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스토르

낯선 땅..까작스딴으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이 미지의 나라에 대해 많은 것들이 궁금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거리는 어떤 모습일까? 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자라고...기후는 어떨까... 무엇보다도 어떤 것들을 먹고 살고 있으며 주거 환경은 어떻고 시장이나 슈퍼마켙 같은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일차적인 생존을 위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넓게 드리워진 중앙 아시아의 평원, 양들과 낙타들의 행렬.....까작스딴에 오기 전에 가졌던 나름대로의 생각은 알마티 시내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처음 알마티에서 제투스 호텔로 들어 오던 새벽 2시....거리 곳곳에서  "LG" 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우리 기업의 광고 포스터가 촘촘히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이 곳도 문명의 혜택을 받는 곳이구나...정도 생각했었는데..... 이 곳의 시장과 소위 대형 매장을 가 보고 난 뒤에는 돈만 있다면 한국 물건에 버금가는 상품들을 대부분 구할 수 있는....그야말로 진열된 상품에 있어서는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유통 시설이 있는 곳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알마티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황량한 벌판에다....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평선으로 이어진 초원들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알마티 시내 안에서만 움직인다면 유럽의 어느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은 곳이 이 곳입니다. 이 곳에 와서 우리 나라의 E-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 매장인 람스토르에 가 보았습니다. 람스토르는 알마티 시내에도 2개가 있는데 큰 람스토르가 저희가 사는 사말 드바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가 지는 밤에는 형민이와 함께 우린 람스토르를 둘러 보며 장을 보는게 이제 일과가 되었습니다.

람스토르는 터어키 자본이 들어와 건립한 유통 기관이라...람스토르 외부와 내부에는 터어키 국기와 까작스딴 국기가 나란히 내걸려 있었고 내부에 진열된 물건들도 거의 다 유럽에서 들어온 것들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한국의 어떤 업체보다도 깨끗하고 잘 정돈된 매장을 가지고 있고 지하에는 아이스링크가 있어 소년 소녀들이 피겨 스케이팅이나 아이스 하키를 배우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각종 패스트 투드점과 베스킨 라빈스와 같은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지요... 2층에 쇼핑을 위한 대형 매장이 있는데 한국처럼 가방같은 소지품을 물품 보관하는 데 맡기고...물건을 담기 위한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쇼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3층에는 각종 유명 브랜드(유럽이나 미국)의 점포가 빙 둘러가며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말에 익숙치 못하고...이 나라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우리들에겐 람스토르의 존재가 소중했습니다. 매장을 샅샅이 뒤져가며 이 곳에 있는 물건들을 파악하고 난생 처음 보는 유럽의 많은 물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이 나라에선 이 물건의 얼마나 하는지......이곳의 물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화폐단위는 텡게(Tenge)입니다. 1달러가 147텡게 정도되니까...1달러에 약 1300원 정도 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대강 텡게에다 10을 곱하면 원화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120텡게면 우리나라 돈으로 대강 1200원 정도 되는 가격이라는 거지요.....이 때문에 쉽게 우리나라와 물가를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농산물과 축산물은 우리나라의 1/2 정도 가격이지만 공산품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비싸고 특히 휴지와 학용품 가격이 비싼 것 같았습니다. 아니...학용품의 경우에는 많은 물건이 수입되지 않는지....물건의 종류가 별로 많지 않았고 품질도 떨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형민이가 하도 공을 좋아하기에 비닐로 된 공을 하나 사 줬는데...자세히 보니 스페인에서 만든 장난감 공이더군요....이 나라에선 거의 모든 게 수입된다는 게 사실인가 봅니다.

옆 사진은 람스토르 2층에 있는 극장입니다. 이 나라에 와서 유일하게 본 극장인데...마침 한국에서 저희 부부가 관람했던..."proof of life"가 상영 중이더군요...러셀크로, 맥 라이언이 보이는 영화 포스터 앞에서 반가운 마음에 한 장 찍었습니다.

선화가 이 나라의 물건 중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형민이 기저귀입니다. 한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할 때까지...이 곳의 기저귀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 곳에 나오는 "LIbero"나 "Hugis"같은 기저귀들은 우리 나라 처럼 종이 기저귀가 아니라 비닐로 겉을 처리한 기저귀라....땀이 잘 흡수되지도 않고 증발되지도 않아 땀띠가 나기 딱 좋은 기저귀였습니다.  

