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사가 만나게 해 준 아름다운 사람들

생각해 보면...국제협력의사로 지원하게 된 동기에는...해외 선교라는 단일 목적에 의해 지배되었다기 보다는.....몇 차례 말씀드렸듯이 당위성에 근거한 바가 큽니다. 다시 말하면...국가에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가에 의사를 파견한다는데....교회에서 자란 기독교인 의사로서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는 거지요.....

물론 부산의대 출신으로 현재 베트남 협력의사로 활동하는 신원혁 선생님의 영향과..... 학생 시절 이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다가오는 해외 선교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빚진 마음도 빼 놓을 순 없지만...솔직히 말하면...이 일(협력의사)이 내가 지원해야 마땅한 일로 보였기에 지원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전...해외 선교보다는 이 땅에 있는 교회 갱신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아무리 교회 안으로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해서 모은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양적 확장에만 관심이 있고 삶 속에서 빛과 소금의 효력을 발휘하는 진짜 "제자' 양성에는 실패하고 있는 듯한 일부 한국 교회의 풍조 속에서 사람 끌어 모으기만  전개된다면...장기적으로는...오히려.....적당하게 타협하는 기독교 교양인의 숫자만 늘리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매 주일 교회에는 나오지만....불신자와 다를 것 하나 없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감동과 자신감은 하나도 없이 여전히 열등감에 얽매여 세상 풍조 속에 휩쓸리는 교회 안의 안타까운 '신자'를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데...왜 교회는 고인 물이 되어갑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나쁜 일로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고....이 사회에서 교회 다닌다는 것이 거부감과 함께 비쳐지는 것은....교인들의 수가 적기 때문입니까?

그래서 제가 갖게 된 소망은 끊임없이 개혁되어지는 교회를 지켜 나가기 위해....가라지를 경계하고...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과 가르쳐야 하는 일들을 지키는데 제 삶을 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6년간 유년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던 제 눈에 비쳐진 한국교회 유년주일학교의 쇠퇴 문제는....지금의 해외 선교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제겐 와 닿았고....이젠 그저 박물관이 되 버린 서부 유럽의 후기 기독교 사회 속의 교회당의 모습이 100년 후 이 한국 땅에서 재현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는 제게는 해외 선교보다 더 큰 이슈는 교회의 회복이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선교나  사회봉사가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물론 이 일은 하나님이 걱정하시고 일하실 분야입니다....하지만 제 맘 속에 이런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과 열정을 주신 것은  내 삶을 그 곳에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믿기에.....두렵고 떨리지만...이 부분을 놓고 말씀을 보며 기도하곤 합니다.

교회를 향한 제 비젼에 대해서 적은 적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다음을 참고하세요

(1년이 된 나의 주 나의 하나님(2000.6.6),      홈페이지와의 대화(2000.9.28),     내 삶의 설계도(2001.3.17)

이렇게 지원하고....선발된 뒤....구체적인 그림을 떠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기도로 준비해 오다가.....군의학교로 입소해야 했던 것이 지난 2월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그 후 내게 벌어진 많은 일들은....이렇게 (내가) 단순하게 결정한 것으로 보이는 협력의사라는 진로 결정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있었는지....깨닫게 하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만남 1 - 협력의사 동기들

군의학교 7주차에 군의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던 협력의사 동기 8명이 한 자리에 모여.....다른 후보생들과 떨어져 지내면서....함께 말씀 보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공보의는 보건복지부에서....징병전담의는 병무청에서....일주일동안 직무 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협력의사로 지명된 저희들은 국제협력단의 방치(?) 덕분에...특별한 훈련 스케줄 없이...자체적으로 모임을 하는 행운(?)을 안게 된 것이죠....

