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이의 첫 번째 생일

 드디어 형민이의 첫 번째 생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하니 참으로 하나님께서 지난 일년간 형민이를 눈동자처럼 지키심에 대한 감사를 먼저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차 얘기드린 대로 아기를 기른다는 것은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일년동안 침대에서의 추락과 헛디딤과 발열 그리고 수차례의 비행기 여행, 낯선 땅의 기온차...이 모든 것들 속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형민이의 돌잔치는 이곳 아스타나의 한인들을 모두 초대해서 함께 축하하는 시간으로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아스타나의 한인들이 거의 다 초청되었는데 주로 목사님과 선교사님 가정들을 초대하였고 아직 만나 뵙지 못했던 분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올라오기 전에 아스타나의 한인사회에 대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아스타나에 5-6가구가 살고 있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슴이 아픈데 거기에 따라 붙는 이야기가 더욱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하곤 했습니다. 그건 아스타나의 한인 5-6가구의 대부분이 선교사 가정이라는 사실이었지요...그래서 제가 아스타나에 올라올 때 많은 분들이 아스타나의 한인사회의 '평안의 전도사'가 되길 바라는 분들이 많이 계셨고 저 역시 그런 다짐을 하고 이 곳으로 올라왔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이곳에 있는 네 분의 목사님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고 계셨고 여러 이유로 서로간의 앙금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이쪽 교회에서 통역으로 일하던 분이 다른 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전 교회는 자기 교회의 일군을 뺏어 갔다고 생각하고... 후발 교회들은 먼저 정착한 교회에서 자신들의 교회의 성장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음을 섭섭하게 생각하고...서로의 신학적 노선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서로의 활동에 의도적으로 무관심으로 대응하게 되고 이로 인한 오해들이 새로운 오해들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상황에 대해 안타까와 하고...기도하면서 화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하고 계셨다고 제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습니다. 섬기고 현지인들을 사랑하는 맘으로 이곳으로 온 선교사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 이율배반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전...교역자로 이곳에 파송된 것이 아니라 전문인 사역자로 왔기에 중간자의 입장으로 목사님들간의 만남을 주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전 형민이 돌잔치를 이런 일을 이루는 방편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어쨋든 형민이의 돌잔치는 형민이 개인에게도 복된 일이고 아스타나의 한인 사역자들에게도 복이 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되었고...이를 위해 선화와 전...장도 보고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도 했습니다. (물론 전 형민이 보는 게 일이지만)...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실 것 같아 저희 아파트 일층에 있는 레스토랑인 "싸샤"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하고 그곳을 4시간 동안 빌리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손님을 초청하기로 했으면 음식을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데 한국 음식을 할 수 있는 재료들이 전혀 없는 이국에서 형민이의 돌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린 3일 전에 잔치 메뉴를 짜 보았습니다. 선화가 자신있어 하는 요리가 먼저 고려 대상이었습니다.

탕수육, 닭찜, 잡채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엿질금으로 감주(단술)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김치가 없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3일전 장볼 때 쩬뜨랄리 바자르에서 배추 한 개가 나와 있는 것을 목격하고 "여호와 이레"를 외치며 사 가지고 와... 그 배추 하나로 이 날 먹을 김치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김밥, 멸치와 새우 볶음, 미역국, 숙주나물 무침 이것이 우리가 준비한 음식의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 아스타나 장로교회 사모님이 집에 있는 찹쌀가루로 떡을 만들어 오셨고 약밥도 가져 오셨습니다. 아스타나에 살던 사람은 물론이고 알마티에서도 먹기 힘든 음식인데...너무 감사했습니다. 성결교회의 손귀목 목사님 댁에서는 송편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빌린 레스토랑인 싸샤에서 커틀렛과 스테이크를 10개씩 주문했는데 음식을 시키지 않으면 장소를 제공할 수 없다기에 어쩔 수 없이 부탁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있어서 더욱 식탁이 풍성했습니다. 그리고 케잌 4개, 포도,바나나, 사과 등의 과일, 음료수, 차이 ....이런 것들이 형민이 돌잔치에 마련된 음식입니다.

