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라보예'

며칠 전 아스타나에서 북쪽으로 2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라보예 인근 호수의 겨울 풍경을 보고 돌아 왔습니다. 아스타나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추운 날씨인데 뭘 그렇게 돌아 다니냐구요? 물론...집 떠나면 고생이지만....겨울 바라보예 풍경은 까작스딴...특별히 중, 북부 까작스딴에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가 봐야 할 곳이기에... 선화와 형민이가 없는 시기를 이용해 혼자 만의 여행을 다녀 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지난 여름 형민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바라보예 호숫가에서 지내다 왔지만...겨울 형편은 좀 다릅니다. 아스타나도 영하 40도(체감 온도가 아니라 진짜 온도)의 혹한이 몰아 닥치지만...여기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바라보예 인근의 날씨는 아스타나보다 더 춥고 더 매서운 바람이 불어 대기 때문입니다. 만일 형민이를 포함한 가족이 함께 있었다면....감히 그 곳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요. 하지만...혼자서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여름 바라보예 호수의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게다가...최근 멀리 남쪽 알마티에서 올라오는 몇몇 방문객들 조차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바라보예 호수를 찾는 걸 보고...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저도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보따리를 싸서 바라보예로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바라보예는 호수 이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가고자 하는 곳은 '슈친스크'라는 도시입니다. 슈친스크 주변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모여 있는데...이름없는 작은 호수까지 합하면 모두 72개나 되는 그야 말로 호수 마을인 셈입니다. 이 중...크기도 크고 제법 유명한 호수들은 모두 12개 정도 되고...그 중에서도 4-5개의 호수들이 관광객들이 주로 찾아 가는 호수입니다. 바로 "바라보예 호수", "큰 체바치예 호수", "작은 체바치예 호수", " 슈치 호수" , "쥬케이 호수" 같은 호수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바라보예 호수가 이런 호수들이 모인 지역의 대명사가 된 것은 바라보예 호수 주변에 유난히 독특하게 생긴 바위들과 키 큰 나무로 이루어진 일주 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보예 호수와 주변 호수를 포함하는 이 지역은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는데...까작스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작 초원 지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산봉우리 들과 삼림들이기에.... 까작스딴에서 어느 정도 살아 본 사람이라면...."아니...까작스딴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고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라보예 호수 주변은 까작스딴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슈친스크까지 가는 철도 교통편은 일반 기차나 전철이 있습니다. 모두 똑같이 4시간 정도 소요되는데...기차는 6-700 뗑게(좌석 종류에 따라 다르지요) 정도 하는데 반해... 전철은 265 뗑게  밖에 안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철을 이용해서 두 도시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전철은 좌석의 등받이가 90도로 된 딱딱한 의자이기 때문에... 4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편하게 앉아 갈 수 밖에 없고 제대로 잠을 청하기도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무사히 슈친스크 역에 도착한 뒤 바라보예 에서 하룻 밤 묵을 생각으로 슈치 호수 근처에 위치한 '질료니 보르' 라는 숙박업소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후 2시 51분 이었고 슈친스크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밖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라보예 국립 공원의 지도입니다. 빨간 점선이 공원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지요.

아래쪽에 빨간 밑줄 그은 도시가 바로 슈친스크 이고...슈치 호수의 가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질료니 보르' 라는 숙소도 보입니다. 언뜻 봐도...이 주변에 여러 호수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요?

'꼭쉬따우 산' 이라고 산봉우리를 하나 표시해 두었는데...해발 947 미터로 이 국립공원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물론 이곳은 낮은 호수지대이지만 ...이 같은 산봉우리들이 곳곳에 솟아 있는게 특징입니다.

숙소로 정한 '질료니 보르'는 처음 가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라 잘 몰랐었는데...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나서 보니.... 슈치 호숫가에 위치한 나름대로 이름 있는 호텔이더군요. (물론 말만 호텔입니다.)

