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추억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졌던 아스타나의 기온은 좀처럼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작년의 경우... 12월 초에 한 차례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이후로는 영하 10-20 도대를 유지하면서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를 보였었는데... 올해는 12월 들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진 날만도 17일 현재... 5 일이나 될 정도로 낮은 기온 분포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인데도....아스타나를 찾는 방문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로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를 구경하기 위해 올라오는 KOICA 관련 인력들인데... 아스타나 전문 가이드를 자처하고 있는 전...요즘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our story를 보시면 아시겠지만...아스타나로 신혼 여행을 온 부부도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간 한 주였습니다.

연말이 다가 오자...아스타나 곳곳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각종 장식물들과 축하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국회 앞 '주 광장'에는 "욜까" 라고 부르는 커다란 나무 장식(우리 나라의 성탄 트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이 세워지고 있고 이심 강변에도 얼음 벽돌로 만들어진 미끄럼틀과 스케이트 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작년 겨울에 비해 올 해는 차분한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연말이 다가오는 아스타나에서 볼 수 있었던 휘황 찬란한 축하 장식물들은 까작스딴 독립 기념일(12월 16일)을 앞두고 개장되면서... 이를 축하하는 의미도 많이 포함하고 있었는데.... 작년의 경우, 소비에트 연방에서 까작스딴이 독립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1991년 12월 16일 독립)였던 탓에 다른 해보다 유별나게 화려한 장식을 보였던 것이고 독립 11주년을 맞는 올해의 경우는 작년보다는 검소하게 치루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람스토르 맞은 편에 늘 세워졌던 아스타나의 겨울 명물 "얼음 궁전" 이 올해는 세워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 얼음 궁전을 건설한 업자들이 건축 비용을 시로부터 받지 못해 올해는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작년 같으면 벌써 시작했어야 할 공사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고 있어 올해에는 얼음 궁전을 구경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스타나는 겨울이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온 세상이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이는 겨울 아스타나를 보고 있으면...영화 속에서 봤을 것 같은 이국적인 정취에 푹 빠져 들게 됩니다.

최근 아스타나를 방문한 분들을 가이드하면서... 영화 "닥터 지바고" 의 어느 장면에서 봤을 것 같은 아스타나의 차디찬 설경에 저 역시... 홀딱 반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아스타나를 방문한 KOICA 봉사 단원과 함께 아스타나 외곽 도로를 달리다...눈 앞에 펼쳐지는 백색의 세상을 보고...차를 멈추고 탄성을 지르는 모습입니다. 하늘과 땅을 구별할 수 없는 지평선으로 달리는 도로...도로 위를 뒤덮은 눈과 얼음...좌우로 펼쳐진 얼어 붙은 평야...5 분도 차 밖에 서 있을 수 없는 살을 에는 추위....이 모든 것이 아스타나의 매력입니다.

한국에 있는 선화가 이 사진을 본다면...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바로 알아 차릴 겁니다. 사계절을 불문하고 선화와 형민이를 태우고 이 도로 위를 쏜살같이 달렸으니까요...눈 내리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달리다 보면 마치 극지방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간간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태양빛을 반사는 도로 위의 얼음들의 반짝임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구릉지 하나 없는 아스타나 주변 지형은 이렇게 끝없이 이어집니다.

본연의 업무인 진료 외에도 악기와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여하고 있는 저로선 아스타나를 찾아 오는 여러 손님들을 안내하다 보니...한국에 들어간 선화와 형민이 생각을 잠시 잊은 채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해가 지고 도시 곳곳을 밝히는 조명에 불이 들어 오는 저녁이 되면...작년 이맘때와는 달리 혼자 빈 집을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을 이내 발견하지요.

'작년에는... 눈 덮인 저 곳에서 형민이가 두꺼운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며 걸었었는데....'

'작년에는... 저 곳에 있던 대형 마로즈 할아버지(싼타클로스와 비슷한 러시아 문화권의 인물) 인형을 보며 선화와 애기를 나누곤 했는데...'