형민이 돌잔치에 오신 분들은 아스타나의 교회 사역자들입니다. 나사렛 성결교회의 박유석 목사님 내외분, 성결교회 손귀목 목사님 내외분과 자제분 3명, 장로교회 김명희 목사님 내외분과 자제 2분, 그리고 아스타나의 외곽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지미 박 목사님, 그리고 UBF 자비량 선교사이신 변찬석 선교사님과 자제 1분, 저의 개인 통역 아주머니와 아들, 장로교회 통역이신 문선생님과 원박사님, 그리고 아스타나의 코이카 한국어 단원 신미향 선생님과 가라간다의 코이카 한국어 단원 김성은 선생님, 장로교회 목사님 아들의 교육을 위해 와 있는 IVF 출신의 이기형 선생님....그리고 저희 부부와 형민이가 이날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24명이었습니다. 아스타나에 있는 선교사들은 모두 모인 셈입니다. 제가 생각하던 대로...코이카에서 파견한 의사가 주선한 자리이기에 모두가 큰 부담없이 참석하실 수 있었고...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분들이 서로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입니다. 아스타나에 있는 한인들은 식당을 경영하시는 한 가구를 빼 놓고는 다 모인 자리였습니다.

저희 부부를 도와 이 모임을 도우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특히 이기형 선생님은 캠코더 촬영과 사진 촬영을 도맡아 주셨고 신미향 선생님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차리는 것을 도와 주셨습니다. 아래 사진들을 보시면 한국에서 또 알마티에서 형민이 돌잔치를 참석하지 못한 분들에게 대략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1부 예배는 장로교회 목사님의 인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전 가끔 '목사님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의 분위기가 딱딱하고 서먹할까...' 라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날 1부 예배의 분위기도 그렇더군요..오랜 만에 만나는 자리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어색하고 쑥쑥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서 형민이의 돌을 축하하는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2부는 형민이의 돌을 축하하는 케잌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케잌에 초를 하나 꽂아 놓고 형민이와 선화..그리고 제가 불어 끄고 난 다음...형민이의 돌을 축하하기 위해 선화와 제가 반주없이 특별한 찬양을 드렸습니다. 바로 축복송의 2절입니다. 1절은 어린 형민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2절을 생각했습니다. "너는 택한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사실 돌잔치가 시작되기 전....식당 '싸샤' 앞 큰 도로에서 20분간 찬 바람을 쐬면서 장소를 모르는 분들을 맞기 위해 기다리면서...어떤 찬양을 할까 계속 생각한 끝에 결정한 찬양입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에서.... 이제 곧 형민이의 돌잔치가 시작되는데...제 마음도 흥분이 되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제 마음에서 작은 형민이에게 자꾸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 길가에서 축복송을 몇 번이고 계속 불렀지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 보든 말든 ....저 혼자 열심히 불러댔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도 이날에 딱 어울리는 찬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러다가 지금 이시간 케잌의 불을 끄고 난 뒤...선화와 함께 축복송 2절을 다시 부르고 싶어 선화에게 제안하게 되었습니다....이 때는 정말 자식을 축복하고 싶어했던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조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축복이 샘솟아 올랐습니다.

 이 날...저희 가정을 처음 보신 목사님들도 계셨지만...모두들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모두들 축하의 카드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오셨고 옷을 준비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3부 식사 시간이 이어지면서...서먹서먹 하던 분위기는 이내 부드러운 즐거운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먹는 게 최고입니다. 전...식사가 시작되자 ...제 자리에서 벗어나서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여러 목사님들 옆에 앉아 사역에 대해 물어 보기도 하고 앞으로 진료실을 많이 이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또. 목사님들이 하고 계시는 사역지도 기회가 되는대로 방문하고 싶다는 얘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들끼리도 ...그동안의 안부를 물어 보시면서....서로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이 날, 두 목사님간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었던 장로교회 통역 문선생님이 장로교회를 그만 두는 것이 결정된 후라....오히려 이 사실이 통역을 두고..갈등을 빚었던 두 분의 관계를 개선하고...이전처럼 가깝게 지내기로 얘기할 수 있게 만든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임이 마치고 난 뒤 두 목사님 중 한 분이 제게 이번 모임으로 인해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하기로 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스타나 근교에서 외롭게 사역하시는 지미 박 목사님은 부인도 없이 혼자서 사역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돌잔치가 마치고 난 뒤...드시라고 떡을 조금 싸서 드렸더니....제 손을 갑자기 끄시면서...형민이를 붙잡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제 손을 꼭잡고 기도하시는데...정말 마음을 다해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면서..."이 선생님이 이곳에 평화의 사도로 오셨군요...."라고 얘기하시고..집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저희 집으로 전화를 거셔서 좋은 계기를 만든 데에 대한 감사를 표해 주셨습니다. 전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아 참 기뻤습니다.