혼자 여행하는 젊은 남자인지라...슈친스크 역에서 내릴 때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혼자 오셨나요? 아가씨는 왜 없지요?"  이곳에서 만난 택시 운전 기사들도 모두 똑같은 물음을 하더군요. 한 번은 "아내가 있어요..." 라고 얘기했더니..."부인은 그냥 집에 두고요...여름에는 아가씨랑 함께 다시 오세요...." 라고 웃더군요.

질료니 보르 안에 하룻 밤 묵는 동안에도 정확하게 세 사람의 현지 아가씨들이 제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름이 무엇인가요?" , "이 뒤에 멋있는 산이 있는 데 가 볼래요?" ,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선화에게 이런 얘기들을 적어 보냈더니...."오빠를 믿어요..." 하고 불안해(?) 하더군요.

하지만...바라보예에서 머물던 얼마 안되는 짧은 순간 동안에도 선화와 형민이 생각으로만 가득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더라도...그저 나 혼자 이 곳에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캠코더를 들고 풍경을 바라 볼 때도 선화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속삭이면서 촬영했습니다.

'질료니 보르' 란 말의 뜻은 '푸른 소나무  숲' 이라는 뜻입니다. 북쪽 까작스딴 지역은 위쪽 러시아 땅과 비슷한 수목 분포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슈친스크 보다 위쪽의 까작스딴 지역은 거의 러시아 풍의 삼림을 보이고 있는데....망망한 스탭으로만 가득한 대부분의 까작스딴 국토를 생각해 본다면 믿기지 않는 모습입니다.

위 사진에서 '질료니 보르' 라고 적힌 표지판 옆 제 모습 뒤로 우거진 울창한 숲이 보이시지요? 나무를 자세히 보시면....나무 껍질의 빛깔이 흰 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 오실 겁니다. 이게 바로 자작 나무...러시아어로 '비료자'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작나무와 섞여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바로 소나무입니다. 푸른 소나무 숲에 들어 오신 거지요...

자작나무는 겨울에는 잎에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지만....소나무가 상록수인 까닭에 숲은 여전히 푸른 나무들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여름에는 자작나무의 잎사귀들로 이 숲이 더욱 울창하겠지요?

질료니 보르에 도착한 뒤..저녁을 먹고...식당에 좀 앉아 있다 바로 방으로 올라 갔습니다. 캄캄한 밖에 나가 봤자 보이는 것도 없고...주변 지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 들어와...오는 기차 안에서부터 듣던 설교 테이프를 꺼내 듣다가 잠을 청했습니다. 이곳에 계신 침례교 선교사님이 주신 지구촌 교회 설교 테이프 6개를 가지고 기차에 올라 탔는데..이미 5개는 다 들었고...하나 남은 것을 아까운 맘으로 다 들은 뒤....밤 10시도 안 되었는데도 잠을 청했습니다.

혼자 자는 것에도 이제 익숙해졌는지라....얼마나 눈을 감았을까...복도를 지나며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벌써 아침인가?....' 이 호텔에는 단체 관광을 온 젊은이들이 많이 묵고 있었는데...아마 아침부터 스케줄이 빡빡해서 이른 아침부터 세면을 하고 준비하느라 서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시계를 봤습니다. 아침 6시 반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그래도...긴 밤을 잘 보냈다 싶어...가지고 온 성경, 찬송을 펴고 혼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해가 뜨려면 아침 9시가 넘어야 하는데...아직 밖이 캄캄한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어서 빨리 새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예배를 드린 뒤...양치도 하고...어두운 창 밖을 다시 한 번 응시한 뒤 우연히 시계를 봤습니다. 그런데...아니! 이게 뭐야?  다시 본 시간은 밤 1시 30분 인 것입니다. 알고 보니...제 시계에는 눈금만 표시되어 있고 숫자가 안 적혀 있는 까닭에 거꾸로 놓여 있던 시계 눈금을 잘못 봤던 것이죠. 그냥 맥이 탁 풀리더군요...이제 겨우 밤 1시야? 실망스러웠지만....다시 억지로 안 오는 잠을 데려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예' 에서의 밤은 지나갔지요.

