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선교지 탐방 - 아스타나 장로교회

인구 50만(2001년 10월 통계상 이 곳 인구는 49만 몇 천명이라고 발표됨)의 아스타나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습니다. 만일 3년 전에 이곳에 왔던 분이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면 변화된 아스타나의 모습에 놀라고 말 것입니다. 빌딩도 많이 들어서고 아파트도 많이 생겼고 자동차도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근사한 쇼핑몰도 많이 생겼고 화려한 조형물과 시장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지요....

 하지만...이곳에도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일단...까작 정부가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기고 까작민족 우선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이곳에 살던 러시아인들은 쫒겨 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고위 관직에 있던 러시아인들이나 고려인들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정부의 주요 요직에는 젊은 까작인들로 채워졌으며..할 일을 잃은 러시아인들은 집 주변에서 구멍가게를 열어 연명하기에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자동차를 소유하고 여기 저기 쇼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건...소비에트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지만...지금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과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거리와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첨단 전자장비가 사람들의 눈과 귀에 비쳐지지만 이곳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60년대와 같은 가전기구와 가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까작인들의 공화국이 세워지면서...이슬람국가라고는 하지만...어느 이슬람국가보다 허술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녁 즈음에 모스크 주변에 나가면...수많은 여인들이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모스크에서 경건한(?) 모임을 하고 떼를 지어 나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만...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함께 살기에...종교적 색채를 국가적으로 뚜렷하게 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몇 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아스타나를 찾아 왔습니다. 현재(2001년 9월) 아스타나에 와 있는 선교사 가정은 총 5가정인데 4분의 목사님과 UBF출신의 자비량 선교사인 변찬석 선생님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아스타나에는 더 많은 선교사 가정이 들어와 있었지만 최근 몇 가정이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마침 최근에 아스타나에서 추방당한 선교사 가정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유사범'이라고 불리는 태권도 사범이였습니다. 결혼하신 분인데 자매님도 알마티에 있는 한국어 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 분들은 이곳에서 명목상의 일 외에..드러내지 않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행정 당국에 고발되어지고 아스타나에서 살 수 있는 외국인 등록이 취소되어 알마티로 쫒겨 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작년 실크로드 2000이라는 대규모 기독교 행사가 까작스딴에서 벌어진 이후...까작스딴은 종교활동을 극히 제한하는 분위기인데 그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유사범님을 거리에서 한 번 만났는데.... 제게 살짝 다가오셔서 귓속말로 "한국에서는 어느 선교단체에서 일하셨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물으시더군요...이 얘기를 들으면서..'그동안 참 조심스럽게 생활해 오신 분이구나 '라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대학시절...특별한 학원선교단체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교단이 예장(고신)이어서 교회 SFC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했지만....거의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이었고..모두가 알 듯이 부산의대기독학생회 출신이라는게 다 입니다...그 분께 기독학생회 출신임을 얘기드렸지만....이렇게 급박하고 쫒기는 선교지에서는 '기독학생회'라는 단어는 웬지 약하게 느껴지더군요...마치 좀 더 특수한 선교단체의 이름이 거명되어야 할 분위기였습니다....하지만..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기독학생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느 선교단체보다 섬기는 훈련을 잘 시키는 단체이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름이면 갔었던 SFC수련회나 몇 번의 CMF수련회 그리고 이슬람권을 위한 OM 훈련 등을 통해 동시대 선교단체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기에 수련회나 모임이 부족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아스타나는 외국인 선교사들보다는 현지인 목회자들의 교회의 수가 더 많고 교세도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로는 지난 1996년 모스크바에서 아스타나로 오신 박유석 선교사님 가정의 나사렛 교회가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입니다. 1998년에는 아스타나 외곽 미추리나 지역에 크리스챤 센터가 세워지면서 지미 박 선교사님이 들어 오셨고  그 뒤로는....2000년에 성결교단의 손귀목 선교사님 가정이 들어와서 세운 벧엘 교회, 2001년 바울 선교회 소속의 김명희 선교사님이 시작한 아스타나 장로교회가 이어집니다. 또 한가지....UBF 소속의 변찬석 선교사님께서 2000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겨온 뒤 이곳에서 대학생들을 위주로 하는 제자 양성 사역을 활발하게 펼치고 계십니다.

원래 까작스딴은 선교 초기에 한국의 침례교단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찾아 왔었습니다. 10년 전 소비에트에서 분리 독립 하자말자...전에 말씀드린 살렘교회의 주민호 목사님 같은 침례교 출신의 사역자들이 이곳을 찾았고 지금도 알마티에서 큰 교회들은 한국의 침례교단에서 뿌린 씨앗들이 많습니다. 하지만...아스타나 만큼은 여러 교단에서 다양하게 사역자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장로교,성결교,나사렛 성결교 같이 한국 선교사가 들어온 교단 외에도.....50년 가까이 구 소련 시절 적부터 믿음을 지켜온 이곳 현지의 침례 교회가 튼튼하게 믿음의 전통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CIS 전 지역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스크바 은혜 신학교 출신 사역자들이 아스타나를 비롯한 북부 까작스딴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까작인이 담임 목회자인 아스타나 은혜 교회의 경우 교인 수가 1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혜 교회 외에도 현지인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교회로는 새생명 교회, 새사도 교회 같이 CIS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개신교회 들입니다.

