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겐 계곡의 가을 풍경

 2001년 10월 28일... 아스타나의 오늘 기온은 영하 5도입니다...아직 강추위라고 할 순 없지만...이곳은 말 그대로 시베리아 벌판에 들어서는 분위기입니다....아침에 내린 눈은 녹질 않고 마치 스티로폼 가루처럼 이리 저리 도로 위에서 바람에 쓸려 다니고 있고...거리에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듭니다. 잠시만 거리에 서 있어도..모래 바람 때문에 입안에 모래가 씹히고...날아오는 모래 알갱이 때문에 얼굴이 따가울 정도여서 어디론가 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차를 주차시켜 놓은 뒤에도 혹시 차가 바람에 날려 가는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될 정도로 바람에 차가 이리저리 흔들리고....사람들은 거리에서 눈만 내 놓고 온 몸을  옷으로 휘감고 총총 걸음치며 걸어 다닙니다. 바야흐로 겨울의 자락에 들어선 것입니다.

어제 알마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1병원에서 사용하기 위해 한국에 요청한 의약품과 관련 기자재들이 까작스딴 한국 대사관이 있는 알마티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알마티에서 이곳 아스타나까지 그 물건들을 운반할 경로가 마땅치 않아 제 의견을 물어 왔었고...전 제가 알마티에 내려가서 그 물건을 인수해서 올라오겠다는 의사를 비쳤습니다.

그래서 오는 10월 30일 오후 12시 10분 기차를 타고 알마티로 내려 가게 됩니다. 아스타나-알마티 구간의 기차 여행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차가 달리는 시간은 21시간....제가 태어나서 가장 긴 철도여행을 하게 되겠지요...이번 기차 여행은 형민이와 선화를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아직 형민이에게 힘들 것 같아서입니다.

알마티도 가을에는 날씨의 변덕이 심하다고 하니까...추울 때는 여기처럼 매섭겠지요...그래도...남쪽인 알마티에서 하루라도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웬지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긴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드니까요...항상 구름이 잔뜩 끼든지..비나 눈이 오기 때문에..알마티의 밝고 온화한 날씨가 그립습니다.

제 홈을 통해 알마티의 몇몇 가볼 만한 곳들을 소개해 드렸는데요...알마티행을 앞두고...알마티의 또 하나의 명물...뚜르겐 계곡을 소개할까 합니다.

 뚜르겐 계곡은 알마티 주의 주립공원입니다. 아마 알마티에 며칠이라도 계신 분이 있다면...한 번쯤은 이 곳에 다녀왔을 정도로 이곳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지요...여름에도 차가운 계곡 물과...멋진 자연환경...그리고 우리나라 말로는 무지개 송어라고 불리는 먹거리로 인해 특히 유명합니다.

지난 9월 말...한국에 잠시 들어갔다가 알마티에 있는 동안...우린 가을의 뚜르겐 계곡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가정은 그 전에도 뚜르겐 계곡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알마티의 라큼교회의 청년들과 함께...단합회 형식으로 토요일 오후에 출발했던 것인데... 가는 중...청년들이 탄 미니 버스가 고장이 나고 일정에 차질이 생겨 저녁 6시나 되어...뚜르겐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고...아주 힘드는 모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우린...사람들이 왜 뚜르겐 계곡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뚜르겐 계곡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진 않았지요...하지만....이번 가을...만나본 뚜르겐 계곡은 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알마티 시를 빠져 나가는 모습입니다. 알마티 시는 외곽으로 빠져 나가는 도로들이 잘 나 있는데...뚜르겐 계곡으로 가는 이 길도 아주 잘 닦여 있었습니다. 길 좌우로 키 큰 나무들이 쭉 늘어 서 있고...좌우로 이국적인 경치가 이어지는 넉넉한 도로입니다. 가을이라 도로 좌우에는 단풍에 물들어가는 나뭇잎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시속 100-110Km로 달리면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뚜르겐 계곡에 도달할 수 있으니...알마티에선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뚜르겐 계곡으로 들어서는 곳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한국의 단풍처럼 세밀한 멋은 없지만....큰 산봉우리들과 나지막한 초원들로 이루어진 언덕들이 도로를 끼고 발달해 있고...이미 가을 빛으로 짙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까작스딴은 어디를 가더라도...한국과는 스케일이 다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크고 웅장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일반 서민들이 사는 집도 우리보다 크고 ...이렇게 자연 환경도 웅장합니다. 한국인으로선 부러운 일이지요..

