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본 드럼

가을의 끝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고... 일찍 찾아 오는 해거름을 보면....낙엽이 가득 쌓인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로 떠나고 싶은 요즘입니다. 이 해도 이렇게 지겠지요....며칠 전 전공의 유급 및 전문의 시험포기가 투표를 통해 82%라는 높은 찬성율로 결정되었지만 아직은 병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협상이라는 것이 우스운 것이라...내일이라도 협상이 타결된다면 시험을 포기할 명분이 없기에 시험 거부를 밝힌 상태에서도 이렇게 공부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공부방은 창문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그 곳에서 책을 보다 보면 눈이 아프거나 머리가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환풍이 안되기 때문이겠지만 전대미문의 의료 사태 속에서 제대로 불평하지도 못하고 숨어 지내듯이 조용히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며 출입하고 있습니다. 빨리 지금의 답답한 협상 국면이 시원하게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전 요즘 새로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이 때가 내 인생의 유일한 시기일지도 모르는 지금.....제가 맘만 먹는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 볼수도 있는 시간이 허락된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지난 10월 2일부터 구덕 운동장 앞에 있는 제일음악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수강생 자격입니다. 그 곳에서 다시 드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드럼 학원을 다니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처음은 1993년 양정의 모 음악학원이었고 한 달간 다니다가 너무 거리가 멀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 학원은 부산에서 제법 유명한 학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곳의 드럼 교육의 장점은 자칫 싫증이 나기 쉬운 첫 달에도 실제로 드럼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준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학원이 지금 다니고 있는 제일종합음악학원입니다. 1996년이었지요... 대신동이라 가깝다는 장점이 있었지만.....새로 다시 시작했기에 재미가 없었고....병원에 처음 근무할 때라 생각보다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자주 가지 못하고 한 달을 연습하다 그만두었습니다. 한 달이라고 하지만 총 10번 정도 밖에 다니질 못했습니다. 학원 수업이란 것이 강제성이 없어 웬만큼 열성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교회활동을 오래 한 형제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기타를 늘 가깝게 두고 지냅니다. 기타를 배운 것은 고3때였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기타를 가르쳐 주지 않기에....공부밖에 모르는(?) 제가 기타를 못 다루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지내던 고 3때....학력고사를 홀로 준비하는 고독감과 교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인한 답답한 내 맘을 뚫고 들어온 것이 기타입니다.

그러니까 1989년....당시에 많이 부르던 가스펠송 중 한 곡이 [아--값지게 하시었네] 입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주일 저녁...교회당에 앉아 있을 떄...누군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난 뒤...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노래가 너무 좋아 ....그 곡을 연주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기타를 배우게 된 계기입니다.  고 3때 기타를 연습할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아침 일찍부터 자정까지 학교에 매어 있어야 하는  저로선 기타를 가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매달 찾아오는 모의고사를 끝낸 날 밤이었습니다.

코드를 하나씩 익히고....어느 날은 밤새도록 기타를 치고 리듬을 익히다가 잠이 들고....적성에 맞는 악기였는지....고 3이 끝나가는 무렵에는 제법 어려운 곡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이후로 5-6년간 정말 열심히 기타를 품고 다닌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기타는 3가지입니다. 전기기타(elec.guitar), 포크 기타, 앰프 기타... 세 종류를 가지고 있지요....지금 가지고 있는 앰프 기타는 2번째 앰프 기타이고 1996.12월 구입한 것입니다. 첫번째 앰프기타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의 포크 기타가  3번째라고 한다면...그 동안 많은 기타들이 거쳐 갔음을 아시겠지요....베이스 기타도 있었습니다.

하필....전 한국기독음악의 가장  큰 변혁기를 음악적으로도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시절에 맞게 되었습니다. 늘노래선교단 외에는 별 복음송 가수가 없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1982년 창단한 주찬양 선교단을 필두로....두란노 경배와 찬양, 예수전도단, 옹기장이선교단의 활동이 속속 시작되면서...이전과는  비할 수 없는 또 다른 찬양인 가스펠송의 80년대..그 화려한 부흥기를 맞은 것은 제 학창시절 동안이었습니다. 주찬양 선교단의 [그 이름]을 처음 불렀던 때가 중2(1985년)였으니까....지난 15년간.. 최인혁,송정미,손영진,다윗과 요나단,박종호로 대표되는 수많은 복음성가 가수들의 활동과 Hosanna integrity 음악등으로 대표되는 많은 미국과 유럽의 가스펠이 밀려 오는 그 격랑기를 교회 안에서 맞은 소위 '가스펠 1세대'가 저를 포함한 세대입니다. 물론 '작은 불꽂 하나가..','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같은 기존의 복음송이 있긴 했으나...지금과 같은 패턴의 복음송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이로 따지자면 386세대의 바로 뒤를 따르는 연령층의 세대가 되겠지요...

그러다보니 제게는 모든 곡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한 때 많이 불리워 졌던 [당신은 영광의 왕] 남성 4중창 편곡 악보를 1989년 다대포의 모교회 성가발표회에 도와 주려고 참가했다가 어렵게 구했던 기억도 있고....많은 전국 수련회장에서 수천명이 함께 부르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감격도 있습니다. 깜깜한 밤...떨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조용하게 불렀던 [형제여..우리 예수님 명령 따라 살자] 의 기억이 있고 비록 가사는 좀 유치하지만 그렇게 슬플수 밖에 없었던 사춘기 시절의 감정을 담고 있는 [눈부시도록 하얀 눈길은...] 도 잊을 수 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주로 주찬양 선교단과 같은 중창단의 곡이 좋았는데....대학생이 되고 난 뒤로는 두란노 경배와 찬양 곡들이 더 애착이 가더군요...아마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인가 봅니다.

