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스탄불....탁심 광장    4 일째: 탁심 광장에서 생긴 일  

이스탄불에 온 지 4 일째...술탄 아흐멧 광장 근처의 '역사적 구 도심' 을 벗어나 현재의 이스탄불을 보기 위해 탁심 광장 까지 찾아 온 우리 가족은 예상했던 대로 현대식 대도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부산의 남포동이나 서울의 명동 처럼 조밀하게 들어선 상가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현대식 호텔들과 이층 버스, 택시들로 북적이는 도로 변에는 "버거 킹" 과 같은 패스트 푸드 점들도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봤던 '역사적 이스탄불' 그러니까...콘스탄티노플의 모습은 장엄하고 고요해서 마치 신비로운 박물관 처럼 느껴졌었는데... 이 날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21세기의 유럽의 한 도시에서 만나는 생동감 넘치는 풍경입니다. 글쎄요... 아무리 오랫동안 옛 유적들만 봤다곤 하지만....한국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는 대도시의 모습에 그렇게도 즐거워 했던 걸 돌이켜 보면....우리 부부 역시 어쩔 수 없이 대도시 문화에 길들여진 이 시대의 사람이란 말이겠지요.

더군다나 한국을 떠나 1년 동안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까작스딴에서 살고 있다가.....터어키로 온 탓에 이 모든게 더 신기하고 새롭게 와 닿았을 것 같습니다. 형민이도 지나가는 많은 차들과 사람들의 물결을 보며 소리 지르고 여기 저기 열심히 뛰어 다녔는데...형민이를 즐겁게 쫓아 가는 우리 맘 속에도 뭔가가 시원하게 뚫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이는 순간이었지요.

우리들은 인파로 물결치는 번화가의 한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도 동양인 가족의 출현은 주위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조그마한 형민이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뛰어 갈 때는 저마다 한 번 안아 보려고 형민이에게 손을 내밀곤 했지요.

 이곳에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전차가 복잡한 도심 안의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택시 같은 다른 차들은 복잡한 번화가로는 진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이 운치있는 한 칸 짜리 전차 만이 길을 따라 택시처럼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이 한 칸짜리 전차를 따로 지칭하는 말이 있던데...기억이 잘 안 나네요...술탄 아흐멧 광장 근처에서 달리던 뜨람바이(전철)는 열 칸짜리로... 한국 지하철과 비슷하게 생긴 현대식 모양이었는데....이것은 이렇게 유서깊은 옛날 열차 같아 관광지에 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도 많고 자칫하면 길을 잃어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형민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선화와 함께 도로를 따라 들어서 있는 매장들을 보면서...처음 도시 구경 나온 사람들처럼 "와....저거 봐..." 하고 연신 진열장 안을 가리켰습니다.

 왼쪽 사진을 보시면...복잡한 도시의 번화가 안으로 철길이 나 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본 한 칸 짜리 전차가 바로 이 길을 따라 남포동 처럼 복잡한 길을 왕래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은행이 보였고 의류 매장과 각종 음식점 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리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거리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옷 파는 가게가 가장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풍의 거리를 쭉 따라 가다....오른쪽 골목으로 재래 시장 같은 골목이 보여 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곳의 분위기 인데요...우리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탄성을 지르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이곳에서는 까작스딴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살아있는 생선들과 신선한 과일, 야채들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까작스딴의 경우에는 재래시장을 가더라도 진열해 놓고 있는 상품의 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구멍가게 처럼 조금 얹어 놓고 물건을 팔고 있는데...이곳은 부산의 국제 시장 처럼...물건을 잔뜩 쌓아 두고 얼마든지 구경을 하며 고를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어 그게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항구 도시 이스탄불에도 신선한 활어들이 가득했습니다. 세계적인 바다를 끼고 있는 이스탄불의 재래시장에서는 자갈치 시장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생선들과 오징어, 새우 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형민이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고기들을 실제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형민아...이거 봐...이게 오징어야...." , "형민아...이거 이상하게 생겼지....이게 새우야....."

오전 11시 정도인데도...생선을 파는 가게에서는 전구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불빛 아래로 보이는 싱싱한 생선들은 부산에서 살다 온 우리 부부에겐 큰 기쁨이었습니다. 알마티에도 아스타나에도 바다가 없기에...냉동 제품이 아니라 싱싱한 새우와 오징어를 보고 있는게 너무 행복하다며 선화는 연신 생선 가게를 기웃거렸습니다.

