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소년 이야기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로 시작하는 서정윤 시인의 '홀로 서기' 시리즈가 최근 300만 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 시집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전 고등학교 1학년(1987년) 이었습니다.  당시... 연습장, 노트와 같은 학용품에까지 아름다운 연필 스케치와 함께... 시인의 감수성 어린 노랫말들이 아롱 아롱 새겨졌었지요. 새벽 일찍부터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교로 올라가야 했던 유보된 젊음의 학창 시절 내내...노트 겉표지에 적혀 있는 시인의 아름다운 기다림, 사랑의 노래들을 되뇌며...앞으로 다가 올  자신만의 사랑을 꿈꾸며 10대를 보냈던 추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 후...15년이 지난 지금...나는 또 다른 기다림을 들고 서 있습니다. 지금 내게는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아름다웠던 문장이 도무지 와 닿지 않습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던 갓 푸른 시절의  기다림과는 달리....아스타나에서 혼자 산 지 2주가 지나가는 제게는 분명히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화와 형민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으니까요...

선화가 가고 없는 아스타나의 집에서 저는 무척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음식 만드는 것도 제법 익숙해 져서 장조림도 만들어 보았고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넣어 볶아 보기도 했습니다.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새로운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마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이 완성되고 나면 작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문제는 막상 그 음식을 먹을 때입니다.

식탁 위에 놓인... 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들을 먹는 시간이 되면... 한 없이 쓸쓸해집니다. 밥 먹는 동안...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우웅...."거리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음식물 씹히는 소리만 귀에서 맴돌 뿐... 모든 세계는 정적에 휩싸이고 맙니다. 그 시간에는 마치 '나는....생존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 시간은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다시 바빠집니다. 설거지 하고...또 다른 일을 찾아 밖으로 나가거나 새 작업을 시작하니까요....곳곳에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생활...이것이 지금의 나의 삶입니다.

하지만....선화가 가고 난 뒤 벌써 2주일 째...비장하고 모진 마음으로 쓸쓸함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홀로 됨으로 인해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유용하게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국제협력의사로 아스타나에 파견된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두 가지를 든다면....가족과 함께 있는 것과 진료하는 일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할여했던 일은 단연 '가족과 함께 있는 일' 이라 할 수 있지요. 형민이의 하루 세 끼 식사를 먹이고... 오후에는 낮잠을 자도록 안아 주고...거실에서 함께 공놀이를 하거나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는 게 제가 매일 하는 일이였습니다. 선화가 뭔가를 할 때 옆에 앉아 응원하고... 형민이와 함께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를 나누며 깔깔거리고 웃는 게 중요한 일이었고... 때로는 가족 모두를 차에 태우고 장을 보러 가거나...다른 집을 방문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갑자기 이 모든 일들이 다 사라졌고 제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여가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새로 시작한 일은 드럼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 홈페이지의 오랜 독자분들은 제가 기타나 드럼과 같은 악기에 얼마나  애착이 많은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살펴보니까 2000년 10월 29일에 쓴 꿈 속에서 본 드럼 (누르시면 볼 수 있습니다.) 이라는 글에 이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적었더군요. 이 글을 읽어 보시면 오랜 세월 동안 제가 꿈꾸어 왔던 일 중 한 가지를 아시게 되실 겁니다.

가끔 전....' 하나님께서 내게 좀 더 음악적 재능을 부어 주셨더라면...' 하고 안타까와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를 평가할 때....포기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재능 이상으로 내가 애정을 가지고 투자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음악이고 특별히 기타와 드럼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번에 드럼 레슨을 결정하면서...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결혼 하고 아기까지 생기고 나니....악기 배운다고 학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시간도 없었고 정신적 여유도 없더군요. 그런데...이렇게 3-4개월이라는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그야 말로 결혼 생활 중 다시 찾아 오지 않는 호기가 주어진 셈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면 1993년...1996년...2000년에 이어 벌써 4번째 드럼 레슨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93년은 부산 양정 모 음악학원에서 한 달 수강했었고...96년은 부산 대신동 모 음악학원에서 한 달...그리고 2000년에 같은 학원에서 두 달 배운 게 제가 배운 드럼 수업의 모든 것입니다. 1996년은 대학병원에서 인턴 생활 하던 시절이니까...그 기간동안 드럼 학원을 다녔다면 아실 만한 분은 제 열심이 어떠했는지 짐작하시겠고....2000년의 경우는 전문의 시험을 몇 달 남겨 둔 상태에서...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다닌 두 달 간이었습니다.

