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의 1월 1일

까작스딴에서 처음 맞는 새해입니다. 까작스딴에는 많은 쁘라즈닉(공휴일,명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날(어머니 날이 아니라 여성의 날이라는데 온 나라가 쉬는 공휴일입니다. 자신이 아는 여자들에게 꽂을 선물한다고 합니다), 노동자의 날, 까작스딴 공화국수립 기념일, 까작스딴 독립 기념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는 3월에도 까작인의 전통 명절이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어떤 명절이나 공휴일보다도 1월 1일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가까워 지면서 거리 곳곳에서 성탄 트리같은 장식물들이 도시 곳곳에 설치되었고 이곳 명소인 얼음 공원에도 커다란 성탄 트리가 들어섰습니다. 지난 28일에는 이곳 현지 TV 방송인 '하바르'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가 아이들을 배경 화면으로 해서 나오더군요..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더군요...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난지 한 참이나 되었는데.. '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라고 생각한 거지요...하지만 성탄절이 지나고 연말이 가까울수록..이 성탄 축제 같은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급기야 최근에는 도시의 야경이 마치 동화 나라에 온 것처럼 오색 영롱한 불꽂들과  반짝이는 조명들로 가득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이 모든 것들....그러니까....성탄 장식같은 트리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같은 캐롤과 싼타 클로스와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보이는 연하장...상점과 회사마다 내 거는 새해를 축하하는 장식물들... 모두가 오로지 1월 1일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정작 성탄절은 안중에도 없고....다른 나라에선 성탄을 상징하는 상징물들이 이곳에선 새해를 맞는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한국으로 치자면 추석과 설날을 합쳐 놓은 것 보다  다음 해를 맞는 1월 1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박물관 앞 전경인데요...박물관 앞에 커다란 산타 클로스와 눈 사람이 서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런 이런 모습들을 도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월 1일 0시를 가리키게 되면...온 도시가 폭죽 소리로 들끓고 도시의 중심 광장에선 노래를 부르는 특설 무대가 마련되고...이 날 만은 밤새도록 버스가 다니고..불야성을 이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1월 1일에 정작 이곳 사람들이하는 일이란 그저 친구와 친척들끼리 한 집에 모여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즐기는 게 다라고 합니다. 물론 새해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들을 얘기하고 덕담을 나눈다고 하긴 하지만...이 날만은 거리에서 술 마시고 비틀거려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고(이 나라에선 밤에 술 마시고 비틀거리면 경찰이 잡아 갑니다.) 밤새도록 아이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어른들은 술에 푹 빠지는 그야 말로 합법적으로 아무도 못 말리는 날이 되는 셈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에 1월 1일에 이렇게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빠지는 풍습이 생겼을까? 궁금하더군요... 분명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명절은 아닐텐데...1월 1일을 준비하기 위해 전날부터 온 상점과 거리과 붐비고 시장마다 사람들로 가득차는 걸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목민인 까작인이 이런 풍습을 가졌을 리도 없고....아마도 전통적 이슬람권이었던 이곳이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면 러시아 정교의 영향으로 성탄 축하 풍습이 전해졌고...이것이 공산국가라는 무신론적 사회 속에서 러시아인이든 까작인이든 민족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공통적인 쁘라즈닉(명절)으로 변해지면서 1월 1일을 택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지난 성탄 축하 행사를 무사히 잘 치룬 장로교회는 이런 풍조에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곳에 와 있는 다른 선교사님 몇 분들도 이곳의 방탕한 1월 1일 문화를 보면서...교인들을 교회나 특정 장소로 모이게 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써 이런 세류에서 교인들을 보호하고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청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곳은 더욱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송구영신예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촛불을 밝혀 두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나...기도제목을 적은 헌금을 하고 목회자가 복을 비는 것들이 자칫 잘못 생각하면 "새해 맞이 복 빌기" 행사로 교인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기에 많은 이들이 이 특별한 예배 시간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 원리에 맞는 모임으로 준비되는 것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지요. 하지만 한국도 물론이거니와 특히 이런 선교지에서는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세상 풍조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이 주는 유익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아스타나 장로교회)는 교회당 건물이 없습니다. 미술관 홀을 빌려서 예배 드리고 있기 때문이지요..그래서 심야..그것도 1월 1일 자정에 송구영신예배를 위해 미술관을 사용할 수 없었고...적당한 모임 장소로 저희 집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좀 공간이 있기 때문이지요. 

1월 1일 송구영신행사때 저희 집 거실의 모습입니다. 이 날... 저녁 9시 쯤 부터 모임이 시작되었고 1부 '벤허' 영화보기, 2부 한국 전통 놀이(윶놀이), 3부 송구영신예배 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약간의 다과도 준비되었구요...