우린 일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서로에 대해 하나 둘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왜 국제협력의사로 지원하게 되었고....어떻게 인생을 살아 왔는지....서로 어떤 배경 속에서 자라왔는지......충분한 발표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그 후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친 뒤...다른 후보생들이 교육장으로 떠나고 나면...국군 믿음교회의 소예배실에 모여서....함께 말씀을 보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치 수련회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유롭게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를 제외한 7명 중 3명이 CCC 아가페 출신이었고 2명이 UBF(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 출신이고...나머지 2명도 지역 교회를 섬기면서 기독 써클 활동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곳에 온 국제협력의사 내정자들은 모두 한 믿음을 가진 형제들이었습니다. 비록 모두가 배경이 다른 곳에서 자라고 훈련 받아 왔지만.....이 곳으로 진로가 결정된 것에는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이 개입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간증들을 저마다 한 가지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 곳에 있던 누구 말대로..." 나 보다 더....드라마틱한 삶 속에서 협력의사로 지원하게 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함께 모임을 하면서...각 나라 별로 중보기도를 하기도 하고....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놓고 서로 합심해서 기도하고 ...때로는 소리를 질러가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첫 만남 속에 가졌을 수도 있었던 서먹한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 갔고....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얻었다는 기쁨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함께 모여...군대에서 먹기 힘든 라면을 직접 끓여 먹고 밥을 지어 먹던 즐거운 일들도 큰 역할을 했지만......

 위 사진은 믿음 교회에서 수련회 아닌 수련회 시간을 가진 후...마지막 날...그 곳 목사님(믿음교회 군목)과 함께 교회당 앞에서 기념 촬영할 것입니다. 윗줄이 왼쪽부터 몽고의 한영훈, 방글라데시의 박진영, 베트남의 오정환, 네팔의 조성호 선생님이시고....아랫줄은 왼쪽부터 저, 몽고의 박관태, 목사님, 방글라데시의 이창섭, 페루의 안성균 선생님입니다.

이 곳에서의 만남이 그 후의 우리들의 관계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제 파견되고 나면....각 국으로 흩어지겠지만....항상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격려하는 동역자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만남 2 - 전태준 장군님

"전태준 장군이 누구야?" 라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저도 협력의사로 파견되기 전까지 몰랐던 분입니다. 이 분은 2년전에 퇴역하신 군 장성입니다. 별 두 개(소장) 까지 다시고....의무계통으로는 최고의 지위인 군의감(육군, 소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혹 기억나실 지 모르겠지만...저의 국제협력의사 면접 때...이 분이 면접을 보셨습니다.  부산의대를 졸업하신 분이십니다.

전태준 장군님은 국제협력의사 제도를 만드신 분입니다. 이 분은 제가 만나면 만날수록 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기에 여러분께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분은 당시 의사들이 군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군대에서 장기 근무하시면서...신앙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중령 때부터...해외 선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젊은 크리스챤 의사들이 일선 군부대나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는 대신...해외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한국의료인의 위상을 높일 제도를 만드시려고 노력하시다가.....서울 지구병원장을 거치면서...당시 대통령 주치의와 병무청, 국방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실현시키신 분입니다.   

이 분의 큰 뜻을 처음 알 게 된 것은 국제협력의사 가족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경기도 이천에 갔을 때입니다. 그 분이 그러시더군요...." 내가 군 생활을 하게 된 것도...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이러한 제도를 만들게 하시려고 날 인도하신 것 같다....하나님이 날 도구로 사용하셔서...당시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려 주셨고....내 생애 가장 귀한 일을 수종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국제 협력의사로 근무한 뒤 돌아온 30여명 가운데 벌써 전임 선교사로 다시 나가게 된 사람이 세 사람이 나왔는데.....이것을 보면...하나님이 이 제도를 도구로 사용하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분은 우리들 앞에서 시종 일관 하나님의 계획과 자신의 역할을 감동스럽게 얘기하시면서.....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군 장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권위적이고...낮아지기 어려운 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자상하게 우리의 손을 하나 하나 잡으시면서...국제협력의사 제도의 탄생 배경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함께 복음 전파의 의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 협력의사 면접 때 면접관으로 들어 오신 것도....지난 2년간 크리스챤 의사가 아닌 지원자들이 증가함에 따라.....기독교인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음을 나중에 얘기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비밀입니다.)

어쨋든....당위성을 바탕으로 국제협력의사에 지원한 내게는....전태준 장군님의 호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반증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아........하나님이 이 귀한 제도에 날 보내시는구나....하나님은 내게 어떤 일을 하게 하시려는가......' 그 분과 만남 속에서 하나님이 전국적으로 모든 계층 가운데서.......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만남 3 - 김용운 회장님(엘칸토)

이 분과의 만남은 전태준 장군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협력의사들은 전 장군님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고 명동의 엘칸토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안내를 받고 3층에 올라가서...회장실 옆의 회의실에 모여 있을 때...전 장군님과 엘칸토 회장님이 나오셨습니다. 김용운 장로님(서울 순복음 중앙교회)이 엘칸토 회장님이셨습니다. 이북 출신이신데....홀홀 단신 남하하셔서...1957년 명동에서 양화점으로 출발한 사업이 이제...국내 굴지의 패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놀라운 것은...이분도 신실한 크리스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엘칸토 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회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엘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칸토 는 can do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라는 신앙에서 출발한 기업이라는 거지요.....

