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알마티 호수에서 끼르끼즈스탄 국경선까지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는 분들은...직접 까작스딴에 와 보지 않았어도 이곳의 생생한 모습을 편안하게 집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 얘기드릴 까작스딴과 끼르끼즈스딴 국경선까지 걸어간 얘기도 사실 아무에게서 쉽게 들을 얘기가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까작스딴은 남쪽으로 끼르끼즈스딴, 우즈벡스딴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살았던 알마티는 바로 끼르끼즈스딴과의 국경선에 아주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수도 알마티를 북쪽 아스타나로 옮긴 배경에는 이처럼 알마티가 너무 남쪽 국경선에 바짝 붙어 있어 국토의 중심이 되어야 할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면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아래에 제가 지도 하나를 스캔해서 보여 드리는데요..이것 까작스딴의 남동부 끝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황색의 알마티 주가 보이고 그 주의 가장 남쪽에 까작스딴에서 가장 큰 도시(인구 150만)인 알마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쪽에 끼르끼즈스딴과의 국경선이 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바로 이 알마티 시에서 바로 이 국경선까지 걸어갔다는 것이죠...지도를 보시면 이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애개..이렇게 짧은 거리를 걸어단 말이야?'

그런데 그게 험난한 길입니다. 일단 알마티의 외곽에 있는 큰 알마티 호수(발쇼이 알마찐스끼 오제르)에서 출발해서 직선거리로 국경선까지 걷는 일인데..가이드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길이고...해발 3500미터까지 걸어가야 하는 일이므로...저산소증으로 인해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지난 2001년 7월 초..전 다섯 사람과 함께 발쇼이 알마찌스끼 오제르(큰 알마티 호수)에서 끼르끼즈스딴까지의 국경선을 향해 걸어가기로 약속하고 출발했습니다. 한 사람은 우리를 도와 줄 가이드니까...결국 네 사람이 일행인 셈입니다. 한카병원의 선종욱 선생님, 그리고 해외봉사단원인 이상혁 선생님, 그리고 1기 봉사단원이셨던 최선생님 이렇게 함께 했습니다.

사실 큰 알마티 호수가 있는 위치만 해도 해발 2500미터가 가까운 곳입니다. 이 곳에는 키 큰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고 낮은 초원만 나즈막하게 형성되어 있을 뿐이지요...우리나라의 백록담처럼..여기도 산 위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큰 알마티 호수로 오는 길도 걸어온다면..알마티에서 오기 힘든 곳이지요...차로 오려고 하더라도 지프가 있어야 가능할 정도로 길이 험합니다.

하지만...많은 알마티의 교민들이 이 호숫가를 찾아와..한국에서 보기 힘든 자연속에 파묻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곤 한답니다.

우리들은 이 호수까지는 차를 타고 와서...여기서 산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끼르끼즈스딴과의 국경선 너머에는 위 지도에도 나와 있지만 이시쿨 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습니다. 호수인데..아주 깨끗하고 휴양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알마티의 까작스딴 사람들도 이시쿨까지 찾아가서 쉬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 이시쿨 호수로 가려면 이렇게 끼르끼즈스딴과 접하고 있는 텐샨 산맥을 넘든지...아니면 끼르끼즈스딴의 수도인 비슈케크로 가는 길을 통해 산을 돌아가야 하기에....가기가 힘이 듭니다.

우린...바로 산맥을 넘는 최단거리를 택해 끼르끼즈스딴 국경선까지 가기로 했는데..이곳은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구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타고 비슈케크로 돌아서 끼르끼즈스딴의 이시쿨로 가지요....우리가 가려는 이 길은 끼르끼즈스딴까지 도로가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곳이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어 이 곳으로 차를 몰고 가지 않습니다....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혹 걸어서 산맥을 넘어간다고 하는데...걸어가면 이시쿨까지 2박 3일정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출발지는 해발 2500미터 지역이고...앞으로 6시간 정도 걸어서 3500미터 지역에 있는 국경선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걷는 길은 10kM 정도 됩니다. 산길 10kM는 작은 길이 아니지요...표고차가 가파르면이라..우린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지도에 황색으로 보이는 알마티라는 도시에서 출발해서 빨간색의 국경선까지 걷는 일입니다. 중간의 등고선을 보시면 알겠지만 4000미터급의 봉우리들이 즐비한 곳이지요...

