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남긴 약속

카자흐 초원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 후면 아스타나를 떠나게 됩니다.

불어 오는 바람 끝에서 저만치 눈과 얼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며, 또 다시 맞은 내 삶의 다른 전환점에 서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합니다. 돌아 보면 제가 카자흐스탄에 오게 된 것은 언제나 날 바라 보고 계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손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원래 파견지가 '과테말라'였다가 극적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진 사실이나 크리스챤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 없이는 어떤 사실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이해에서 하는 딱딱한 진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계획 속에서 나를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셨음을 고백합니다. 이 곳을 떠날 때가 가까워 올수록 이 사실이 내 맘 깊숙히 더욱 와 닿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온 지 2 년 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오늘은 제 개인적인 비젼에 대한 얘기들을 털어 놓고자 합니다.

30대의 출발을 카자흐스탄에서

주민등록증에 씌여진 제 생년월일은 1971년 10월 18일입니다. 카자흐스탄에 처음 왔던 2001년은 만 서른 살이 되는 해였지요. 부산의대 6년, 부산대 병원 인턴 1년, 내과 레지던트 4년 과정을 마치고 내과 전문의가 되자 말자 제일 처음 간 곳이 바로 이 곳, 카자흐스탄입니다.

인생에는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평생 직장' 개념이 흔들리면서 정년이 점점 단축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따져 보면 약 30년 가량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국제협력의사로 보내는 3년 간의 시간은 이 30년의 첫 10%에 해당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시간 자체가 특별한 삶이었습니다. 중앙 아시아, 舊 소련 지역인 카자흐스탄에서 살면서 러시아어로 사람들과 접촉하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겪은 희로애락들은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때로는 이곳 사람들이 한 없이 미워질 때가 있었고 때로는 그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서 아스타나에서 살면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도 제게는 큰 축복이었고 특별한 훈련이었습니다. 아스타나 1병원에서의 근무 외에도 아스타나에 세워진 다섯 군데 교회를 돌면서 규칙적으로 진료를 해 왔고 이곳 선교사들 뿐 아니라 현지인 사역자들 사이에서도 이 진료 활동은 각 교회의 중요한 동역 활동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한 교회에서는 이 진료를 통해 교회 출석하게 된 가족이 세 가정이나 된다며 알려 왔지만 이런 구체적인 열매 보다는 지역 사회 속에서 교회가 아름다운 소문을 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10월이 되면 떠난다는 의사를 바라 보며 진료지의 사람들은 질문 합니다. "이제 당신이 가고 나면 누가 오나요?"  이 말을 들을 때만큼 가슴 아픈 순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벌써 의사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요... 함께 기도합시다" 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대답을 못해주는 내 모습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의료 선교사?

이곳에서 받은 가장 큰 도전은 나를 필요로 하는 선교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료의 혜택이 전혀 미치지 않는 산간 오지나 아프리카도 아니고 CIS권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카자흐스탄인데도 여전히 약품을 살 수 없어 효능 없는 민간 요법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의료 선교사를 필요로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를 느낍니다. 사실 여러 번 밝혔듯이 제가 품고 있는 하나님 안에서의 꿈은 대한민국 안에서 일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미전도 지역에서의 선교 보다는 묵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의 부흥이 제가 헌신해야 할 영역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 안으로 사람을 모으는 일만이 모든 것인양 얘기하는 시대이지만 실제로 기독교 인구가 25%인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 많은 사회 현상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웅변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이 오게 된 근본 원인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예언자요,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는 "말세가 될 수록 빛과 어둠은 더욱 극명하게 갈리는 법이야...."하고 혀만 차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개인적인 소명을 깨닫고 그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투쟁에 나서야만 합니다. 지금은 이 일이 급한 시대입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만 출석하며 그저 숨만 쉬고 있는 많은 묵은 신자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소란'을 피우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꿈입니다. 늘 그 속에서 부추기고 자극하고 우리의 목표를 끊임 없이 제시하는 역할을 자청하고 싶습니다. 서로 낮아져서 섬기고, 찬양과 말씀을 통해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회개와 부흥이 반복되도록 교회 공동체 내에서 도구가 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대학 시절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교회를 향해 이토록 애틋한 비젼을 가지게 된 데에는 제가 자란 모교회가 수 많은 어려움을 겪은데서 기인하지 않나 생각하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내 힝으로 되는 일도 아니지만 이런 마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일을 해 나갈 작정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나를 선교지 카자흐스탄에 보내셔서 이곳을 보여 주시며 이곳에서의 필요에 대해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전 국내로 헌신했는데 왜 이렇게 선교지에서의 필요를 느끼게 만드십니까?' 이것이 반복되는 나의 질문이었습니다.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사람이 국내에 얼마나 많은데 하필 절 카자흐스탄으로 부르시고 의료 사역으로 헌신하도록 하셔서 이런 안타까움을 보게 하십니까?"