다음 날 아침 10시부터 시작되는 버스 관광을 신청했습니다. 250 뗑게(2,000원 정도)만 내면 3시간 정도 걸리는 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푸른 소나무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버스는 달렸습니다. 호수 주변으로 난 도로는 12Km 정도 되는데...그 주변에 많은 호텔들과 병원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래 '바라보예'는 요양소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던 곳이었지요. 이곳의 맑은 공기를 숨쉬고...특별한 약효가 있다는 호숫물에서 멱을 감으며 결핵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도...이 바라보예 호수 근처에는 몇 군데의 병원이 있는데...이곳으로 가서 치료하라는 처방을 받기만 하면 특별한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치료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다행스럽게도 바라보예를 방문했던 날의 일기가 참 좋았습니다. 3일전 까지만 해도 영하 32도였다고 하는데...이곳도 시베리아 고기압의 전형적인 '삼한사온'의 날씨가 반복되기에 가장 따뜻한 순간에 이 곳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추우면...사진 촬영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날씨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일반적으로 아스타나의 경우...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에는 맑고 푸른 하늘을 보입니다. 오히려 눈이 오거나 찌푸린 하늘을 보일 때는 따뜻한 날인 경우가 많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나타내는 시베리아 대륙성 고기압이 활성하게 되게 되면 대부분 맑은 날씨를 보이는 까닭에 아스타나에서는 맑은 날씨는 곧 추운 날을 의미합니다. 햇살을 내 보내는 태양은 하늘에 떠 있지만...오히려 없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 믿으시겠나요?

바라보예 호수 순환 도로를 타고 돌면서...바라보예 출신의 까작 민족의 전설적 왕 '아블라이 한'의 기념비도 보았고, 바라보예 인근의 우뚝 솟아 있는 꼭쉬따우 산과 무라바이 산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또...가이드가 여러 번 강조한 소나무 숲의 아름다움도 몇 번이나 들여다 보았구요...

그래도...바라보예는 호수 이니까...호수를 볼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스타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이심강의 경우에도 겨울 내내 꽁꽁 얼아 붙어 있기에.....이렇게 얼음판으로 변해 버리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작년 여름...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이 푸른 호숫가가 이렇게 꽁꽁 얼어 붙어 있는 걸 보니...새삼 자연과 계절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그 점이 참 좋았습니다.

바라보예 호수는 호숫가에 서서 보면 꽤 넓어 보이지만...그리 큰 호수는 아닙니다.

길이 7Km에 폭은 3Km 정도이고...깊이는 18 m 정도입니다. 매년 여름마다 꼭 두 사람 씩 빠져 죽는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또 바라보예 호수는 인근의 다른 호수들보다 물이 따뜻한 편이라 여름에 특히 인기가 많은 장소지요. 반면 바라보예 호수보다 남쪽에 위치한 슈치 호수의 경우는 크기도 바라보예 호수보다 크고 물도 더 맑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물의 온도가 좀 차가운 편이라...8월만 되더라도 벌써 물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어쨋든 바라보예 국립 공원은 7월에 가장 상종가를 기록합니다. 인근의 호텔은 물론...민박집까지도 만원이어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가지 못할 정도니까요...

바라보예 호수가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호수 주변에 특별한 형상을 닮은 바위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호숫가는 아니지만 바로 보이는 바위산에는 코끼리 모양, 꽃을 든 원숭이 모양의 바위들이 보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합니다. 사실...가이드의 설명이 더 재미있긴 하지만...주관적 견해를 배제하고 보더라도...코끼리 모양의 바위는 정말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눈 까지도 선명하니까요...

