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군의학교시절을 돌아보며)

지난 2월 24일 선화의 눈물을 뒤로 하고 대전 군의학교에 입소했었습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서....글로 적기엔 너무 많은 사연과 느낌을 간직한 군대생활은 끝이 났고 ...전 지금 서울에서 국제협력의사 국내 직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 동안...군의학교에서 일기형식으로 적은 글들을 우편으로 선화에게 보냈고..선화는 그 글들을 적어 우리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식으로 제 얘기를 전했지만....사진 한 장 없고...빽빽하기만 한 제 글들을 보느라 ... 방문자들이 힘들었겠지요....

제가 떠난 자리를 홀로 지켜야 할 선화의 외로움도 컸습니다. 남편이 없는 학장동 아파트에서 어린 형민이와 함께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지요...선화는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형민이와 함께....여기 저기로 흘러 다녀야 했고.....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학장동의 우리 보금자리를 다듬는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습니다.

선화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는 제가 군의학교에서 보낸 병영 일기를 제대로 홈에 업데이트 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2사단에서 적어 보낸 5주차 까지의 내용만 선화가 홈에 올려 두었고...그  다음에 보낸 저의 병영 일기들은 아예 홈에 올라오지도 않았더군요....오빠의 글을 다시 적어 홈에 올릴 여유조차 없었던 선화의 그 동안의 삶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잠시 군대 생활 8주 동안의 일들을 그림책 보듯이 정리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제가 적은 병영일기를 보시면 됩니다. 제대후 그 동안의 사진들을 모아 여기에 올리면서....기쁘고 슬펐던 지난 일들을 돌아봅니다.

사진은 2월 24일 새벽...부산을 출발하는 입영열차를 타야 할 남편을 위해 전날 밤...아침 도시락을 준비하는 선화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사진 아래의 2월 23일이라는 날짜가 선명합니다.

군대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선화와 8주나 떨어져 있어야 하기에 생기는 착잡한 마음을 못 이기고 있다가.....말없이 김밥을 준비하는 선화를 물끄러미 바라 보다 찍은 사진이지요....

입영 아침...대전에 도착하자마자...동기들과 선화가 싸 준 도시락을 먹고 씩씩하게 군의학교로 들어갔었지요....

입영 이후에 있었던 많은 일들은 내무반에서 제가 적은 병영일기를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군의학교에 입소한 후 첫 2-3주 동안...제가 가진 유일한 즐거움은 그 곳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정리해서 선화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학장동으로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군대에 가 있을 사람의 글이 홈에 올라오는 걸 보며 놀란 분들이 적지 않게 계실 겁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고....혼자 남은 선화는 생후 4개월된 형민이가 6개월까지 자라는 모습을 홀로 지켜 봤겠지요....제가 군대에서 처음 외박을 받아 5주 만에 부산으로 내려 왔을 때...형민이는 검게 탄 제 얼굴을 보고 막 울어 대던군요...아빠를 까맣게 잊고 있더군요.

군에 가기 전에는 엄마 못지 않게 아빠를 좋아 했었는데....제대한 지 2주가 되는 지금까지도...형민이는 아빠보다 엄마를 100배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 품에 안겨 있어도 엄마가 지나가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뻗쳐 엄마를 잡으려고 합니다. 선화의 안경에 손을 뻗치기도 하고....형민이를 안고 선화 뒤로 살며시 가면 어김없이 형민이가 손을 뻗어 선화의 머리카락을 당기는 걸 볼 수 있지요......물론 즐거운 소리를 내지르면서요....어쨋든 군대 가 있는 동안 형민이는 선화와 함께.....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형민이는 많이 자랐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형민이의 새로운 변화를 확인했는데요....형민이를 목욕시킬 때였습니다. 보통 목욕을 시작하면 머리를 감기고...얼굴을 씻고 온 몸을 욕조에 담그게 됩니다. 물론 목욕은 방안에 빨간 목욕용 대야에 물을 받아 하고 있습니다.

온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근 형민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과 발을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물표면으로 내리치면서...물이 온 방안에 튀어 나오자...선화는 놀라 소리를 질렀지요....형민이는 자신의 손으로 물을 치자 물이 얼굴과 주변으로 튀어 오르고 선화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양 손으로 물을 첨벙거리면서 물을 튀기고....양 발도 빨리 휘저어면서 즐거운 소리를 내지르더군요......형민이가 내는 소리는 별 거 아닙니다...."야아아아.....".."이이이....." 뭐 이런 건데.....단어는 없어도 소리를 들으면 형민이의 무드가 얼마나 상승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쨋든 이 녀석이 목욕 시간에 장난 치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어....안방에서 목욕을 시키기가 쉽지 않아 졌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면...방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물을 닦아 내야 하니까요......