'30대 초반의 내과 전문의가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러시아어를 익히며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볼 때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을 품으시고 카자흐스탄으로 날 부르신 건 아닌지... 하나님은 그 분이 사랑하시는 땅 '카자흐스탄'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려 하시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국제협력의사를 지원하게 된 계기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독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좋은 일' 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었기에 카자흐스탄에 필요한 의료 선교사라는 부분에서도....'카자흐스탄에서 2년 반 동안 살면서 그 어떤 이보다 이곳의 의료 현실 전반에 대한 이해가 넓고 실제적인 훈련과 경험을 갖고 있는 내가 적격' 이라는 당위론이 늘 눈 앞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나의 비젼 대로 국내에서 일정 기간 동안 사역한 뒤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나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국내에서 해야 할 일

당장 선교지 카자흐스탄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제 소명(vision)은 여전히 국내에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돌아 보고 찬양과 예배의 회복에 헌신하고 내 안에 불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사랑을 훗대 학생들에게 옮겨 주는 것...이 모든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외에도 국내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의사이셨던 증조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 때 받으셨다는 의사 면허증에는 9번이라는 면허 번호가 선명합니다. 그 분은 대한민국의 아홉번째 신식 의사였습니다.(참고로 제 면허번호는 58750번 입니다.) 재작년에 소천하신 할아버지도 평생 의사로서의 헌신하셨고 제가 의사의 꿈을 갖도록 만든 멘토였습니다. 지금은 삼촌이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야말로 의업은 저희 집안의 가업이었습니다.

증조부때부터 기독교를 받아 들여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남동생과 여동생은 다 목회자의 길로 가고 있는데 첫 딸을 본 남동생은 내년에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해서 강도사가 되고 고신대 기독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여동생은 밀양 대평교회의 목사 사모입니다. 두 동생이 모두 목회자 가정이다 보니 장손으로서 집안을 챙기고, 정리되지 않은 부채를 해결하고, 부모님을 받드는 일이 제게는 실제적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한다고 뛰어 다니면서 가족이나 마땅히 돌봐야 할 가까운 친척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은 이율배반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의 실천은 동심원적으로 확장되어야만 효과적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전 국내로 들어가면 제가 꿈꾸어 왔던 교회에서의 활동과 아울러 가족과 친척을 돌아 보고 아우르는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목회자의 길에 접어든 두 동생의 가정을 후원하고 그 동안 못 챙겼던 친지들을 돌아 보고 우리 가정의 든든한 조력자인 새벽별(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학사모임)을 미래를 위한 든든한 동역자 그룹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의료적인 측면에서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고혈압, 협심증 같은 순환기 질병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앓고 있지만 제대로 심혈관 기능에 대해 평가를 받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일회성으로 약을 복용하는 수 많은 환자들을 대하면서 심초음파 검사나 간담도 초음파 검사에 대한 능력을 반드시 갖춘 뒤 선교지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수확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그 같은 장비를 갖추지 못한 현지 병원에서 일했다는게 가장 큰 원인이긴 하지만 다시 선교지로 나올 때를 대비해 이번에 국내로 들어가면 부산의료원에서 6개월 근무하는 동안 심초음파에 대한 실제적인 공부를 할 작정입니다. 이 외에도 카자흐스탄은 자국 보건 복지부에서 밝힌 대로 요오드 결핍이 심각한 내륙 국가여서 갑상선종 환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대부분 갑상선 호르몬 만을 복용하면서 그냥 지내고 있는데 세침 흡입술로 갑상선 악성 종양을 감별 진단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술기를 익혀 오는 것도 필요합니다.

선교지로 나오기 위한 준비도 전방위에서 진행되어야 하기에 이곳에서 익힌 러시아어를 학습하는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라디오 강좌, 부산외대 청강 등 여러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고 부산에 드나드는 많은 러시아 선원들을 상대로 진료하는 일(외항선교회)들에 가담할 생각입니다. 부산에서 러시아어로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의사는 아마 저 하나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교지로 나오기 위한 인적, 재정적 토대를 든든하게 갖추는 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합니다.