이 날은 알마티의 한카병원 식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한카병원의 정부파견의사이신 민병훈 선생님께서 지난 6년간의 까작스딴 생활을 정리하시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시게 되어서...모두들 민선생님이 가시기 전에 한번 더 뚜르겐 계곡을 다녀오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알마티에 잠시 들르게 되어 더욱 기회가 좋았다고 봐야겠지요....

전에...라큼 교회 팀과 뚜르겐 계곡을 방문했을 때는 ....안으로 쭉 들어가서...물이 흐르는 계곡가에서 과일을 물에 담그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놀았는데...이 날은 안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도로를 달리다 보면 나오는 무지개 송어 양식장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진짜 계곡도 좋지만...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송어와 주변 자연 환경들을 즐긴 뒤 돌아 간다고 합니다.

무지개 송어가 산다는 양식장입니다. 두 사람이 그물을 끌어서...고기를 잡아 오는 모습입니다. 무지개 송어는 맑은 계곡물에서 자라는 고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일급수의 물에만 자라는 고기들이 있는데...이 녀석도 차가운 일급수에만 자라는 것으로 한국에선 보기 힘들다고 하네요...

이 나라 사람들은 이 고기를 잡아서 기름에 튀겨 먹는 모양인데...한국인들이 이 곳에 와서 이 고기를 본 뒤...'횟감으로 좋겠다....'고 생각했고...한국인들은 이 곳으로 놀러 와서 이 송어를 먹을 때는 회로 먹는다고 합니다.

사실 전...민물 고기 회를 먹는데는 좀 거북한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내과...그것도 소화기 내과를 주로 공부했는데...낙동강 유역의 소화기 내과의 가장 큰 이슈가 간디스토마이고....이 간디스토마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로선 약간...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었지요...제가 간디스토마 관계된 논문을 두 개나 적었는데...담석, 간담도암과 관련이 있는 이 간디스토마와 관련이 있는 민물고기에 대해선...아무리 관용을 베풀어도 용납이 잘 안 됩니다. 하지만...많은 분들이 한 번 먹고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 맛에 그냥 지나가질 못한다고 하더군요...또...이 지역의 민물고기의 간디스토마 보유율을 누가 조사해 봤겠습니까?

 

이 고기를 보고 놀란 건...그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참치 만한 고기였습니다. 등에...붉으스럼한 가로 줄무늬가 있는 게 특징인데...힘도 세서...물 밖으로 꺼내 놓아도 부대 자루에 넣기가 힘들 정도로 우악스러운 녀석이었습니다.

큰 고기 두 마리를 잡아 재어 본 무게가 8kG정도였습니다. 엄청난 무게지요...

 알마티의 한카병원 의료진은 이 물고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능숙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맨 왼쪽에서 칼을 세워 작업을 돕고 있는 분이 한카병원의 정부파견의사 외과 민선생님이시고...바로 오른쪽에 서 계신 분이 내과 국제협력의사 김동환 선생님입니다. 김동환 선생님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김선생님 개인 홈페이지와 운영하고 계시는 알마티 소식이라는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그리고...왼쪽에서 세 번째...앉아서..예리한 칼 솜씨를 보여 주고 있는 젊은 의사는 치과(구강외과) 국제협력의사인 장재필 선생님이십니다...모두들...이번 일은 외과의가 맡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얘기하는 바람에 그래도...외과계인 젊은 구강외과 의사가 가장 큰 일을 맡았지요...그리고 맨 오른쪽에...차분하게 작업을 하고 계신 분이 한방과 정부파견의사이신 선종욱 선생님이십니다. 모두들...너무 열심이지요?...알마티의 한카병원은 교민사회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훌륭한 병원인데...이 병원 스탭진들의 이와 같은 열심(?) 때문에..사모님들도 어딜 가더라도 너무 좋아하고...항상 즐거운 얘기들만 들리지요.....

저야...민물고기가 어떠니..하지만...선화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습니다...'이런 맛있는 게 다 있나...'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지요...

한쪽에는 회가 준비되고...나머지 고기들로 매운탕이 끓여지고...모두들 준비해온 고추장과 반찬들을 펴 놓고 뚜르겐의 자연 속에서 즐거운 한 떄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흰 모자 쓰신 분이 민선생님이신데...지난 6년간 뚜르겐 계곡을 비롯한 알마티 생활의 경험들을 들려 주시기도 한 귀한 자리였습니다. 6년이라면...짧은 시간이 아닌데...그 동안의 알마티 생활을 접어 시려고 하니...참 섭섭하실 것 같았습니다.