벤허의 러시아 번역판을 찾는 데 이곳 UBF 변찬석 선교사님 도움이 컸습니다. 윶도 그 곳에서 빌렸습니다.

이 날 모인 인원은 모두 20명으로(형민이 빼고)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1월 1일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안다면...이 사람들이 다른 모임으로 가지 않고 이 곳으로 왔다는 사실 자체가 참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날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온 교인들까지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성공적으로 끝난 지난 번 성탄 축하 행사를 통해 교인들이 한국인 선교사를 바라 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고...한국 전통 놀이(윶놀이)와 유명한 영화(벤허)에 대한 목사님의 홍보가 주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또 이 날 모인 사람들 중에는 1월 1일에 어딜 마땅히 갈 곳 없는 이들도 참석한 듯 보였습니다.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그리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소년 싸샤...갈 곳 없는 조카를 데리고 온 일리냐 선생님...모두가 즐기는 이 시간에 아무에게도 초청을 받지 못한 이들이 모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초청보다도 이 모임이 값진 모임이겠지요?

이 날 이곳 젊은이들은 윶놀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게임 규칙을 알고 본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짜릿함이 있으니까요...러시아판 벤허도 3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송구영신예배 전후로 해서 모두들 흥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처음 보는 이들도 많은 듯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시간에는 전통적이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종이를 나누어 주고 2001년을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일, 회개하는 것을 적고 뒷면에 2002년에 소망하는 것들을 적게 했습니다. 촛불도 등장했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좌우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서도 있었습니다. 제 왼손을 잡고 있는 이는 이곳 러시아 자매 랴쟈였습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기도를 시작할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언제 다시 이 선교지에 와서 이곳의 잃어 버린 영혼의 손을 잡고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내게 이런 기회를 허락하셨을 때 이 자매를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한국에서 수 없이 많이 잃어 버린 민족과 나라들을 위해 기도했지만...추상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제 왼손에는 우리 호르(성가대) 소프라노인 랴쟈의 손이 잡혀 있었습니다. 전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믿음 없이..하나님을 모르고 찬양하고 교회에 나오지만...그녀의 마음 속에 성령님이 찾아 주셔서 우리의 예배와 모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 되길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은 참으로 절대 절명의 소중한 시간들로 느껴졌습니다.

송구영신예배가 마치고..벤허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새벽 3시 가까이 되어서 모든 모임이 끝났습니다....집이 먼 곳에 있는 이들은 목사님과 제 차를 사용해서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전 싸샤와 그의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역시나  한 손에는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며 도로를 걷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7-80년을 살아온 나라...태어날 때부터 이슬람인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까작인들과 이미 종교는 하나의 장신구가 되 버리고 말씀이 사라진 러시아인들이 사는 이 곳에서....전 많은 것들을 보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그들이 지금 잘 살기라도 한다면...덜 안타까울 텐데...말씀드렸듯이 이곳은 극심한 빈부의 격차와 함께...대부분의 국민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살고 있고...나라 전체가 우울하고 슬픈 곳이기에 더욱 더 그들에게 참 만족을 주는 참 종교가 필요함이 간절히 와 닿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도 이곳에서 펼치는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들을 계속 채워 줄 수 있기를 바라고...또 그 활동을 통해 이곳의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모두가 가고 난 거실....송구영신예배는 끝났고...거실 창에 붙여진 "메리 크리스마스" 앞에 형민이가 서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평범한 날이지만...앞으로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그 긍휼하심으로 인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이 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까작스딴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지 못했었습니다. 이곳에 가게 된다고 결정된 후...처음으로 세계 지도에서 까작스딴을 찾아 보았었지요..그 때 까작스딴이 이렇게 큰 국토를 가진 나라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이곳에 와서 새로운 한 해를 보내는 지금...이곳을 향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점점 커져 내 맘을 때리고 있습니다. 파견되기 전 한국에서 까작스딴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공허함이 느껴질 때가 많았었는데....이젠 까작스딴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이곳에 병들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스크린처럼 내 앞을 자꾸 지나가서...기도할 때마다 깊은 탄식이 내 속에서 우러 나옵니다.

까작스딴에서 맞는 2002년....이곳에서 살면서 까작스딴을 위한 기도의 제물로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또 저희 가정을 통한 사역들이 구체적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생명을 안겨 주길 소망합니다. 또..이곳에 와 계신 선교사님 가정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길 간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오늘도 우리 하나님만 바라볼 뿐입니다. 2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