그리고...곧 전문의 시험이 끝나고...바로 8주간의 군사 훈련과 까작스딴 행이 이어졌습니다. 드럼 연주에 관한 나의 꿈은 그냥 그렇게 묻히고 마는가 싶었지요...그런데...이렇게 까작스딴에서 다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드럼은 스포츠와 같습니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럼도 수 없이 계속되는 반복 동작으로 쉽게 보일 것 같은 박자들이 만들어집니다. 드럼 연주자들의 화려한 연주 뒤에는 수 많은 세월 동안 고무판을 내려 쳐야 했던 인고의 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1-2달 씩 드럼을 배워야 했던 전...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경우...1달 반 정도 고무판을 두들기며 리듬감을 익히게 한 뒤....진짜 드럼에 앉아서 박자를 익히도록 하더군요....그래서 저 처럼 두 달 정도 배워 가지고는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게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드럼을 배우기로 결정한 뒤...바로 드럼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마침...저의 기타 선생님인 일리야가 이 도시(아스타나)에서 가장 드럼을 잘 연주하는 분을 알고 있다고 해서...그 분을 만나기로 했지요. 눈 오는 어느 월요일 저녁...그 분의 연습실로 찾아가 저의 오랜 사연을 얘기 했고 ...그로부터 흔쾌히 승낙을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인인 드럼 선생님의 이름은 "비탈리이 바실비치 로마노프" 입니다. 맨 끝의 로마노프는 그의 성이죠. 

우리는 매일 만나서 드럼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드럼 선생님들은 그저...잠깐 들어와서 연습할 리듬을 보여 주고는 나가 버리는데 반해....1:1 지도를 하고 있는 비탈리 아저씨는 계속 옆에 앉아 저의 자세와 타격을 교정해 주면서...자칫 지루해 지기 쉬운 드럼 연습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지도해 주고 계십니다.

특별히 그는...드럼 연습 중에는 반드시 메트로놈을 사용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총 4달간의 드럼 레슨을 받았었는데...아무도 메트로놈을 옆에 놓고 리듬을 가르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탈리 아저씨는 아무리 단순한 리듬이라도 메트로놈 박자를 조절해 가며...'아주 느리게'에서 '아주 빠르게' 까지 모든 속도에서 리듬을 익힐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저도 집에서 연습하기 위해 메트로놈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사실....지금 시작한 드럼 레슨은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산을 위해 선화와 형민이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생각하고 있던 저는... 올 초 인터넷을 통해 연습용 드럼 세트를 주문했고...지난 5월 까작스딴으로 오시는 신임 협력의사 김대동 선생님의 이삿짐 컨테이너에 그 물건이 포함되도록 부탁했었습니다. 혼자 있게 되면...반드시 드럼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그 때부터 있었던 것이죠.

지난 8월 지금 보이는 이 연습용 드럼이 한국에서 도착했고...이렇게 전...집에서도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충실히 연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닥에는 형민이 놀이용 숫자판이 깔려 있고 옆에는 삼각형의 메트로놈이 보입니다.

원래 한국에서 기본기를 익힌 데다...메트로놈과 좋은 드럼 세트까지 얻게 되어...발전 속도도 빠르다고 보여 집니다.

선화가 돌아올 때까지 메일 레슨을 계속할 생각인데...한국에서는 사실..집에서 연습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음을 감안하면 3개월 후에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희망합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이니까요...형민이가 있는 동안에는 이 드럼 세트를 제대로 펼쳐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형민이가...한 개씩 여기 저기에다 세워 놓기 때문에...보관 자체가(?) 힘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젠 거실 한 쪽에 이렇게 세워 놓고 매일 두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화가 오더라도...일주일에 몇 번씩 꾸준히 드럼 연습실에서 들러 실력을 쌓아 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1년 반이 지나 한국에 들어갈 즈음에는 현대 가스펠 음악 연주의 필수 악기인 드럼을 꼭 제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연주하고 싶습니다. 이게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꿈입니다.

물론 누가 뭐래도...저의 전공 악기는 기타입니다. 한 때는 베이스 기타도 연습했었지만...특별한 발전은 없었고 게다가 저희 교회 형편 상 베이스 기타를 계속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리더 기타도 제대로 없는데...어떻게 베이스 기타를 치냐?' 가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94년 이후부터는 베이스 기타는 놓고 계속 오베이션 기타(앰프 기타)만 사용했습니다.

