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카자흐스탄

드디어 카자흐스탄을 떠납니다. 오는 14일(화요일) 20 피트짜리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우리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면 지난 3주 동안 꾸준히 싸 놓은 짐들을 컨테이너 안으로 옮기면서 카자흐스탄 생활을 청산하게 됩니다. 짐을 보낸 우리 가족은 17일(금요일) 오전 10시 20분에 모스크바로 출발하는 '에어 아스타나' 항공편으로 카자흐스탄을 떠나게 되는데 카자흐스탄의 문화적 배경의 한 축을 이루는 러시아를 실제로 체험하고 싶은 까닭에 약 1주일간의 귀로 여행을 러시아에서 가지게 됩니다.

컨테이너를 한국으로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스타나에서 부산까지 이삿짐 컨테이너를 보낸 고객이 없었던 까닭에 이 일을 맡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운송 업체들 조차도 제대로 업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우왕좌왕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지난 8월부터 KTS(Kazak Transservice)라는 국영 운송 업체를 들락거렸는데 지난 주 금요일까지도 제대로 일처리를 못해 과연 제 시간에 컨테이너를 보낼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금요일 오후 극적으로 송장을 작성할 수 있었고 현재는 세관 통관 업무만 남겨 놓은 상태입니다. 세관 통과의 경우에는 제 신분이 면세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대사관 소속이기에 특별한 절차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를 위해 내일(13일,월요일) 이곳 세관 책임자와 만날 계획입니다.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이삿짐을 보내는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도 내일 날이 밝으면 해체해서 박스에 집어 넣어야 하기에 귀로 여행 기간을 포함한 상당 기간 동안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귀로 여행 이야기와 한국에서의 적응 이야기는 our story를 통해 틈나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한국에 이삿짐이 도착하기까지는 최고 47 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47일....12월 1일 정도가 되어야 짐이 도착한다는 이 말은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상당 시간 정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카자흐스탄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듯이 아마 한국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 만한 시간이 적응에 필요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아파트를 구하느라 입국하자말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겠지요.

카자흐스탄을 떠날 준비는 카자흐스탄에 도착하던 날부터 해 오고 있었기에 이 땅을 떠나는 것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맘이 더 앞섭니다. 카자흐스탄을 떠나며 우리 가정이 갖게 된 비젼에 대한 글은 이미 한 달 전에 소개했었기에 카자흐스탄에서 하는 마지막 글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맘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할까 합니다.

카자흐스탄을 떠나야 할 시간이 막상 되고 보니 많은 사람들과 섭섭한 인사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아스타나 장로 교회에서의 마지막 주일 예배였습니다.

2001년 8월...김명희 선교사님 부부가 이 교회를 세운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가정은 교회에 합류했었고 그 후 2년 3개월 동안 많은 현지인 청년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선교지에서의 값진 경험들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제 홈에 있는 '선교지 이야기'의 많은 글들이 바로 아스타나 장로교회에서 겪은 내용들이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작은 지역 교회를 섬겼던 제 신앙 패턴에 딱 맞는 예비된 교회였습니다. (위 사진은 아스타나 장로교회 성가대의 모습입니다. )

이 곳에서 서툰 러시아어지만 성가대나 찬양 인도를 주로 맡아 왔었고 지난 2002년 첫 주부터 새로 시작하는 "젊은이 모임" 이라는 소그룹을 맡아 현지인 학생, 청년들의 양육과 찬양 보급 등을 챙겨 왔습니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이제 세 사람의 현지인 리더에 의해 인도되는 굳건한 성경 공부 모임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돌이켜 보면 아스타나의 다른 교회가 아니라 장로교회로 우리 가정을 보내신 데에서도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것만 같았던 우리 가정이 한국으로 가게 된다는 소문은 지난 여름부터 교회 내에 나돌았지만...막상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마지막 주일'이 다가오자 많은 젊은이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선물을 준비했고 '젊은이 모임'에서도 송사와 특송으로 이루어진 조촐한 송별식과 함께 커다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고려인과 카자흐인의 혼혈인 '세르게이'와 카자흐 쌍둥이 자매인 '자밀라'와 '까밀라'입니다. 사진에서 제 왼쪽에 있는 자매가 까밀라이고 선화 앞에 있는 자매가 자밀라인데 첫 6개월 동안은 둘을 구별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젠 가족처럼 된 지 오래입니다.

1년만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소그룹의 리더가 된 쌍둥이 자매....한국 교회의 현실에서는 나오기 힘든 case이지만 선교지 카자흐스탄에서는 눈 앞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어렵다는 카자흐인이지만 교회 안에 개설된 한글 학교를 통해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재작년 여름 수련회를 통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에 끌리기 시작하면서 6개월만에 세례를 받고 그 어느 학생들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보며 교회를 섬기는 참 제자입니다. 볼수록 아름답고 정이 가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요.

둘은 가끔씩 자신을 가리키며 "우리가 카자흐인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많은 장애물이 되었었지만 예수를 믿고난 뒤 이미 내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 시간에도 "당신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합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맘 속 한 구석에서 물밀 듯 일어나는 벅찬 감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헤어져야 할 마지막 시간....젊은이 모임의 모든 청년, 학생들의 손을 돌아가며 붙잡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납니다. 당분간은 몇 년에 한 번씩 보게 되겠지만 제가 품고 있는 비젼이 실현되는 그 때에는 여러분들과 더욱 가까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가능한 대로 여러분들 중 몇 사람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습니다. "

정말 자밀라, 까밀라와 세르게이는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꼭 초청하고 싶은 현지인 지체들입니다. 신앙 생활의 모범을 찾아 볼 수 없는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그들에게 한국에서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지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형교회가 아니라 그저 소박한 한국 교회에서의 모습을요....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2년 반의 시간은 우리에게 둘째 시은이와 셋째를 안겨 주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들어올 때 불과 7개월이었던 형민이는 이제 벌써 만 세 살을 넘겼고 능숙한 솜씨로 달력의 글자들을 가위로 오려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 3일 정도 열이 오른 뒤 더욱 성숙해진 10개월의 시은이는 조만간 혼자 힘으로 일어설 것 같습니다.

아직 한 번도 초음파 검사를 해 보지 못한 셋째는 오늘도 선화 뱃 속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마 한국에 가서야 정체가 밝혀질 것 같습니다. 두 아이를 기르다 보니 셋째에게 소흘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셋째가 우리 가정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 오를 것 같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국제협력의사 시절을 회고해 보라고 한다면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을 가장 큰 수확으로 여기고 싶습니다.

선교지에서의 동역과 대한민국 ODA 사업에 참여했다는 자긍심도 중요하지만 네 식구가 이국 땅 카자흐스탄에서 함께 지내며 한국에선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여유로운 시간들과 가족으로서의 일체감을 누렸다는 사실이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풀과 같이 한 순간에 시들어 버리지만... 이곳에서의 추억은 덧 없는 인생살이에서도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 6월부터 시작된 홈페이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은 이것으로 카자흐스탄 협력의사 생활 편을 마치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국에 가서도 믿음의 가정으로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진솔한 얘기들과 감동들을 전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17일 러시아로 출발하는 귀로 여행과 한국까지의 항공 여행의 안전 그리고 새로 정착하는 한국에서의 삶을 위해서도 여러분들의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갈수록 내 삶을 인도하는 어떤 강력한 힘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세밀한 인도하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2년 반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마치는 지금....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