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약속

한국에서는 사상 초유의 추위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데 이곳은 조용한 여름 방학을 지나 새 학기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정이 언어 및 타문화 훈련을 위해 뉴질랜드에 온지도 벌써 7개월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은 이곳 ICI 에서의 적응과 영어 공부라는 당면 과제에 정신없이 보낸 세월이었지만 새해를 맞고 새 학기에 접어 든 지금은 앞으로 우리 가정이 섬겨야 할 카자흐스탄, 보다 구체적으로, 알마티 동산병원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새벽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언어 공부 기간에도 알마티 동산병원에 관한 여러 소식과 비자 작업은 이어졌습니다. 알마티 동산병원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처음 카자흐스탄으로 가고자 마음 먹고 IS 에 서류를 내었을 때, 현지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 의사를 받을 만한 의료 기관이 없다' 는 답장이었습니다. 의료 기관이 아닌 NGO 에서라도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메일이 왔을 때는 '의료 사역자'가 아닌, 모든 것을 그저 주님께 맡긴 한 사람의 사역자로 카자흐스탄에 갈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 때가 2010년 7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 우리 부부는 의료 M 이 아니더라도 그저 한 사람의 M 로 그 땅을 밟고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결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렇게 답장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답장을 보낸 이후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계획을 움직이셨습니다. 우연히 현지 WEC 사역자로부터 알마티 동산병원이 의사를 찾고 있을 거라는 정보를 받게 되었고 8월 경 대구 동산의료원 원목실로 전화해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가려는 의사인데 혹시 알마티 동산병원에서 함께 동역할 수 있는냐?' 라고 물었던 것이 알마티 동산병원과의 동역을 시작하게 된 첫 걸음이었습니다.

알마티 천산산맥 기슭입니다.

저는 2001-2003년까지 3년간 국제협력의사로 카자흐스탄 알마티, 아스타나의 현지 병원에서 근무했고 현지 교회에서도 진료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귀국 이후로도 카자흐스탄이나 인근 CIS 지역에서 2010년까지 매년 진료 활동을 했었기에 어쩌면 저야말로 카자흐스탄의 일반 의료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인 의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소득 1만불에 육박하는 중앙 아시아의 대국, 카자흐스탄의 의료 현실이 이렇게 열악할 것이라는 아무도 예상못하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카자흐스탄의 구멍난 현실 속으로 들어갈 그 누군가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 그 국가 사회의 수 많은 영역 가운데로 들어가는 전문인 M의 사명이니까요.

2003년 9월 국제협력의사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을 떠나기 전,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남긴 약속  03.9.14  ) 그 내용을 보면  꼭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 때는 지금처럼 약 보따리 들고 다니는 진료가 아니라 기본적인 혈액검사와 진단 장비를 갖춘 의원급 의료 기관을 개설할 것이기에 아마 2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거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읽어본다면 '열정은 대단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릴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불과 7년만에 이 생각이 실현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최소한 20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의 방법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1주일 전, 대구 동산의료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마티 동산병원으로 보낼 임상병리장비를 곧 계약하게 되어 그 내역서를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어 보니 수천만원대의 임상병리장비와 시약들의 세부 항목이 상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7년 전 제가 썼던 그 내용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내가 돈을 열심히 벌어 이 모든 것을 준비할 거라는 생각만 했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그 분의 일을 하시는구나.' 참으로 놀랍고 감격적인 일인지라... 내역서를 한참이나 바라 보았습니다.

의료 사역자로 카자흐스탄에 나온다고  2010년 3월 IS에 지원서를 낼때만 해도 이 모든 일을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알마티 동산병원이 저를 파송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로부터 거의 10개월 후의 일이니까요. 일단 첫 발걸음을 내딛자.. 하나님은 예비하신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참고로 카자흐스탄은 한국과 의료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한국 의사 면허가 있다 하더라도 카자흐스탄에서 합법적으로 진료할 수 없습니다. 불법 무허가 진료가  되 버리니까요. 의료 기관을 통한 특별한 허가를 받지 못하면 합법적 의료 활동이 불가능한 곳이 바로 카자흐스탄입니다. )

새 임상병리장비는 2월에 계약, 3-4월에 수송, 5-6월에 현지임상병리사 교육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알마티 동산병원은 10년 전에 세워진 병원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혈액검사 장비도 없이 현지 의사들에 의해 병원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카자흐스탄의 의료 현실입니다. 이번 장비 도입으로 알마티 동산병원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실제적인 고민들도 하나 둘씩 떠오릅니다. 장기적으로는 알마티 동산병원의 자립이 목표인데, 적정 검사료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현지 직원(임상병리기사) 과의 의사 소통을 어떻게 맺어갈지... 하지만 이것도 주님이 가르쳐 주시겠지요?^^

알마티 동산병원 입구

2010년 봄, 선린병원 단기팀원과 함께 알마티 동산병원을 방문했을 때 모습입니다. ( 2010년 4월에 촬영한 리모델링 전(前) 모습입니다.)

7년 전 홈페이지에 적었던 작은 마음을 기억하신 주님은, 나도 모르는 내 인생길 어느 골목에서 그 분의 방법대로 나를 이끌고 계십니다. 7년 전과 비교할 때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때만큼의 자신감도 없고, 그 때보다 훨씬 더 뼈저리게 나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사역지로 떠나기 전, 1년간의 훈련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의 WEC 선교사님들이 2년간의 훈련 기간을 가지고 사역지로 가는 것을 많이 봐 왔는데...그 시간이 마냥 편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곳에 와서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는 사역지에 있어야 가장 마음 편하다는 많은 M 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 가정을 이곳 ICI 로 보내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훈련,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있느냐는 물음, 내가 얼마나 자격 없고 무능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 이곳 뉴질랜드 ICI 에서 하고 있습니다.  

2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6개월 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다섯 식구가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 팀으로 살아가는 법에 더욱 숙달되고, 남은 기간 동안 영어의 진보는 물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짐으로 이 귀한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열매 맺게 되길 원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2011.2.1

2011년 카자흐스탄 동계아시안게임 - 지난 2010년 4월 알마티에서 촬영한 동계아시아게임 홍보 간판입니다. 지금 경기가 한창이죠? 이번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카자흐스탄이 영적으로 더 많이 열리게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