아스타나 기독 의원(병원)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실 때는 나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 올리게 되는 것이 직업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하나님은 나를 의사로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선교지에서 전문인 선교사의 입지가 든든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선교사로서 카자흐스탄에 나올 생각을 품게 되면서 한 가지 청사진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곳, 이슬람권의 backdoor 으로서 중요성을 인정 받고 있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 기독교 의료 기관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가칭 '아스타나 기독 의원(병원)'은 현재로선 내과계 의원급 의료 기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향후 하나님께서 병원급으로 확장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모델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카자흐스탄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국가입니다. 120 여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인데 각 민족 종교를 존중하는 분위기이기에 수 많은 종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주류 민족인 카자흐인의 기독교화 비율은 1%도 되지 않습니다. 주류 민족은 여전히 '태어나면서부터 무술만(이슬람 신자)' 이라고 일컫는 회교도인 것입니다. 35%를 차지하는 러시아 인들은 1000 년의 정통을 자랑하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변질되어 버린 신앙은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형식과 미신만이 남아 있는 죽은 종교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카자흐스탄에도 선교사들이 세운 지역 교회가 여기 저기에 있고 UBF와 같이 제자 양성을 위해 애쓰는 자비량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느껴지는 현지 분위기는 어렵게 세워진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둡고 비기독교적인 문화입니다. 그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기독교적 문화나 하나님 나라의 다양성 속에서 자신의 달란트를 계발하는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과는 달리 비밀리에 어렵게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카자흐인 중에서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는 그의 친척과 친구로부터 버림 받고 맙니다. 카자흐스탄의 공무원들은 특정 종교를 가지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서 공무원들은 예배에 참석하지도 못합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미성년자들에게 선교 활동을 금지시키려는 종교법을 제정해 놓고 상,하원 의회를 통과시킨 곳이 바로 이곳 카자흐스탄입니다. 이곳에선 '기독' 이라는 단어는 카자흐의 어두운 역사와 맞물려 한 없이 저주스럽고 멀리할 것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본 가능성은 카자흐스탄의 수도, 바로 이 곳 아스타나에 '기독교' 라는 이름을 내걸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의료 기관을 세우는 일입니다. 만일 아스타나에 기독교 병원과 기독교 학교가 들어오고 그 기관의 활동 수준이 이곳의 많은 병원과 학교들이 무색하리만큼 정확도와 실력면에서 뛰어나다면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있는 반기독교적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것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기독교적 공연을 선보이는 문화 사역이나 깊은 신앙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책자나 인쇄물을 현지어로 번역, 출판하는 사역과 마찬가지로 이런 의료 사역 역시 '눈 앞에 보이는 열매'만 빨리 세어 보려는 조급증에 빠진 한국 교회 선교 경향으로선 성에 차지 않는 활동일진 모르겠지만 아스타나에 살면서 의료 사역을 계속해 온 제 입장으로선 너무나도 필요한 선교 활동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초창기에도 병원과 학교를 세우기 위해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 왔었고 결국 이 일들은 장기적으로 한국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지금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산만 하더라도 침례병원,메리놀 병원, 일신기독병원 등 수 많은 선교 병원들이 세워졌었습니다. 우리가 힘들었던 시기에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찾아 온 파란 눈의 외국인 의사들이 그와 같은 병원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큰 병원급이 아니라 저 혼자 일하는 것을 전제로 한 내과계 질병을 다루는 의료 기관에서 출발합니다. 일반 의사의 평균 월급이 100 불에도 못 미치는 이곳은 의료 분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낙후되어 있습니다. 의료 시설, 지식, 수준 모든 것이 다 한국보다 30년 전입니다. 카자흐스탄의 평균 의료 시설과 수준을 볼 때 향후 20년 후에도 한국보다 낙후된 수준일 것이 분명하고 그 때에도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답답함을 카자흐스탄에서 여전히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검사 시설, 장비, 시스템이 이 곳에 들어 오게 된다면 대다수 의료 기관보다 비교 우위를 가지게 되는 뛰어난 시설이 될 것임을 장담하지만 이런 곳에서 한국인 의사가 개업하며 살아 간다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95% 이상의 의료 기관이 국영인 이곳에선 낮은 의료비와 의료 수준으로 인해 사설 의료 기관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이 틈새를 보고 들어 가려고 합니다. 선교 의료 기관을 통해 이곳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혼을 섬기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면서 지금처럼 선교지 교회들과 의료 분야의 동역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전문인 선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 교회와 선교지의 풍토 속에서 한국 출신의 의료 선교사로서 좋은 모델을 세워 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준비

그렇다면 무엇이 준비되어야 할까? 가장 어려운 일은 카자흐스탄을 품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저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적으로 봐선 '이 놈의 카자흐스탄'에 사랑을 줄 구석은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셨던 그 분의 사랑으로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뒤의 문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전 기본적으로 향후 한국에서 2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카자흐스탄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준비 외에도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의 자녀 교육 문제와 기술적, 재정적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교단이나 선교 단체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의 경우 생활비와 사역비를 합쳐 봤자 월 2천 불도 채 되지 못합니다. 그나마 사역비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라야 받을 수 있지 그 외에는 넉넉지 않은 재정으로 사역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교단 선교사라고 하더라도 선교부에 모아지는 개인 후원금들이 모두 다 송금되는 것이 아니라 총회 선교부에서 관리하면서 늘 일정한 금액만 지급하기 때문에 풍족하지 않은 재정으로 선교 활동을 벌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전 의료 선교사로 파송된다면 교단(고신)이나 선교 단체(WEC,Interserve)의 파송을 받을 계획입니다. 전문인 선교사의 경우에는 보통 1년간의 선교 훈련만 거치면 선교지로 떠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의료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에 세워진 국제 선교단체의 선교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대부분 외과계 의료 선교사들입니다.) 물론...유력한 기관의 정식 파송을 받지 않고서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지만 한국 특유의 선교지 상황을 고려해 파송을 받고 나오는 것이 유익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같이 선교 전략상 중요한 지역에서 기독 의료 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너무 이른 시기에 파송 선교사로 나오게 된다면 제가 꿈꾸고 있는 의료 선교 모델을 세우는데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디오나' 라는 예쁜 매장 건물이 있는데 파란색의 유리로 외부 장식을 해 놓은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저런 스타일의 건물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품곤 합니다. 내부 인테리어와 초음파, 내시경, 임상병리 및 방사선 장비, 소모성 재료인 검사 시약, 필름, 사무 가구 및 운영비...사실 이곳 수준의 진찰료를 받고 최상의 의료 기관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돈 드는 사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건물은 2층 짜리로 시내 중심가의 건물을 사서 수리하거나 건축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일 테고 한국인 의사가 카자흐스탄에 의료 기관을 열기 위해 필요한 많은 행정적인 절차(노동 허가증, 각종 증명서, 각종 약품이나 장비의 사용 허가)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의료 기관을 토대로 지역 교회와 연계한 의료 활동을 펼칠 수 있고 많은 단기팀과 선교사들에게는 중앙 아시아 선교의 베이스 캠프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스타나에 올라 온 뒤 아스타나 선교사 사회가 그렇게 변했듯이 아스타나 지역 교회들이 이 병원을 통해 더욱 연합할 수 있을 것이고 병원 내의 회의 및 세미나 실을 사용해 아스타나 의대 학생들과 한국의 첨단 의학 자료 들을 공유하고 카자흐스탄의 의학 및 간호학 분야에도 공헌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활동이 복음의 접촉점으로 이용되고 이슬람권의 도시 '아스타나'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중요한 교두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고 하면서 '무조건 퍼 주기' 식의 자선 활동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옳은 것과 틀린 것은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방문객들을 받을 것이며 이 의료 기관을 통해 접촉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자 삼는 일에 궁극적으로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참 그리스도인을 세우는 일

지난 번 비젼 트립 기간 동안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환자 보고 진료하고 약 주고...뭐 이런 걸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나요? 너무 소극적인 방법 아닌가요?"