사실 전..엘칸토가 기독교 기업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 책자에서도 알 수 있었고...엘칸토 중창단이라고...국내에서 활동하는 가스펠 중창단이 있지요.....하지만 엘칸토가 그런 뜻인지는 몰랐었는데....그 말을 듣는 순간....온 몸에 전기가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 장군님과 김 장로님은 같은 단체에 가입해서 함께 활동하고 계신다는데...그 모임이 하는 일은 교도소에서 갓 나온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갱생을 돕는 일이라고 합니다. 얼마나...귀하게 보이던지....무너지 여리고처럼 보이는 이 도성 안에도...하나님의 백성들이...하나님께 기도하며..사회를 밝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엘칸토는 유일하게 북한에 진출해서 흑자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라고 합니다. 97년부터 평양 만경대에 구두 공장을 설립하여 43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원료 자재를 북한으로 보내의 북한의 손재주와 정성으로 가공해 남북이 함께 만드는 구두를 국내외에 시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김장로님은 북한 공장에 보내는 기술자....그리고 북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는 기술자들의 교육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길 기대하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장로님이 사 주시는 명동에서 이름있는 음식점의 샤브샤브를 먹으면서.....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이 분들이 참 귀한 분들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이 바라는 대로....국제협력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위 그림은 엘칸토 홈페이지에서 찾아 온 장로님의 사진입니다. 엘칸토를 소개하는 부분에 실린 사진인데...자세히 보시면 장로님의 우측 아래에 성경책이 놓여 있음을 금새 눈치챌 수 있으실 겁니다.

하여간 장로님과의 만남을 통해 기독 실업인(실직자가 아니라...기업가...) 들의 활동을 실제로 듣고 나니....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었고....앞으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제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만남 4 - 홍정길 목사님

 국제협력의사 국내직무교육을 받는 기간 중에 서울시 기독의사회에 초대되어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임은 서울 삼성 병원에서 있었고...지하의 대회의실에서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예배 장소에서 우연히...귀한 분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남서울 은혜교회 담임 목사이신 홍정길 목님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홍정길 목사님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요?  19년 넘게 목회하시며...중견 교회로 커진 남서울교회를 후배 목사님에게 넘기시고...장애인 복지 학교인 밀알학교를 설립하고...남서울은혜교회라는 개척교회를 다시 시작하신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교회의 폐단의 하나로 지적되는 대형교회 지상주의, 자기 교회 살찌우기 등을 과감히 척결하시고...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일들을 실천하는 분으로 비기독교 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분이십니다.

제가 조선일보에서 홍정길 목사님과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잠시 소개하지요.....

 

[종교] 도전인터뷰/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

"발보다 행동 앞서는 교회 되어야죠"

한국 개신교 교회들은 ‘당신들의 천국’인가. 많은 교회들은 교인들끼리는 긴밀한 관계를 맺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곳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자리잡아야 하는가. 견실한 중형 교회를 바탕으로 정서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는 등 사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58) 목사를 만나 사회 속에서 교회의 바람직한 위상을 들어보았다.

―한국 교회들이 당면한 여러 문제는 교회와 지역의 관계에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교회 밖의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낯설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아마도 멋있는 말은 성경에 다 들어 있고 교인들이 늘 그것을 배우는데도 실천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인들이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하는 행동이 다를 때, 또 교회가 몸담고 있는 지역 사회와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을 때 그런 거리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신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지, ‘너희들끼리 잘 되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았습니다. 종교사를 보면 어떤 종교든 자기 만을 위할 때 문제가 빚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지금 너무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가 스스로 물음을 던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양 교회들이 오랜 역사를 거치며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 뿌리내린 데 비해 우리 교회들은 짧은 기간 동안에 기형적일 정도로 팽창주의에 매달림으로써 정작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교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최근 들어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도덕적 기반을 쌓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 성장의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공리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정신이 본래 그렇다는 인식에 입각한 것이어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고 오래도록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밖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예산 사용을 보면 잘 드러날 것입니다. 남서울은혜교회의 예산 중에서 교회 밖으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됩니까.