그 코끼리 사진을 제대로 찍은 게 있나 하고...이전 자료들을 다 뒤져 봤는데...작년 7월 답사 갔을 때 찍은 왼쪽 사진 정도밖에 찾지 못하겠네요...사실 이 모양은 현장에서 각도를 달리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켜야 더 생생한데...그래도... 언뜻 봐도 코끼리 코에다...눈...짐작할 수 있으시겠죠?

그리고 바라보예 호수를 상징하는 바위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소녀 바위"입니다. 이 바위에는 이 호수에 전해 내려오는 슬픈 얘기가 깃들여져 있습니다.

"옛날...이 호숫가에는 열 여섯 살 되는 소녀와 가난한 부모님이 살고 있었어요...가난한 살림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소녀의 마음씨는 아주 고왔고...외모도 아름다웠다고 해요. 그리고...소녀에게는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이미 그 청년과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빚에 쪼들리던 부모님은 할 수 없이 같은 동네에 사는 부자 할아범에게 많은 돈을 받고 딸을 시집 보내기로 결정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소녀는 슬픔에 겨워 호숫가에서 사랑하는 청년을 그리워 하며 괴로워 하다....그만 호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지요...."

웬지...어설픈 줄거리 이기도 하지만...이 호숫가에는 이런 전설을 만들어 낼 만큼 처녀 모습을 닮은 바위가 있습니다.

왼쪽 사진에 나오는 호수 위의 바위를 자세히 보시면 오똑한 코...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야기 속의 아가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 여름에 세 차례나 이곳에 왔다 갔지만...이 "소녀상"을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그 때마다 급히 서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호숫가 순환도로를 타고 돌면서 봐야 하는 이 바위는....보는 방향에 따라 젊은 소녀의 모습에서부터 나이 많은 할머니 모습으로까지 변하기 때문에...소녀의 모습으로 보이는 포인트에서 셔터를 누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사진은 바라보예 호수 근처의 자연 박물관 안에 전시된 소녀상을 촬영한 사진인데..아마도 몇 십년 전에 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보이는 '소녀상' 이 더욱 운치있게 보여 이 사진을 소개해 드립니다.

갈색으로 변색된 인화지...호숫가의 들풀들이 잡힌 이 흑백 사진을 보고 있으니...마치 그 전설이 사실인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저 만의 느낌인 건 아니겠지요?

 

 

 

혼자 찾아간 겨울 바라보예 호수에서 만난 소녀 바위는 꽁꽁 얼어 붙은 호수위에 서 있었습니다.

호수 위 얼음으로 다가 갈 수 있는 곳은 이미 소녀로 보이는 방향이 아니었지만...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호수 중앙에 혼자 서 있어야 애달픈 사연의 소녀에게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소녀의 아쉬운 죽음을 위로하고 싶나 봅니다.

전..여행 기간 내내...삼발이를 들고 다니면서 제 모습을 촬영했습니다.사실...저도 홈페이지에 혼자 멍하니 서 있는 사진을 올리는 거 싫습니다. 뭐니뭐니해도..선화랑..형민이랑...시은이랑...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게 최고지요. 하지만 이렇게 3개월 이상 떨어지다 보니...혼자 서 있는 재미없는 사진을 여러분께 소개할 수밖에 없네요..죄송해요...하지만 제 모습 뒤로 보이는 저 바위가 바라보예의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는 소녀 바위입니다.  

숙소는 슈치 호숫가의 질료니 보르였지만...관광 코스는 모두 바라보예 호수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름에 방문해서 수영도 하고 샤슬릭(전통 요리)도 해 먹는 휴양지는 인근의 모든 호수에서 이루어지지만 ...사연이 많은 호수는 바라보예 호수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라보예 지역에서 까작 민족의 전설적인 왕 '아블라이 한' 이 태어났다고 얘기해 드렸지요? 호숫가에는 아블라이 한을 기리는 기념비, 박물관, 각종 동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

 

바라보예 공원에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 금빛 동상도 '아블라이 한'의 것입니다.