사실 한국에서 약과 장비를 싸 짊어지고 와서 3-4일 동안 몇 백명의 환자들을 정신없이 진료한 뒤 돌아가는 의료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의료 선교 활동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활동들은 사실 그 의료 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 교회가 그 지역에서 든든히 서고 좋은 소문이 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복음 전파의 효과를 거두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선교지에는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 많고 이런 활동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으로 들어오고 복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료 활동을 놓고 이를 통해 결신하게 된 사람이 몇 명이냐고 숫자를 세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방문이 아니라 의료 선교사로서 한 지역에서 장기간 사역하게 된다면 복음 전파 활동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됩니다. 저는 지난 2년 반 동안 선교지에서 여러 교회와 동역하면서 많은 교회들과 선교사들을 접해 왔고 많은 특별 프로그램이나 간증 시간에도 참여해 왔습니다. 실망스러운 순간도 있었고 가슴 뜨거워지는 감사와 감격의 순간들도 많았었는데 그 많은 과정 끝에 얻게 된 결론 한 가지가 바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는 것입니다.

교회를 등록하고 교회를 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습니다. 한국인 선교사의 교회라면 한국에 애착을 가진 고려인이나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없는 러시아인들이 뭔가 이곳에서 도움이 될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에서 교회를 찾습니다. 매 주 드리는 예배에도 꼬박 꼬박 참석하고 말씀 시간에도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들....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신앙 행태와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해 보이지만 이 속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심지어 현지인 사역자라고 하더라도 믿음 위에 굳게 서 있다고 속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더라도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기만 하면 믿음이 성장하는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카자흐스탄을 책임질 참 그리스도인,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 영적 지도자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즉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에 일주일 한 번 와서 앉아 있다가 가는 것만으로는 참 제자로 양육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한국의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교회에 나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이 온전한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정도까지 되려면 정기적인 예배 참석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의 영혼을 품고 기도할 수 있는 양육자의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게다가 이 일은 1-2년 내에 이루어지는 속성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사실 외국인 선교사로서 이곳에서 사역하는 데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현지어에 능숙한다고 하더라도 현지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흔드는 능통한 상담이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도나 양육 등 많은 부분이 통역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러다보니 오해도 생기고 웃지 못할 일도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래서 선교사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떠나고 난 뒤 이곳에서 자신의 일을 계속 이어 할 수 있는 현지인 지도자(리더) 한 사람을 제대로 세워 놓고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선교지 교회를 출입하지만 그 중 그런 영적인 리더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만난 현지인들 중에서 '야...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구나...' 하고 가슴이 찡할 정도로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선교사들이나 동료 그리스도인과의 끊임 없는 접촉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잦은 접촉이란 것은 그저 선교사의 집에 자주 출입하면서 밥 한 끼 얻어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심심해서 놀러 간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난생 처음 수련회란 데에 따라 가서 밤새도록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었던 일이나 어색하게 형제, 자매라고 말하며 함께 찬양하고 옆 사람의 손을 잡았던 일도 포함됩니다.

속 마음을 감추어 놓고 교회당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들(특별히 선교사)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그의 눈에 비치는 다른 나라에서 온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고민하게 된 사람들이 결국에는 복음을 복음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 들이고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갔습니다 .

2년 반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표정도 다르지만 진실은 통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그를 존중하고 그의 영혼을 사랑하고 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를 섬기길 원함을 우리의 무의식적인 생활 속에서도 보여 줄 수 있다면, 딱딱하고 굳어진 그의 맘은 서서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영혼으로 바뀌어 가게 됨을 지금도 확신합니다. 어쩌면 지난 2년 반 동안의 기간은 선교사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보고 듣고 훈련받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사로 콩고에서 오래 사역했던 WEC 소속의 여자 선교사 헬렌 로즈비어의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그녀는 그의 자서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IVP, 1996초판')에서 다음과 같이 선교사를 정의합니다. "나는 정말이지 선교사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자기와 다른 민족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라는 형식을 포함할 수도 있고 인간 관계를 포함할 수도 있다. "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저희 홈 기독교 서적에 이미 올라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세요)

