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예 호숫가에서

지난 7월 28일(월)-31일(목)까지 3박 4일동안 저희 가정이 출석하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여름 수련회가 열렸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지는 2년 반 밖에 되지 않은지라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수련회이지만... 작년에 비해 많이 달라진 행사였습니다.

북쪽 300Km 지점에 위치한 바라보예에서 방금 아스타나로 돌아 온 우리 가족은 내일 저녁 다시 남쪽으로 1200Km 떨어진 알마티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계속되는 여름 행사 일정동안 가족이 건강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앞으로 2주 동안 지속되는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Vision trip(의료 선교 활동)에 참석하게 되는지라 오늘 소개하지 못하면 시기를 놓칠 것 같아 바라보예 수련회 일정을 잠깐 스케치 하려고 합니다. (작년 여름 수련회 이야기겨울 바라보예 얘기도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1. 일 년만에 성숙해 버린 수련회

작년 여름 수련회 얘기를 먼저 떠 올려 보면....그런 수련회는 처음이었습니다. 참석자의 과반수가 교인이 아니었고 대다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하루 종일 대부분의 시간들을 강에서 수영하기, 숲에서 버섯따기, 바라보예 버스 관광하기 등으로 다 보내야 했습니다. 오직 아침 시간과 저녁 시간을 내어 4영리와 저녁 설교, 찬양 등으로 이들에게 복음의 기본 내용을 소개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사람이 3-4명이나 되고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세례를 받고 우리 교회의 주축 멤버들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일년 뒤 이번 수련회에서 바로 작년 여름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현지 젊은이들이 수련회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기에 이르게 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작년에는 오전 시간에도 강으로... 숲으로... 놀러 다니기에 바빴는 올해는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나의 가정" , "성경 놀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장기 자랑" 등의 오전 프로그램이 둘랏, 쟈미라, 세르게이, 까밀라 등... 그동안 세워진 현지 젊은이들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2. 작년과 달라진 우리 가족

작년 수련회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년 7개월 된 형민이를 데리고 바라보예 수련회를 참석했던 우리 부부는 찬양 시간을 함께 맡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나누어 보려고 애썼습니다. 당시 임신 6개월(시은)의 선화였지만 건반을 연주하는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올해는 뱃 속의 시은이가 밖에 나와 버린 것입니다. 이제 만 6개월이 된 시은이를 데리고 집이 아닌 낯선 곳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부부로선 큰 모험이었습니다. 이번 수련회의 숙소인 바라보예의 문화 회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여름철에는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시은이를 데리고 나온 우리로선 호텔에 투숙하면서 수련회를 참석해야 하는 웃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쉬게 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형민이가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올해는 아직 걷지 못하는 시은이 탓에 우리 부부 중 한 명은 항상 시은이를 안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번 수련회에서도 우리 가정이 맡은 부분은 바로 찬양 이었습니다. 30W 짜리 펜더 앰프에 오베이션 기타 하나 들고 또 다시...교회 행사에는 처음 와 본다는 1/3의 사람들과 함께 수련회 찬양을 함께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수월했습니다. 저 혼자 인도한 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장로교회에서 찬양을 익힌 몇몇 형제 자매들에게 앞으로 나와 찬양을 이끌도록(singers) 부탁함으로써 더 힘차고 영감있는 찬양이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2003 여름 수련회 찬양 (사진)

저 외에도 선교사님 아들 중 하나가 기타를 잡고 있고 지난 1년 동안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했던 자매들이 앞에 나와 함께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들 중 두 사람(기타 맨 형제 뒤에 가려진 자매 두 사람)이 바로 작년 여름 이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결심했던 장본인들인데 8개월 만에 세례를 받고 그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열심있는 신앙인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볼 수록 귀한 이 자매들을 한국으로 꼭 한 번 초청해서 격려도 해 주고 한국에서의 신앙 생활도 한 번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3. 가족과 함께 하는 수련회(?)

어떤 의미에선 이번 수련회는 우리 가족의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전 프로그램이 마치면 점심 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다들 강이나 숲으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 위해 떠나 가지만 시은이와 형민이를 데리고 있는 우리 부부로선 아이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숙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특히 지난 일 주일 동안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터라 적절한 휴식과 식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항상 낮잠을 잤었고... 늦은 오후 시간에는 숙소 근처의 바라보예 국립 공원을 가족끼리 거닐 수 있었습니다.

1) 바라보에 바자르(시장)

숙소 근처에는 바라보예 바자르가 위치하고 있는데 호숫가 마을답게 각종 민물 물고기들이 진열되어 팔리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름 과일과 기념품들이 주된 상품들이었습니다.

우리 입맛에는 아무리 맛있게 요리한 물고기라 하더라도 민물 고기라는 이유만으로 영 와닿지 않습니다.

바자르에서 수박도 한 덩이 샀었는데 북쪽 마을이라 아스타나보다 두 배나 비쌌고 처음에 산 것은 과육이 미끈미끈한 탓에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장이 있는 탓에 시은이 분유 물로 사용할 식수도 구할 수 있었고 이곳 사람들 사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죠.

바라보예는 하루 종일 외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로 확고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었습니다.

