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주년 기념일을 보내면서.....

지난 10월 16일은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저희와 함께 교제하던 공동체 내에서 많은 새로운 커플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지만...2년 전 우리에게도...그와 같은 결혼식의 흥분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첫 번 째 결혼 기념일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었습니다....왜냐하면 바로 열흘 전(10월 5일)...형민이가 태어났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화는 몸조리한다고 친정에 가 있었고...밖으로 나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그 날은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김해로 달려간 날이었고...응급내시경을 통해 할아버지가 위암이라는 추정 진단을 갖게 한 날이었습니다. 온 집안이 침통해 있을 때...우리의 결혼 기념일은 그냥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할아버지가 입원하신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선화가 왔었지만...일찍 돌려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두 번째 기념일은 아주 잘 챙겨야지....' 라구요.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나갔습니다. 단 1년이 흘렀지만.....장소는 한국이 아니라 까작스딴으로 변했고 조연급 배우인 형민이가 활약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타지에서 두 번째 기념일을 맞고 보니...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부어 주시는 축복과 은혜가 너무 큰 것을 봅니다. 사실...제 자신을 놓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은혜를 받을 만한 구석이 없는데...어떻게 이렇게 값 없이 부어 주시는지.....사실  우린..이곳에 와서 분에 넘치는 좋은 대접도 많이 받고 있고...물질적으로도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과거에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생각지 않았는데도...선교지에서 교회를 돕게 하시고 ...이 땅에 대한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참으로 그 대상이 어떠한지에 관계없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또 형민이가 자라면서 걷고.."엄마..엄마...아빠..아빠..."를 외치며 거실 이쪽 저쪽을 뛰어 다니는 걸 보면서...우리의 결혼생활 2년은 너무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음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약속하고 시작한 결혼 생활인데...살림도 많이 늘고..생활도 안정이 되었고...돌이 지난 형민이까지 우리 생활에 들어 왔습니다. 어느 덧..변해 버린 내 주변을 돌아보면...불과 2-3년 전의 일들이 까맣게 멀어 보이고 지난 2년 동안 아주 머나 먼 길을 여행한 것 같은 느낌이 찾아 듭니다.

인생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 보지만....불과 2년만에 느끼는 감상이 이러할 진대...7-8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어떤 맘이 들지...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마...야곱의 고백처럼 '내 나그네 인생길이....." 라고 중얼거리겠지요....

그래도 제대로 기념일을 챙겨 보자는 생각에 아스타나의 멋진 음식점을 알아 보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한국식당 '즈벡졸리'는 비싸기만 하고 맛이 별로 없고...다른 레스토랑도 현지 수준을 벗어 나질 못해... 우린...이 도시 최고의 호텔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3층의 레스토랑을 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스타나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모습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아스타나 최고의 호텔입니다. 그래서 알마티의 앙카라 호텔이나  하얏트 호텔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인테리어와 서비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스타나를 방문하는 외국의 VIP들을 주로 맞기 위해 정책적으로 건립한 호텔로 보이는데...호텔 입구에 내걸린 국기 중에는 태극기도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어서...이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저 곳에 한 번 들어가 봐야 되는데...란 생각을 품고 지나다니는 는 곳입니다....

 누군가로부터...그곳 3층에 '유라시아'라는 양식 레스토랑이 있다고 들었고...결혼 기념일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그 곳에 가 보기로 한 거지요..

사진은 낮에 촬영한 거지만...사실 밤에 호텔로 갔었습니다. 밤에 촬영해 봤자...깜깜하기만 할 뿐이니까요...사실...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소개하자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는 글이니까요..

호텔은 겉보기와 달리 내부가 아주 크고 화려했으며...극소수를 위한 시설이겠지만....다른 나라의 어떤 손님을 맞더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까작스딴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는 어떤 건물이든지..건 물 입구 쪽에 외투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연장이나 큰 식당, 도서관, 수영장, 미술관...어디를 가더라도...건물에 들어서면 한쪽 편에...외투를 보관하기 위한 특별한 장소가 있고 그 곳에는 옷을 보관하는 가구와 관리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턴콘티넨탈 3층의 입구에서

호텔 로비에서부터 안내 서비스를 받으며 옷을 맡기고 난 뒤...우린 레스토랑을 찾아 갔고..그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보통 결혼 기념일에는 아기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둘 만의 오븟한 시간을 가진다는데...우린 그럴 형편이 안됩니다.