제가 아스타나로 올라 온 뒤...이곳의 은혜교회(이곳에서는 블라가닷찌 교회 라고 부릅니다.)에서 그야 말로 환상적인 기타 반주를 하는 청년을 소개 받아 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게 작년(2001년) 10월 이니까...벌써 일리야와 함께 한 기타 레슨은 1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사실...전 고 3(1989년)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그 후 계속 기타를 놓아 본 적이 없어 교회에서 기타 반주 하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또 저희 교회(한국에 있을 때) 형편상...찬양 인도를 하면서 기타를 연주해야 하는 실정이어서 애드립을 한다거나 기타 솔로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죠.

하지만...까작스딴에 와서...지난 5년간의 병원 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제대로 기타를 배워보자는 욕심에서 시작한 일리야와의 레슨은 벌써 약간의 결실을 거두고 있습니다. (일리야에 관해서는 2001년 12월 17일 아름다운 청년 일리야 란 제목으로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

1년이 훨씬 넘게 제 기타를 봐 주고 있는 일리야는 찬송이나 클래식 곡 연주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노래의 key에 따라 즉흥적 연주를 할 수 있는 스케일 파악과 애드립을 도와 줍니다. 지난 1년 동안 일리야와 공부하면서 제 자신도 눈치챌 정도로 발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인데...가끔 선화가 이렇게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면...일리야가 들으면서 코멘트를 해 주기도 했습니다. 일리야의 아버지도 이곳 음악대학의 피아노 교수님이시거든요...

일리야와의 레슨으로 기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고...이곳에서 섬기고 있는 아스타나 장로교회 찬양 시간에 오베이션 기타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는 마이크나 스피커 시설이 전혀 없어...알마티에서 소형 앰프 딸린 스피커(Fender사)를 구입해서 기타 소리를 증폭하고 있습니다.

스트링 소리가 나오는 신디사이저와 어울려야 기타 소리는 가장 아름다운데...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안나'가 피아노를 치고 '나자'와 제가 노래하며서 기타를 치는 게 우리 교회 찬양 시간의 모습입니다. 스피커와 기타가 보이지요? 지금 들고 있는 기타도 인터넷으로 주문해 김대동 선생님 편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기타입니다. 원래 한국에서 가져 왔던 오베이션 기타는 이미 수명이 다 되었더라구요.....

가끔씩 드는 생각은 '한국에 있을 때 불평했던 뒤떨어진 음향 장비들도 지금보다는 좋았었는데....' 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주어진 것이 값진 것인 줄 모르고 교만했던 내 모습들이 가끔씩 눈 앞을 지나갑니다 .

어쨋든 기타는 제가 평생 품에 안고 가야 할 악기입니다. 드럼 레슨은 매일 이지만...기타 레슨은 1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하고 있습니다(처음에는 1주일에 두 번이었죠) 기타의 경우...제가 어느 정도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에 혼자 연습하는 게 더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안배하고 있습니다.

진료 활동 외 여가 시간을 활용해서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도전은 바로 러시아 어입니다. 나중에 한국으로 들어간 뒤... 당장 사용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이곳에 있는 동안 만큼은 열심히 러시아어를 더욱 익히고 간다는 게 목표입니다. 까작스딴이 최근 까작어 부흥 정책을 사용하면서...러시아어는 까작스딴에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지만...여전히 이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러시아어 입니다.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인 뿐 아니라....그 외 110여개의 소수 민족들이 러시아를 구사할 줄 압니다.(고려인들도....) 불과 11년 전... 까작스딴이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만 가르쳤지 까작어는 가르치지 않았었기 때문에... 11세 이상 되는 까작스딴의 모든 국민들은(까작인들도 물론...) 이미 모국어 체계가 러시아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까작어를 말 할 줄 모르는 까작인이 수두룩한 게 현실입니다.

지금 한창 까작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나중에 까작어가 자리를 잡는다 하더라도...러시아는 까작스딴에서 계속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 후의 우리 나라 상황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는 단일 민족인데 비해....이 나라는 국민의 반 정도 만이 까작인이거든요...)

까작스딴에서 이미 1년 반을 살아온 저로선...러시아어가 이미 영어보다 친숙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문법적으로 모르는 것은 없고...어휘와 생활을 통해 얻게 되는 러시아적 언어 사고 방식만이 계속 익혀 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지금 보이는 분이 제 러시아 선생님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분 집을 찾아가 이렇게 개인 지도를 받아 왔습니다. 물론 교과서도 있지요.

이분의 성함을 소개하자면 '갈리나 이바노브나 따라사바'입니다.  전직 학교 선생님이신데...지금은 은퇴해서 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지금 우리 코이카 단원들도 다 이 분에게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는데...아스타나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외국인 지도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러시아의 언어와 사회, 문화, 종교등을 소개해 주시고 계십니다. 전...일주일에 한 번 이 집을 방문해서 지난 일주일 동안 공부하면서 생긴 궁금증을 질문합니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이상....러시아어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선생님의 도움으로 하나씩 극복하고 있습니다.

