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000 미터의 침불락을 방문했습니다. 형민이와....

알마티에서 저희가 찍은 사진을 보시면 만년설로 덮여 있는 천산 산맥의 산들을 쉽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곳에 온지 이제 13일째이지만...아직도 그림처럼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저 거대한 눈 덮인 산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과 놀라움이 절로 생겨 납니다. 저희들의 운전기사인 이글 아저씨도 "침불락 하라쇼(침불락은 멋지다)" 라는 말을 여러번 할 정도로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이 곳에 온 후....그렇게 드물다는 비가 몇 번 내렸습니다. 물론 몇 시간씩 내리는 비는 아니고 잠깐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비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밤에 내리는 비들은 천둥과 번개가 동반하기에 으시시했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밖에서 내리치는 천둥 소리가 점점 커지자....창가로 나와 지평선이 보이는 서쪽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대평원이 끝나는 밤하늘 위에서 번쩍거리며 뇌락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한 마디로 전에 느껴보지 못한 호연지기가 생기더군요....약간 무서운 맘도 들었지만......그래도...'내가 중앙 아시아의 광활한 평원 위로 번개가 내려 치는 것을 보게 될 줄이야....' 뭐 그런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비가 오고 난 뒤 대기가 맑은 상태에서....날씨가 흐리면... 침불락의 모습은 더 더 기가 막힙니다. 뿌연 운무 같은 것이 땅 위에 나즈막하게 깔리면서 세상을 덮으면... 산봉우리 위의 하늘과 산 아래 세상의 색깔이 비슷해지게 되고......침불락의 모습은 영락없이....회색빛 캔버스에 흰 물감으로 산을 그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니까요....게다가 비가 오고 난 뒤에는..산 봉우리엔 눈이 왔는지...전날에 비해 훨씬 많은 눈이 산봉우리에 쌓여 더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 비온 뒤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할 때의 침불락 모습이 더 가슴 깊이 와 닿더군요.... 물론 비 온 뒤...파란 하늘 아래에서... 침불락 산 봉우리의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도 화려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 둘 것은 침불락은 산 이름이 아니라 지역 이름으로서 천산 산맥의 봉우리들이 위치한 지대라는 겁니다. 우리가 알마티 시내에서 보는 산들은 침불락 지역이기에 그냥 산들을 가리켜 침불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이 침불락 지역을 넘어가면 키즈키즈스탄이 나오니까....이 산맥이 까작스탄과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 곳 알마티와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슈케츠(비쥬케)는 아주 가깝습니다. 알마티 시내에서도 비쥬케로 가는 이정표를 쉽게 볼 수 있었고....이곳 까작의 국제협력단 6월 정기 모임을 키르키즈스탄 지역인 침불락 너머에서 하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기 알마티에서 키르키즈스탄은 아주 가까운 동네입니다. 하긴...이 곳의 국가들은 이전에 소련 연방에 속했던 탓에....국경선의 의미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이나 까작스탄도 우즈벡스탄, 우크라이나,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함께 소련연방 해체 후 독립한 민족국가들이니까요..... 덕분에 키르키즈스탄도 가 보게 될 것 같아 기대가 되고....기회가 된다면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쥬케에도 가 보고 싶습니다.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이제 그렇게 늘상 보기만 하던 침불락에 올라갔던 얘기를 할까 합니다. 오전에 러시아 공부를 3시간이나 하고...다스따르한(이 곳 슈퍼마켓)에서 형민이 분유를 사고 들어온 뒤....피곤하다 싶어....좀 쉬려던 찰라였습니다. 이 곳은 기압이 낮아 그런지...처음 이 곳에 온 사람은 한 달 정도는 이유도 없이 피곤함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요즘 선화나 저나 (형민이는 모르겠고...) 그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협력단 현지사무소의 권소장님의 전화였습니다. "어....이성훈씨....침불락 가 봤나?...내가 침불락으로 드라이브 한 번 하려고 하는데...같이 갈텐가?....." 아무리 몸이 피곤하다고 하더라도....늘 우러러 보던 침불락에 실제로 갈 수 있다는 말에 흔쾌히 "좋습니다...."를 외치고 함께 이 곳에 온 치과 장재필 선생님 부부와 함께 권소장님의 무쏘 승합차에 올라 침불락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형민이도 함께 갔지요....자고 있는 형민이를 안고 무쏘에 올랐습니다.