형민이는 새로 발견한 큼직한 놀이터가 아주 마음에 드나 봅니다.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테이블을 방문하며..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상대방의 인사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형민이와 함께..이렇게 멋진 곳에 왔으니....형민이로 인한 불편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선화가 말하듯이...형민이가 함께 있고난 뒤로부턴... ..고상하게 앉아서 식사하는 건 이미 물 건너 가 버렸으니... 형민이가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밥 먹다 말고..형민이 손에 이끌려 레스토랑 입구에 서 있어도 별로 불만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닭고기 수프, 닭 날개 구이, 연어 스테이크, 비프 스테이크를 주문해서...형민이랑 선화랑 나눠 먹었습니다. 음식은 많이 주더군요...굳이 닭날개를 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가실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결혼 기념일은 그냥 이렇게 부부가 멋있는 곳에 가서 식사만 하면 되는 날은 아니겠지요? 그동안 지내온 결혼 생활을 되돌아 보며..반성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날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우린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구요? 형민이 때문이지요...형민이가 두 사람이 동시에 식탁에 앉아 있는 걸 그냥 못 봅니다...그저 한 사람이라도 끌고 내려와서...다른 사람들의 식탁에 무슨 음식이 놓여 있는 지 확인해야 되기 때문입니다...그리고...레스토랑 입구에 있는 계단에 가서...오르락 내리락을 해 봐야 속이 시원해지니까요....

 결혼 2주년...사실 결혼 1주년째와는 좀 다른 변화가 있습니다. 나중에 마음의 글의 '결혼 이야기'를 클릭해 보시면...2000년 11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우리가 적었던 our story의 내용들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저도 어제 그 글들을 다시 자세히 읽어 보았는데요....2000년 11월 ...그러니까...1년 전에 글들을 보면...비록 형민이의 출산이라는 사건이 있긴 했어도...확실히 선화의 글이나 제 글에는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알콩달콩한 참기름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런데...2001년 10월...현재..우리의 our story에는 그런 소프트한 솜사탕 같은 글은 별로 없더군요...그저..형민이 보는 게 어렵느니..오늘은 형민이가 뭘 했다느니...전쟁이 날 것 같다느니...뭐 이런 얘기만 늘어 놓았습니다. 형민이을 기르면서...우리의 감정에도 약간의 변화가 왔나 봅니다.

또 하나...마음의 글의 '결혼 이야기'를 클릭해 보시면....선화와 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연애시절부터...결혼 00일째 이야기...식의 이야기들로 결혼 후 1년 간은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그 연속되는 글들은 2000년 12월 21일에서 끝이 나고...한 참 지난 2001년 5월에 올린 글 이후로는 아무런 글도 올라와 있지 않은 걸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2001년 정초부터...전문의 시험에..군의학교 입소에..협력의사 훈련에...까작스딴에 오는 과정으로 인해...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대해 차근차근 적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다른 굵직한 사건들에 밀려서 제대로 글을 쓸 수가 없었던 게 주된 이유겠지만...그래도...결혼 후 1년간...물밀 듯 올라오던 그 많은 결혼 이야기들이 현저하게 줄어든 건...예사롭게 보이진 않더군요...

레스토랑 '유라시아' 입구에서 손님들을 쳐다보는 형민이...

또....그런 객관적 지표 말고도...주관적으로 두 사람이 느끼는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결혼 1년째에는 제가 병원에서 레지던트 근무한다고..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생활의 연속이었고...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짧았습니다. 그래서 둘이 다툴 여유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지요...

그런데..결혼 2년째... 병원을 나오게 되고  까작스딴에서 선화, 형민이만 데리고 이렇게 딱 떨어져 나와 살게 되니...선화와 저...두 사람은 하루에도 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저녁에 집에 와서..한 몇 시간 정도밖에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는데....지금은 오전의 병원 근무가 끝난 다음...오후에는 늘 선화와 함께 있고..저녁에도 선화와 함께...밤에도 선화와 함께 있게 되니...아무래도...두 사람이 더욱 서로에 대해 잘 알 게 되고..더 많은 것을 서로에게 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나쁜 습관..그리고 싫어하는 것까지도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지요. (참고로...까작스딴은 외래 병원의 의사들은 오전이나 오후만 근무합니다....아스타나에 유일한 한국인 의사로 근무하는 저도...이 나라의 관습에 맞추어 오전에만 근무하고 오후부터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좋지요?)