전...진료할 때...통역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최근 통역 아주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3개월 정도 고항으로 내려가 있는 등...오랜 시간동안 혼자 진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하지만...그동안에도 진료하는 데에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제 진료에 필요한 정도의 어휘력은 갖추어졌다고 보입니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도 러시안인의 진료 상담이 필요하다면...제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타 레슨과 러시아 수업은 선화가 있을 때에도 계속 해오던 일인데 반해...드럼 레슨과 함께 이번에 새로 시작한 일은 수영입니다.

부끄럽게도 전...수영을 못했었습니다. 2살 때부터 부산에서 살았음에도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었지요. 수영장에 간 것도 1-2번 정도...거의 안 갔던 것 같습니다.(바다는 많이 다녔습니다. 튜브 끼고....) 수영을 잘 하는 선화와 결혼 한 뒤....협력의사 나오기 직전...강원도 설악산 인근 콘도 수영장에서 처음 선화에게서 물에서 뜨는 비결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나도 수영을 하고 싶다' 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되고 나서....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 있는 코이카 태권도 단원인 영우씨로부터 배우고 있는데...벌써 수영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건너갈 정도로 늘었습니다. 일주일 만에...그게 가능하더군요.

더 세련된 팔동작과 숨쉬기를 위해 매일 수영장을  다니고 있는데...선화가 돌아오면 온 가족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선화는 나중에 돌아온 뒤 함께 수영장에 갈 수 있도록 수영을 마스터 해 놓으라고 제게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습니다.

이 수영장은 원래 선화가 다니던  'Fitness club' 내의 수영장입니다. 선화만 다녔던 이 클럽 안에는 헬스장, 수영장, 사우나 장을 포함한 주변 시설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의 이용료도 한국돈으로 월 5만원 정도로 저렴합니다.(하지만 이 돈도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출입하지 못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곳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었는데....요즘 전...이곳에서 수영을 하면서 여러 모로 '바뀌어진 내 인생'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선화가 없어 허전한 마음도...수영장에 가서 숨이 차도록 물살을 헤치다 보면 어느 새 잊혀지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 마음을 두고 매일 찾아가는 곳이 수영장입니다. 그리고 좀 더 정확한 동작으로 수영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운동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덧붙이자면....수영처럼 선화와의 이별 후 새로 시작한 운동 말고...전부터 그러니까....이곳 아스타나에 온 뒤로 꾸준하게 해 왔던 운동이 있는데...바로 테니스입니다.

이곳 선교사님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이제 벌써 1년이 넘어 갑니다. 사실...중학교 2학년 때 체육 실기 시험 본 다고 테니스 라켓 잡고 벽치기를 몇 번 해 본 경험과 대학교 1학년 교양 체육 때 테니스 라켓을 잡아 본 것 밖에 없는 제겐 테니스는 어렵게 보이는 운동이었지만....그럼에도 꼭 하고 싶은 운동이었습니다. 하니...꼭 해야만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유는 테니스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그렇게 테니스를 좋아하시고 열심히 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침 일찍 할아버지 따라 테니스 코트에 가서 놀다 오는 게 하루 일과인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10살이 되기 전부터 전...부산의대 테니스 코트 잔디에서 할아버지가 테니스 치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전...운명처럼 부산의대에 입학했지요.

할아버지는 교계의 장로 체육대회나 노회에서 주관하는 테니스 대회에도 늘 참가하셔서 트로피를 타 오곤 하셨는데....의사회 테니스 대회 등에서 타오신 트로피와 메달 등과 함께 할아버지 방 한 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걸 보고 자란 전...'나도 앞으로 테니스를 치게 될 거다...' 란 생각을 품었었지요.

할아버지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본받고 싶은 분이셨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존경했던 분은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바로 우리 할아버지였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성품과 취미까지도 다 본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의대 생활과 바쁜 병원 생활 와중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의외로 선교지에 나와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전 이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의 선교사님으로부터 초보자로서 필요한 사항들을 배우고 10개월 정도 함께 운동하면서 기본기를 익혀 나갔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알고 있던 기본 자세에 대한 지식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래 육상을 했던 전....발이 빠른 편입니다. 이건 테니스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더군요. 정확한 폼과 타격을 위해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지난 10월...이곳의 러시아인 코치로부터 테니스 레슨을 받았습니다. 많이 받은 건 아니고...모두 10번의 지도를 받았는데...그 후로 더욱 공의 방향과 스피드가 좋아졌다는 평입니다.

