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리즈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지만... 까작스딴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정은 이번에 또 한 번의 까작스딴 명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22일은 까작스딴 공화국의 주류 민족인 까작인의 명절인 나우리즈였습니다. 나우리즈는 까작어로 "3월" 이라는 단어인데 "설날"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새해는 12월 31일이고 한국인들의 새해가 지난 2월 12일인데 반해 까작인들의 전통 설날은 바로 3월 22일입니다.

3월 22일은 춘분과 비슷한 날짜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점이지요...지난 수백년 동안 초원에서 양을 치며 살던 까작인들로서는 카자흐 초원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땅에서 봄 기운이 돌면서 푸른 초원이 다시 살아나는 이 시점이 그들에게는 진정한 새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t습니다.

까작스딴 공화국 독립 이후 줄곧 러시아인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이곳은 이제 까작인의 전통 명절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다른 민족들도 새로운 봄을 축하하는 명절로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까작스딴은 국가적 공휴일이나 전통 명절이 찾아 오면..거리 곳곳에 오색 깃발을 내 거는 게 풍습인가 봅니다. 나우리즈 에도 어김없이 초록색, 노랑색, 빨강색, 청색의 깃발들이 도로를 따라 세워졌고 나우리즈를 상징하는 독특한 깃발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차들이 지나 다니는 도로 위에도 만국기처럼 나우리즈 깃발을 늘어 뜨려 축제 분위기를 한 껏 돋우고 있습니다.

까작스딴의 수도 아스타나는 국가적 공휴일(명절)을 맞으면 이곳의 중심 광장 안에 대형 야외 무대를 가설하고 각종 장식물을 세우는데 나우리즈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거창했습니다. 이곳에 올라와서 10월의 독립기념일, 12월의 공화국 창립기념일, 1월의 새해 같은 굵직한 쁘라즈닉(명절,공휴일)을 다 겪어 보았지만...나우리즈 만큼 도시가 떠들썩하고 요란한 준비를 하는 건 보지 못했었습니다.

일단 명절이 다가오기 이틀 전부터 ....나우리즈를 위한 행사장 주변의 메인 도로를 다 차단해 버렸습니다. 아바야와 께네사리 거리의 일부가 차단되었는데..이 도로는 이 도심의 가장 핵심 지역으로 저도 자주 왕래하는 곳입니다. 도로를 막다 보니...차들이 다 우회해야 하고 행사 준비 기간 내내...아무 생각없이 그 지역으로 진입했다가 U턴해서 빠져 나오느라 자주 혼이 났습니다.

하지만...도로를 차단하고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확인을 못했습니다....이사 준비로 그 곳에 가 볼 시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인데다...차를 멀리 주차해 두고 일부러 그 곳까지 걸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 제일의 쁘라즈닉(명절)이라는데...한 번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22일 오후...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이 광장은 국회 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까작스딴의 가장 핵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절날 하루 종일...시내의 중심 도로에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또..행사장으로 가는 횡단보도마다...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길을 건너는 게 보였고..아마도 그들은 나우리즈 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가는 듯 해 보였습니다. 광장이 가까운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 차를 주차해 두고 저도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속에 끼여 따라 갔습니다.

바로 이곳이 나우리즈 행사장입니다.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이 국회 의사당이고 오른쪽도 행정부 건물입니다.

이 주변으로 차도가 밀집되어 있는데..이 차도는 며칠전부터 완전 차단되었고.. 시민들이 걸어와 축제 분위기를 한 껏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우리즈 깃발과 오색 깃발이 보이시죠? 행사장 주변에는 여러 개의 야외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한국의 행사장과 마찬가지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까작의 전통 음식 뿐 아니라 아이스크림, 청량음료를 파는 사람들과 파라솔도 도로를 따라 즐비했고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사진사 까지 가세해서 시골 장터 분위기였습니다 .

아스타나 시민들이 다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겨울 내내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던 유모차의 아기들도 엄마와 함께 많이 나왔습니다.