또 이곳에서는 특징적으로 여러 가지 향신료들이 많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나라의 어느 방앗간이나 기름집 처럼...여러 가지 색깔의 향신료들이 통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그 중에 몇 가지는 고추 처럼 보이던데...다른 것들은 넘겨 짚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오래 전부터 투르크 족들은 우리 나라의 마늘, 생강 처럼 여러 가지 향신료들을 넣은 음식들을 많이 만들어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이런 것들을 늘어 놓고 파는 게 오히려 정겹게 보였습니다.

야채나 과일은 한국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아직 4월 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과일들을 볼 수 없었지만....오렌지 같은 지중해서 작물들이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레몬도...이곳 사람들은 식사할 때 함께 먹는 샐러드에 항상 올리브 기름과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 익은 것들입니다. 감자, 마늘, 토마토, 레몬 그리고...방울 토마토와 피망 같은 것이 보입니다. 피망 포장지를 자세히 보시면 4천 이라고 적혀 있지요? 이건 사실 4천 터어키 리라(TL) 가 아니라 4백만 TL를 뜻하는 말인데....이곳 사람들도 하도 돈의 단위가 높다 보니 마지막 세 자리는 아예 무시하고 금액을 표시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곳 지폐에서도...마지막 동그라마 세 개를 다른 것과 다른 색깔로 표시해서 한 눈에 금액을 알아 보게 할 정도로....화폐 단위가 높음을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위에서 본 피망을 사고 싶다면 왼쪽에 보이는 백만 TL 4장을 주면 살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0 세 개를 빼고 생각하면 터어키 리라의 화폐 가치가 우리 나라 원화와 비슷하다는 것이죠...그러니까...위에 보이는 피망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천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2002년 4월 재래 시장 물가)

이처럼...앞에서 봤던 거리에 즐비하게 서 있던 현대식 매장에 비해...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재래 시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걸 보면...왜 우리 나라(한국)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갈치 시장,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을 찾아 가는 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사실...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현대식 매장들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천편 일률적으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이렇게 재래 시장을 가 보면...이곳 사람들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신발 가게 옆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를 가리키며 흥정을 하고 있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여행 기간 내내...통역이나 가이드 없이 비교적 마음대로 여기 저기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터어키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간단한 영어 회화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정말..신기할 정도로 대부분의 상인들이 매매에 필요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에 대해 편하게 대해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파란 눈의 외국 사람이 와서 물건 가격을 물으면 당황해 하면서 상대방이 어색할 정도로 티를 낼 텐데....수 천년간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 주는 만남의 장소인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는 상인들은 만나기 힘든 동양인이 와서 물건 가격을 물어도 늘 그랬듯이 평범하게 받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게...우리가 더 안심하고 이곳을 돌아 다니게 한 기폭제였습니다.

 또...우리가 자칭 '터어키 팬' 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이곳 사람들 특유의 쾌활하고 열려 있는 마음씨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수 많은 민족과의 교류를 했었던 탓인지...이곳 사람들은 상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에까지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이스탄불에는 관광객의 돈을 뜯어 가려는 나쁜 터어키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짧은 시간이지만 보름 동안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가진 민족성을 경험해 보니...이방인에 대해 친절하고 환대해 줄 줄 아는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면들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장에서 독특한 튀김을 파는 아저씨가... 재료가 뭐냐고 물어 보는 선화에게 양고기라고 일러 주는 모습입니다. 이 아저씨는 그 옆에 있는 홍합 튀김까지 소개해 가며 낯선 동양인 방문객에게 환한 웃음으로 대답했습니다.  물론... 터어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이목구비한 뚜렷한 미남형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가진 밝은 인상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시금 터어키를 찾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관광 자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개인적으로 지난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3-4위전 한국-터어키 전을 보면서 터어키 사람들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인 터어키...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6.25 사변 때...비행기를 타고도 12시간이나 걸리는 한반도까지 와서 우리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던 터어키...그리고 지금도 한국 사람들이 터어키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을 생각하고 있는 터어키....어떻게 보면 그 날... 3-2로 우리가 진 것이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갚을 빚이 있는 것 처럼 늘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그 옛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던 지금의 터어키 땅에... 하루 빨리 참 종교가 전파되어 그야말로 참 축복을 받아 누리는 나라로 성장해 가길 바래 봅니다.

