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 선교지 탐방 - 5. 깔까만 라큼교회

선교지의 상황을 사실 위주로 서술해서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알린다는 취지로 시작된 선교지 탐방은 그 동안 아스타나의 아홉 군데 교회와 알마티의 네 군데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선교지 교회와 선교사들의 모습이 소개되겠지만 이곳에 소개되는 교회들은 단지 제가 개인적으로 방문했던 교회에 불과함을 알려 드립니다.

오늘 함께 떠날 교회는 알마티의 남서부 외곽 지역인 '깔까만' 지역에 세워진 '깔까만 라큼 교회'입니다. 라큼 교회는 원래 알마티의 알파라비  도로변에 위치한 알마굴(마길로브스까야 거리)에 소재하고 있는데 일년 전부터 새로운 지역에서 개척 사역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알마굴 라큼 교회는 이미 제가 소개해 드린 바가 있지요.(내용은 여기에)

깔까만 라큼 교회의 사역자는 최진규/최에스더(예장 고신, 교단 파송) 선교사 부부이십니다. 지난 2001년 알마굴에서의 1기 사역을 끝낸 뒤 안식년으로 잠시 나가 계시다가 2002년 8월 다시 까작스딴으로 들어 오셔서 깔까만 지역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게 되셨습니다.  

깔까만 라큼 교회는 현재 예배당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르타(까작 전통 가옥)를 세워 그 안에서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여름 성경학교를 여는 등 각종 모임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까작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했던 까작인들은 사진처럼 이동식 가옥 속에서 생활해 왔었는데 나무로 지붕과 틀을 만들고 양가죽으로 겉을 싸서 만든 원형의 천막입니다.

이 외에도 선교사님 부부가 거처하시면서 방문객을 맞고 있는 사택이 한 채 있고 반대편에 컴퓨터 교실이나 영어 교실을 위한 작은 집이 또 한 채 있습니다.

몇 개의 땅집(일반 주택을 일컫는 말)을 확보하면서 시작된 깔까만 라큼 교회는 현재 33 소트까(1소트까는 100 평방 미터)라는 넓은 대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과 라큼 교회와의 만남은 우리가 까작스딴에 처음 왔었던 2001년 5월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당시 알마티에서 출석할 교회를 찾던 저희 가정은 자연스럽게 최진규 선교사님과 연결되었고 알마티에서 지내는 동안 알마굴 라큼 교회를 출석하면서 초기 까작스딴 정착기를 은혜 가운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알마티에 올 때마다 라큼 교회를 방문하고 소식을 주고 받아 왔었는데 깔까만에서 교회 개척이 시작되었다는 말만 들었지 가 보지는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한국에서 온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후배들과 깔까만 라큼 교회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치게 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깔까만 라큼 교회의 유르타 안에서 천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지붕 꼭대기는 바로 이렇게 동그란 구멍이 나 있는데 뜨거운 알마티의 햇볕도 이 좁은 지붕을 통해 들어 와야 하기에 마치 무대 조명처럼 작은 동그라미 모양으로 해시계처럼 돌아가며 비칠 뿐이라 더위를 피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가옥 구조였습니다. 이 구멍이 없었다면 바람이 통하지 않는 폐쇄 공간이라 내부가 아주 더웠겠지요? 유르타는 말 그대로 더위와 추위를 피해 주는 방패막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알마티 외곽 지대인 깔까만에 처음 가 본 것은 2001년 7월...최진규 선교사님이 안식년을 맞아 까작스딴을 떠나시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님은 안식년으로 나가게 되시면서 다음 사역 예정지로 깔까만을 염두에 두고 계셨고 이곳에 몇 몇 단기팀들의 방문이 이어지도록 배려하고 계셨습니다.