'작년에... 저기 있던 얼음 궁전에서 자고 있는 형민이를 안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었는데....'

도시 곳곳에 세워지는 겨울 추억물들은 작년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작년 겨울...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추운 집이었습니다. 부엌 창문 안쪽으로 두꺼운 얼음 덩어리들이 생길 정도 창가의 빈틈 사이로 차디찬 바람이 새어 들어 왔었고...난방 기구인 라디에이터도 아주 작아서 집 안에서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화는 이렇게 집 안의 창문 사이 사이의 틈을 다 메웠습니다.

이곳 바자르(시장)에는...창가의 틈을 막기 위한 스폰지와 천(가아제와 유사함) 들이 팔리고 있는데...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겨울이 오면 이런 재료들을 사용해서 창문 주변에 생긴 외부와 통하는 모든 틈들을 이렇게 막아 버린다고 합니다.

선화가 만들어 놓은 "Merry Christmas" 라는 유리 장식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 오는 이곳은 안방 창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4월 경...추웠던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그 때까지 겨울 내내 쌀쌀한 이 안방에서 전기 장판을 켜고 형민이을 껴 안은 채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람스토르에서 산 전기 히터를 켜 놓은 채....

그래서...따뜻했다는 작년 겨울도 우리 가족에겐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하지만...지금 돌아 보면 함께 있었기에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화면의 상단 우측에 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는 글자 옆의 사진도 성탄절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난 겨울에 촬영한 모습입니다.

 1년 전 형민이의 모습이지만 바라 보고 있으면 너무도 사랑스럽고 보고 싶습니다. 한국으로 간 뒤...형민이는 언어나 행동 면에서 많은 발전을 보인다고 합니다. 아빠가 어디 갔냐고 주변 사람들이 물으면 여전히 테니스 치는 시늉을 하면서 아빠는 테니스 치는 중이라고 얘기한다는 형민이...12월 16일 밤 현재...한국의 부산에는 비가 오는 따뜻하고 촉촉한 날씨라는데 형민이가 눈의 나라 아스타나를 벌써 잊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으로 간 선화의 메일 내용에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형민이 얘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 형민이의 언어 발달에 상당히 진보가 보여요.... 어떤 거냐면요... 요즘은 형용사를 쓰거든요. "크...(팔로 원을 그리면서)" (큰), "마니"(많이) "아! 추.."(앗, 추워) 그리고 숫자 "주개"(두개) 등등.... 형용사의 개념도 하나 하나 익혀가는 것 같아요. 특히 하나, 둘.. 등등 세는 걸 좋아하고 똑같은 게 두 개 있으면 반드시 손 동작과 함께 두 개 라고 이야기해요. 이러다가 문장도 구사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참... 동사도 쓴답니다. "됐다" "앉자" "아자"(하자 혹은 가자) 등등.... 신기하죠? " (12월 14일 자 선화의 메일 중에서)

"요즘 이곳은 아주 따뜻해요. 오늘은 아파트 뒷 쪽으로 등산로가 있어서 거기로 쭉 산책했어요. 비가 와서 물도 많고 닭 키우는 곳도 있고 해서 형민이가 얼마나 신기해 했는지 몰라요. 형민이의 동물 사랑은 정말 대단하답니다.... 이런 건 정말 아빠를 닮았나봐요... " (12월 6일 자)

성탄절이 다가 오는 2002년의 끝자락...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우리 가족이지만...매일 밤 서로를 걱정하며 편지를 쓰고 기도하면서...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던 성탄절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 성탄절...우리가 출석하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에서는 이곳 사람들을 초청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작은 콘서트를 열었었는데...순서 중에는 우리 부부의 찬양과 선화의 피아노 연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올해도 교회는 똑같은 행사를 준비하고 매주 연습하고 있습니다만... 작년과 특별하게 달라진 게 없는 올해의 순서 중에는 선화와 제가 함께 하던 순서들만 쏙 빠져 있습니다.