등산로는 생각보다 잘 되어 있어서...걸으면서 계속 ..지프를 타고 이 길로 끼르끼즈스딴까지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등산을 한다면..숲을 헤치고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고 돌밭을 걷는 일일텐데...여기는 좀 다릅니다...

좌우로 보이는 큰 봉우리를 뒤로 하면서...골짜기로 잘 나 있는 도로를 계속 따라가는 겁니다. 걸어가면서 주위를 돌아보면...한국에서 볼 수 없는 눈덮인 큰 봉우리들에 둘러 싸인 경치로 인해...입이 절로 벌어집니다.  

 

여기 뒤쪽에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출발하면서 찍은사진입니다.

제 옆에 계신 분이 가이드였는데..러시아말 밖에는 못하는 분이지만 미소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산행을 계속했지요...

 산행의 첫 단계는 나무와 풀이 제법 많은 지대였고...자동차 도로와 다른 방향으로 산을 올라갔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커다란 계곡으로 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고...출발 1시간 반 정도 후...이 계곡 물을 건너기 위해 거꾸로 외줄타기(두손과 두 발을 로프 위에 걸치고 물을 건너가는 것)를 시행해야 했습니다. 계곡물을 그냥 건너면 안되냐고 얘기하시겠지만...물의 양이 아주 많고 물살이 빨라...무모한 걸 좋아하는 저도 건너가기 힘들었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나서는 풀도 별로 없는 고산지대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이라 처음에는 썬글라스를 끼고...물을 마셔가며 걸었는데...시간이 지나면서...변화무쌍한 고산지대의 날씨를 겪었습니다. 비가 오다가...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다...햇볕이 다시 났고...잠시 후...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상황 속에서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를 걸으니..온 몸이 춥고 귀와 얼굴이 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7월입니다....8월은 가을 날씨가 어쩌다 있다곤 하지만...7월의 알마티는 더운데...고산 지대의 기온은 눈을 뿌리고 있었지요..

 전 이날...캠코더를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좌우로 펼쳐지는 기괴한 산모양과 하얗게 내려 앉은 눈사이로 걸어가는 여름 산행이 하도 신기해...정신없이 여기 저기 화면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지요...그래서 이 때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잡질 못했습니다. 앞으로 제 윈도우가 제대로 가동하면...비디오 카메라의 영상을 캡처해서..얼마나 신비로운 고산지대의 모습인지 더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산길을 걸은 지 3시간 후...우린 예정보다 빨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라고 하지만 김밥 같은 건 아니고..저마다 준비해 온 간단한 패스트 푸드 들입니다. 빵, 훈제 쇠고기, 음료수, 소세지 뭐...이런 것들인데...거센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가에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앞에서 보신 출발할 때의 사진과 달리 모두의 옷차림이 아주 두꺼워 졌음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여기서...점심을 먹는데...어찌나 춥든지...저마다 집에서 등산한다고 1.5리터 PET 병에다 얼음을 넣어 가지고 왔는데...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혹시 다음에 가시는 분이 있으면 반드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휴대하고 여름 산행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식사를 하고 있는데 너무 추워 떨다가...찍은 사진입니다. 옆에 계신 분이 까작스딴에 해외봉사단 1기로 오신 분이신데...봉사단 활동이 마친 후에도 한국에서 살지 않고 여기 와서 사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총각이구요....까작스딴에 봉사활동을 오신 1기 단원 모두가 임기가 마친 지금까지도 아직 까작스딴에서 살고 있습니다. 까작스딴이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거지요...기후도 좋고 과일도 많고 먹을 것도 싸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눈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급히...먹을 것을 집어 넣고 길을 걷기 시작했지요..머리에 모자가 달린 겉옷을 껴 입고..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고도가 점점 높아졌는지....이 때부터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두통이 심해지는 현상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겪고 있었지요....그리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걸을 수도 없고...가슴이 쿵덕쿵덕 빨리 뛰고 있었습니다. 심박수를 속으로 세어 보면서...이곳의 산소농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3500미터를 넘어 4000미터 이상이 되면 보통 사람들을 산소 마스크가 있어야 산행을 할 수 있다고 하네요...전 이 날 외 산소탱크를 짊어지고 산을 걸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지치기 시작하고...조금만 걷고 난 뒤에도..반드시 휴식을 취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부터는 정신력으로 걸었던 것 같습니다. "알마티에서 끼르끼즈스딴 국경선까지 걸어가 봤다." 는 사실 하나를 얻기 위해 우린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걸었습니다.  

