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아스타나에 무사히 정착하라!

1998년 이곳 아스타나가 수도가 되긴 했지만...대부분의 대사관은 이전 수도인 알마티에 그대로 있습니다. 물론 까작스딴 한국 대사관도 알마티에 있지요..아스타나에는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그 어떤 인력도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아스타나의 자연환경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하고 싶어합니다.....몇 년 전 아스타나에 봉사단원이 파견된 적이 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알마티로 내려 갔고 결국 계속 파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야 말로 아스타나는 한국 국제 협력단 뿐만 아니라...대부분의 한인 사회에서도 미개척의 땅으로 남아 있는 게 현실입니다. 몇 분의 선교사님만 와 계시니 그렇게 부를 만 합니다.

바로...이 땅에 선화와 형민이..그리고 저..이렇게 세 사람은 와 있습니다. 그것도 유일하게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인력으로 말입니다...따라서...우리들의 아스타나 생활에 있어서 지상 과제는 빨리 아스타나 생활에 정착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올린 글에도 있었지만...저희가 들어와 사는 이 아파트도 문제가 많고...아스타나는 알마티와 달리 한국인들의 먹거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에 어서 빨리 아스타나 구석 구석의 지리를 파악하고 현지화 되는게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처음에 이 집에 짐을 풀고...정리를 한 뒤...어서 빨리 인터넷 접속을 서둘렀습니다. 바깥 세상과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는 무인도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작업실로 사용하는 방에 배치된 컴퓨터를 이용해서 책상도 책장도 없는 상태에서 다행스럽게 까작텔레콤을 통해 인터넷의 바다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알마티에 처음 정착할 때와는 달리...전화선이 짧고 제대로 연결이 안 되는 걸 파악하고...그 날 저녁에..시내에 나가 10M짜리 전화선을 사 가지고 왔고...불안정한 전압 상태를 고려해 갑작스런 전압 상승(surge)에 대비한 방어기(protector)도 1800텡게(우리돈 18,000원...정말 비싸지요?) 를 주고 구입해서 컴퓨터 관련 시설의 전기적 보호막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상황이 양호하고 알마티보다 빠른 속도로 모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알마티보다 아스타나의 모뎀 사용자들이 적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음 문제는 가까운 거리에 시장이 있어야 하는데....아스타나의 쩬트랄리 바자르와 에브라지아 바자르는 다 먼 곳에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가깝진 않지만...1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갈 수 있는 람스토르를 알마티에서와 같이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터어키 자본의 람스토르는 아스타나에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알마티보다 규모가 작고 내부도 협소하지만...새로운 땅...아스타나에서 정착하는데...람스토르의 존재는 우리에겐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하니까요...(알마티의 람스토르 참고)

하지만 알마티보다..람스토르의 아르부스(수박)와 채소는 신선하지 못했고...대부분의 식품들의 가격이 알마티보다 비쌌습니다. 여기 계시는 목사님 말로는 람스토르의 수박을 몇 번 사 보았는데 4번에 1번꼴로 성공하는 편이고 나머지는 먹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 만큼 오래된 물건만 있다는 거지요...

 

아스타나라는 도시에 적응하는 건...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처음에 알마티에서 올라갈 때는 망망한 평원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 정도로 알고 올라갔는데...생각보다 도시가 깔끔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도라서 그런지..많은 상징물과 조형물들이 있었고..아름다운 화단도 여기저기서 구경할 수 있으며..여러 번 애기하지만 벽면을 예쁘게 채색한 아파트들이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다닌다는 레스푸브리카 거리는 눈에 띄는 모든 건물들을 예쁘게 채색해 두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침에는 많은 사람들이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으로 총총 걸음을 걸으며 출근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정부기관이고 공무원들이라 그런지 알마티 처럼...자유롭고..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의복에 있어선...정장 문화가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온지 이제 열흘이 되는데요...이 도시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조금씩 낯선 인상을 지워가고 있습니다.