침불락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앞을 바라본 모습(알마티에서 20분 거리)

나중에 얘기드리겠지만....요즘 전 까작스딴에서 타고 다닐 차를 알아 보고 있는데.... 이 곳에 계신 많은 분들이 침불락을 자주 오르내리려는 생각이 있다면...일정 수준 이상의 차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하시더군요. 러시아제 지프인 '니바' 가 가격도 적절하고....침불락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승차감이 나쁜게 흠이지요....어쨋든 제 차가 생긴다면 가보고 싶을 때 침불락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지만....지금처럼 렌트카를 이용할 때에는 침불락 가기가 싶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승용차는 침불락을 오르는데 무리가 있어서 렌트카 기사들은 차가 상할까봐 침불락에 잘 오르려고 하지 않는다는군요....저희 렌트카는 닛산에서 만든 차라 침불락은 무리가 없다고 기사인 이글 아저씨는 얘기하지만....그 동안 침불락에 가 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권소장님의 무쏘는 승용차와 같은 안락함에...침불락을 오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차는 침불락으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오르막 길을 달렸습니다. 권소장님의 차는 빨간 번호판(대사관 차량)이라...침불락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입장료를 내지 않고서도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차가 위로...위로....올라가면서...주변의 나무들과 예쁜 별장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은 지역에서는 몇몇 나라의 대사관도 위치하고 있었고....도로변의 경관이 깨끗하고 밝았습니다.

메데우 스케이트장이 바라 보이는 곳에서-이곳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배기태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했다고....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산 속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멀리서 보기만 했던 흰 눈 덮인 산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올라가니....'메데우'라는 지역이 나오고...커다란 스케이트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부산 구덕 운동장 만한 스케이트장이 보였고 상점들도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서....메데우 지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계속 침불락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부터는 나즈막한 풀들로 덮인 언덕 여기 저기에서...침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키도 어마어마하게 큰 침엽수들이 가지런하게 비스듬한 산허리를 따라 자라고 있었는데...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에 홀딱 반해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차 안에서 계속 눌렀습니다.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알프스의 어느 산자락 같다고 외치자...옆에 있던 장재필 선생님이 "제가 알프스에 갔다 왔는데요..진짜 알프스 같네요....하하..." 얘기하더군요........

 눈 덮인 산은 점점 가까와 지고.........그림같은 산 속 도로의 끝은 커다란 광장에 도달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여기가 스키장이라고 하더군요......침불락의 스키장...천혜의 스키장으로 유럽에서도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까작스탄을 방문하게 만든다는 그 유명한 스키장에 도달했습니다.

침불락을 오르는 리프트에서

눈을 들어 산 봉우리를 보니....침불락의 봉우리들은 예쁜 들꽃들과 잔디들로 옷을 입고 있었고...아마도 겨울이 되면...이 곳 전체가 눈으로 뒤덮히게 되어 훌륭한 슬로프가 될 것 같았습니다. 시즌이 끝난 여름의 스키장이지만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이 침불락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풀로 덮인 슬로프 위로 리프트들이 정상까지 오르락 내리락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권소장님이 "한 번 타고 올라가 보지?" 그러시더니...소장님의 돈을 털어....꼭대기까지의 리프트 비를 내어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형민이는 무료)와 장재필 선생님 부부....이렇게 네 명의 리프트 비는 약 4000텡게(우리 나라 4만원...) 정도였습니다.

전...스키를 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키장에 가 본적은 있습니다. 내과 3년차 때....연차 단합회를 무주 리조트에서 가진 적이 있었거든요...하지만 토요일 저녁에 갔다가...주일이기에...아침 일찍 빠져 나오느라....스키화를 신을 기회를 놓쳤지요.....그러니까...리프트를 타 볼 기회도 한 번도 없었던 셈입니다.

 막상 가파른 산 위로 오르는 리프트에 몸을 맡기려니 겁도 좀 났지만 신나게 리프트로 달려가는 장재필 선생님 부부의 모습에 선화와 전...용기를 내서...처음으로...그것도 까작스딴에서... 리프트를 타기로 했습니다. 안내요원들의 도움으로 첫번째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꼭대기까지 오르는 리프트는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해발 2850m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거기서 다시 다른 리프트로 바꿔 타고 두번째 중간 기착지에 도달하면...약 3000m....다시 마지막 리프트에 오르면 3200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겨울에 스키를 타면...정말 짜릿한 느낌이 들겠지요?

첫번째 리프트가 서는 곳에서....가족이 함께

지금까지 가장 높게 올라간 것은 대학교 1학년(1990년) 여름 방학때...한라산 백록담(1950m)에 올라간 건데.....이미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습니다. 백두산(2744m)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고 있으니.......

선화와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리프트는 생각보다 안전했습니다. 흔들리지도 않고 제가 움직인다고 해서 리프트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더군요....리프트가 줄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리프트는 줄에 고정되어 있고 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라는 사실을 안 것도....타고 올라가면서 관찰해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우습지요?