이번 나들이에는 아이들만 많이 참여 했습니다. 형민이가 알마티에 있는 동안...좋았던 것 중 하나가 이렇게 아이들이 많아서 ...형민이가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다는 거였지요..

 선종욱 선생님 댁 딸과 김동환 선생님 댁 아들의 모습이 보이네요...형민이가 잘 따르고..형민이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입니다...이 날이 지난 다음..이틀 후면 다시 아스타나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참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사실...이렇게 다른 나라에 와서 살면..아이들의 교육 환경이나 주변 환경이 염려스러울 수 있는데...제가 보기에는 알마티는 한국보다 훨씬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물론 중등교육 시기는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이렇게 유아 및 초등 교육 시기에는 한국에 있는 것보다 학과 부담에 시달릴 필요없이 자유로운 야외활동과 사고가 가능하고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앞으로의 삶에 유익할 것도 같고.... 게다가...외국인을 위한 국제 유치원 같은 곳에선...영어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해서...물론 한국이 더 좋은 면도 있겠지만....이곳에 있는 아이들도..좋은 것들을 많이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쨋든...알마티의 한카병원 식구들 덕분에..우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탁 트인 이국적인 산들을 바라 보며...생활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여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곳...알마티는 늘 풍요로운 곳으로 다가옵니다.

이맘 때쯤 형민이가 걸을 수 있었기에...이곳 여기 저기를 아빠, 엄마 손을 잡고 다녔습니다. 또...물이 들어 있는 물통을 끌고 다니기도 했는데..조그만게 얼마나 힘이 센지...몇 리터 들이 물통에 물이 채워져 있어도..그걸 끌고 가려고 용을 씁니다. 아마..어릴 때부터 이런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으니..팔, 다리에 힘은 세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무지개 송어 양식장은 방문객들을 위해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건..양어장 한쪽 편에..고기를 많이 풀어 놓고...낚시대를 제공한 다음...마음껏 고기를 낚을 수 있도록 한 거지요..그러니까..'손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낚시를 담궜다 하면...금새 찌가 까딱까딱하고...당기기만 하면 커다란 고기들이 낚여 올라옵니다. 물론 낚은 고기들은 사 가게 되어 있어서...일종의 장삿속이라고 봐야겠지만...낚시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민선생님이 도와 주셔서...선화가 고기를 낚으러 갔습니다. 미끼는 그냥 옥수수 알을 사용하는데...이것만 사용해도 고기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울긋 불긋 단풍이 한창인 산 자락에서...개울가에 서서 고기를 낚아 올리는 즐거움...상상만 해도 아시겠지요?

이 날 선화는 고기를 많이 낚아 올렸습니다. 저도 가서...한 번 해 봤지요...물론 대어(?)를 낚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고 나니...왜 모두들 뚜르겐 계곡을 입 모아 말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탁월한 자연 경관과 물...그리고 먹거리..편리한 교통..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잘 갖추어진 관광지가 바로 여기..뚜르겐 계곡이었습니다.  

해 질 녘가지 그 곳에 있다...어둑어둑해지자 우린 아쉬움 속에 모임을 마치고 알마티로 돌아왔습니다.  

 아마...이 날 가졌던 특별한 경험들은 살아가면서 계속 얘깃거리로 남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이 날 저도 민물 고기를 먹었습니다. 분위기도 그렇고..옆에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어서...따라 먹었지요....바다가 없는 까작스딴에서 한국에서 먹던 회를 잊을 수 없는 이들에겐 최고의 먹거리였습니다.

하지만...전..도저히 안되겠더군요....아스타나로 올라와서.. 약(?)을 먹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해야겠지요...모든 가능성들을 다 생각하는....그런데 선화는 약을 안 먹겠다는군요....여러분이라면...어쩌시겠습니까?

알마티에는 많은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다음 주에 전...알마티로 또 내려 갑니다. 이번에는 알마티에서 하루만 있게 됩니다. 하지만...웬지 기대가 됩니다. 물론 가지고 올라와야 할 물건들이 풍성하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이곳 까작스딴에 처음 와서 2달 반 동안 살면서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세월은 빨리 변하고 있고.. 세계는 급속하게 하나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혹시 알마티를 방문하실 분이 있다면...뚜르겐 계곡을 잊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200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