성결교회의 손목사님 가정엔 형민이와 놀 만한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이제 아스타나에는 형민이와 놀아줄 아기가 없다는 고민을 떨쳐 버리고 손목사님 댁을 자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손목사님은 형민이가 심심해 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형민이와 함께 놀 수 있는 특별한 수영장을 추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UBF의 변선교사님과도 학생사역에 대한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앞으로 모임에도 가 보고 집에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모두들...아스타나 한인협회 총무를 제가 하면 되겠다고 말씀하시며...설날이나 추석같은 때는 함께 모여 윷놀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그 말을 들으면서...하나님께 참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형민이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된다면...아스타나의 선교사역을 조각조각 내려는 악한 마귀의 궤계를 떨칠 수 있는 중요한 무기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축복하는 자리였습니다. 모임은 6시에 시작해서 8시 반 정도 되어 마쳤습니다. 토요일 밤이라...모두가 다음 날이 주일이라는 부담이 있었지만...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셨고...마치는 것이 아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형민이의 돌잔치는 한인들을 초청하는 자리였고...그 다음날인 오늘....교회에서는 현지인들과 함께 형민이의 돌을 축하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교회에서 항상 점심을 함께 하는데...이번 주는 저희 가정에서 케잌을 준비해서 차이와 함께 성도들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시 초 하나짜리 케잌의 불을 껐고...목사님의 축복과 시인인 까작 아주머니의 즉석 시낭송 그리고...음악대학에 다니는 아냐의 기타와 노래가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기타와 노래 실력은 대단했습니다. 조용한 미술관(예배당인 거 아시죠?)에 울려 퍼지는 형민이를 축하하는 노래에 우린 형민이야말로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렇게 까작인과 러시아인...그리고 고려인의 축복을 받으며 교회에서 돌을 보내게 되니까 말입니다.

 지난 일년은 참 길게 느껴집니다. 형민이가 어려움 속에서 출산하게 되고....그 후 2시간 마다 젖병을 소독해서 분유를 먹여야 했던 시절...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때...싱긋이 웃는 걸 보며...형민이가 웃는다고 좋아하던 시절....군의학교에 입소하기 전에 형민이를 안고 보냈던 크리스마스....7개월 째 이곳 까작스딴으로 왔고...낯을 가리는 형민이를 데리고 다니며 힘들어 했던 나날들....그리고 걷기 시작하면서 엄마, 아빠의 손을 끌면서 다닐 때의 신기함....그리고 이제 형민이는 자기 혼자서도 집안에서 이곳 저곳 다니는 지금의 모습까지....

일전에 선화가 our story에 적었듯이...요즘은 우리가 형민이를 찾으러 다닙니다. 예전에는 어딜 가려면 우리 손을 잡아 끌곤 했는데..돌이 되기 일주일 전...그러니까..한국에 들어갔다 온 후로는....말도 없이 슬며시....걸어가기 시작하고...옆에 있다가도 어느 새 없어진 걸 발견해서..."형민아, 형민아...." 불러대면서 집안 이곳 저곳을 다니며 형민이를 찾아야 하지요...가 보면 바닥에 죽어 있는 벌레를 만지작 거리든지...털실 같은 것을 입에 넣든지...벽에 붙은 물건들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형민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손을 잡지 않고...항상 형민이를 쫓아 다녀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그래도 모든 곳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기에...요즘 우리 부부는 아주 행복합니다. 몸도 지치지 않고...이젠 형민이와 의사소통도 훨씬 잘 되어서...정말 세 식구가 사는 것 같아...너무 좋습니다.

전 가끔 마음의 글의 '형민이 이야기'를 들여다 봅니다. 지난 날...제가 형민이와 살면서 적은 글과 형민이의 어린 모습을 보며 흐믓한 웃음을 짓곤 합니다..어떻게 이 조그만 것이 이렇게 자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도 자상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형민이의 아장아장 걷는 걸음에서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는 그 분의 큰 사랑을 느껴 봅니다.

다시 한 번 형민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형민이의 돌을 축복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