세차장, 케잌 가게, 컴퓨터 용품, 전화용품, 악기 가게, 피자 가게, 꽃가게, 지도파는 곳, 백화점, 복사집, 사진 인화소, 중국집, 자동차 정비소 등을 벌써 익혔고...요즘은 이발을 하기 위해..이발소나 미용실을 찾고 있습니다. 벌써 하나 찾았는데..마침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더군요...전 알마티에서 이발을 한 번 한 뒤 아직 이발을 못해서..머리가 길어 보기 싫습니다. 곧 이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민이는 이발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직접 해 주면 되니까요...형민이가 자는 틈을 이용해서..엄마, 아빠가 살짝 가위로 머리를 잘라 줍니다. 벌써 형민이가 태어나고 세 번째 하는 이발인데...이발할 때마다 사진을 찍는데..이젠 형민이가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아시겠지만...거실에는 형민이의 안전을 위해 글자놀이 매트를 깔고 그 위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형민이의 놀이감들을 다 풀어 놓습니다. 하지만 형민이는 그 위에선 잘 안 놀고...항상 엄마를 찾아 다니고...엄마 다리를 붙잡고 서 있거나...업어 달라고 졸라 댑니다. 요즘은 우릴 아주 귀찮게 합니다. 그래도 선화는 형민이의 응석을 잘 받아 줍니다. 전 좀 그렇지 못하구요...

 

처음 이 아파트에 하룻밤 자고 나니...형민이의 이마에 모기가 문 자국이 네 군데나 생겼습니다. 아스타나 모기는 처음인지라...항원이 달라서 그런지..한동안 빨갛게 부풀어 오르더니 요즘은 좀 괜찮아 졌습니다.

모기가 극성이라 우린...한국에서 가지고 온 우산식 모기장을 항상 형민이가 잘 때 설치해 줍니다. 그리고 역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액체형 모기향을 피워 모기를 몰아 내지요...

아스타나에는 모기가 극성이라고 알마티에 계시던 많은 분들이 저희 가정을 걱정해 주셨는데...염려 마시라고 얘기드리고 싶습니다. 형민이는 모기에게서 완전히 격리되어 있고..저희들은 모기에 물려도 한국 모기보다 많이 가렵지도 않고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지도 않아 그냥 무시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곳 정착에 있어서 또 하나 살펴야 할 것이 제가 근무해야 할 병원, 즉 아스타나 1병원입니다.

이미 2개월 전에...까작스딴 보건성은 아스타나 1병원에 문서를 보내어 한국 의사 한 사람이 그 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취했고...아마도 1병원은 절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병원에 우선 들러..제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근무 날짜등을 정해 놓아야 아스타나 정착이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왼쪽 사진이 아스타나 1병원의 모습입니다. 이 병원의 뒤쪽으로 국회 의사당 건물이 보입니다. 아스타나에는 1,2병원 말고도 대통령 병원, 내무부 병원, 경찰 병원, 어린이 병원 등...다양한 형태의 병원이 있다고 합니다. 1병원은 외래병원과 입원 병원이 있고 전...외래 병원에 근무할 예정입니다.

1병원에 방문할 때...여기 계시는 김목사님의 통역과 함께 갔습니다. 물론 아침에 한국 대사관에서 병원으로 전화를 미리 해 주기로 했지요...병원장과 내과 과장을 만날 수 있었고..그 분들은 절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의사에 대한 기대도 많이 피력했습니다. 사실 저로선...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긴 하지만...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우린 9월 1일부터 근무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사실 병원 근무에 있어 큰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통역 문제인데요...이곳 아스타나는 알마티와는 달리...한국어-러시아어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약 세 사람 정도 있는데...이들은 모두 선교사 통역에 동원되고 있고...절 도와 병원에서 일할 한국어-러시아어 통역자는 이곳 통역자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영어-러시아어 통역을 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러시아어 통역보다 숫자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합니다. 영어를 잘 하는 까작인이나 외국인을 구할 생각입니다. 이 일을 교회에서 도와 주고 계십니다. 빨리 이 문제가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자동차를 모는 일은 많은 주의를 요합니다.

알마티와는 달리 아스타나의 신호등은 한국과 비슷한 위치에 달려 있고 눈에 잘 띕니다. 하지만 문제는 도로의 노면 상태가 좋고 도로의 폭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차들이 과속을 하고 난폭 운전을 일삼고 있지요.

알마티 처럼..전조등을 켜면서 클랙션을 울리지는 않지만...U-턴을 할 일이 많은 아스타나에서는 뒤에 바짝 붙어 다가 오는 차를 신경 써 가며 U-턴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진에서 빨간 번호판을 단 저희 가정의 차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섭씨 48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아스타나에 올라온 지 3일만에 썬팅을 자동차 모든 유리에 다 입혔습니다.(물론 일부 앞 유리 빼고)...흰 번호판이나 노란 번호판이라면 ...이렇게 까맣게 썬팅을 할 수 없는데...빨간 번호판이라 아무 문제 없이 도로를 주행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썬팅 하러 갈 때도 저 혼자 물어 물어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서 썬팅에 필요한 윈도우 필름을 사 오라는 말을 듣고 자동차 바자르에 갔다가 물건을 구해 다시 가져다 주는 과정을....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하면서...알마티에서 산 2개월의 적응 기간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알마티에 처음 도착할 때와는 달리...아스타나에 와서는 제가 필요한 것들을 전혀 겁내지 않고...이 곳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해가며 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게 큰 변화입니다.

