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까만에서 부민교회 단기 선교팀과 함께 한 의료 활동

까작스딴에 국제 협력의사로 온 저희 임무는 이 곳에 있는 의료 기관에서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데 있습니다. 제 근무지는 수도인 아스타나로 내정되어 있고 8월 13일 경 떠날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 임시로 알마티에 있는 한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주로 내시경 시술을 돕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이 곳에 온 것과 때를 맞추어 한카병원에 내시경 장비가 도입되었고 소화기 내과에서 주로 수련 받았던 저로선..제가 가진 경험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일반 환자에 대한 외래 진료를 하지 않고 있는데...저로선 이곳의 언어도 문제이거니와....아직 짐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분주해서...환자 돌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물론 이곳 한카병원이 제 근무지도 아닌 것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요...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한국에서 단기 선교팀이 제가 알마티에서 출석하는 "라큼 교회"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까작스딴에는 수많은 단기 선교팀이 방문합니다. 선교학적 요충지인 까작스딴에는 여름만 되면 까작과 한국을 오가는 아시아나 항공과 에어 까작스딴 항공의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입국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선교적 사명을 띤 한국의 선교팀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란 것은 라큼교회로 오는 단기선교팀이 부산 부민교회에서 파송된 팀이란 사실이었습니다. 부민교회는 한국에서 제가 출석한 서부산교회의 이웃 교회이고....서부산교회는 70년대 부민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라는 점에서 제가 잘 알고 있는 교회입니다. 저 역시 유치부 시절에는 부민교회를 출석하고 있었고...당시 교회를 개척해 나선 부모님을 따라 지금의 서부산교회로 나오게 된 것이니까....지금도 부민교회에는 옛날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 몇 명 있지요...

그래도 하도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방문하는 팀 중에서 설마...절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생각하고 궁금한 맘으로 주일 날 부민교회 팀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많은 분들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선교팀을 이끌고 오신 김명수 장로님은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김정권 형제의 부친이었고...장로님 역시 저와 저의 가족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또 대학병원 근처에서 미용실을 하고 계시는 구집사님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몇 번 CE모임에서 본 적이 있고 그 미용실에서 이발한 적도 있기 때문이지요....젊은 대학부 형제, 자매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는데....제가 대학시절(91년도) 부민교회의 중등부 자매(장은진?)를 과외지도한 적이 있었는데...그 자매의 근황을 물으면서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아...그 때 그 의대생이 선생님이예요?...." 한 자매의 되물음은 모두가 한 바탕 웃게 만들었지만....가까운 교회의 청년들과 이국만리 까작스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안에서.......

까작스딴이 온 부민교회 단기선교팀과 라큼 교회 앞에서(선화와 형민이도 보이죠?)

주일 날...함께 대면한 뒤...이틀동안 부민교회 팀과 합류해서 알마티의 외곽인 깔까만 지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역 봉사 활동을 시작하기 전...선교팀은 나이 드신 장로님부터 젊은 청년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조를 짜서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현지의 굳은 마음들을 녹이는 작업들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봉사활동 당일....미용사이신 구집사님은 깔까만 지역의 많은 까작인과 러시아인 아줌마들이 새로운 헤어 스타일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우셨고 ....청년들이 준비한 인형극(그것도 러시아어로...)도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었습니다. 러시아어로 된 사영리를 가지고 집집마다 방문하고....좋으신 하나님을 함께 러시아어로 찬양하고....청년들이 함께 율동을 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장면들이었습니다.

전 미용팀과는 좀 떨어진 곳에서....의료활동을 시행했습니다. 사실 진료활동이라고 하지만....레지던트 시절...새벽별에서 농촌의료봉사 활동을 가서 진료하는 수준보다 못한 주변 환경 속에서 진료는 이루어졌습니다. 검사 시설이나 훌륭한 약국도 없고...포도 넝쿨이 위로 지나가는 풀밭에서....병아리들이 열심히 삐약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아픈 까작 사람들을 맞아야 했습니다.

