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우의 가을

알마티로 다시 돌아온건 6주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까작스딴으로 파견왔을 때의 정착지가 알마티였던 건 다 아실 겁니다. 5월 23일에 와서 8월 13일에 아스타나로 올라간 뒤...9월 26일이 되어서야 다시 알마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알마티의 5,6,7,8,9,10월을 다 경험한 셈이 되었습니다.

당초에는 알마티를 통해 바로 아스타나로 올라가려고 계획했었지만...."오랜만에 알마티에 왔는데..왜 급하게 아스타나로 올라가려고 하느냐? 민선생님도 귀국하시고..추석도 가까워 오는데...좀 더 함께 지내다가 올라가면 좋을텐데..." 라고 붙잡으시는 분들이 많고..또 그 분들이 저희 가정을 진심으로 아껴 주시고 챙겨 주시는 분들이라...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알마티에 5일간 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이렇게 5일간 알마티에서 머문 덕분에....알마티에 물씬 풍겨나는 가을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고 뚜르겐 계곡도 다시 가서 제대로 놀고 왔고....추석 전날 함께 송편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저희 가정을 알마티에 붙잡아 주신...세진이네와 장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세진 엄마께요....

 알마티의 가을은 한국과 사뭇 다릅니다. 한국의 단풍....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지요...맑은 계곡을 따라 드리워진 노랗고 붉은 단풍과 녹색의 상록수들의 조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이곳 알마티의 단풍도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알마티 시내는 마치 식물원과 같다고 말씀드렸지요? 도심 한 복판에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뚝 우뚝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데 이 가을에...그 나무들의 이파리들이 노랗게 물들고 있더군요... 한국처럼 오목조목 빽빽하게 들어 찬 총천연색 단풍은 아니지만....눈덮인 침불락을 배경으로 노란색의 단풍이 도시를 휘덮고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을 가르며 도로를 달리는... 그야말로....깊은 가을의 운치를 여기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과 숙희 선생님(세진엄마) 그리고 지민씨(장재필 선생님 사모님...) 이렇게 5명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알마티의 가을을 보기 위해 메데우로 올라갔습니다.

메데우는 알마티의 고지대입니다. 메데우에서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전에 말씀드린 톈샨 산맥의 줄기인 눈덮인 침불락 지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알마티에서 침불락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지역이 메데우인 셈이고...메데우에는 한국처럼 물이 흐르는 계곡과 숲 그리고 육상 경기장과 수영장, 스케이트장이 있는 종합 경기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전에 배기태 선수가 동계 올림픽(세계 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딴 메데우 경기장이 바로 여기 메데우 경기장이란 걸 말씀드렸었지요?

메데우 경기장 뒤쪽으로 보이는 산들과 노랗게 익어가는 나무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사실 이렇게 640*480 정도 사이즈의 사진만 봐 가지고는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멀리 계신 분들께도 메데우의 가을을 전해 드리고 싶네요... 

메데우에서 침불락 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빼쪽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침엽수림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눈 덮인 침불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만년설은 올해도 일년내내 하얀 눈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우연히 찍은 사진인데...푸른 하늘에 마치 새 같은게 잡혔습니다. 저는 새라고 생각하는데...선화 말로는...새라면 더 크고 가깝게 잡혀야 한다면서...아마..UFO가 아닐까 얘기하는군요....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단풍 색은 말그대로 울긋불긋인데...여기는 대부분의 단풍색이 노랑입니다. 하지만..한가지 색인 노란색 만으로 나뭇잎들이 물들어 가는데도...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메데우에서 보면  몇몇 나무는 붉게 물드는 게 보이는데 알마티 시내에서는 이렇게 붉은 색 단풍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딱 한가지 눈에 띄는 붉은 단풍이 있는데 그건 바로 '담쟁이 넝쿨' 이더군요...도심의 담벼락을 따라..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의 색이 짙은 붉은색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옆의 사진이 메데우 경기장이 보이는 곳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뒤에 보이는 트랙을 가진 경기장이 겨울철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지난 봄에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드렸는데..딱 4개월 만에 다시 이곳의 가을 경치를 보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맨 왼쪽이 6기 내과 협력의사 김동환 선생님의 사모님인 김숙희 선생님입니다. 치과 선생님이시기도 하지요..세 살 반 된 세진이의 엄마입니다. 중간에 형민이를 안고 있는 분이 7기 치과 협력의사 장재필 선생님의 사모님인 노지민 선생님입니다.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로.... 장선생님과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신혼여행지에서 바로 이곳 까작스딴으로 오게 된 분입니다. 다들....형민이 엄마 또래인지라....이 협력의사 사모님 삼인방은 저희 가정이 알마티에 있는 동안에도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알마티에서 잔 6일 밤 중에서 5일 밤을 이 두 분 가정에서 신세를 질 정도지요..