세계 3대 요리가...프랑스, 중국, 터어키 요리 인 거 아시죠? 터어키 요리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과거의 영화를 바탕으로... 유목 생활로 인해 늘 주식이 되었던 육류와 풍요로운 바다를 끼고 있는 탓에 발달했던 다양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먹음직한 요리들이 많습니다. 쌀밥도 있어서 한국인 입맛에 맞다는 게 우리처럼 꼬마를 데리고 장기간 여행해야 하는 가족들에겐 무엇보다 반가운 사실입니다. 이스탄불 식당의 특징은 항상 유리로 된 진열장 속에 요리들을 펼쳐 놓고 있어서... 우리 처럼 메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지금 사진 속의 선화처럼 " this... one " 하고 개수 만 표시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실수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엄마가 음식을 고를 때도...위에서 보시는대로 유리 진열장으로 다가 간 형민이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쳐다 봅니다. 이렇게 엄마를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는 1년 6개월 된 형민이가 이곳에서 부쩍 부쩍 자라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낯선 식당에 들어가서도 호기심을 끄는 2층으로 올라가 보기도 하고 엄마가 따라 오든지 말든지 신기한 게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못 말리는 아이가 된 것도 이 때 즈음입니다.

아침 일찍 호텔을 나라 탁심 광장으로 나온 탓에 모두들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늘 주문하는대로...감자, 닭고기, 쌀밥, 샐러드 등을 시켜서 형민이랑 나눠 먹은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 날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도로 한 쪽에 쭉 늘어서서 구두를 닦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구두를 닦아도 그냥 간단하게 구두 약 몇 가지와 솔만 들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나무로 된 함 속에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르지만 각종 다양한 구두약을 차곡차곡 세워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권하는게 이들의 문화였습니다. 나중에 에게해 연안 지방에 가 봐도 이런 구두 닦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던데...터어키도 구두 닦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봅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그 구두 닦는 사람들의 모습이구요..오른쪽 사진은 그 날 우리가 가장 놀란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탁심 광장 한 복판 신문 가판대에서 세계 여러 나라 신문들과 함께 걸려 있는 한국 스포츠 신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병규 개막포" 라고 커다란 활자로 적힌 이 신문을 본 순간....정말... 정말...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 왔을까? 신문 파는 사람에게 이게 얼마냐고 물어 보았더니 우리 돈으로 약 1500원 정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제 날짜 신문인지라 더욱 놀라왔습니다.

우리는...아마 한국과 터어키를 왕복하는 터어키 항공 여객기 안에서 승객 서비스 용으로 들어온 신문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팔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보았지만....그렇다 하더라도...이 도시 한 가운데 다른 유럽의 신문들과 나란히 바로 위의 일본 신문과 함께 함께... 그것도 스포츠 신문이 팔리고 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스타의 얼굴이 일면에 대문짝 만하게 실린 채로 말이죠.

역으로 말하면...이 신문을 이곳에서 팔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이스탄불..구체적으로 탁심광장에 많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세계 속의 한국...정말 그 말이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탁심 광장 인근 지역을 샅샅이 돌아 다녔습니다. 그 곳에서 개인 병원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한국보다는 웬지 겉보기에는 수준이 좀 더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래 사회, 복지 분야는 GNP 와 무관할 수 없나 봅니다. 터어키는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라 그런지...그저 겉보기로는 의료 시설은 좀 낙후되어 보였습니다.