작년에 사용하던 악보집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다가오는 성탄 축하 행사를 준비하는 요즘....그래서...선화와 함께 찬양했던 지난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새록 새록 되살아 납니다.

2001년 12월 24일 밤 성탄 축하 행사에서 우리 부부는 "별 빛 속에 빛나는 주님" 이라는 곡을 불렀었는데...성탄 발표회가 있기 며칠 전부터 함께 이 곡을 연습하던 중...우리가 함께 부른 이 노래를 녹음해 음악 파일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아스타나의 빈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저는... 요즘 자주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기타 소리도 어설프고...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에 녹음한 것이라 제대로 발성도 안 된 음성이지만...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듣고 싶은 선화의 음성이 나오고 지난 겨울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보냈던 아름다웠던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행복해 집니다.

그래서...우리 방문객들에게도 들려 드리고 싶은 마음에... 성탄 전 날까지 이 곡을 홈페이지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할 용기를 냈습니다. 잘 부른 곡이라서 라기보다는... 성탄절이 가까워지는 이 특별한 시기에 실수 투성이인 우리 부부의 찬양이 이 홈에 울러 퍼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성탄절은 우리 부부가 한국과 까작스딴으로 각각 나뉘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며 맞아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

까작스딴에서는 개인 가정에서 ISDN 이나 ADSL 같은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전화 모뎀을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해야 하기에 큰 용량의 음악 파일을 서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On-Line 상에서 MP3 파일을 다운 받기 힘든 이곳에서는... 요즘 한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큰 용량의 오디오, 비디오 파일을 열 수 있게 해 주는 asf 파일 조차 열기 힘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이 거주하시는 한국은 인터넷 환경이 좋을 것이기에...우리가 부른 곡을 Window Media Encoder 로 변환 시켜 홈 배경 음악으로 1 주일 간만 사용하겠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까작스딴,페루,베트남, 방글라데시,미국...)에서 이 홈을 접속하시는 분들은 이 파일을 스트리밍한다고... 다른 글이나 그림이 뜨는 속도가 지연될 것 같지만요...

그래도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아마도... 컴퓨터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이 순간... 우리 부부의 찬양을 듣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형민이, 선화와 떨어져 성탄절을 맞게 되는 경우는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 살이지만...이번 성탄절을 끝으로 다시는 우리 가족이 떨어져 성탄과 새해를 보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맘 간절합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없는 쓸쓸함 속에서...행사 장 한쪽에서 "아빠..d."하고 외치는 형민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선화의 미소를 떠 올리며 쓰라린 맘을 쓸어 내려야 하겠지만....내년 성탄절에는 형민이를 포함한 삼중창을 우리 가족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흑백 사진은 우리에게 묘한 느낌을 줍니다.

빨갛고 파란 생동감 넘치는 색상은 보이지 않지만...웬지 흑백 사진은 진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올해도 교회당 안에는 이 성탄 트리가 역시 세워져 있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반짝거리는 전구들을 바라볼 때마다 작년에 촬영했던 바로 이 사진이 자꾸 떠 오릅니다.

흑백 사진이 가져다 주는 진실처럼...우리 가족이 항상 함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선화가 임신 만 39주가 되는 날입니다. 이제 일주일 전후로 해서 형민이 동생이 곧 태어날 것 같습니다. 혹...성탄절에 우리 둘째가 태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남편이 없어 외롭고 쓸쓸하겠지만...이 흑백 사진을 보며 선화가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선화도...까작스딴에 있는 남편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임신 기간...선화의 맘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넘쳐 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이번 성탄절이 멀리 떨어진 우리 부부에게 그 어떤 성탄절보다 하나님의 손길이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2002.12.18

" 오늘 병원에서는 NST 만 했구요... 초음파는 안 봤어요. 선생님이 "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면 병원에 오세요..." 하시는데... 이제 정말 때가 되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형민이 때보다 훨씬 마음이 든든하고 별로 두렵지 않아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 주고 있다는게 느껴진답니다. " (12월 16일 자, 선화의 메일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