형민이가 즐겁게 노는 걸 좀 지켜 보다가....이젠 들어 내야 되겠다 싶어... 형민이를 들어 올렸는데....선화가 그냥 두자고 하더군요...선화는 형민이가 즐겁게 노는 게 좋나 봅니다. 좀 더 형민이가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하고 싶어....온 방안이 물천지가 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더군요....모성애는 참 위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군대에 간 제 생활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15명과 함께 8주 동안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변화였고.....병영일기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군인으로서 받아야 할 제식훈련,총검술,유격훈련,사격술등을 익혀야 했고...장교로서 갖추어야 할 군사지식과 군의관으로 갖추어야 할 의무 병과 지식을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왼쪽 사진은 32사단에 있는 동안 받았던 전술적 행군 훈련시에 내무반 동기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일회용 사진인데도 비교적 잘 나왔더군요....병영일기를 보면 아시겠지만...엄청난 눈이 내렸고 이 눈보라 때문에 행군을 중도에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정말 눈이 떡처럼 커다랗게 떨어지고 있음을 보실 수 있고....M16소총을 들고 있는 늠름한 군인 아저씨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제 모습인데...알아 보실지 모르겠네요....

사실....군사보안 때문에 군대에선 함부로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이 날만은 훈육장교들도 보고서도 말리지 않더군요....더욱 기가 찬 것은 이 날이 3월 30일이라는 사실입니다. 4월이 모레인데도...공주 주변의 산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눈이 많이 내리자...우린 우의를 입고 행군했는데....제대하면서 우의는 반납하고 나왔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지급받은 물품들은 제대할 때 다 가지고 나왔다는데...올해에는 군수사령부에서 우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비를 다시 반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지금 국방부도 구조 조정중입니다. 경상비를 80% 정도(정확하게는 모름)로 삭감하려고 하고 있고 이 때문에 여군학교나 간호사관학교 같은 기관도 폐쇄되고....장교의 숫자도 줄이려고 하고...진급도 잘 시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우의는 병사들은 입지 않는 우의이고(병사들은 판쵸 우의를 지급받습니다.) 모양도 좋아....제대할 때 꼭 가지고 나오려고 했는데....국방 예산이 부족하다는데 할 수 없었습니다. 빨리 국가 경제가 되살아나...군인들도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세월이 흘러갔고...32사단에서의 야전 군사훈련을 다 마치고...검은 얼굴로 첫 외박을 맞아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첫 외박의 글은 여기 에)

당시 선화는 형민이를 안고...부산역으로 마중 나왔습니다. 원택,현국,익진이와 함께 반가운 상봉을 했고...우린 지나가는 총각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맡겨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정말 기념 촬영 좋아하는 무리들이지요?) 사진을 보면 형민이가 제 품에 안겨 있습니다만...사실 형민이는 이 때도 여전히 ...자기를 안고 있는 이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계속 바둥거리면서 엄마에게 가려고 했으니까요.....

형민이는 몰라 보게 자라 있었고....무게도 제법 많이 나가 묵직했습니다. 이제 선화가 혼자 안기에는 무겁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우리의 첫 외박은 이렇게 부산역 광장의 햇살을 맞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형민이를 계속 안고 얼굴 익히기에 들어갔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형민이를 안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란색의 오리 인형과 미키 마우스 모빌을 보여 주곤 했는데...이 날도 어김없이 형민이를 안고...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노랭이(노란색의 오리 인형을 일컫는 말...)를 흔들면서 형민이를 옛날처럼 안고 다녔습니다.

하루가 지나...다시 군의학교로 갈 때 쯤 되니까....형민이가 절 보고 웃더군요...어찌나 반갑던지....웬만한 사람에게 다 웃어 주는 형민이지만....군복을 입은 아빠에게 웃는 형민이의 모습을 보면서...내 맘 속 어딘가로부터 뭔가 찡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의 물결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형민이의 아빠는 저이기 때문이지요...형민이가 아무리 아빠를 잘 못 알아 보더라도 말이죠...

3비가 계속 내리지는 않는 법....부부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힘든 군대 생활 가운데서도...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즐거움도 주셨습니다.