이런 면에서 오랜 선교 역사를 가진 서구권 선교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스타나에도 한국인 선교사 수 만큼 되는 영어권 선교사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들 중에 지역 교회를 세우고 일하는 목회자 선교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들이고 다들 하나 같이 현지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 뒤 개인적으로 복음을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내의 일반적인 풍조로 따지자면 "이게 뭐야...교회(교회당을 말하는 거죠)도 안 세우고...모아 놓은 교인도 하나도 없는데...이게 무슨 선교야..." 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 많이 모아 사진 찍고 홍보하는 선교사보다 어쩌면 이들이 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이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한국인 선교사를 사용하셔서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교회 개척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개인적 관계를 통해 양육된 현지인들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지역 교회에 합류하게 되고 지역 교회를 연 목회자 선교사들도 설교 통역자나 청년 리더로 세워질 만한 사람들의 양육에 대해선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다만....문제는 개인적인 관계와 성경 공부를 통해 현지인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선교 활동이라는 것을 망각한 채 지역 교회를 세우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한국식 선교 풍토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목사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직종의 많은 크리스챤들이 선교지로 나와야만 합니다. 서구권 선교사들과는 반대로 목사 선교사들만 나와 있는 한국 선교사 사회에서는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이 선교의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지적하지만...양육이 없이는 깊이 있는 현지인 영적 리더가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슬람권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스타나 기독 의원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만나는 현지 젊은이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중요한 활동으로 여길 것입니다. 젊은이라고 쓴 이유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이들을 접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문화와 가치관의 영향을 덜 받은 젊은이들을 만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며 우리가 가진 복음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혼들은 반드시 주께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제 마음 속에 굳게 서 있습니다.

지역 교회를 열고 목회를 하는 목회자 선교사건 전문인 사역을 하는 평신도 선교사건...궁극적으로 선교지에서 카자흐스탄을 위해 울고 헌신할 수 있는 참 제자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10년의 선교 사역을 통틀어 한 명의 신실한 현지인 리더가 나올 수 있다면 그 선교사의 사역은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인본주의로 물든 카자흐스탄 역시 앞으로 조국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할 수 있는 참 영적 지도자 한 사람을 키워 내는 일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스타나의 기독 의료 기관을 유지하면서 바로 이런 일에 전폭적으로 매달릴 생각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으로 섬기고 마음이 열리는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육 기관의 역할도

카자흐스탄 국기와 한국 국기가 휘날릴 아스타나 기독 병원은 각계 각층의 환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에 입각한 수준 높은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일차적인 활동 내용이지만 의료계와 지역 사회에 대한 교육 기능도 수행하게 됩니다. 우리 병원은 한 달에 한 번 임상 의학이나 기초 의학 분야에 있어 중요한 주제들을 가지고 의학 세미나를 개최할 것입니다. 이런 세미나를 위한 자료(source)는 모교인 부산 의대 내과학 교실에서 슬라이드나 파워 포인트 파일 등의 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의료 및 의학 분야가 열세인 카자흐스탄은 의학 발전을 위한 학회나 연구회가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한 달에도 몇 번 씩 "지방 내과학회', '지방 소화기 내시경 학회', '지방 소화기학회' 등 각종 학술 모임들이 열리고 많은 논문들이 학술지에 실리는데 비해 카자흐스탄은 학회나 학술지, 학술 모임이 전혀 없는 그야 말로 옛날에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진료하고 있는 낙후된 환경입니다.

전 아스타나 기독 병원에서 '기독 병원'의 이름을 걸고 아스타나 의대 게시판에 '매 달 마지막 주에 학술 세미나가 열리니 관심 있는 학생들은 참여해 달라' 고 광고할 생각입니다. 아마도 활동적이고 능력있는 학생들이 우리 기독 병원으로 정기적으로 모이게 될 것이고 기독 병원 2층에 위치한 큰 스크린과 편한 의자를 갖춘 세미나 실에서 의대 학생들과 카자흐스탄과 한국, 세계 의학 조류를 비교해 가며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2002년까지 알마티의 한카병원에서 국제협력의사로 활동하셨던 김동환 선생님(경북대 출신)도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매 주 목요일 저녁마다 병원 진료실에서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슬라이드 필름을 돌려 가며 일종의 공부하는 모임을 가졌었는데 영어로 강의가 이루어지는 탓에 "Medical English" 라고 불렀습니다. 이 모임에도 점차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가 김동환 선생님 집에서 식사를 하는 등 개인적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차차 성경 공부 모임을 하는 모임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아스타나 기독 병원도 이런 모델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병원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의 주제는 학생들에게 합당하면서도 최신 지견이어야 하고 빔 프로젝트를 사용한 쾌적한 강의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강의들이 이곳의 현지 병원에서 근무하는 현지 의사들의 재교육이나 정기적인 강의로 요청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통해 아스타나 기독 병원의 역할과 위상은 더욱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로 자리 매김될 것입니다.

