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동대의 추억 (2007 카자흐스탄 단기선교여행 후기 4)

이번 단기팀 특징 중 하나는 아스타나에서 사역하시는 여러 선교사님들과 동역하고 다양한 필요들을 섬겼다는 점입니다. 나중에는 사역이 너무 많았다는 반성도 나왔지만 이번 같이 대규모 팀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죠.  

이를 위해 아스타나 1차 진료 기관 중 하나인 데메우 병원에서 이틀간 진료를 했지만 진료 이틀째 날에는 두 개의 별동대(따로 움직이는 팀)를 따로 구성해서 본진과는 별도로 다른 진료 활동들을 펼쳤습니다. 사실 진료보다는 그들을 위로하고 섬기는 일이었죠.

별동대 A 는 오전에 출발해서 교회에서 돕는 몇 몇 어려운 가정들을 방문하고 위로하면서 아스타나의 또 다른 현실을 보도록 했고, 별동대 B 역시 오후에 아스타나 소망교회를 방문해서 진료 활동을 펼치고 열악한 가정을 돌아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한국에서 의료팀이 온다는 소식을 아스타나 선교사 협의회에 전달했을 때 몇 몇 선교사님이 요청하셨던 일이라 짧은 스케줄 가운데서도 꼭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별동대 A :이선화, 권용신, 변진명, 까밀라, 지모피

 별동대 A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지모피, 까밀라와 함께 교회가 돕고 있는 가정들을 방문했습니다.

 첫 가정은 사연이 많은 싸샤 할머니 가정입니다. 제가 아스타나에 살고 있을 적에도 이런 구제 사역 때문에 자주 출입했던 아파트입니다.

 어두운 아파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싸샤 할머니 집이 나옵니다.

 싸샤는 할머니의 손자입니다. 할머니는 아들도 없고 딸마저 2003년에 죽은 터라 젊은 싸샤만 유일한 피붙이었죠. 그런데 그 싸샤가 지난 겨울 자동차 안에서 급사하는 바람에 할머니를 돌봐 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싸샤는 어릴 적부터(2001년부터) 아스타나 장로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똑똑하고 성실한 아이었죠. 가정이 어려워도 할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왔었고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구했고 그 곳에서 인정을 받는 걸 보면서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돈을 벌면서 신앙 생활을 멀리 하기 시작했습니다. 싸샤의 큰 즐거움은 집에 새 가재 도구(TV, 그릇...)를 하나씩 장만해 들여 놓는 것이 되어 버렸죠. 그리고 교회도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싸샤가 최근 자동차 안에서 히터를 틀고 잠을 자다가 영문도 모른 채 참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술을 많이 마셨다는 얘기도 있고...

 

싸샤 사진을 찾아 봤는데 2001년 성탄절 때 교회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있네요. 싸샤 바로 오른쪽이 아스타나 장로교회 김명희 선교사님이시죠.

 싸샤 할머니는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보시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해 교회에 나오기도 어렵지만 전에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왔었기에 선화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화를 보고 무척 반가워 하셨죠. 할머니의 관절통을 위한 몇 가지 약과 파스 보다는 잊지 않고 찾아 온 방문객들이 그 분께 더 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분은 2001년부터 골수염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제가 있을 적에도 항생제를 드리곤 했던 분이죠. 소독 붕대를 갈아 줄 사람도 없고 병원에 데려갈 사람도 없어 늘 저 침대에 누워 계신 분입니다.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침대와 벽면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맞먹는 산유량을 가진 카스피해에서 원유를 퍼 올리고 있는 카자흐스탄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합니다.

