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박(3/31-4/1)

기상이 6시인데도 부산으로 간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5시 반에 눈을 떴다. 자는 동료들이 깨지 않게 살며시 내무실 문을 열고 세면장으로 가 얼굴에 물을 적시고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주 동안 너무나 검게 그을려 버린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나간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옛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첫 외박...군의학교에 입소한 지 35일째가 되어서야 부산으로 가는 차표를 얻는 셈이다. 아침 식사 후 서둘러 내무반 청소를 하고 막사 옆에서 휴가 신고를 한 뒤 유성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터질 듯한 기쁨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집을 그려 보았다.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형민이...그리고 부모님, 가족들..어쩌면 내 삶은 이들 속에서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 월급을 찾지 못해 국민은행에 들러 예금을 찾아야 했다. (난 군의학교에 들어올 때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민은행을 어렵게 찾아 통장과 출금전표를 내미니 은행원이 내 얼굴과 통장을 보면서 사인으로 개설된 통장이므로 본인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증을 보여 줬더니 주민증의 내 사진과 지금의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본인 맞으시죠?" 묻고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다가 현금을 세기 시작했다.

본인이 맞냐는 물음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멍하게 현금 세는 기계만 바라보다 은행문을 나서며 드는 생각은 열심히 나라를 지키다 검게 그을린 나이 든 군인에 대한 은행원의 쌀쌀함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새로 찾은 돈으로 선화 선물도 마련하고 빌렸던 돈도 갚고 만두집에서 끼니를 해결한 뒤 부산행 새마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야...빨리 달려서 부산에 데려다 주렴.' ....부산에 도착한 뒤 할 일들을 순서대로 정하는 즐거움에 잠긴 채 창 밖으로 지나가는 들판과 나무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했다. 5주만의 귀향인데도 마치 50년간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14시 20분 부산 도착...전화로 이미 도착 시간을 알렸고 선화는 부산역으로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열차가 부산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우린 2층 출구쪽으로 걸어 나갔다. '선화를 보면 안아 줘야지...' 일부러 일행보다 뒤쳐져서 선화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출구로 나갔는데...선화가 보이질 않았다.

다른 일행은 내일 표를 구하기 위해  역  구내로 들어갔지만 난 계속 입구에 서서 몇 번이나 두리번거리며 선화를 찾았다. 핸드폰도 받질 않았다.

'어디 갔을까...' 약간의 실망감이 생기려고 할 즈음....."오빠......" 선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앞에..내 눈 앞에...형민이를 안고 웃으며 서 있는 선화의 모습이 보였다. 새로 했다는 셋팅 파마에다 내가 좋아하는 짙은 회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선화야......."

5주 동안 11번의 편지를 보냈지만 1번 보는 것만 못하다. 대합실 입구에서 군복을 입은 채 선화를 안아 주고는 형민이를 들여다 보았다. 5주 사이에 형민이는 많이 자라 있었고 머리도 스포츠 형으로 깎여 있어서 내 모습이랑 더 닮아 보였다.

"형민아...아빠다...."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 거리던 형민이는 검은 얼굴에 전투모를 쓰고 시퍼런 군복을 입고 나타난 낯선 사람이 무서운 울려고 한다. 아빠를 잊었나 보다...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5주가 지나는 동안 아빠의 존재를 잊은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형민이를 안고 ....역내로 들어가서 현국,원택,익진이에게 우리 가정의 해후를 보여 주고 인사를 나누었다.  검게 그을린 모두의 모습을 본 선화는 "너무 고생했다...." 는 말만 되풀이 했다.

선화와 형민이랑 택시를 타고 본가인 부민동으로 가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는 오늘 아침에 병석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외가인 왜관에 가시는 바람에 뵙질 못했지만 전화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날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를 뵈려고 오랜 만에 나의 차 '엑셀'에 올랐다. 군화로 운전하려니 처음엔 약간 어색했지만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김해까지 가는 동안 옛 감각을 쉽게 회복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파견될 과테말라 지도를 돋보기를 사용해 가며 크게 그리시고는 벽에 붙여 놓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존재가 큰 즐거움이시고 나 역시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군복 차림으로 토요일 늦게까지 환자를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이제 어려운 고비를 다 넘겼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린 뒤 가져간 딸기를 함께 먹고 물러 나왔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빌면서....

부민동으로 돌아왔을 때 선화는 닭으로 만든 계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이 음식은 우리 집 특유의 음식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기도하다. 어머니 솜씨가 단연 최고이지만 선화도 이제 손 맛을 닮아가고 있다.

저녁 8시경...학장동으로 돌아왔다. 선화도 그 동안 학장동 우리 집에 자주 못 왔었다고 한다. 선화도 그 동안 학장도 우리 집에 자주 못 왔다고 한다. 전처럼 난 형민이를 안고 선화는 내가 가져 온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그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ㅇ르 서로 터 놓았다. 우린 그 동안의 가계부도 점검하고 협력의사 정보도 공유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그 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내가 익숙하고 날 잘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먹고 잘 수 있다는 것....참으로 소중한 행복임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튿날, 주일 오전 예배는 우리 아파트 뒤에 위치한 구덕산 교회에서 드렸다. 무엇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다가 어차피 임관전까지는 협력의사 부부 동반 모임이 경기도 이천에서 계획되어 있는 등...교회에 계속 나갈 수 없는 형편이라 이번 주는 가까운 곳에서 예배 드리기로 했다.

예배 드린 후 대전을 출발하기 전...선화와 비빔밥을 먹고 군의학교 가지고 들어갈 물건을 챙겼다.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를 위해 "가장 쉬운 스페인어 첫 걸음','오성식 생활영어 SOS 영어 테이프','EBS영어교재' 그리고 컴퓨터 서적 "photoshop 6.0"도 챙겼다.

오후 3시 10분...무궁화 호 열차를 타고 다시 군의학교로 향하는 내 맘은 이제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매주 외박도 나갈 수 있고  외국어 공부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등 ...한결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한 번의 외박은 세상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