동역자

이렇게 해서 알게 된 의대 학생들 중에서 복음이 소개되고 믿음이 자라게 되는 학생이 있다면 우리 병원은 장기적으로 그런 학생들을 채용해서 함께 일하는 현지 의사로 고용할 생각입니다. 현지 수준의 급료이지만 한국의 첨단 의학을 접할 수 있고 이상적인 진료 환경을 갖춘 이곳은 그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지속적으로 '개인적인 접촉'을 유지하면서 장차 이 나라를 이끌고 갈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할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에 필요한 영적 지도자는 목사 뿐 아니라 기독교적 지성과 양심을 갖춘 실력있는 의사들도 포함합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영적 리더들이 나와야만 합니다. 아스타나 기독 병원은 그들에게 좋은 토양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 아스타나에서 의료 기관을 개설할 때에는 아마도 당국으로부터 현지인을 많이 채용하라는 압력을 받을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런 고용은 이런 면에서도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몇 십년 후 아스타나 기독 병원이 현지화 되더라도 이들에 의해 설립 정신이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스타나 기독 병원에는 부설 교회를 둘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에서는 종교 기관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서 종교 집회를 벌이거나 포교 활동을 하는 경우 법의 저촉을 받습니다. 이것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단 및 과격 종교 단체들이 자국 내로 파고 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보호 장치입니다. 가정으로 초청해서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누고 영향을 주는 일만 한다면야 굳이 기독 병원의 정관에 종교 기관이 설치될 필요는 없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직접적인 복음 전파에 강조를 두려면 교회를 등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따릅니다. 하나는 만일 아스타나 기독 병원에 부설 교회를 두게 된다면 아스타나 전체 교회를 지원한다는 이 병원의 당초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개인적으로 양육시킨 현지인 지체에 대한 욕심으로 우리 병원 내에 직접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내 옆에 잡아 두기 시작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부설 교회는 아스타나에 들어선 여러 지역 교회 중에 하나로만 인식될 것이고 아스타나 기독 병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수 많은 지역 교회 협력 사업들은 전체 교회의 호응을 얻기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부설 교회를 설치하기 위해선 개설자가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정규 신학 교육을 마친 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도 이단을 막기 위한 카자흐탄 당국의 노력인데 종교 활동 개설자가 정상적인 포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당국은 신학교 졸업 증명서나 파송 증명서 같은 각종 확인 문서등을 요청하게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함께 동역할 목회자가 필요하든지 제가 별도의 신학 교육을 받고 선교지로 나와야만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선 순수하게, 정말 깨끗하게 의료 선교사로서 좋은 모델을 펼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만일 저와 뜻이 통하는 좋은 동역자가 있다면(남동생이나 매제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함께 선교지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실 선교사 비자를 내 주지 않는 이슬람 국가나 아프리카 국가로 가게 된다면 의료 선교사로서 신학 수업도 받고 떠나야만 하겠지만 제가 굳이 목회를 할 필요가 없는 지역을 위해 최소한 2년이 소요되는 정규 신학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선 아스타나의 한 지역 교회에 고정적으로 출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은데 출석하게 될 교회의 선택은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지인이나 외국인 선교사의 교회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인과의 양육 관계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아스타나 기독 병원의 또 다른 동역자들은 의료 기관을 창설, 유지시키고 활동하는데 필요한 후원자들입니다. 20년 후 제가 카자흐스탄으로 나올 때 쯤이면 한국에서 십 년 이상 개업을 하고 난 뒤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그 때 쯤이면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될 것이고 아스타나에서 새로 정착하고 활동하는데 필요한 재정은 충분히 확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병원에 필요한 의료 장비는 한국에서 제가 사용하던 것들을 가져 오면 될 것이고 카자흐스탄에서의 적응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병원이 들어설 부지와 건축비 등도 확보하고 들어오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채워 주시면 아마 제가 생각하는 내과계 의료 기관 정도는 깔끔하게 개설될 수 있을 거라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 의료 기관이 계속적으로 설립 취지대로 선교지에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진단이 기독 의원의 생명이라고 했는데 세침 흡입 검사나 각종 표본에서 나온 조직 검사들을 제대로 판독할 수 있는 병리 의사가 있다면 좀 더 확실하게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소아과나 산부인과 같은 다른 진료 과목의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동역할 수 있다면 기독 병원의 사회 기여도는 더욱 더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아스타나의 의사들을 상대로 특강을 해 줄 현직 교수님도 필요하고 특별 기간을 정해 놓고 특정 분야의 질병을 진단 및 치료할 수 있는 클리닉을 개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청이나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을 한국의 외과 병원과 연계하는데에도 많은 후원자들의 손길이 필요할 게 분명합니다. 임상 병리 검사에서도 현지 인력들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 인력들이 직접 활동하면서 이곳의 젊은 학생들에게 우리의 기술과 신앙을 전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종 검사 시약이나 방사선 필름 같은 지속적 소모품 공급에도 많은 운영비가 소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공감을 가지고 후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저 혼자의 힘만으로 이 기관을 지속시키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선교사 파송을 받으면서 개인 후원 구좌를 열게 되면 뜻을 같이하는 많은 이들의 후원을 있겠지만 좀 더 활발한 활동을 위해선 이 일에 마음을 같이 할 의료 분야의 전문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 저는 조심스럽게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학사 모임인 '새벽별'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학생 때부터 이 모임 안에서 십여년 이상 교제했던 가까운 믿음의 선후배들은 카자흐스탄에 있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희 가정의 가장 강력한 후원 그룹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후배들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서 다섯 군데 교회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치고 돌아 갔는데 이미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많은 의대 내의 기독 모임들이 특정 국가에서 지속적인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바로 옆의 몽고만 해도 연세대(연세친선병원), 고려대 기독 모임이, 방글라데시는 전통적으로 전북의대에서 계속 섬겼고, 네팔은 이화여대 기독 모임에서 의료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도 알마티에 동산병원(계명의대)에서 세운 알마티 동산병원이 있습니다.(알마티 동산병원의 진료진은 모두 현지 의사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계 대학은 아니지만 부산의대 기독 학생회 모임이 카자흐스탄을 품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고 2003년 현재, 카자흐스탄에 나와 있는 국제협력의사(내과) 두 사람이 모두 부산의대 출신인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새벽별 모임 속에서 이 일에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가정이 나와서 한국에서 후원하는 일 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직접 아스타나로 건너 와 기독 병원에서 동역할 수 있다면 아스타나 기독 병원의 규모도 외과계를 갖춘 병원급으로 확장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훗날 카자흐스탄의 '세브란스 병원' 이나 최초의 기독교 의료 교육 기관으로 자리 매김되겠지요.