때 마침 까작스딴으로 날아 왔던 우리 가정은 바로 지금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깔까만의 한 땅집에서 부민 교회 단기팀과 함께 '포도 넝쿨 아래에서의 진료(사진)' 로 기억되는 까작스딴에서의 첫 의료 사역을 펼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깔까만 지역에서...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에서 찾아 온 후배들과 함께 예배 장소로 사용되는 유르타 안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펼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진료가 계속되던 이틀째 날... 병아리가 뛰어 다니고 초록색 포도 송이가 주렁 주렁 매달렸던 2년 전 그 포도 넝쿨 아래로 온 가족을 데리고 함께 가 보았습니다. 사람 손이 가지 않아 메마르긴 했어도 여전히 포도 송이들이 그 때처럼 주렁 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허리를 굽혀 이젠 낯설어진 그 넝쿨 아래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까작스딴에서 보냈던 지난 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눈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알마티에 도착했을 때의 그 낯선 느낌, 추운 아스타나에서의 정착, 선교지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그리고 이제... 까작스딴을 떠나기 직전 다시 이곳 깔까만으로 돌아 와 진료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깔까만 라큼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최진규 선교사님에 대해 잠깐 소개드려야 하겠지요? 7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 가신 목사님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 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대학가에서 운동권으로 활약(?)하며 유행처럼 번져가던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야심찬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 운동권의 전력이 취업등의 문제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으시다가 80년에 온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의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 온 그 날...공항까지 나와 짐을 운반해 준 미국 현지의 어느 목사님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예의상(?) 출석한 첫 주일 예배 시간의 설교는 바로 '돌아온 탕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설교의 내용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 임을 발견한 목사님은 설교 시간 내내 설교에 방해가 될 정도로 울었다고 회고하십니다. 선교사님의 인생은 바로 이 때부터 전환점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후 15년이 흐른 뒤...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시고 한국으로 들어 와 선교사가 되겠다는 비젼을 가지고 다시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부산 고려 신학대학원(고신)에 95년도에 들어 가게 됩니다. 이 때 함께 입학한 동기에는 유독 선교사로 헌신하기 위한 늦깎이 신학생들이 몇 분 계셨다는데 지금 아스타나에서 '수이어스펜설록카우옴'을 사역하고 계시는 남성택 선교사님도 바로 최진규 선교사님의 입학 동기라고 합니다. (남성택 선교사님도 현대 정유에서 근무하고 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늦게 신학을 시작하신 분이지요)

깔까만 라큼 교회의 유르타 안에서 밖을 본 모습입니다. 마치 TV를 보는 것처럼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이 잡혔습니다.

깔까만 라큼 교회의 뜰을 바라 보며 우리는 에덴 동산 같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당이 세워진 공간이기에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교회당이 자리하고 있는 터에 빽빽하게 심겨진 수 많은 과실 나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불렀습니다.  33소트까 나 되는 넓은 터에는 사과 나무, 자두 나무, 배 나무, 살구 나무, 포도 나무 까지...꽉 들어 차 있었습니다.

사과 나무가 많은 것도 그렇지만...사과 나무 한 그루에 얼마나 많은 사과가 촘촘하게 열려 있던지....솎아 주지 않아 큰 과일이 맺히지 않을지는 몰라도 잔 가지 하나 하나 마다 주렁 주렁 매 달린 사과들로 가득했습니다.

원래 알마티라는 지명의 기원도 바로 이 사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까작어로 '알마아타'로 불리워지는 이 도시는 알마(사과) + 아타(할아버지) 의 합성어인 셈이고 우리 나라의 사과 도시 대구 와도 이런 의미에서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고도 합니다.

선화는 시은이를 등에 업고서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장 탐스럽게 보이는 사과 하나를 골라 따 왔습니다. 이곳 사과는 크기는 작지만 사과 특유의 맛과 향이 짙게 배어 나오는 진짜 사과였습니다.