2) 바라보예 자연 박물관

바라보예 입구에는 자연사 박물관과 동물원이 함께 위치해 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 안에는 각종 짐승들의 박제본과 바라보예 인근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버섯류 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고 동물원에는 사슴류와 라마 등의 동물들이 사육되고 있습니다.

이 동물원은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바로 맞은 편에 있는지라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오후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까작스딴에는 동물원이 귀합니다. 알마티에서도 중앙 공원 옆에 있는 규모가 큰 동물원에 가 본 적이 있는데 동물들의 종류와 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곳 바라보예 동물원은 사슴 종류의 동물들 뿐이었고 닭, 오리 같은 동물원 용이 아닌 동물들이 버젓이 철장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동물원의 운영이 쉽지 않음을쉽게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었죠.

하지만...형민이의 눈에는 이 동물원 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형민이는 알마티의 중앙 공원 옆 동물원과 터어키 이즈미르의 동물원에도 가 본 적이 있지만 모두 만 두 살 되기 전의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3) 바라보예의 숲

지난 번에 올린 글 겨울 바라보예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 호수지대 주변은 소나무와 자작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장관입니다.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데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바라보예 휴양지는 하루가 다르게 정비되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바라보예 까지 이르는 300Km 구간도 깨끗한 아스팔트 길로 닦여 있고 휴양지 내의 도로도 왼쪽 사진처럼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도로 공사로 인해 들판으로 차를 우회시키는 바람에 진흙탕 속에서 차바퀴가 헛돌고, 낭떠러지 같은 고개에서 추락하듯이 굴러 내려와야 했었는데... 이제 이 모든 일이 옛날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숲이 까작스딴에 다 있을까?' 이 곳에 온 방문객들이 한결같이 지르는 탄성입니다.

흙과 모래만 날리는 까작 초원을 가로질러 온 사람들은 이곳에 펼쳐진 소나무 숲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살다가 바로 바라보예 숲을 보게 된다면 '뭐 이런 걸 가지고....' 라며 가소롭게 여기겠지만 까작스딴에서 산 지 어언 2년 반이 다 되어 가는 요즘은 눈높이가 까작스딴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 숲 속에는 버섯도 많고 다람쥐들과도 우연찮은 만남을 자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얀 나무 껍질의 자작나무와 언제나 푸르른 소나무 가지를 헤쳐 온 시원한 바람을 가슴 깊이 담고 나면 내 몸에서도 소나무 향내가 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4) 바라보예 호숫가에서

바라보예 호수는 호숫가에 서서 보면 꽤 넓어 보이지만...그리 큰 호수는 아니어서 길이 7Km 폭 3Km 깊이 18 m 정도입니다. 바라보예 호수 외에도 체바치예 호수와 슈치 호수 등 이름 있는 호수들과 휴양소들이 이 근처에 모여 있지만 바라보예 호수가 더 유명한 이유는 다른 호수들보다 물이 따뜻하고 호수 근처에 독특한 바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홈에는 수 많은 바라보예 호수 사진들이 있지만 모두 다 한결같이 맑은 날씨의 호숫가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 기간 동안은 자주 비가 왔었고 알싸한 기운이 주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곳 젊은이들은 호숫물에 "풍덩" 뛰어 들더군요.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 호숫가를 거닐었습니다. 형민이는 수영을 시키는 줄 알고 "엄마...물에 아니야..물에 아니야...(물에는 안 들어가겠다)" 라면 울상이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호수는 아이들의 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한 물결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언제 또 다시 이 바라보예 호수를 찾아 올 수 있을까?'

올 10월 말이면 한국으로 돌아 가게 되기에 이 호수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기약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설령 몇 년 후 다시 아스타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4시간이나 올라가야 하는 이 곳까지 올 수 있을지....

어쩌면 올 여름 보는 이 호수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발걸음을 돌리기가 더욱 아쉬웠습니다. 어쩌면...호수도 마지막 만남이 아쉬워 맑은 하늘이 아니라 슬픈 하늘의 표정을 지으며 우릴 만났는지도 모르지요.

바라보예 수련회는 끝이 났습니다. 시은이와 형민이를 데리고 참석하는 바람에 전체 수련회 일정에 다 따라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 두 아이들을 데리고 바라보예 호숫가에서 보낸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녁 모임을 마치고 나면... 숙소인 호텔로 가기 위해 우리 가족만 차를 타고 수련회 장소에서 빠져 나옵니다.

7월 말인데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이름 모를 들풀들, 고삐 없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송아지들 사이로 비포장 길을 따라 나오면 저만치 앞에서 저물어 가는 태양을 만나게 됩니다.

남쪽 끼르끼즈스탄 국경 지역의 천산 산맥을 제외하고는 까작스딴에서는 산을 볼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들만 계속되지요. 그런 탓에 이곳 사람들에겐 바라보예의 산봉우리는 그저 신비롭고 놀라운 대상입니다.

내년 여름...어김없이 아스타나 장로교회 수련회는 이곳에서 다시 열리겠지만 내년에는 우리 가족은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년 이 맘때가 되면 지난 2년간 쌓아둔 바라보예에서의 추억을 넘기며 이 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03.8.1

 

바라보예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