동역에 관해서는 20 년 후의 일이라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저로선 바로 이 동역자들을 모으는 일이 제가 해야 할 과제 중 한 가지 임이 분명합니다.

사랑의 빚진 자

그 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카자흐스탄의 선교 현장 속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카자흐스탄 선교지 탐방' 이란 형식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사실... 선교지에 와서 그냥 적당하게 시간만 때우고 돌아 간다면 애착을 가지고 이런 글들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선교지 아스타나에서 가장 나이가 젊은 데다 활동 영역이 모든 선교사와 가족, 양육하는 사람들의 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의료 분야이고,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대부분의 선교사의 교회에서 주중 진료를 하는 것 등으로 인해 아스타나의 모든 선교사들의 상황이 이젠 내 일 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곧잘 우스개 소리로 제가 '전문인 선교사'이긴 한데 그 전문 분야는 의료 뿐만 아니라 '찬양', '컴퓨터 AS 및 상담', '관광 가이드', '교회 홍보','자동차 대여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고 말합니다.

선교지에 선교사로 왔다고 해서 그 날부터 갑자기 영적으로 충만하고 겸손한 사랑의 사도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선교사들의 문제이긴 하지만 오히려 한국 교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똑같은 일들이 선교지에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더 좁은 바닥이기에 그 문제들이 더 환하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현지인 사역자와 빚는 갈등, 문화 차이로 인해 목회자와 현지인 성도 간에 발생하는 갈등, 선교사 간의 말 못하는 애증과 오해, 어쩔 수 없이 과장되고 왜곡되는 선교지 상황,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선교사의 사생활....

하지만 이런 말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정작 제가 배웠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아무리 둘러 봐도 낙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다시 뛰어 가는 선교사들의 비장한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젠 선교 밖에 할 것이 없는 마지노선에 서 있는 선교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고 얘기하고 살아 가면서 어느 덧 '동지적 연대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나의 비젼은 오로지 국내 사역에 있다' 고 주장하던 제 목소리도 쑥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겐 너무 매정한 얘기라고 느껴졌습니다. 동고동락하던 2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 가정만 슬며서 이곳을 빠져 나오는 상황도 괜시리 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지에서 사는 동안 좀 더 구체적고 명확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해 왔습니다. 도저히 복음이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변변치 못한 노력을 사용하셔서 선교지의 젊은 영혼들을 부르시고 변화시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분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로 인해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나님... 바로 지금 일하고 계시는군요', '하나님...이렇게 사람이 바뀌는군요.'

그러면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의료 선교사와 기독교 의료 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도전이 다가온 것입니다. 아스타나 최초의 한국인 의사이면서 카자흐스탄 내 현지 의료 기관에서 가장 많은 현지인 환자들을 대하며 진료해온 한국인 의사이기에 이들이 처해 있는 의료적 상황이 얼마나 빈곤한지 수도 없이 느끼며 2년 반 동안 살아 왔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상황 속에 노출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마음의 변화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협력의사 생활만 하지 않았더라도 '또 한 명의 선교사가 들어와서 지역 교회를 세우는 것보다는 의료 선교사 한 사람이 들어와 의료 사역을 하며 제자 양성 하는 게 유익한데...'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누가 올 수 있을까?'

