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3월 31일은 까작스딴에서 맞는 부활절입니다. 까작스딴은 섬머 타임을 적용하는 국가입니다. 여름에는 해가 워낙 일찍 뜨는지라...아침 6시가 되면....이부자리에 계속 누워 있기 부끄러울 정도로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어쩔 수 없이 시계를 한 시간 빨리 돌리고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까작스딴에 왔던 작년 5월 말..알마티는 밤 10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더군요. 7월 초에는 밤 10시 반이 지나야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스타나는 알마티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름철 낮의 길이가 더 깁니다. 만일 아스타나 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아마 밤인데도 해가 지지 않는 이른 바 "백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 나오겠지요.

이래서 까작스딴은 섬머 타임을 적용하고 있는데...적용 시점이 매년 3월 마지막 주일 새벽 3시에 시계를 한 시간 빨리 돌려 놓는 방식으로 실시합니다. 부활절인 3월 31일은 3월의 마지막 주일이었고...그래서 다들 잠이 좀 모자란 상태에서 부활의 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하긴 ...한국에 있었으면...부활절 아침 새벽 기도회를 나가야 했을 테니까...오히려 잠이 더 부족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까작스딴의 주류 민족인 까작인들은 민족이 형성되기 전부터 이슬람화 되어 있었기에 러시아인의 종교(정교회)인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민족을 배신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하지만 러시아인의 경우에는 옛날부터 정교회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을 잘 알고 있고 정교회의 방식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력이 달라서 그렇겠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5월 5일입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이 부활절을 준비하는 모습은 우리와 유사합니다. 계란을 삶아서 먹는 전통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고...부활절을 맞기 전인 고난 주간에는 육류를 먹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부활절이 되면 계란 말고도 부활절 빵을 따로 구워서 서로 나눠 먹는 전통이 있는데...개신교인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전통을 살려 부활절 예배 시간에 부활절 빵을 구워서 가져 오라고 얘기했습니다. 예배 후 이 빵을 함께 나누며 친교를 하려는 거지요...

부활절 예배를 드린 뒤... 우리 교회는 한국에서처럼 현지인들에게 삶은 계란을 나눠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이곳 사람들의 정서에도 잘 맞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날 계란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습니다. 마치 죽은 듯한 계란 속에서 껍질을 깨고 살아 있는 병아리가 나오는 현상이 부활을 상징한다고 얘기하곤 있지만 저 역시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삶은 계란을 나눠 주는 걸 보면..상당히 오래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전통이 내려 오고 있는 듯 합니다.

어쨋든... 계란을 삶고 포장하는 일을 위해 부활절 전 날...저희 집에 사모님과 교회에 나오는 러시아인 자매 3명, 그리고 제 통역 아줌마를 포함해 여러 명이 모였습니다. 계란을 삶는 일도 큰 일이지만..한국처럼 계란에 예쁜 색칠을 한다든지...부활 스티커를 붙인다든지..셀로판지를 이용할 수 없어(재료가 없습니다.) 비닐 포장지를 잘라서 계란을 예쁘게 꾸미는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 내내...날씨가 좋지 않았는데...마치 고난 주간을 위한 날씨인양...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사진은 형민이 방에서 교회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삶은 계란을 포장하는 모습입니다.

사실..사진에 보이는 비닐 포장지는 볼 품 없는 것이지만...이곳에서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이곳은 비닐 포장지라곤 없는 나라였는데..최근 바자르(시장)에 이런 것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고...이번 부활절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함께 계란을 즐겁게 싸고 있는 러시아인 자매 3명은 자원 봉사자입니다. 주일 예배가 마치면 함께 차와 빵을 먹는 시간이 있는데....나중에 이 빵 접시와 찻잔을 씻는 일도 이 세 자매가 자청해서 하고 있습니다. 귀하지요? 이번에 계란 싸는 일도 이들이 와서 함께 도와 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열심히 참여 했습니다.

혹시나 오해(?)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제가 열심히(?) 계란을 싸고 있는 것을 증거로 남겨 두었습니다. 함께 계란을 싸고 있는 젊은 학생이 아스타나 장로교회 김목사님의 둘째 아들 창영입니다.