 아스타나 시청 종교 담당관은 아스타나에 있는 몇몇 교회에게 도시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 봐 달라고 2001년부터 부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스타나 장로교회도 매달 방문해서 생필품을 전달하고 위로하는 일을 해 오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기적인 도움을 받다 보니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주일 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다음 찾아 간 곳은 정신 장애를 가진 할머니 집입니다. 할머니를 돌보는 며느리도 장애가 있어 가정 전체가 어두움에 눌려 있는 곳이었죠. 아스타나는 매년 100억 달러씩 벌어 들이는 오일 달러로 중앙 아시아의 두바이를 야심차게 건설해 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수 많은 그늘이 존재합니다.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가 팽배해져 가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돈 뿐이고 사회적 약자들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지요. 도박, 마약, 이혼, 가정 파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 넘습니다. 이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입니다. 아스타나 시민의 85%가 카자흐 민족인데 카자흐 족의 복음화 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별동대 A 죠. 아스타나는 아파트 1층을 흔히 상가로 개조합니다. 특히 도로변이라면 대부분 이런 매장으로 사용되지요.

 별동대 A 가 점심을 위해 들른 식당에서 아스타나 장로교회 교인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의 셋째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주방장으로 근무하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는 제가 아스타나에 KOICA 국제협력의사로 있을 때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입니다.

별동대 A 는 본진이 데메우 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동안 이런 특별한 경험을 가졌습니다.

 

 별동대 B :김승열, 신윤영, 권용신, 김명희 선교사님

 오후에 별동대 B는 지난 2003년 아스타나에 세워진 아스타나 소망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잠시 한국에 들어 가신 동안이었지만 현지인 사역자가 진료팀을 맞아 주었습니다.

 응급의학과 김승열 과장님이 교회당을 찾아 온 현지인들을 정성껏 진료했습니다.

 김승열 과장님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15명의 우리 팀원  중 유일하게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이시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번 팀으로 엮어 주신 되에는 그 분의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별동대 B 역시 한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언뜻 보면 아시겠지만 제대로 건물도 갖추지 않은 곳에서 어렵게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아스타나 구석 구석에서 이런 빈민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커튼을 젖히고 내부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육체의 고통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만이 허무와 고통 많은 인생을 생명과 빛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팀원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승열 과장님도 함께 기도하셨죠.

 문 밖에서 무릎에 상처를 가진 꼬마 하나를 만났습니다.

 후시딘 연고를 바르고 전달할 때 아이의 굳은 표정이 밝게 바뀌는 것을 보면서 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 집 앞에 핀 장미꽃입니다. 이곳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손 씻는 장소입니다. 바가지로 물을 길어 통 안에 부으면 아래 뚫린 구멍을 통해 물이 한 줄기로 떨어지므로 손을 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양로원을 방문했습니다.

 1세대 고려인, 주동일 할머니가 계시는 곳입니다.

 주동일 할머니는 할머니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해방 이후 밀어 닥친 사회주의 물결에 관심을 가지고 1946년에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운동과 학문에 전념하던 할머니는 '레닌 기치'라는 고려인 신문사에 들어가 오랫동안 편집 일을 하기도 하셨는데...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끄질오르다에서 한국에서 들어왔다는 선교사를 만나게 되고, 단지 한국에서 왔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선교사님을 열심히 돕다가 신앙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2002년 끄질오르다에서 자식들이 사는 아스타나로 올라 오셨다가 아들의 건강이 좋지 안아 할머니를 모실 수 없게 되자 지금은 양로원에서 지내시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문화 영웅으로 추대된 분이시기도 하지요.  

 할머니는 한국어로 시집을 낼 만큼 한국어를 사랑하고 남다른 조국애를 가지고 계십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얘기는 일전에 홈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잊혀진 이름- 고려인  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지요.  

 할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십니다. "난 아직도 조국 길 가에 핀 민들레 하나 조차도 기억하고 있다구..."  이 고려인들이 있기에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 아시아는 더욱 우리가 품고 섬겨야 할 나라 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별동대 B 는 이렇게 활동을 마치고 본 진에 합류했습니다. 좀 더 많은 팀원이 이런 작지만 가슴 뭉클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번 단기 여행 스케줄 상 허락되지 않은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죠. 풍랑을 뚫고 거라사의 한 광인을 찾아 가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오늘도 아스타나의 한 영혼 한 영혼을 품게 하십니다.                           200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