어디나 그렇지만...점심 때가 가까워지자 이곳에도 젊은 청춘 남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말 멀리서 보면...머리만 보일 정도로 모든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우린...식사를 한 뒤로도 제법 많이 걸은 탓에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고....한국에서도 "버거 킹"을 좋아했던 선화이기에... 이 곳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 "버거 킹" 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밀크 쉐이크 두 개와 감자 튀김을 주문하고 휴식을 취했는데...형민이가 어찌나 감자 튀김을 좋아하던지...토마토 케찹에 열심히 손이 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패스트 푸드 업계가 불황으로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세계 어디에서나 통일된 맛과 메뉴를 가지고 있는 탓에 이렇게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게 되면....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탓에 이런 곳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시간은 정오를 넘겨...이제 탁심 광장을 떠나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오늘이 이스탄불에 도착한지 4일째가 되는 날인데....오늘 밤 우리는 이스탄불을 떠나....야간 버스 편으로 에베소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이스탄불에서 에게 해 연안의 에베소까지 버스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2시간....에베소에는 비행장도 없는 데다가... 여행 경비를 절감한다는 차원에서...우리는 야간 버스 안에서 밤잠을 자면서 에베소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형민이와 함께 세 식구가 가야 할 야간 여행이 걱정되기도 하지만...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도 모험인데... 끝까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처음에 버스를 타고 내렸던 탁심 광장 로타리 주변 버스 정류소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이곳이 이스탄불의 도심이라는 게 실감나는 복잡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이곳에서 술탄 아흐멧 광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친숙한 언어가 들려 왔습니다.

"한국 사람이세요?"

반가운 맘에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한국에서 여행을 왔다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인데..방학 기간 동안 유럽 여행을 하기 위해 이스탄불에 왔고 오늘 밤에 그리이스로 떠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여학생인데...용감하게도 혼자 몸으로 여기까지 왔더군요.

"실은 아까부터 봤었어요....설마 한국 사람들일까 했는데....아기 이름 부르는 소릴 듣고 한국 사람인줄 알았어요...."

이 용감한 여대생을 만난 선화는 "대단하다..." 는 말을 연발하며...학생 때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른다면서 격려의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이게 뭐야...또 한 사람의 한국 여학생이 우리를 보고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이 여학생도 역시나 혼자 몸으로 이곳 까지 와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첫 번째 만난 여학생과 대화하는 선화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이 이스탄불에서 만난 용감한 세 사람의 20대 한국 여자들을 잡은 것입니다.

사실...까작스딴에서 살고 있어도...한국만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나라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CIS국가들은 과거에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어쨋든 이곳 까작스딴의 경우...사무실에 앉아 펜 굴리며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여성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의사는 무조건 90%이상이 여성이고...교수도 2/3 이상이 여성이고...공무원도 장관 빼고는 반 이상이 여성이고, 은행, 보험회사 등 각종 사무실 근무 직원들은 거의 다(정말입니다.) 여성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히려 까작스딴의 남성들은 이런 화이트 칼라의 직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주로 시장이나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노무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 소비에트 연방 시대...러시아 민족 우월 주의를 유지하기 위해...러시아 외의 다른 민족의 경우 남자 지도자감들을 키우지 않고 러시아인 최고 책임자를 보좌하는 역의 여성 지도자들만 육성했다는 얘기도 설득력있게 들리고 있는데...어쨋든 까작의 경우 남자들은 기가 죽어 있고...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돈 버는 아내를 보좌하는 역할에 만족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쨋든...한국의 경우는 사실 여성들의 발언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이렇게 홀로 세계 무대를 밟아 보기 위해 여행을 나온 대한민국의 젊은 여학생들을 만나 보니....비록 겉으로는 사회에 순응하는 것 같고...조용히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속 마음으로는 신세계를 향한 무한한 도전 의지가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후로도 우리는 보름 이라는 터어키 여행 기간 동안 혼자 여행하는 수 많은 한국 여학생들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남학생들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여학생들은 정말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정말 대단하다며...늘 "화이팅"을 외치곤 했지요. 

 형민이는 버스 정류소 앞에서 만난 이 한국 여학생이 금새 맘에 들었습니다. 손 잡고 계단을 올라가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복잡하긴 했지만...오랜 만에 사람 사는 곳에 다녀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우리 부부는 "탁심 광장에 간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며 만족해 했습니다.

탁심 광장에서 얼마를 기다리다...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발견하고는 다른 여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버스에 올라 탔습니다. 버스 안에서 잠이 든 형민이를 안은 채....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유서 깊은 옛 궁전들을 다시 스쳐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정이 든다는 이스탄불에서 보낸 네 번째 날 오전은 살아 있는 이스탄불을 느끼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스탄불 여행기는 계속 됩니다.)    200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