑과 신부 그리고 하객들과 친구들이 모두 차에 나눠 탄 뒤....도시 전체를 돌면서 몇몇 중요한 장소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되면...헤드라이트를 켜고 클랙션을 울리면서 차선 무시하면서 도시를 질주하는데....간혹 무법 천지인 것 처럼 보이긴 해도...일생의 한 번 있는 결혼식의 기쁨이라 생각하고  다른 운전자들은 모두 참아 주지요.

그런데...알마티에서 결혼식을 치루게 되면....결혼한 신랑 신부가 꼭 찾아 오는 장소가 바로 이곳 '꺼지지 않는 불꽃' 앞 입니다. 가지고 온 꽃을 헌화하고 명복을 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결혼식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조국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출발하는 새 가정이 그렇게 훌륭해 보이더군요.

어쩌면 러시아라는 나라가 과거...수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지금까지 내려 왔기에...소비에트 시절을 거치면서 이런 전통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뿌리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꺼지지 않는불꽃을 가까이에서 본사진입니다. 아마 밑에서 가스가 계속 올라오도록 만든 것 같은데...밤이 되어도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이 불꽃은 항상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꺼지지 않는 불꽃은 까작스딴의 수도 아스타나에도 있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도 사진이 소개되어 있는데요...아스타나의 경우에는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병사에게 물대접을 떠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조각한 높은 동상 아래에 이런 불꽃을 만들어 일년 내내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꺼지지 않는 불꽃을 구경하고 나서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면 잔디밭과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기 아주 좋은 곳이죠.

그리고 그 한 쪽 편을 보면 왼쪽 사진과 같은 예쁜 건물이 서 있습니다. 이 건물이 바로 '까작스딴 민속 악기 박물관'입니다.

알마티에는 중앙 박물관 외에도 고고학 박물관, 서적 박물관, 지질학 박물관, 자연 박물관 등이 있는데...이곳은 돔브라 같은 까작스딴 민속 악기를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갈 때마다 점심 시간이더군요. 혹시 점심 시간을 피해서 가 보시면 까작스딴 민속 악기들을 구경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 알마티 시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답고 사연 많은 "판필로바 28인 공원"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사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더 장엄하고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그래도 한국에 계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소개해 드렸습니다. 혹시...알마티를 방문하시게 되면....판필로바 28인 공원을 거닐어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200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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