이제...한국에 가서도 웬만한 분들과는 함께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주위 분들이 입 모아 얘기하시니까....이것 역시 아스타나 생활을 통해 얻은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은 선화와의 이별을 위해 알마티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알마티 알파라비에 위치한 실내 테니스장 입니다.) 그 슬픈 이별을 앞두고도...가방에 테니스 복과 라켓을 챙겨 들고 알마티로 내려 왔던 저는...알마티에 와 있는 또 다른 협력의사 안병재 선생님과 테니스를 치며 선화와 헤어진 후의 울적함을 해소하곤 했습니다. 선화와 이별 하고 3박 4일 동안 알마티에 머물며 마음을 정리한 뒤 아스타나에 올라 왔었는데...알마티에서 했던 일 중 히나가 바로 테니스였습니다.

아스타나는 까작스딴의 수도이지만....겨울에 사용할 수 있는 실내 코트가 두 군데 뿐입니다. 그래서...겨울철에는 테니스를 치기 아주 불편합니다. 많이 기다리거나...제대로 코트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래서...내년 봄이 와야...다시 열심히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수영장이 운동을 위해 열심히 찾아가야 할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글에는 선화와 헤어진 후의 쓸쓸한 마음을 적었었는데... 이번에는 선화가 가고 난 뒤 생긴 여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적어 보았습니다. 쓰고 보니....정말 빡빡한 일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네요.  늘 쉴 줄 모르고 틈만 나면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바쁘게 돌아 다닌다고 불평했던 선화도 이 글을 읽으며 기뻐할 줄 믿습니다.  이별 후에도 이렇게 남편이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선화가 한국에서 부친 소포가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우체국을 통해 항공 우편으로 소포를 보내면 약 일주일이면 아스타나에 도착합니다. 알마티의 경우에는 한국의 여러 사설 운송 업체들이 들어 와 있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한국 교민 수가 40명도 되지 않는 이곳 아스타나에는 아직까지 그런 운송 업체들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스타나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운송 수단은 우체국입니다.

소포를 부쳤다는 선화의 말을 듣고 지난 월요일...우체국에서 찾아 온 물건들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선화, 형민이와 함께 궁금한 맘으로 소포를 열어 보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이 날은 혼자서 선물 꾸러미를 열어 보았습니다.

안에는 면류(짜파게티 5개, 짜짜로니 2개, 멸치 칼국수 3개, 오징어 짬뽕 3개, 김치 라면 2개, 해물 파티 2개, 너구리 3개), 과자류(짱구 2개, 마가렛트 12개, 하몬스 6개, 미사랑  1개) , 즉석국(곰탕 2개, 육계장 2개, 북어국 1개, 사골 우거지국 1개), 수프류(옥수수 수프 1개, 야채 수프 1개, 크림 수프 2개, 쇠고기 수프 2개, 양송이 수프 2개, 쇠고기 다시다 1개) , 양반 돌김 3포, 삼화 쌍화차 1개, 동서 보리차 1통, 동서 결명자차 1통, 고추 참치 2개, 야채 참치 2개, 순창 된장 1개, 마아가린 2개, 형광등 전구7개, 멸치 한 포, 테니스 양말, 와이셔츠 2개, 정장용 바지, 헬쓰용 반바지, 충전지 4개, 정장용 바지 1개 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함께 살았던 선화라...혼자 살고 있는 내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보낸 물건들이라 너무 반가웠습니다 . 사진 속에서 제가 들고 있는 게 바로 수영복입니다. 아스타나는 수영복이 비싸고 제대로 된 모델이나 색상도 없어 선화가 한국에서 부친 것이죠. 요즘...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그 전까지는 구식 수영복을 입고 다녔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필요한 것들입니다.

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 전자 우편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우린... 4개월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에는... 서로가 인내하며 얻은 멋진 열매들을 보며 함께 기뻐할 것 같습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사용하며 땀을 흘릴 생각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곳에서 하고 있는 저의 진료 사역에 대해 적어 볼까 합니다. 오늘은 드럼 레슨, 기타 레슨, 러시아어 수업, 테니스, 수영.....처럼 여가 시간에 하는 활동들을 소개했지만...다음 번엔 아스타나에 파견된 의사로서 살아가는 제 모습을 담아 볼 생각입니다.

아내와 아이가 떠나 버린... 차가운 눈의 나라 아스타나에서 오늘도 저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무심코 바라보는 내 모습은 '이미 30대 초반에 들어선 아저씨' 이지만....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은 사실... '꿈 많은 소년'입니다.  꿈에서 보았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 보려는 용감한 소년입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나는 사랑합니다.   200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