그 물음은 이 질문을 던진 제게 던진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카자흐스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제 구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외 선교사도 필요하고 국내에서 교회 갱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평신도 지도자도 필요합니다. 저는 그 동안 모든 사람이 해외 선교사로 직접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그런데 30대 초에 카자흐스탄에서 선교지의 거친 환경과 필요를 보고 난 뒤 그만...그 일을 할 사람이 바로 '나'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마음을 내게 주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이라도 강권적으로 부르셔서 보게 하시고 훈련시키셔서 특별한 사명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선교사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부동산 현황을 알 수 있는 사이트를 검색했습니다. 한국에 들어가 살 아파트를 알아 보기 위함이었는데 전세 값이 많이 올랐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신문을 통해 접하는 한국 뉴스는 정책 실패로 인한 신용 불량자 양산, 청년 실업, 흉년으로 인한 흉흉한 민심과 분열된 국론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부르심을 가슴에 품고 국내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향후 20 년 동안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우리의 비젼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사실 교회의 갱신과 부흥이라는 명제는 목회자 들만의 과제로 여기기 쉽습니다. 물론... 일개 평신도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의 지체로서 서로를 섬기며 일하는 곳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밖에 없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겸손과 섬김을 베푸는 자로, 말씀을 지키고 가르치는 성경 교사로, 찬양을 부르는 사람으로 굳게 서 있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 가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결국 예수님이 주신 "대계명(Great Commandment, 마 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과 "대명령(Great Commission, 마 28:18-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직업, 은사(재능), 관심 분야 면에서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살아 가고 있긴 해도...결국은 바로 이 계명과 명령 속에서 살아갑니다. 교회가 세상에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저는 특별히 대명령 속에 포함된 내용이 단순히 교회당 안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저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를 삼아...가르쳐 지키게 해서 참으로 '대계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겸손의 사람으로 만드는데 사역의 목표를 두려고 합니다. 이 일은 '제자 훈련 교재'만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에는 온전한 섬김과 사랑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 일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은 이 일에 매달리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곧 셋째 아기가 태어 납니다. 아마도 우린 한국에 들어간 뒤 첫 일년 동안은 셋째 아기를 돌보는 일에 주력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 년이 흐른 뒤  막내가 돌을 넘기게 되면 다시 이전처럼 지역 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인데 일단은 찬양 파트를 맡아 주력할 계획입니다. 카자흐스탄에 나오기 전 처럼 교회 안에서 유년주교 교사, 중고등부 교사, 청년부 성경공부 인도, 예배 전 찬양 인도 등 많은 일들을 동시에 벌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를 온전히 맡아 다른 부분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그 동안 향상시킨 기타와 드럼 연주 능력도 사역에 도움이 되도록 계속 발전시킬 것이며 러시아어 진료 활동과 아울러 카자흐스탄 노동자들과의 만남 및 카자흐스탄의 그리스도인을 국내로 초청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가정이 양육해야 할 젊은 가정을 찾아 성경과 함께 현실적인 삶을 나누며 참 제자로 세워 나가는 일에 착수할 것입니다. 이 일은 향후 카자흐스탄에서 계속될 일이기에 국내에서부터 이에 대한 실제적인 준비와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러시아어 학습과 함께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 영어 능력 배양도 실제적인 과제가 될 것 같으며 무엇보다 환자들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1년 5월...우리가 카자흐스탄에 나올 때만 하더라도 우리 홈페이지 조회 수는 1만 5천 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1월... 카자흐스탄 일반, 선교 상황들을 증보하면서 인터넷 검색 엔진에 '카자흐스탄' 이라는 검색어를 등록하고 난 뒤로는 1년에 3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너무 놀랐습니다. '카자흐스탄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자료를 얻기 원했지만 가장 많은 방문객들은 역시 선교 관련 내용이었고 수 많은 문의 메일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전... 앞으로 한국에 들어 가더라도 카자흐스탄 관련 사진, 자료 들을 계속 업데이트 해서 인터넷을 통한 카자흐스탄 동원(Mobilization) 사역에 힘쓸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진출하는 모든 사람들의 든든한 교두부가 되도록 홈페이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카자흐스탄 관련 사이트로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속적으로 카자흐스탄 현지 사정에 능통하게 되고 카자흐스탄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아뭏든 카자흐스탄에 대한 우리의 비젼은 홈페이지와 함께 계속될 것 같습니다.

마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단체인 UBF는 자비량 선교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을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뼈를 묻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아스타나 UBF의 변찬석 선교사님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자비량 선교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UBF 선교사들이 이렇게 평생토록 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은 앞서 간 수 많은 선배 UBF 선교사들의 모범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꿋꿋하게 사역하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도 평생 동안 사역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 말에 공감합니다. 저 역시 지난 2년 반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선교지의 상황을 듣고 보지 못했더라면...현장에서 접하는 수 많은 은혜의 순간들을 체험하지 않았더라면...감히 다시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보았던 수 많은 선교지의 실제 상황들은 하나님이 내게 보여 주신 '시물레이션 훈련' 이었습니다. '보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앞에서 털어 놓은 여러 얘기들에는 20년 후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내일 일도 모르는 사람인데 20년 후의 일을 내다 보고 뭔가를 계획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사실 20년 후... 카자흐스탄의 카자흐인의 복음화 비율이 20%를 상회한다든지 카자흐스탄의 의료 상황이 한국 수준으로 올라갈 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또 20년 후에는 제 나이도 어느 덧 50대 중반을 바라볼 텐데 그 때가 되면 지금과 같은 재빠른 몸놀림도 무디어질 게 뻔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젼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카자흐스탄이 급속하게 복음화된다면 중앙 아시아가 주께로 돌아 오는 승전보가 들리는 날일테고 카자흐스탄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키르키즈스탄 같은 국가들로 눈을 돌리면 될 것입니다. 비록 나이가 더 든다고 하더라도 그 만큼 경험 많은 전문인 선교사로서 헌신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선교지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여러 교회와 동역하는데 있어서도 다른 선교사들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과 지역 의사들에게 강의하는 데에도 아무래도 연륜이 좀 있는 의사가 낫겠지요?

이상과 같이 제 맘 속에 품고 있는 생각들을 주섬주섬 늘어 놓았습니다. 아직 이른 때이긴 하지만 뜻을 일찍 정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한다면 이 미숙한 계획이 하나님 나라에 쓰여질 줄 믿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시 16:9)

우리 가정이 계획하는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세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든든하게 지키는 선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교지에 있다 보면 안 주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두 아기를 기르고 입히고 돌보면서 사람들을 초청하고 음식을 제공하고 교제하고....이 모든 일이 안 주인의 몫입니다. 이런 일이 또 하나의 중요한, 별개의, 고유의 선교 사역임을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선화는 선교지에서의 이 역할에 만족하고 있고 20년 후에도 즐거운 맘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오늘 적은 이 글을 보며 우리가 걸어 가는 길을 살필 생각입니다. 헛점 투성이인 우리 가정이지만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늘 함께 계시기에 날마다 우리는 감히 당신의 도구가 되겠다고 소리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희 가정을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꿈을 품고 한국으로 들어 가는 우리 가정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달라고 감히 부탁 드리고 싶네요.

사랑해요...주님.

2003.9.13 토요일 저녁...아스타나 말라죠즈니 집의 작은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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