 저희 아파트도 많이 수리가 되었습니다. 처음 세탁기에 물이 들어가지 않고 가스 렌지가 작동하지 않고 씽크대에 물이 제대로 흐르지도 않았던 문제들을 이곳 마스떼르(기술자)와 친절한 집주인의 헌신(4일간 매일 방문)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안방과 거실을 제외한 부엌과 작업실(컴퓨터,악기,서재)의 모습입니다. 거실도 넓고 안방의 침대도 알마티의 침대보다 훨씬 좋은 더블 침대입니다.

 

어디가나 적응이 제일 빠른 건 ...형민입니다. 형민이는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게 OK입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 북극이나 적도에 갔다 놓아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 별로 불편할 게 없는 아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다른 말로 형민이의 모든 것인...선화의 생활이 많이 힘듭니다. 요즘은 형민이가 옹알이를 노래 수준으로 하고...엄마 다리를 붙잡고 안 떨어지려고 해서 엄마가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있습니다.

형민이는 우리가 식사 할 때 항상 같이 하는데...미역국에 밥 말아 주면...밥알의 절반을 식당 바닥에 다 뿌려야 겨우 밥을 먹습니다. 그만큼 형민이 밥 먹이는 게 전쟁입니다. 한 술 먹고 소리 지르고 안기고 어디 갔다 왔다가...또 한 술 먹고...뭐 이런 식입니다. 사태가 이러다 보니...선화도 제대로 식사를 못하지요....이게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겠는데...당분간 해결 기미가 안 보이네요...

 

모든 게 다 갖추어진 상태라 하더라도 아기를 기르기 위한 엄마의 헌신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아스타나를 다녀간 YM 자매들이 알마티에서 소금으로 염장해 놓은 고등어를 얼음을 넣은 아이스박스에 담아 인편으로 저희 가정에 보내 주셨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절반 쯤 잘린 고등어 구이는 바로 그 고등어입니다. 까작스딴...특히 아스타나에서는 고등어를 구경할 수 없는데...알마티의 고등어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이 맛있는 고등어를 선화는 뜨거울 때 제대로 먹어 볼 수 가 없습니다. 숟가락질도 못하는 형민이가 숟가락을 들고 밥그릇을 휘저어 대며서 식탁을 두드리는 바람에 선화는 제대로 밥 한 그릇 편하게 못 먹고 한 손으로 형민이를 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도우면 안되냐구요? 그게 되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형민이란 놈이...절대로 아빠에게 가만히 앉아서 밥을 안 먹거든요...눈 앞에 보이는 엄마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나 봅니다..계속 울부짖으면서 엄마를 찾기 때문에...가정의 평화(?)를 위해 형민이를 엄마에게 건네 주어야 합니다.

아스타나에 도착한 지 10일....우린 이렇게 순조롭게 현지 정착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파트의 물리적인 문제(물이 안 나온다든지...)는 없습니다. 하지만...오늘도 선화는 아스타나에 있는 게 쓸쓸하다는 얘기를 가끔 합니다. 알마티와 달리 선화 또래의 사모님(?)들이 없고...함께 어울릴 모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알마티에 비해 턱없이 작은(알마티 1000명, 아스타나 20명...) 한인 사회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 세 명은 늘 같이 다닙니다. 바자르에 모두 함께 갔다 와서 지치고 힘들어도...함께 있는게 더 낫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함께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건가 봅니다. 그래서 점점....알마티에서 저희 가정을 사랑해 주셨던 많은 분들이 보고 싶고...또..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또 함께 달렸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 집니다.

그래도 아스타나에...하나님의 부르심과 나라의 부름(?)을 받고 온 이상...이곳 아스타나가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되겠지요....

힘들고 외로와도...작업실에 놓인 신디사이저로 찬양을 하면 외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형민이가 한 손으로 건반을 내리치면서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보채기 때문에 찬양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이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겠지요... 그 때를 위해서라도 지금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저희를 생각해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200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