이제 사역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 깔까만 라큼 교회는 앞으로 이 넓은 땅에 각종 건물들을 세우며 여러 가지 사역들을 펼쳐 나가겠지만 이 넓은 뜰에 그저 사람들이 둘러 앉아 사과를 따 먹으며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기만 해도 '에덴 동산'으로서의 제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진료를 위해 방문한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후배들도 이 넓은 땅에 심겨진 사과 나무의 열매들을 맛보며 환자들을 진료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물론 깔까만 라큼 교회 앞에도 많은 어려움이 널려 있습니다. 도시 외곽에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긴 했지만 주변 이웃들의 관심을 교회로 돌리기 까지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번 여름... 잠실 중앙교회 청년들이 깔까만 교회를 방문해서 여름 성경학교를 개최했고 이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교회당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 터 한 쪽에서 진행되는 영어 교실과 컴퓨터 교실을 통해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강화해 나가야 할 텐데 이를 위한 선생님의 지속적인 확보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최진규 선교사님은 고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신 뒤 서울 잠실 중앙 교회에서 몇 개월간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목사 안수를 받고 까작스딴으로 바로 나오시게 되셨는데 이 때 관계를 맺게 된 잠실 중앙 교회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많은 후원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또 부산 부민 교회에서도 라큼 교회로 선교지에 필요한 각종 인력들을 파송해 주고 있는데 태권도 교실 ,리코더 교실 등이 부민 교회에서 온 젊은 대학생들을 통해 열리게 된 것들입니다. 리코더 교실은 지금까지도 현지인 선생님에게 인계되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은 부산 부민 교회에서 오래 담임하셨던 박삼우 목사님께서 서울로 사역지를 옮겨 시무하고 계신 곳이 바로 잠실 중앙 교회 라는 점입니다. 어쨋든 이 두 교회가 앞으로도 알마티의 라큼 교회과 귀한 동역을 계속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8일에는 미국의 브릿지 교회에서도 이곳을 방문하고 창립 기념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이런 국내외의 여러 교회와의 동역들이 향후 깔까만 라큼 교회의 행보를 더욱 힘차게 할 것 같습니다.

72학번의 최 선교사님이 다시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 23년 후인 95년이었습니다. 만일 제게 적용한다면 90학번인 제가 23년 뒤라면 2013년인 셈이겠지요? 이것만 봐도 최진규 선교사님을 까작스딴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십니다. "사실 선교지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뛰기에 체력이 달린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만일 내가 직접 못한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게 또 다른 내 역할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최진규 선교사님을 '동원(Mobilization)의 귀재' 라고 부릅니다. 선교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떠 도는 크리스챤들을 붙잡아다가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전하고 사역에 임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은사가 그 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또...실제로 최 선교사님은 제가 만난 여러 선교사님들 가운데서 팀 사역으로 함께 동역하기에 가장 편한 선교사님으로 꼽히는 분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사역하는 전 세계의 선교지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는 많은 목회자 선교사들이 전문인 선교사와의 동역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전문인 선교사를 자신과 동등한 선교사로 인정하기를 꺼리고 자신의 수하에 두려는 우를 범하는 바람에 팀 사역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지 교회에 목사 선교사와 전도사 선교사가 따로 있는가 하면... 선교단체 소속의 독신 여자 선교사를 대할 때 선교사라고 부르기보다는 '자매'라는 말로 대치하는 바람에 피차 생각지도 않은 오해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한국인 선교사 사회의 독특한 문화적(?) 상황입니다.

하지만 최 선교사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A+ 학점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전문 사역팀이 오게 되면 활동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고 동역자로서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생각이나 대우 등은 마음에 담을 것도 없지만 함께 일하고 사역하다 보면 다른 선교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선교사도 사람인지라 이 부분에서 낙심하고 위기에 처해질 수 있기에 우리 나라가 선교 선진국으로 나아 가기 위해선 이 부분에 대해 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깔까만 라큼 교회에서 있었 던 의료 선교 활동을 마치고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선화 옆에서 웃고 계신 분(우측에서 두 번째 서 계신 분)이 최진규 선교사님의 아내이신 최에스더 선교사님이십니다. 시은이를 안고 웃고 계시는 분이 바로 최진규 선교사님이시지요.

선교사님 가정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둘 다 지금 미국에 있고 이번 가을에 원하는 대학으로 편입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들 캐빈은 알마티에서 함께 지냈었는데 이번 가을에 들어가는 대학에서 생물학(Biology)를 공부한 뒤 의사의 길을 걷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캐빈의 앞날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에덴 동산과 같은 깔까만 라큼 교회과 인생의 전환점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고 여전히 젊은이처럼 사역에 열심이신 최진규 선교사님 가정에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라큼 교회 관련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