1711-1784년 까지 살았다고 적혀 있는 이 왕은 여러 부족으로 갈려 있던 까작 민족을 통일시킨 왕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까작스딴이 독립한 뒤...까작스딴의 대도시의 거리 이름들이 까작식으로 다 바뀌고 있는데(예전에는 러시아식)...많이 사용되고 있는 까작 이름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블라이 한"입니다. 알마티에도 아스타아에도 '아블라이하나' 라는 거리가 있고...두 도로 모두 그 도시에서 중요하고 넓은 도로입니다.

'아블라이 한'의 '한' 은 왕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 은 곧 "칸" 과 같은 의미인데...징기스칸 이라는 대몽고의 왕 이름 뒤에도 "칸" 자가 붙는 걸 볼 수 있습니다...바로 그 '칸' 이나 '한' 은 같은 의미지요. 까작민족의 경우...몽고 민족과는 떼놓을 수 없습니다.

까작 민족을 만나 보면...마치 한국 사람보는 것과 똑같은 얼굴 생김새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지요...제 경우...처음 까작 민족을 보자 말자...이들 속에 몽고 혈통이 섞여 있다고 바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확인은 안 해 봤지만....우리 나라 사람들 처럼...까작인들의 아기에게도 몽고 반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작인들의 뿌리는 고대 돌궐 제국을 건설했던 투르크 인들에게서 시작됩니다. 투르크 족은 역사 속에서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로 이어지면서 현대사에서 터어키 라는 나라로 종결되지만...그 투르크 족이 분포하고 있는 나라는 광범위합니다. 터어키 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의 까작스딴, 우즈벡스딴 같은 나라들도 투르크 족에서 시작되지요.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 기독교 사회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600 년대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헝가리, 보스니아, 세르비아, 그리이스, 체코슬로바키아, 몰다비아, 터어키, 시리아 등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라비아 일부,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한 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까지 이르는 대제국이 바로 오스만 투르크입니다. 그러다 보니...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도 이 투르크 족의 혈통이 퍼졌다고 봐야겠지요?

말이 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하여간 이 투르크족 중...특별히 중앙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던 투르크 족의 후예들은 12세기에 등장한 몽고 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 몽고 혈통과 섞이게 됩니다. 그 유명한 징기스칸의 대 제국은 중앙 아시아의 까작 민족이 우리 나라 사람과 비슷하게 보이게 되는 데 큰 공헌을 한 셈이죠. 하지만...이곳에서 좀 오래 살다보면...까작인들을 좀 구별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눈이 좀 크거든요. 그래도...전혀 구별안되는 까작인도 있습니다. 게다가...아버지가 까작인이고 어머니가 고려인(한국인)이면 사태는 더 심각해지지요.

바라보예 투어의 마지막은 국립 공원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연 박물관에서 끝납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그 자연 박물관인데요...야외에는 사슴류, 늑대류 등이 있는 동물원이고...건물 안에는 바라보예 인근에서 관찰되는 나무, 버섯 등의 식물들과 각종 새와 길짐승들의 박제본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50 뗑게(4백원)인데...입장료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이곳에 오신 분들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건물 안에는 바라보예 인근의 경치들을 잘 촬영해 놓은 대형 흑백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어서...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어 버린 겨울에 찾아 온 호숫가에서...여름 경치를 촬영해 놓은 사진을 본 탓이겠지요...

 

투어를 위해 관광 버스가 하나 동원되었는데...약 30명의 사람들이 그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호숫가를 돌아 보았습니다.