이렇게 함께 있다보니...협력의사 임기를 마친 다른 선생님들 가정의 고백들처럼(파견 전...함께 모임을 가졌었습니다.).....정말...이 기간이 다시 오지 않는 황금 시간들이라는 걸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그래서 이런 여유가 너무 믿기지 않아 불안할 때가 있어서....한번씩 서로에게..."우리 나중에 한국가면..다시 옛날 처럼 정신없는 생활을 하겠지?" "아...생각하기도 싫어라...."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반면...그만큼..첨예한 대립...아니...섭섭한 감정이 더 자주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에 우린 냉동고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겨울 김장을 앞두고 김치를 더욱 맛있게 먹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베란다에 내 놓으면..계속 영하의 날씨이긴 해도...온도 차에 의해 미세한 변화 때문에 김치 맛이 없어진다는 주변 분들의 얘기를 듣고 결정한 사실이지요...

그래서 함께 냉동고를 사러..기분좋게 나갔습니다...그런데..들어올 때는 두 사람이 모두 기분이 나빠서 들어왔습니다...왜냐구요? 두 사람의 구매 습관의 차이가 다시 한 번 충돌했기 때문입니다...제가 이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전...물건을 살 때....몇 가지를 그냥 지나가며...보고 난 뒤...약간의 생각을 거친 뒤...바로 결정합니다. 물건이란게 다 뻔하기 때문에...그런 일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실제로 제가 물건을 제대로 잘 못 고르기 때문에 만들어진 저의 독특한 패턴입니다.

그런데...선화는 그게 아니거든요...선화는 살 생각이 없어도 제게 의견을 물어 보고...이것을 살 것처럼...다가가서 다 열어보고 두드려 보고 난 뒤에도...또 다른 쪽으로 옮겨서 다른 물건을 물어 봅니다...그걸 느긋하게 보고 있으면...아무 문제가 없는데...전...그렇게 물건을 결정하는데 오래 걸리는 걸...잘 못 참습니다...한 마디를 꼭 하고 말지요..."이게..좋네...그냥 이거 사자...." 이러다가...그렇게 하지 않으면....."뭐...내 생각은 얘기했으니.....네가 결정해라...." 하고 가만히 서 있지요...

선화는...대부분의 여성들처럼...함께 상의하고..이것 저것 물어보고...쇼핑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물건을 사는 걸 원하는데...전..그게 아니라...'이 정도면 되니까...이거 하자....' 식의 구매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선화의 쇼핑 패턴에 쉽게 피곤해져 버립니다. 피곤하면 지치고..지치면...기분이 안 좋아지지요.....결혼 이후....선화와 주로 부딪히는 대부분의 일이 바로 이 '물건사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물건을 사는 건...기분 좋은 일인데...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다는 건..우리 부부에게 참 큰 문제거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 글을 보시면...."얘들 참 웃기네...이거 완전 사랑 싸움아냐?" 라고 말하실지 모르겠지만....이런 사소한 것들이 두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가 먹고 있는 것을 잘 권하는 형민이...

인터콘티넨탈 호텔 이야기 할 때만 해도...글의 분위기가 좋았는데...어쩌다 보니...약간 우울해 졌습니다...결혼 2주년...우린 한국도 아니고 까작스딴에서 살고 있으면서...서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안겨 주며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형민이를 돌보는 데 너무 지쳐...두 사람이 힘들어 한 적도 있었고...지금처럼...'물건 사기' 관련 마귀에 걸려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우린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긍휼을 내리셔서 많은 축복을 주셨음을 잘 알고 있고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우리에게 닥치는 미세한 섭섭한 감정들과 나쁜 감정들은...우리의 감사를 무디게 하려는 ...옛날부터 믿는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악한 영들에 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그 영들이 우리의 습관이나 본성을 교묘하게 이용해...우리의 열심이나 하나님을 향한 감정들을 교란시키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이 선교 현장이기에...우리가 가지는 서로에 대한 섭섭한 생각은 바로 우리의 여러 가지 활동을 위축시키기에...교회에서 섬기고...교회 일을 하는데 있어서...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임을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결혼 2주년에 드는 생각들을 주저리 늘어 놓았습니다. 오늘도...한국에서는 새로운 결혼식이 어디서 열린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새로운 결혼식....새로운 부부가 탄생하는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하지만 그 축하의 마음 뒷 편에는...앞으로 다가 올 수많은 도전과 과제들을 부디 잘 해결하길 바라는 간곡한 염려가 고개를 내 밀고 있습니다.

결혼 2주년...우린...크리스챤 가정에 밀어 닥치는 수 많은 풍랑 속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한 번...두 번...시련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다 보면...어느 덧 잔잔한 물결을 만날 수 있겠지요....우리 모두의 항해를 위해...함께 기도해야 겠습니다.  200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