“우리 교회의 성인 출석 신자는 약 3000명이고 1년 예산은 50억 원쯤 됩니다. 그 중 절반 정도가 밀알학교 운영을 비롯해서 교회 밖을 위해 쓰여집니다. 이전에 제가 20년간 목회하던 남서울교회에서는 최고 62%까지 교회 밖을 위해 사용해 보았습니다.”

―남서울은혜교회의 경우 지역 사회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습니까.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관심을 갖고 찾아서 의료봉사, 노인정ㆍ실직자 지원 등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하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크리스마스 때 온 가족이 함께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도록 했는데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교회가 정말 사회를 섬기려 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이선민기자 ) 이응종기자 paryoan@chosun.com

 목사님이 새로 개척하신 남서울 은혜교회는 교회당 건물이 없습니다. 밀알학교 강당을 이용해서 예배를 드리고....주일 날 교인들의 주차는 맞은 편에 있는 삼성병원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 날...설교에 앞서 삼성병원에 고마움을 표시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을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야후"에서 검색하였는데....413개의 웹페이지가 나오더군요.....검색된 문서들을 보니...홍정길 목사님의 사회적 영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터키인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 의 대표라는 내용도 나오고....러시아 선교회에서 하신 설교 내용들과...각종 복음주의 단체에서 맡고 계신 역할에 대한 글도 있었습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목사님을 늘 존경해 왔는데....기독의사회 예배 모임에서 만나뵙고...세 번이나 악수를 한 것이 영광스럽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선교에도 관심이 많은신 목사님은 이 날 특송을 한 성균관 의대 학생들에게 한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셨습니다. 남서울 은혜교회에도 네팔로 정부파견의사가 나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참 귀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격려해 주시니....참 힘이 되고용기가 생겼습니다.

마치고 서울시 기독의사회에 속한 많은 선생님들로부터....예전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음이 너무 한스럽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 선발되어 서울에서 훈련받는 중 만난 사람들 중에는 홍정길 목사님 같은 분도 계셨습니다.

리나라 아름다운 건물 10개에 들어간다는 밀알학교 건물의 한편에는 교목 홍정길(57) 목사의 사무실이 있다. 또 1층 홀은 매주 일요일이면 홍 목사가 담임하는 남서울은혜교회(예장 개혁합신)의 예배 장소로 이용된다. 근처에 교회 건물이 있지만 홍목사는 몸이 불편한 교우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학교를 더 좋아한다.  

밀알학교는 홍정길 목사가 서울 반포에 세운 남서울교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서울시 교육청의 권유로 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은 92년이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4년만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가 문을 열 무렵 홍 목사는 남서울교회를 떠나 밀알학교와 남서울은혜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어렵사리 키운 중견교회를 내 놓은데 대해 홍 목사는 "'학교가 너를 필요로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홍정길 목사는 강남 개발 초기인 75년 성경공부를 함께 하던 몇몇 신자와 한 아파트 거실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남서울교회는 20년 만에 신자수 3000명의 중형교회로 자라났지만 그러나 규모보다도 교회 예산의 70%를 장학사업과 빈민구제, 해외 선교, 기독교 교육 등에 사용하는 견실한 내용으로 더욱 알려졌다.

홍정길 목사가 개신교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2년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종래 개신교 진보 그룹의 전 유물로 여겨지던 북한 지원 사업에 보수적 목회자들을 묶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는 또 개신교 진보-보수 흐름이 함께 구성한 한국기독교 북한동포후원연합회 식량은행의 사무총장도 맡게 됐다.

홍정길 목사가 또 하나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대학생 선교. 목사가 되기 전 7 년간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로 활동한 그는 '평생 대학생과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 때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학원복음화협의회, 해외유학생수련회등 대학생 집회에는 가능한 참석한다. 홍 목사는 "학생은 우리의 미래이자 소망"이라며 "이들이 자기 말에 책임지는 인격을 갖추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정길 목사 약력>.

1042년 출생 숭실대 철학과-총신대 졸업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건국대 교목-남서울교회 담임목사 현재 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밀알선교단 이사장, 남북나눔 운동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