이 자연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야외 동물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눈밭인 동물원에는 사슴 비슷하게 생긴(죄송합니다. 잘 모르겠더라구요...)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철조망 근처로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먹을 거라곤 하나도 없는 눈밭에서 비스킷이나 해바라기 씨를 내미는 관광객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이곳은 동물들마저 때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가족과 함께 왔었더라면...제가 사슴에게 먹이 주는 장면을 찍었을 텐데...손톱 메니큐어가 붉은 어떤 아가씨가 먹이 주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하얀 눈밭에 까만 눈동자....참 귀엽지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관광 일정이 마쳤고...모두들 '질료니 보르' 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곳 숙박료(1인실 1200 뗑게)에는 세 끼 식사도 다 포함되어 있는데 아침, 점심 모두 스테이크 위주로 짜져 있어서 외지 사람인 제가 먹기에도 괜찮았습니다. 저녁에는 이곳 호수에서 나는 민물 고기가 반찬으로 올라오던데...삶은 것이긴 했지만...먹기 꺼림직해서 먹지 않았습니다.  낙동강 유역의 간디스토마의 실태와 그로 인한 질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산대병원 소화기 내과 출신이기에 민물 고기는 입 근처에도 대지 않지요. 하지만...그 외 반찬은 이국적이고 괜찮았습니다. 콩조림도 나왔으니까... 

점심을 먹고는...질료니 보르 앞에 있는 슈치 호수로 나왔습니다.

바라보예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크기도 더 크고 사람들도 붐비지 않아 더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얼어 붙은 호수 위에 손을 벌리고 찍은 사진...이게 호수 위라는 건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겠지요?

사실...까작스딴은 전체가 편평한 초원지역이라...겨울에 어딜 가서 사진을 찍더라도 다 이 사진처럼 나옵니다. 이 사진이 그런 사진들과 다른 차이가 있다면...바로 뒤로 보이는 나즈막한 산등성이 때문이지요...

광활한 까작 초원에는 산이 전혀 없고...그냥 그냥...계속되는 지평선 뿐이거든요...제 뒤로 보이는 저 산도 까작스딴 초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그래서...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이곳을 찾고 있는 것이죠.

슈치 호수 얼음 위에서 삼발이를 세워 놓고 혼자 사진도 찍고 비디오 촬영도 하면서 혼자 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혼자라 적막하던 여행이 그제서야 활기있게 느껴지더군요.

슈치 호수를 다 본 뒤에는...질료니 보르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침엽수림을 따라 걸었습니다.

'보르' 라는 말은 소나무 숲이라는 의미라고 말씀 드렸었는데...침엽수림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굳이 소나무가 아니어도 된다는 얘기지요.

하늘이 푸르고 해가 반짝이는 맑은 날씨임에도 온도가 낮지 않아 그야말로 흔히 찾아 오지 않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주변 경치를 촬영하고 난 시간이 오후 3시가 넘을 무렵이었습니다.

원래 전...이 날 밤 8시 40분 기차를 타고 아스타나로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전철(일렉뜨로뽀이즈드) 은 앉아서 가기에 너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혼자 온 데다...더 이상 볼 것도 없고 해서...오후 3시 10분 쯤 숙소 앞에 세워진 택시를 잡아 타고 슈친스크 역으로 돌아 왔습니다. 4시에 아스타나로 출발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글들에 비해 사진을 많이 실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에 계신 분들에게는 짜증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사실... 국립공원 바라보예를 소개하는데에는 이 사진 만으로도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자연 박물관에 들렀을 때...2층 한 구석에 세워져 있던 바라보예 호수 위에 혼자 서 있는 소녀 바위를 보았습니다.

혼자 있는 게 어찌나 슬프게 보이던지...저도 그 옆에 섰습니다. 혼자라는 거...편하기도 하지만...애처로와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요.

아마도...가족들과 떨어진 채 3개월 째 혼자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 보는 아스타나의 다른 한인들이나 홈페이지의 독자들도 혼자 서 있는 소녀 바위를 바라 보는 제 마음 처럼 애처롭게 느끼시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용감하게 힘을 내서 바라보예 국립 공원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루만 더 지나면...2월 달력이 시작됩니다. 2월에는 선화와 형민이, 시은이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기쁜 날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비록 지금은 혼자 이지만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에 들떠 있는 지금입니다.   2003.1.31

 

 바라보예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