기존의 기타와 피아노에만 의존하는 반주 형식으로는 제대로 그 곡의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기 힘든 곡들이 속속 교회 내에 소개되면서...제가 베이스 기타나 드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신측인 저희 교회도 교회 안에서 전자 악기를 들이는 것에 대해 무척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1991년...저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처음 앰프,믹서,스피커,드럼을 구입해 두고도 7년간은 본당에 악기를 둘 수 없었습니다. 1991년 9월...전 베이스기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5-6년 동안...목사님이 베이스 기타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시기에...활발하게 사용할 수 없었고 더 배울 엄두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전 세대의 성도들이 가스펠 세대인 우리의 맘을 이해해 주기에는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베이스 기타를 매고 찬양 인도를 한 적이 있었으니...제가 가진 애착도 상대적으로 강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세상 문화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칼빈이 살던 시대(1500년대)에는 오르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오르간을 '마귀의 휘파람 통'이라고 부르면서 교회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에서는 오르간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악기가 되었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악기들이 다른 지역에서는 우상들을 섬기는데 사용된 악기라 하더라도 그 악기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될 때에는 거룩한 악기였습니다.

이제 제가 섬기는 서부산교회에도 1998년부터 피아노 옆에 드럼이 설치되었습니다. 7년만이지요...예배 전 찬양에도 전자 악기들을 사용합니다. 지금도 이 악기들을 보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어려움 끝에 설치된 악기이니만큼...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의 마음을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1990년 여름부터 2년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교회에서 계속 찬양 인도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찬양하는 마음없이 그 곳에 서 있다면 한갖 '종교 광대'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기에...이제 군문제로 교회를 떠날 시기가 가까와 오는 요즘....참으로 찬양하는 맘을 회복하면서 살아가려는 발버둥을 쳐 봅니다.

드럼을 배우는 것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저와 함께 찬양팀을 시작한 장현희 형제가 교회의 유일한 드럼 주자 이기에 후계자 양성이 절실하지만 제가 배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전 교회를 잠시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요즘 드럼 학원을 다니면서 제가 처음에 가졌던 열정을 회복하려 합니다. 물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제가 자기개발을 위해 시도하는 또 다른 추구이기도 하지만.... 이번 시도의 가장 큰 동기는 또 다른 악기를 가지고 처음과 같은 열정으로 내가 가진 수 많은 영혼의 곡들을 연주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스펠 1세대로서 제 맘 속에 있는 큰 감정의 물결을 표현하는데 꼭 필요한 악기인 드럼을 제대로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드럼은 그 만큼 현대 가스펠 곡 연주에 있어서 필수적인 악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화는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결혼 전...피아노를 잘 다루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이상한 결심을 가지고....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좋은 찬양의 피아노 반주곡을 모아 두었던 내게 준비된 자매는 선화였습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선화와 함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을 드럼을 사용해서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가정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음은 아실 겁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의료사태로 인해 급여가 삭감되었습니다.  1달 드럼학원 수강료는 10만원입니다. 저희 가정에는 비싼 편이지만 선화는 출산 전에 이미 흔쾌히 승낙한 바 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한 날만 학원에서 연습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10월에 학원 가는 날은 22번입니다. 하루 5천원의 수강료인 셈이지요.. 10월의 수강일을 2일 남긴 현재 시점에서 학원에 간 횟수는 18번입니다. 두 번째 학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열심을 내서 학원에 가고 있는 셈입니다. 선화의 출산일 당일과 할아버지의 입원일을 빼고는 어떻게 해서라도 학원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또 그렇게 해 왔습니다. 올해가 지나 사태가 잘 풀려 군복무를 하게 된다면....이후로는 한가롭게 학원에 다닐 시간은 제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열심히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법 많은 리듬을 구사할 수 있고 학원 선생님도 제게 합주를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학원에 갈때는 두 번째 다닐 떄 끝냈던 진도에서 시작했기에 사실 따지고 보면 두 달 동안 수강받은 셈이니까요...하지만 아직 모자란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 배울 시간이 있는 동안 더 배울 생각입니다. 돈은 생길 수 있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클래식 악기에 비해 기타나 드럼을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싸구려 악기라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은 더 쉬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12년간 기타 연주를 해 왔지만 하면 할 수록 더 배울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요즘은 시간을 내어 전기  기타로 애드립 하는 걸 연습해 봅니다.  보통 정성과 노력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가집니다. 전 기타를 스스로 익혔지만 잠시 학원에 다닌 적도 있습니다. 이제 뭘 더 배워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간 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피아노 연주와 같이 기타 연주에 대한 끝었는 실습 강의가 이어지더군요... 한 마디로 끝이 없습니다. 아마 드럼은 더 그럴 것입니다. 기본적인 리듬 외에 수 많은 리듬들을 체득하고 연습하려면 오른쪽 무릎에 많은 무리가 가야 할 겁니다.

주변 환경은 어렵고 복잡해도 전 꿈을 접지 않습니다. 제겐 이루려고 노력하는 꿈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분을 향한 사랑을 드럼을 통해서도 나타내는 것입니다. 꿈 속에서 본 드럼이 이제 현실로 다가와 내 앞에 있습니다. 지금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면...꿈은 실현될 것이기에....오늘도 학원을 향하는 걸음은 희망을 딛고 달려 갑니다.

아주 오래된 사진입니다. 1993년 9월 15일....부산의대 축제 기간에 기독 써클 연합으로 [증인들의 고백] 행사를 마친 후 악기 연주자가 모여 사진 촬영한 것입니다. 박태성, 김원택, 이성훈, 장현희, 홍종철 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