창영이는 이제 이곳의 학교(쉬꼴라)의 9학년이 됩니다. 이제 얼마 후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아직 러시아어나 시험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까작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우리가 함께 많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쉬꼴라 9학년 때 보는 시험이 이곳에선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한국도 아니고 까작스딴 사람도 아닌 상황 속에서 러시아어로 하는 수업을 받으면 지식을 넓혀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교지에 나와 있는 선교사님의 자녀들에 대한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선교지 학교 건립이나 학비 지원, 본국 대학생들의 학생 지도 사역(MK사역) 등이 이곳 까작스딴 아스타나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계란을 준비했다고 부활절을 다 준비한 건 아니지요....부활절을 맞는 내 마음을 가다듬는 일도 중요하지만...선교지에서 부활절을 맞다 보니...이곳에 있는 현지인들에게 부활의 참 의미를 알려 주는 일도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제가 출석하고 있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에서 학생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모임은 목사님보다 젊은(?) 제가 하는 것이 좋다는 목사님 의견도 있었고....저 역시 선교지 교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일 학교처럼 매주 학생 모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선교사님들도 어떤 지역에 가게 되면 적어도 1년간의 언어 훈련을 받고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시는데...제 경우에는 까작스딴에 온 지 이제 10개월이 되어 가는 초보라....아직 러시아어가 서툰 게 사실입니다. 물론...이곳 까작스딴에 온 뒤 줄곧...러시아어 개인 교사와 한국에서 가져온 교재를 통해 러시아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러시아어 구사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를 듣고는 있지만...교회에서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기에는 아직 빈약합니다.

소그룹 모임과 관련해서는 다음에 다시 한 번 소개하기로 하구요...어쨋든 저로선 부활절 아침을 맞으며 이곳 젊은이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복음의 핵심들을 다시 한 번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부활절 전 날 밤...이것을 위한 몇 개의 삽화와 성경 인용구...그리고 말할 내용들을 준비했습니다.

사진은 부활주일 학생 모임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제 손에 들린 것은 글없는 책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형민이 그림책입니다. 흰색...검은색...빨간색....초록색 등을 사용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의 기본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아직 멀리 있는 객관적 사실일 뿐입니다. 아니..사실로 받아 들이지 않는 학생이 더 많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영혼도 사랑하시고 계시며 우리가 간구하며 기도할 때 이들을 그 분께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처럼 ....

"신이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와서 우리의 죄값을 지고 죽었다.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사실을 가슴깊이 묻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습니까? 일반적인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진술이니까요... 하지만 이 사실이 없었더라면....모든 인류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부활절 예배 모습입니다. 잘 안 보이시겠지만..교회 앞 쪽 휘장에는 "흐리스토스 바스크레스"(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라는 흰 글자가 붙어 있고 세 사람이 특송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 분은 목사님이시고 한 분은 사모님이신데..중간에 계시는 목사님이 알마티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노영대 목사님(알마티의 소망 교회)이십니다. 이번에 아스타나에 새로 지(branch) 교회를 건축하는 문제로 방문하셨다가 우리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시게 되셨습니다. 그 양쪽 분이 부부이신데...앞으로 세워질 아스타나의 지교회에서 사역할 현지인 목사님 부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부활절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부활절 예배도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교인들도 그 날 따라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보통 30명 남짓인데..이 날은 오십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부족한 선교지의 교회이지만 ....이 교회를 통해서 말씀을 듣는 사람의 숫자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면....이런 곳에 어떤 사람이 찾아 올까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여러 관계를 통해 한 번 교회당에 들어와 본 사람이 채 믿음을 가지기도 전에 다른 이들을 교회에 와 보라고 권하고..그들 모두 착실하게 예배에 참여하면서 목사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걸 보면...이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강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젊은 시절에 선교지에 나와 이곳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실제로 선교지에서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가를 목도하게 된 것이 큰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장래를 어떻게 보낼까?...라는 구체적인 물음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선교지에선 전....우리 뒤에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자꾸 자꾸 느끼게 됩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미술관 홀 밖에서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엄마를 따라 온 현지인 아이들은 1시간 반이나 되는 긴 예배 시간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또래 끼리 즐거운 만남(?)을 가집니다.

이 모임에는 우리 형민이도 꼭 끼어 들지요. 이제 사내 아이가 되어 버린 형민이는...이번 주에도 누나들 틈에 끼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2년...까작스딴에 와서 처음 맞는 부활절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성탄절 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성탄절에 못지 않은 의미를 지닌 부활절 날....이곳 사람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생각하는 뜻 깊은 주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한국에서 예배 드리던 때를 자주 떠 올려 봅니다. 주변의 많은 성도들과 함께 익숙한 부활 찬양을 부르고 기뻐했던 시절을 기억해 봅니다. 그렇게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교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성도가 드문 선교지에선...그 사실들이 그렇게 감사한 일로 느껴지고 고난 주간의 정사 예배나 부활절 새벽기도 등...한국에서는 그저 매년 해 왔던 것처럼 지켜 왔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전통인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의 이번 부활 주일은 어떠셨나요? 성도의 교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귀한 동역자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