그 중..제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바로 김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입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는 아직 1년도 채 안된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당 건물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지금은 아스타나의 메인 도로인 리스푸부리까 거리에 있는 현대 미술관 홀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요. 이 홀은 한 시간 빌리는 데 400텡게(우리 돈 4천원정도)밖에 들지 않는다더군요...위 사진은 바로 그 미술관 앞에서 선화가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술관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분위기는 좋습니다. 가끔 마귀처럼 생긴 것을 그린 이상한 그림이 교회당 내부에 걸리는 것 빼고는... 풍경화가 보이는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건 괜찮더군요...

제가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은 알마티에서 다니던 교회인 라큼교회의 최목사님이 소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막상 와 보니..그래도 같은 교단에서 계속 섬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굳히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주일 오전 11시에 드립니다. 한국과 똑같지요?

목사님은 50대 중반으로 장로교단(합동 개혁) 소속이신데 국내에서 10여년 간 목회를 해 오시다 바울 선교회를 통해 까작스딴으로 오시게 되셨습니다. 첫 해는 알마티에서 언어 공부를 하면서 1년 정도 지냈고 이듬 해인 2001년... 아스타나로 올라 오게 된 것이죠.

설교시간에는 이 곳에 와 있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처럼 통역을 사용하고 계시는데..아무래도 이곳 사람들에게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곳에는 한국어-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 부분은 통역 자원이 풍부한 알마티보다 아스타나에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기 힘든 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에는 2001년 2월...선교사님 아파트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출발했습니다. 당시 참석자는 선교사님 가족과 설교 통역, 행정 통역자 등 교회를 세우기 위해 도움을 준 분들이였습니다.

아스타나 장로 교회는 한국 스타일의 교회입니다. 예배 순서도 국내와 같은 전형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고(딱 한 가지...설교 시간 전에 광고하는 건 좀 다르더군요.) 이제 막 시작했지만 성가대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아직 교인이 없는 교회에 성가대가 있다니 이상하지요? 선교사님은 이곳 음악 대학의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 주일 성가와 악보 제작 등의 일을 맡기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가대원들 대부분은 아직 거듭난 신자로서 교회를 다니고 있다기 보다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오는 게 사실이지만 선교사님은 이렇게 시작하다 보면 차차 그들에게 믿음이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힙니다. 피아노 반주를 위해서도 리마 라는 여자 분을 다른 분의 소개로 데려 왔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설교 통역자와 행정 통역자가 따로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행정 통역자는 교회 설립에 필요한 일들을 담당했고 수요 모임 통역과 기타 행정 업무들을 전담하면서 선교사님을 돕는 문 에밀리아노 라는 고려인 여자 분이고 설교 통역자는 김 유리 라고 불리는 알마티에서 오신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습니다. 그 분은 주로 주일 설교 통역만 전담하고 계셨습니다. 이들이 교회 초창기 멤버인 셈이죠.

제가 아스타나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까...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주보 맨 첫 면에 실려 있는 3가지 기도 제목을 소개해 드릴 수 있겠네요..

1. 아스타나 장로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까작스딴과 아스타나 도시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2. 아스타나 시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잘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3. 교회에서 하고 있는 한글 교실에 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을 통해 이곳의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주보는 이곳 드라마 극장 사무실에 있는 복사기와 컴퓨터를 이용해서 매주 만들고 계셨고 성가대원들은 성가 연습을 위해 금요일 저녁 6시 반에 교회에 나와 연습을 합니다.

목사님 가정과 우리 가정 그리고 목사님 가정의 아이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이기형 선생님(26,고대 노어노문)...... 이렇게 세 가구가 모여 토요일 마다 기도회를 가지고 있는데...하루는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이곳에서의 교회 사역은 너무나 유치한 단계에서부터 싸워 나가고 이해시키는 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번 주도 다음주 설교를 위해 설교 통역자와의 약속 시간에 나갔지만...아무 말도 없이 3시간이나 지난 뒤...몸이 아프다는 전화만 걸려왔습니다. 물론..알마티에서도 설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뜨거운 맘으로 통역하는 현지인 통역자는 2-3명 뿐입니다. 하지만... 설교 통역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에 나오지 않거나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는 경우는 없는데 이곳의 통역자들은 돈을 바라는 맘과 시간을 때우려는 맘이 더 많고 제대로 말씀을 증거하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요. "