세 번째 외박이 있었던 지난 4월 14일....선화는 대전으로 올라왔습니다. 외박을 이용해서 국제협력의사로 파견되는 부부와 이미 파견을 다녀온 협력의사 부부의 만남이 경기도 이천에 있는 유네스코 청년원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청년원에서는 이번에 국제협력단 봉사단원으로 떠나게 되는 젊은 청년 남녀들이 2달간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린 봉사단원을 만나볼 겸...그리고 협력의사의 경험이 있는 선배 부부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그 곳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 곳에서의 협력의사 부부들과의 만남도 참 좋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저희 홈인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찾아 주셨던 도미니카 공화국 협력의사이셨던 한혁준 선생님과 다른 방문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페루에 가시는 안성균 선생님의 사모님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홈에 와 주셨던 분이지요....그 외...과테말라로 파견이 결정되었을 때...그렇게도 만나고 싶어던 양재영 선생님 부부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이버 공간에서만 만나뵐 수 있었던 분이시지요....귀한 분들과 1박 2일간의 좋은 모임이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만남은 선화와 오랜만에 집 밖에서 가지는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유네스코 청년원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봄의 향연이 정원에서 펼쳐지고 있었지요...붉은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 흰 목련과 벚나무가 활짝 핀 그 곳은 군대 생활에 찌달려 있는 내겐 참으로 큰 휴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 주만 지나면 찾아 올....제대 이후 협력의사의 삶들을 설계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해 주었지요....물론 협력의사로 이국땅에서 지내셨던 경험들을 듣는 그 날 밤의 모임이 우리의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국제협력단의 인력 사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천에서 훈련받고 있는 해외봉사단원 파견 사업이고 또 하나는 국제 협력요원 파견 사업입니다. 국제 협력요원은 다시 국제 협력의사국제 협력 봉사 요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제 협력의사로 파견되는 저희 가정에 비해 봉사단원으로 파견되는 청년들은 월 50만원 정도밖에 안되는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그야말로...봉사정신 하나로 일하는 젊은이들이기에 ...젊은 시절...자신의 청춘을 해외자원봉사로 보내고자 하는 이들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선화와 함께 Korea Overseas Volunteers(한국 해외봉사단) 라고 적힌 푸른색의 휘장이 걸린 현관에서 사진도 찍고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8주간의 군대 생활이었지만...개인적으로는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병영 일기에 적은 대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려고 했었지만...욕심과 인내심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데 너무나도 부족한 내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군의학교 7주차 째에는 협력의사들끼리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이것에 내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

8주째가 되었을 때....웬지..허전하더군요...처음에 군의학교에 입소했을 때가 떠 올려졌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따뜻한 봄기운을 보고 있노라니 더욱 감개 무량해지더군요....입소할 때는 속옷으로 파고드는 눈보라가 그렇게도 춥게 느껴지던 한 겨울이었는데....임관식 예행연습을 하던 그 날 오후는 더운 열기로 인해 1시간도 제대로 서 있기 힘던 날씨였으니까요..... 비록 8주간의 세월이었지만...그렇게도 달라진 날씨처럼....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8주 동안 동고동락한 내무반원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응급 후송을 위해 사용되는 헬기 앞에서 찍은 것이지요....

이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요....지금쯤 전국 각지의 보건지소에 파견되어서 의료 취약 지구의 공공 보건의료를 위해 애쓰고 있겠지요.....

대학병원 레지던트 생활을 하다...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군대에서....8주동안 먹고 자면서 우정을 나눈 이들과의 만남도 소중합니다. 홍준기 선생님이 방명록에 방문하셨던데...저희 내무반 CUG에 들어가 소식을 전하고 카쟈흐스탄의 생활과 우리 홈페이지 소개도 할 생각입니다.

살려야 한다 라는 글귀가 뚜렷한 군의학교의 조형물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우리를 지도한 한승태 대위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4소대 훈육장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우릴 잘 인도해 주었습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제 모습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군의학교에서 새로운 훈련생들을 받아 "조국은 순수하다..." 를 되뇌이고 있을 늠름한 모습을 떠 올려 봅니다.  

대한민국 남자이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군대생활....현역 군의관 생활을 하지 않기에...8주간의 훈련으로 마감해야 하는 군 생활이였지만...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었음을 다시 한 번 얘기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군대가서 느낀 건...'남자는 꼭 군대에 가야 한다' 는 것입니다. 군대는 총 쏘는 법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더군요...각종 정신 교육과 내무 생활을 통해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동체와 국가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더군요....혹시 군대를 가야 하는지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적어도 8주간의 군대 생활은 꼭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