행사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까작인들의 전통 가옥인 유르트의 모습입니다. 옛날 초원에서 양이나 말을 치며 기르던 시절...유목 생활을 하며 지내기에 편리하도록 발전된 가옥 구조인 유르트가 길을 따라 15개 정도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일부는 그 안에서 음식을 팔기도 했고...일부는 내부에 전통 가옥의 형태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이 날 만들어진 유르트는 깨끗한 흰색의 화학 섬유로 만들어진 것이지만...원래 유르트는 양가죽 같은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많은 유르트를 보며 많은 까작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실 민족 공동체로서 까작인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입니다. 그 전까지 중앙 아시아(현재 까작스딴이 있는)는 수 많은 세력의 각축장이었습니다. 4-6세기 경 돌궐 제국을 형성했던 고대 투르크 민족이 8세기 경 중국 당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까작스딴 지역에 유입되었고 이후 여러 투르크계 부족들이 이곳에 봉건 국가를 세웠습니다. 12세기에 들어서는 거란 족이 강해지면서 거란이 이 지역을 통치했고 13세기에는 징기스칸의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5세기 중엽...등장한 우즈벡족과 분리되어 현재의 까작 초원 중부와 남동부로 이동하여 독립적인 유목민 집단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투르크계 부족이 바로 까작인들이고...16세기 중엽 주변 칸국들의 붕괴와 함께 그에 속해 있던 까작인들이 까작 민족 공동체에 합세하면서 까작 공동체는 민족 공동체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1726년 까작은 러시아에 편입을 요청하게 되었고 1731년 수락되어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합병되었습니다.

소비에트에서 독립한 이후..그들만의 공화국을 만들어 살아간지 11년 째...까작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나우리즈 날.. 유르트를 보면서 까작스딴이라는 나라가 자신들에게 주어졌음을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의 관점으로 보더라도...나우리즈를 긍지와 자부심으로 맞고 있는 그들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국가를 올바르게 성장시키고 후세에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 줄 책임이 현재이곳에서 살고 있는 까작인들에게 놓여 있는 셈인데...이곳의 정치, 사회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낙관적 미래를 점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90%에 가까운 이혼율, 상위 1%만을 위한 경제 구조, 극심한 빈부 격차, 뇌물과 부정으로 얼룩진 사회 구조, 까작 우위 정책으로 인한 민족 갈등, 사회 간접 자본보다는 소비재 산업의 급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인의 도덕심이 필요한 시점인데...이곳의 대통령은 바쁜 출근 시간...자신의 자동차를 위해 쌍방향 도로를 다 막는...11년 장기 집권의 정치인이라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어질 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게다가...까작스딴 출범 이후...까작인의 종교인 이슬람교가 러시아인의 종교인 정교회를 누르고 올라서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이곳에서의 영적인 싸움도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최근 까작인과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금지 시키고 신규 종교 기관의 설립을 성인 50명으로 까다롭게 만드는 한 편...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선교활동을 하는 경우 부모 동의서를 받도록 한 새 종교법이 하원과 상원 국회를 통과해서 지난 3월 4일 대통령 싸인만 남기고 있었는데...대통령이 이것을 다시 검토하도록 헌법 위원회에 반려시켰다고 합니다. 아마도...이것이 발효되지 않도록 ...미국 등 서방의 압력이 있었지 않았나...추정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 고비는 넘겼지만...적어도 러시아 수준의 선교활동 억제 조치가 이곳에 내려지리라 생각합니다. ( 공공 기관에서 선교 활동 금지, 신규 교회 설립시 필요한 인원의 상향 조절 등...)

이곳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가난한 까작인을 위해...이곳의 종교, 정치, 사회적 현상을 위해 중보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왼쪽 사진은 이 나라의 전통 놀이인데..우리 나라의 씨름과 유사했습니다. 샅바가 없고..유도나 레슬링 처럼 서로를 잡아 넘기는 방식인데....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과 같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보면서...이 경기의 인기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씨름과 비슷한 걸 보면..투르크계 민족은 몽골족과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며 발전한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몽고 반점을 지니고 태어나는 우리 나라도 이와 유사한 경기인 씨름이 있는데....어쨋든 황인종인 까작인들은 외모 뿐 아니라 문화도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이 보입니다.

이 날 하루 종일..시내 중심 광장은 붐볐습니다.  한국의 명절 때..부산 남포동 거리처럼....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도 새해..그러니까 새로운 봄을 이렇게도 열망하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이제 이곳은 겨울이 끝입니다. 나우리즈도 지났고...영하의 기온도 이젠 없습니다. 물론 5월에도 눈이 온다고 하지만..그런 게 큰 영향을 나타내진 않습니다. 새 봄을 맞는 나우리즈를 맞으며...우리 가정도 지난 겨울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까작스딴에서 처음 보낸 겨울...유난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셔서 따뜻한 남쪽 나라 부산에서 살다 온 우리들의 현지 적응이 쉽도록 해 주신 깊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10세기 경 이슬람 화 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얼어 붙은 마음으로 살았던 그들에게도 영혼의 새 봄이 찾아 오면 좋겠습니다. 그 봄이 찾아 오면...나우리즈에 비길 수 없는 큰 기쁨과 감사에 휩싸이게 될 텐데 말입니다....               200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