알마티 생활의 장점이라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국인 사회가 잘 형성되어 있어서...형민이의 육아 부담으로 힘드는 선화도 얼마든지 야외 활동을 함께 하며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이 있고...이 모임을 통해 얼마든지 형민이를 데리고 집밖으로 외출할 수 있다는 거지요...사모님들이 형민이를 잘 챙겨 주시기 때문입니다...또 형민이가 함께 놀 수 있는 또래의 아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결국 한카병원의 정부파견의사 사모님 두 분과 대사관, 코이카 그리고 젊은 선교사님의 사모님들이 계시는 이곳은 선화의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해 주는 곳입니다.

하지만 아스타나는 그렇지 못하지요...한국인이 거의 없고...따라서 형민이를 데리고 함께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 알마티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내면서..그런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하나님은 우릴 아스타나로 보내셨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 가정에 부어 주실과 축복과 그 분의 기대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것이 저희 가정이 소중히 여겨야 될 부분이겠지요.. 그래도 아스타나로 올라오면서....형민이를 데리고 선화와 함께 좀 더 야외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굳이 알마티에서 며칠 더 머물겠다는 선화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아스타나는 영하 3도라고 나오는데...알마티는 춥지가 않았습니다.

북쪽으로 1200Km 올라가면 얼음이 얼고 있지만...따뜻한 남쪽인 알마티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긴 팔 옷도 걷어 부치고..형민이도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가을 날이었습니다.

사진에서 서 있는 곳은 메데우 위에 있는 댐 근처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침불락 위에 있는 눈들이 녹아 생기는 눈사태나 산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곳에서 아래로 보면 수문처럼 생긴 관문을 볼 수 있고...지금 저희 가정이 서 있는 이 곳도 하나의 장벽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의 거대함에 맞서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메데우에서 시간을 보낸 뒤...우린 다시 알마티 도심으로 내려옵니다. 메데우 입구에서 알마티로 내려오는 도로 주변에도 노란 단풍이 뒤덮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내려 가다가...'정말 아름답다....' 는 생각이 들어 모두가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거기 계시는 분들이야...이 단풍들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만...이미 겨울인 아스타나로 올라갈 우리들에겐 올해의 마지막 단풍이기에...주변의 경치를 눈에 담기에 바빴습니다.  

부쩍 자라 버린 형민이와 함께...우리 세 사람이 앞을 보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이제 막 겨울이 지난...봄이었는데...계절은 어느 덧 한 해의 저편으로 향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저희 가정에겐..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곳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회복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 이맘 때쯤에는 알마티에 내려올 지 알 순 없지만...2001년 가을...알마티의 메데우에서 본 가을의 모습은 내 마음 속과 컴퓨터 하드 디스크 속에 저장될 겁니다.

하나님은 이곳 알마티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 분의 본성처럼...아름답고 질서있게...이곳에 그림책처럼 펴 놓으셨습니다. 그 속에서 우린 그저 탄성을 지르며...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ps) 다시 한번 알마티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