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나우르즈

카자흐스탄의 봄은 카작인의 새해인 '나우르즈' 명절과 함께 시작됩니다. 유목민 카자흐 민족은 태양의 기운이 강해지는 춘분에 맞춰 새해를 시작합니다.  카자흐 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우르즈가 이슬람 명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나우르즈' 명절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3월 21일을 페르시아 양력 새해로 지켰습니다. 이 날에는 새해를 맞는 행사를 열고 악령의 저주를 없애고 새해에도 농사가 잘되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길 간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우르즈' 는 이슬람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고대 근동의 전통 절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투르크-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 이란, 아제르바이잔, 구소련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국 위구르 자치구 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페르시아와 중앙 아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된 후 이슬람 성직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운 이 절기의 원형은 보존하면서 형태는 이슬람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3월 21일, 춘분이지만... 나우르즈 당일에도 집 앞 진입로는 여전히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우리로서도 아스타나가 아닌 알마티에서 맞는 첫 나우르즈 명절입니다.  이번 나우르즈 기간은 5일 연휴였지요. (2002년 아스타나에서의 나우르즈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세요.)

아직도 눈과 얼음이 쌓여 있지만 신기하게도 나우르즈를 맞는 주간부터는 햇살이 강해지고 얼음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나우르즈를 지나면 봄이라고 말들 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나우르즈 주간부터 봄기운이 확연하게 감돌았습니다.

우리 집 앞 도로인 마무슐리는 어제 오후부터 차도를 막고 바리케이트를 설치한 뒤 나우르즈를 축하하기 위한 먹거리 장터, 음악 공연장, 장터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우르즈를 맞아 아내는 다른 여성 사역자 세 사람과 함께 오늘부터 침켄트를 2박 3일간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집을 떠나는 엄마를 배웅할 겸 바깥 구경도 할겸 집 밖을 나섰습니다.  선화와 아이들 뒤로 쓰레기통과 바닥 얼음이 녹아 내리는게 보입니다.

마무슐리 도로는 알마티 서쪽 경계에 위치한 차량 통행이 많은 곳입니다. 아바야와 샬라피나 도로 사이를 이렇게 막아 놓고 그 안에서 나우르즈를 축하하는 거리 행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철통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나우르즈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기원 후 2세기 무렵이지만 약 3,000년 동안 전해 내려온 풍습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나 구소련에선 한때 나우르즈를 금지한 적도 있으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기념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요.  

 BC 588년부터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는 이 나우르즈 명절은 조로아스터교 신전이 있는 아제르바이잔 뿐 아니라 페르시아계 국가들과 중앙 아시아의 대부분의 투르크계 이슬람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로 지켜집니다. 이 명절은 다른 종교나 민속 설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서 다른 민족의 설화, 신화, 전설에도 나우르즈와 유사한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슬람교에서도 나우르즈를 이슬람교의 것으로 이해하고 이슬람적 색채를 입히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새로 칼리프가 임명될 때마다 나우르즈에 맞추어 성대한 임명식을 거행한다거나 나우르즈 명절 의상으로 민속 옷이 아니라 이슬람 종교 의복을 입히려고 시도한 것 등입니다.   

10 여년전 아스타나에서 본 나우르즈 행사는 씨름이나 매 사냥 시범 등 꽤 볼 것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알마티 마무슐리 거리에서 본 야외 행사는 말 그대로 거리 장터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구요.  

카자흐 전통 가옥인 '유르타'를 세워 놓고 음식을 팔거나 각종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목민이었던 카자흐 민족에게 '나우르즈'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 때는 가축이 새끼를 낳는 시기로 우유도 풍성해지고 가축에게 먹일 새로운 대지의 초목들도 새로이 움트는 계절입니다. 이 날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새 옷과 새 모자를 입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선물을 주고 받고 뜻깊은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웃을 방문하며 인간 관계를 독독히 하거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시기도 바로 이 때이고 겨우내 묵은 것들을 다 치우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의미로 각자의 집과 마을을 청소하고 나무를 심어 길목을 단정하게 정돈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우르즈 대표 음식으로 '나우르즈 꼬줴'(말고기와 야채, 국수 등을 넣은 죽)를 일곱가지 식재료를 이용해서 준비합니다.  페르시아 처럼 카자흐스탄에서도 숫자 '7'을 매우 의미있는 숫자로 여기는데 이 때문에 나우르즈 때에는 집집마다 반드시 7명의 손님을 초대한다고 합니다. 나우르즈 꼬줴에 쓰이는 일곱가지 식재료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물(기쁨), 말고기(행운), 소금(지혜), 기름(건강), 밀가루(부귀), 곡물(빠른 성장), 우유(신의 보호) 등입니다.  

카자흐인들에게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나우르즈 꼬줴에도 말고기가 들어가는데 나우르즈 축제에도 말타기 경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 날에도 거리 한쪽에 돈을 받고 노새를 태워주는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날 아내는 알마티를 떠나 기차를 타고 침켄트로 갔는데 그 곳에서 본 나우르즈 축제 모습이 전통 나우르즈 축제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사진 몇 장 올립니다.

이곳이 침켄트 공설운동장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카자흐스인 특유의 용맹성과 말 다루는 솜씨를 볼 수 있는 'kokpar tartu' 라는 말타기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 경기는 일종의 폴로 경기와 유사하지만 경기 분위기는 스텝지역만큼이나 거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장을 뺀 죽은 염소의 몸통을 경기장의 경기자들에게 던지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격렬한 혼전이 벌어지는데 최종적으로 차지한 사람에게 승리가 돌아가는 경기입니다. 이외에도 말타기, '카자흐샤 키레스'라 불리는 레슬링 같은 전통 경기가 나우르즈 때 열립니다.  

경기장 한 쪽에는 역시나 먹거리 판이 벌어집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기름에 튀기는 "삐료쉬끼' 가 보이네요.

남방 유목민들의 전통 음식인 볶음밥 이라 할 수 있는 '쁠롭'도 보입니다.

외국인은 어디에 가서도 표가 나는 법... 선화와 함께 한 친구들은 주변 음식상으로 초청받았습니다. 나우르즈 때는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게 미덕이니까요.

유르타 안으로 초대되어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누게 되지요.  

아내가 유르타 앞에서 카작 아가씨 랑 기념 사진을 찍고 있네요. 침켄트에서의 사역을 위해 2박 3일 동안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저와 아이들은 엄마가 없는 시간을 잘 견뎌내야(?) 했습니다. 침켄트에서의 구체적인 사역 모습은 보안상 공개하기가 어렵지만^^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겨울 추위를 견뎌낸 아이들은 나우르즈에 맞춰 찾아온 봄기운이 반갑기만 합니다.  겨우내 힘들었던 것을 떨쳐 내 버리고 우리도 희망찬 새 봄을 맞습니다.

2012년 3월 말, 나우르즈를 맞는 삼남매의 모습입니다. 아이들 모습에서 봄이 묻어나고 있지요?               2012.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