약국은 따로 없어서 풀밭 위에 보자기를 펴 놓고 각종 알약 병을 진열해 두다가...결국 하나밖에 없는 책상 위로 옮긴 뒤....챠트에 진료 기록하는 것도 포기한 채...많은 환자들을 보기에 바빴습니다. 아직 서투른 러시아어 실력이라....진료를 위해선 통역이 필요했는데....그 일은 라큼 교회 최진규 목사님의 아들인 캐빈(미국식 이름입니다)이 도와 주었습니다. 캐빈이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까작스딴에 왔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처음 이 곳에 있는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말로 다 못할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도...꿋꿋하게 이겨냈고 이젠 이곳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캐빈은 피아노와 기타가 수준급이고 유머 감각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지요....현지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캐빈의 통역은 거의 현지인 수준이어서...진료 활동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환자들과 대화하면서 이곳의 의료 지식이나 상식...그리고 의료 시스템이 한국과 많이 다른 것을 느꼈고....일반인들이 구사하는 러시아어 속에는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의사들이나 알 만한 전문용어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휘나 어원 자체가 서구쪽이라 제가 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용어들이나 설명을 환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진료실인 포도 덩쿨 아래에서 통역을 맡은 캐빈과 함께 한 진료팀(?)

왼쪽 사진이 포도 넝쿨 아래에서 병아리들과 강아지들과 함께 진료를 하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캐빈의 모습이 보입니다. 캐빈은 이번 단기선교팀 활동이 마치자 말자...아버지인 최진규 목사님의 안식년에 맞추어 함께 미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캐빈은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전...포도 넝쿨 아래에서...의사의 존엄성이나 사명 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만족하고 있음을 확실히 얘기해 줄 수 있었지요....

깔까만에서의 진료 활동은 제게 여러 의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까작스딴에 와서 처음 시행한 외래 진료 활동이 이 때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다른 병원에서도 아니고...선교 활동 현장의 진료 활동으로 저의 외래 진료 활동은 시작된 셈입니다. 한카병원에서는 자신이 없었는데....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매년 여름이면 떠나는 의료 봉사도 생각이 나면서....자연스럽게 캐빈과 함께 진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까작스딴에 와서는 제가 어디로 가든지 항상 선화를 데리고 가기로 다짐한 터라.....깔까만에서의 진료 활동에도 선화와 형민이를 차에 태우고 함께 갔습니다. 첫 날....환자가 몰리기 시작할 때...형민이는 최목사님의 사모님께 맡기고...간호사 출신인 선화는 제 옆에서 환자의 혈압을 재면서 저의 진료 활동을 도왔습니다. 선화 역시...함께 일하는 것에 만족했고...우린 학생 시절 함께 의령과 산청 일대에서 농촌 선교활동을 하던 시절을 쉽게 떠올리며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깔까만은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날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부민교회의 신경규 목사님과 라큼 교회 앞에서...

부민교회 팀에는 두 분의 목사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신경규 목사님과 김영중 목사님이 오셨는데....신 목사님과 함께 라큼 교회 마당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합동신학원을 다오셨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을 보면서....부산에 있는 서부산교회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까작스딴으로 오고 난 뒤...교회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해 들으면서 ...교회 소식이 무척 궁금했는데...이웃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 뵈니..모교회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도 선교지에선....지역 교회의 구분이 없어지나 봅니다. 그저...같은 맘으로 이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고....한 주간의 선교활동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목사님이나 앞으로 3년의 세월동안 까작에서 살아야 할 저에게나...영적 전투지인 까작스딴에서의 만남은....'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과 함께 말하지 못할 많은 격려와 이 땅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앵두를 좋아하는 형민이...라큼 교회 마당에서...

라큼 교회 마당에는 과일이 열리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살구나무도 있고..앵두나무 같은 것도 있습니다.

형민이에게 빨간 물이 물씬 흘러 내리는 앵두같이 생긴 큰 열매를 건네 주었습니다. 형민이는 신 맛 나는 과일을 먹으면...몸을 훔찟하며 놀라면서도 이내 웃음을 지으며 더 달라고 쳐다 봅니다.

 나무가 있고 마당이 있는 라큼 교회에서 형민이와 함께 한가롭게 나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이 곳이 참 좋습니다. 아마 먼 훗날이 되면...까작스딴도 많이 개발되어서 이 라큼 교회가 있는 마길로브스끼야 거리의 과일 나무들이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2001년...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까작스딴에서 형민이와 선화와 함께...라큼 교회와 부민교회 선교팀과 가졌던 작은 사건(?)은 마음 속에서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 곳에 와서 처음 가졌던 팀 사역이었으니까요.....

처음 까작스딴에 와서 외롭고 힘들 때.....고국의 이웃 교회의 선교팀을 보내 주셔서 위로해 주시고...자신감을 갖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이런 잔잔한 사랑으로 인해... 오늘도 저희 가정은.....이 곳에서의 삶에 감사하며...만족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웃고 있는 형민이처럼...... 200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