통역과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사님의 기도제목을 들으면서....이국만리 떨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는 열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교회 주보이고...오른쪽이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교회 주보에는 예배 순서, 봉사위원, 사도신경 등이 적혀 있는데...모든 걸 러시아어로 하는 이 교회에서 주보가 없으면 모든 본문 말씀이 몇 장 몇 절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성가대석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교회 앞줄 의자에 앉아 있다가 앞에 서서 찬양하는 것인데...음악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라 실력은 수준급입니다. 하지만....그들 맘 속에서 어떤 찬양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요...그저...우린 하나님만 바라보고 예배 드릴 뿐입니다. 예배가 마치면...커다란 홀에 긴 탁자와 의자를 놓고 함께 차이(차)와 빵을 먹으며 교제의 시간을 가집니다.

알마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예배 후 교제의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떡을 함께 떼라'는 말을 굳이 생활을 나누고 마음 깊이 서로를 살피는 일로 이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교회에서 먹을 것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선교지에서도 동일한 원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이 일(차와 빵을 먹는 일)을 위해 각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에서는 이렇게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 외에도 수요일에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의 대상자는 전 교인이지만...아직은 직분을 맡은 사람(통역, 피아노 반주, 성가대) 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꿈은 전 교인이 이 수요 성경공부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고...또 교회의 청년들을 위한 성경공부반이 따로 만들어지는 걸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아마 머지 않아 그런 날이 오겠지요..

목사님의 본문 소개와 간단한 설교가 있고 난 다음....목사님은 참석자들을 한 사람씩 불러 내어 지난 주 설교 내용을 요약하고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을 얘기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씩 뭔가를 적어둔 수첩같은 걸 들고 나가 얘기를 하지요. 그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뭔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게 되기도 하고...어떤 이들은 그저 러시아 정교에서 배웠던 정도로만 이해하고 이곳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에게 주일 설교를 되새겨 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의도는 참 바람직한 것이지요.

목사님이 하시는 또 다른 일은 한글 학교입니다. 대학까지 나오고도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이 곳의 많은 젊은이들을 모으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현재 30 여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25-30명이 모이는 걸 생각하면..한글학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렇게 한글학교까지 운영하다 보면 한글교육에 관한 전문성이 필요하기에 힘들 때도 있고, 개인 휴식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 들어 목사님 스스로도 피곤하실 것 같았지만....비교적 연세가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으시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계셨습니다. 뭐랄까.....일할 수 있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신 분으로 비쳤습니다.. 왜 그런 찬송 있잖습니까...."어둔 밤 쉬 되리니...."  

그래도...이렇게 많은 사역들이 목사님 한 분에 의존되어 있기에 목사님 개인의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선교지의 기도제목을 찾아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줄 아는데...지금 소개드린 김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하는 또다른 일은 구제입니다. 목사님은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아스타나 주변에 살고 있는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을 찾아가고 계셨습니다. 제가 오고 난 다음부터는 저와 함께 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이미 앞에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측 사진은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시장에서 구걸한 돈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우연히 시장에서 만난 한 여인이 "내가 돌봐 줄테니...같이 삽시다..." 라고 얘기해서...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결혼생활이 아니고...그냥 집만 같이 쓰는 겁니다. 이 할아버지는 그래도 자기 소유의 한칸짜리 집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제가 가보니..할아버지는 우측 대퇴부에 핀을 박은 대수술을 박고 난 다음에도 제대로 소독과 치료를 하지 못해 골수염이 심각한 지경이었고..우측 무릎도 어디서 넘어지셨는지..통증과 함께 많이 부어 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아무도 이 분을 돌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함께 산다는 여인도...할아버지의 침대를 한쪽에 넣고 커텐을 쳐 놓고...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그 곳을 방문해서 할아버지께 여러 얘기를 물어 보고...가져간 케토톱을 붙이고...항생제를 드리고...하면서 위로해 드렸더니...우리가 집을 나갈 때쯤...브라치(의사)를 찾으시면서...고맙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옆에는 약국에서 사왔다는 약이 놓여 있었는데...보니까...제산제 뿐이었고 항생제는 전혀 복용하지 않고 있더군요....그 할아버지의 손자가 교회에 나온다는데 손자를 통해 계속 항생제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 아스타나......겉은 화려하지만...높은 쇼핑 건물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는 불쌍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그냥 두셨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곳에...이제 막 복음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한인 선교사들 외에도 서구와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이제 막...이곳에서 정착하고 있지만....작은 서울이라고 불리는 알마티 생활 보다 외롭고 쓸쓸한 아스타나 생활을 저희 가정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섭리를 다시금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아스타나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이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열심을 보이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 일에 아스타나 장로교회와 함께 수종들게 된 것이 감사하고 기쁠 뿐입니다.  2001.9.11

(다음은 아스타나 장로교회와 관련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