 그렇게 여섯 시간 정도를 걷고 난 뒤...가이드 하시는 분이 큰 드럼통 같은 것을 가리키면서...여기가 국경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이드가 가리킨 국경선이라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고...여기 저기에 돌무더기와 빈 드럼통 그리고...눈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눈덮인 돌과 흙으로 된 산들뿐이었습니다. "여기가 끼르끼즈와의 국경서이라구요?" 전 여러번 되묻고 난 뒤...국경선인 곳을 여기 저기 넘나 들며...성취감에 젖어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7월 초의 한창 여름 날씨에...눈과 비바람에 너무 추워 옷을 겹겹이 입고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선 선생님이 가지고 오신 고도계로는 해발 3350미터가 나와서...이것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걷고 있었지요..하지만 ..가이드 하시는 분의 말로는 여기가 해발 3500미터의 끼르끼즈스딴과의 국경선이라고 하시더군요... 고도계는 약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요..

국경선이라면 늘 휴전선만 생각해 온 한국의 젊은이기에...국경선에 아무런 초소도 없고 아무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게 너무 신기했고...땅으로 이어지는 다른 나라와의 국경선에 서 있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럽게 춥고 높은 지역에 경비병이 지키고 서 있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도 서서히 들더군요. 풀도 별로 없고..검은 돌과 흙에 흰 눈만 가득 쌓인 곳입니다. 흑백의 강렬한 대조가 눈으로 들어오는 그야말로 눈 덮인 바위와 흙뿐인 곳이지만....그 곳에 가 보았던 사실이 제게 뿌듯함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은 3면이 바다이고 북쪽의 육지는 휴전선으로 가로막혀...다른 나라와의 국경선을 넘어 가는 걸 상상할 수 없는데...사진의 오른쪽으로 걸으면 끼르끼즈스딴이고 왼쪽으로 가면 까작스딴으로 걷는 것이지요....이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선을 걸어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함께 다섯 사람이 산행을 하면서...많이 친해졌습니다. 해외봉사단원인 이상혁 단원과는 이 산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많이 친해졌습니다. 지금 상혁 단원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컴퓨터 분야의 봉사단원으로 이곳에 와 UNDP라는 UN 산하 단체에서 일하다가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들어갔지요...

이렇게 아스타나에 있다보니...알마티에서 겪은 많은 일들이 참 신나고 인상적이었던 경험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알마티에는 한인들도 많이 있기에..언제든지 여러 가지 경험을 시도해 볼 수 있고..함께 즐길 수 있어....알마티는 여러 모로 까작스딴 최고의 도시인 것 같습니다.

알마티는 텐산 산맥이 바라 보이는 고산지대의 도시이지만...이곳 아스타나는 끝없는 평원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도시입니다...사면 어디를 봐도 구릉지나 언덕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평원을 가로 질러 온 구름이 도시를 덮고 비바람을 뿌립니다...여기서 산지 이제 3주가 되어 가는데...알마티와의 다른 점이 벌써 하나 둘씩 머리에 각인되고 있습니다.

그래도...가끔씩..끼르끼즈스딴까지 걸어갔던 길을 회상하면서...사진과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그 때의 일이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고국에서 멀리 떠나 있지만...젊은 시절..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시절을 헛되게 보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