러시아어 수업을 시작한 날...애라 선생님이 화이트 보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 날 람스토르에 내려 갔었습니다. 8절지 크기 만한 조그마한 화이트 보드가 600텡게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6000원 정도니까....한국과 별로 차이가 없다 싶어 작은 것으로 하나 산 뒤....보드 마커(화이트 보드에 쓰는 매직)를 사려고 주위를 뒤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낱개로 파는 보드 마커는 하나도 없고 4개짜리가 한 묶음으로 되어 900텡게에 팔고 있었습니다. '아니? 보드 마커를 사러고 한국돈으로 9000원이나 내야 한다고?...' 한국에서는 보드 마커가 1000원 정도 할 텐데...여긴 이런 학용품의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수업에 필요한 물건이니까 할 수 없이 구입했지만...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물자가 부족한 나라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습니다.

람스토르에는 낱개로 된 색깔 볼펜이 없습니다. 이것도 다른 색깔 볼펜과 셋트를 이뤄 500텡게 정도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볼펜을 살 수 없고...300텡게(3000원) 정도 내야 한국에서 우리가 5-600원에 살 수 있는 일반적인 공책을 살 수 있는 나라가 까작스딴이었습니다....까작스딴에 오기 전에 누군가가 저더러 "까작스딴에 가서 공부하려면 볼펜 사 가지고 가야 한다" 고 말하길래...웃어 버렸는데 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이제서야 확실히 알게 된 셈입니다.

이 곳에서 파는 생수도 잘 골라야 하는데...안 그러면 탄산수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mineral water 임을 확인하고 물을 사야 정상적인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처음에 람스토르에 갔을 때 우유가 있길래 어떤 맛인가 싶어 하나 샀습니다. 개봉해 보니...우리가 아는 우유가 아니라....발효시켜 죽처럼 걸죽한 우유였습니다. 겉포장에는 일반 우유와 똑같이 포장되어 있는데 내용물은 지금껏 보지도 못한 우유더군요.......맛있게 보이는 빵이 있어 여러 번 샀었는데...번번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는 안에 갈아 넣은 고기가 있는데...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살구 과육을 거의 50%나 되도록 섞어 만든 파이인데...너무 달아서 먹기 힘들었습니다.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지금까지 먹던 것이 아니라 겪게 된 황당한 일들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전 옥수수 마아가린을 즐겨 먹는데...이 나라에서 발견한 마아가린을 종류별로 두어개 사서 맛을 보았더니....들기름 냄새가 나는 마아가린이었고 옥수수 마아가린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육고기를 파는 곳에 가서....이게 양고기인지 말고기인지 쇠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적어 놓은 글자를 읽을 수가 없어 "다음에 사자....."며 돌아온 적도 있고....쇠고기의 어느 부위인지 알 수가 없어 선화가 직접 자신의 목과 등을 가리키며 등심을 사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까작스딴이기에 한국에서 맛보던 수 많은 산나물들은 구경할 수도 없고 참기름이나 콩나물, 두부  같은 것이 람스토르에 있을 턱이 없습니다. 형민이 이유식도 유럽 것이라곤 하지만 한국에서 먹던 이유식과 향과 맛이 달라 선화 맘이 아팠고....전 중국 미나리 라는 이상한 나물을 먹었다가 우리 나라의 단무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뱉어 내고 말았습니다.

모든 게 어색한 이곳에서....우린 시작하고 있습니다. 람스토르라는 큰 매장이 있어 우리의 시작에 도움이 되지만....그래도 한국이 좋은 곳이구나....란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선화는 오늘도...."한국은 사용하는 소비재와 식품의 수준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 상위권인 것 같아요...." 라고 얘기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람스토르가 가까운 곳에서 정착을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차차 이 나라에 익숙해지면 이 곳의 재래 시장들을 찾아 다니며 물건값을 깎으며 필요한 것들을 구하겠지요.....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갓 열흘이 된 러시아어 공부가 많은 진보를 가져왔으면 하는 마음.....오늘도 간절합니다.   20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