아래를 내려다 보니...발 아래 약 20m에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지대라...침엽수림은 이미 끝났고...그냥 이름 모를 들풀만 가득 피고 있었는데...들꽃들의 색상이 예뻤고...노랑 나비들도 발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전 그래도...약간 겁이 나는데...선화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리 저리 바라보면서....소리를 지르고 발을 내젓습니다. 제가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려도....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우린 리프트 위에서...우리가 이런 곳에 오게 될 지 상상이나 했었는지를 서로 물어 보면서....하나님이 만드신 신비한 자연들을 감상했습니다.

 두번째 리프트에 바꿔 타면서 형민이를 제가 안고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아무래도 리프트 위에서 나부대는 형민이를 조절할 수 있는 건 선화가 더 낫지만....리프트에서 내릴 때...형민이를 안고 내리기가 힘들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순발력이 좀 나으니까....

두번째 리프트가 서는 곳에서...여기서부터는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두번째 리프트가 오르는 지역에서부터는 찬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첫번째 리프트를 타기 전에 100텡게를 받고 파카(잠바)를 빌려주는 아저씨가 있길래...혹시 형민이가 추울까봐....모두들....파카를 빌려서 입고 올라갔지만....찬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 오자....'정말 아주 높은 곳인가보다.....'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는 귀도 멍멍해지고....하늘 위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볕에 따갑게 느껴져....부산에서 준비해온 선글라스를 착용했습니다.

두번째 리프트가 내리는 곳은 3000m 지역입니다. 이 곳에서 만년설을 실제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눈을 그냥 갈 수 없어...우린 초원을 걸어...만년설이 덮인 봉우리로 다가가 사진도 찍고 진짜 눈인지 밟아도 보았습니다. 오늘이 6월 3일이라고...말하면서 말이죠....

선화는 형민이가 배가 고픈 것 같다면....해발 3000m에서 이유식을 꺼내 물에 섞어 숟가락으로 형민이에게 떠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형민이도 잘 받아 먹더군요....요즘 형민이는 먹는 양이 엄청나게 늘어 났습니다. 무게도 무거워 지고......형민이가 자라면....약 8개월에 해발 3000m 침불락 지역에서 이유식을 먹었다는 걸 꼭 얘기해 줘야 겠습니다.

 만년설 옆에서 형민이의 이유식을 먹이고 있을 때....두 명의 외국인(우리도 외국인이지만...) 이 우리 주변으로 와 침불락의 눈을 밟으며 말을 걸어 왔습니다.  

"I guess... you are korean!"  유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국인이 아니냐고 묻는 말에 약간 놀랬습니다. '혹시 이렇게 관광지에 와서...(애기에게)먹을 것을 먹이는 걸 보며 한국인이라고 추측한 게 아닐까?...' '어글리 코리안' 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마음이 쓰이더군요....그런데 한국인이라고 추측한 건....그게 아니라....말소리를 들어보니 중국어도 아니고...그렇다고 일본어도 아닌 것 같아...한국인일 거라 추측해서 알아볼 까 싶어 인사를 걸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침불락 꼭대기에서 거대한 만년설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까작스탄에서 온 뒤 예상외로 영어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잉글랜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모스크바에서 왔다고 소개받았습니다. 관광지에선 대부분 여유가 있고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가 봅니다.  

 3000m 지역에서 좀 걷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숨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웬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 밑에 와 닿는 것 같았고...오래 걷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 높이에서는 낮은 기압으로 인해 몸의 변화가 생기겠다 싶었습니다.

 찬 바람도 불어오고...기온도 낮은 듯 했지만...햇볕이 비취는데 왜 이 눈들이 녹지 않고 이렇게 만년설을 이루는지 모르겠더군요....뭐....안 녹을 만하니까...안 녹겠지만....

 리프트를 타고 다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무섭다고 하지만....또 다른 경치를 볼 수 있어 괜찮았습니다. 형민이가 자꾸 리프트에서 서 있으려고 해서 붙잡느라...좀 혼났던 걸 빼고는......

침불락 만년설 옆에서 이유식을 먹는 형민이...선화와 장재필 선생님 부인...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권소장님께 감사드린 뒤....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침불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 곳을 발견하고선... 잠시 차를 세운 뒤 물을 직접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여름인데도 얼음장같이 찬 물이라는군요....잠깐 만져보니...그렇게 차게 느껴지진 않았지만...소장님 말로는 발을 담그고 있으면...몇 분 못 견딘다고 하더군요.

 메데우에 이르자...소장님은 이 곳의 대표음식인 샤슬릭 하나씩을 사 주시고 까작의 침불락의 경취를 다시 되돌아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젊음과 꿈을 주셔서...이 곳으로 보내시고... 자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곳을 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머리만 숙여질 뿐인 한나절이었습니다.    200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