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창 너머로 보이는 이스탄불... 3-4 일째: 군밤, 탁심 광장으로 가는 길  

차고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이스탄불의 아침 공기를 헤치고 톱카프 궁 안에서 두 시간 동안 헤매야 했던 우리가 관람을 모두 끝내고 다시 궁 밖으로 빠져 나올 무렵에는 모두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 진짜 넓재? ...그래도...나는 여기보다 경복궁이 훨씬 좋다. 이 곳은 웬지 정이 안 가네...." 형민이를 어깨 위에 올려 매고 내려 오는 길에서 전...때 아닌 한국 고궁 예찬론을 펼쳤고... 선화 역시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 대며 톱카프 궁이 어땠냐고 묻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네....우선 궁전은 대단한데...날씨가 춥고...또 비용이 많이 들고...장소를 찾아 다니느라고 힘을 많이 쓴 탓에 지금 상당히 지쳐 있고...(중간에 웃음)...좋긴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인터뷰 하고 있는 듯한 어조로....)

어쨋든 어마 어마하게 넓은 톱카프 궁 관람을 무사히 마친 우리는 다시 이곳의 중심인 술탄 아흐멧 광장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랍고 반가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추위에 지쳐 있는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군밤 파는 아저씨'였습니다.

"오빠...저거 보세요..군밤이예요...어머나...여기 밤이 다 있네요...."

까작스딴에도 많은 과일이 나오지만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었던 몇 몇 종류의 과일은 절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밤 이지요. 밤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건 실화지요...제가 거기 앉아 있었거든요.

아스타나 장로교회에서  열고 있는 한글 교실에서 고려인 통역을 통해 한국 노래를 가르치던 때 였습니다. 목사님이 노래 가사를 불러 주면 고려인 통역이 그 내용을 러시아어로 학생들에게 전해 주고 있었지요.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 깡총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이렇게 목사님이 가사를 말하자 유창한 통역 실력을 자랑하는 고려인 통역은 학생들이 알아 쉽게 그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노래의 마지막 부분  "토실 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테야" 라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론 그 곳에 앉아 있던 현지인 학생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지만요...고려인 통역이 학생들에게 통역한 "밤" 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로 "노치" 그러니까 영어로 night 에 해당하는 단어였습니다. 목사님 통역을 전담하는 그도...'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밤'이라면 당연히 깜깜한 '밤'인 줄 알았던 거죠.

우리가 터어키에 갔을 때는 일 년 동안 까작스딴 생활을 한 뒤 였습니다. 지난 가을을 보내면서 까작스딴에서 만난 사과와 배는 한국의 맛을 따라 올 수 없는 것이었고 단감이나 홍시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밤'의 경우는 아예 구경할 수도 없었지요. 대추의 경우에는 삶아 설탕에 절인 형태로 이란에서 수입되는 것이 있어서 선화가 가끔 약식을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배도 고프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이렇게 만나게 된 군밤 장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선화는 그야 말로 감격의 도가니 였지요. "이거 봐요...이거 진짜 밤이다....오빠...눈물이 다 나려고 해요..." 우리는 따끈 따끈한 군밤 하나를 형민이에게도 먹여 보았습니다. 형민이로선 태어나서 처음 먹는 밤인 셈입니다. 입 안에 넣고 몇 번 씹더니 맛이 있는지...계속 따라 오면서 더 달라고 하더군요.

군 밤 한 봉지는 2백만 터어키 리라...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천원 정도였습니다. 요즘 한국도 그 정도 하지요? 군밤 봉지 하나 들고 술탄 아흐멧 광장으로 향하는 걸음은 어느 새 힘차게 변해 있었습니다.

길 가에서 시내 투어를 위해 운행하고 있는 이층 버스를 발견하고 옆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선화의 손은 여전히 군밤 봉지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모자를 뒤집어 쓴 형민이도 엄마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고 혼자 걷고 있긴 하지만 군밤 봉지 근처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톱카프 궁으로 갔지만 어느 새 점심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 날...우리 가족에게 좋은 호텔을 소개해 준 한국인 김경림 씨와 점심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고,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술탄 아흐멧 광장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여행 안내 센터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뭘 뜻하는 표시인지 금방 아시겠죠? 예...공중 화장실을 안내하는 표지판입니다. 여행 안내 센터 바로 옆에 있더군요. 마침 우리도 이 곳이 필요하던 터라 잠시 방문을 했었는데...한 번 이용하는데 자그마치 50만 터어키 리라를 받더군요. 우리 돈으로 500원에 해당하는 금액인데...까작스딴도 20-30 뗑게(160-240원) 정도 받는 걸 감안하면 터어키의 공중 화장실 이용료는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래서...혹시 이스탄불을 방문하게 되시면 숙소에서 철저하게 화장실 문제(?)를 해결한 뒤 관광지를 둘러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너무 비싸잖아요...

술탄 아흐멧 광장 옆에 위치한 여행 안내 센터(Information Center)는 이스탄불 여행 기간 내내 우리에게 친숙한 벗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한 날 첫 날...이곳을 통해 무료로 얻은 이스탄불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이스탄불 전체와 주요 관광 지를 빠른 시간 내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톱카프 궁전의 위치를 몰라서 어떡할까 망설였을 때도 이곳에 들어 와 문의했었고...담당 직원의 자세하고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는 이 곳은... 제가 심지어 형광 사인펜을 구하기 위해 들어 갔을 정도로... 찾아 오는 외국인들을 반갑게 맞아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에서 관광 선진국이라는 터어키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여행 안내 센터의 의자에 앉아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얼굴에 나타난 대로... 엄마와 아빠는 오전의 강행군으로 인해 지쳐 있었지만...형민이는 잔뜩 신이 나 있습니다.

형민이의 옷을 보니까 생각이 나는대요...이 터어키 여행기의 끝까지 가더라도 형민이의 이 옷차림은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따뜻한 에게 해 연안의 도시로 떠나게 되면 곧 이 잠바 차림을 벗어 던지겠지만...적어도 쌀쌀한 공기가 있는 곳에선 늘 이 차림을 유지했습니다.

옷이 더러워졌다 싶으면... 선화가 빨아서 밤 사이에 라디에이터 위에 얹어 놓고 자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깨끗한 노란 잠바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14박 15일 동안 형민이는 한 가지 옷만 입고 있었던 거지요.

여행 안내 센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이곳을 찾아 온 김경림 씨와 만나 그녀가 살고 있는 방으로 가 불가리아에서 가지고 왔다는 라면을 함께 끓여 먹었었는데...타국에서 누군가의 집에 초청받아 직접 밥을 해 먹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서....선화는 형민이를 위해 귀저귀 한 통을 샀습니다. 까작스딴에도 '팸퍼스'(우리 나라에도 있지요?) 라는 일회용 기저귀가 있습니다. 하지만...한국 팸퍼스보다는 얇고 공기도 잘 통하지 않아 형민이의 엉덩이에 빨갛게 습진이 올라오기 일쑤였지요. 그래도..."air care" 나 "ultradry" 라는 마크가 붙은 팸퍼스는 좀 나은 것 같아 늘 그걸 사용했었습니다. 까작스딴 일회용 기저귀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입니다. 선화 말로는 한국의 2배 이상이라고 하던데...그래서 처음 우리가 까작스딴에 왔을 땐 형민이의 기저귀 값이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이곳 터어키는 한국과 비슷한 기저귀를 팔고 있었습니다. 한국처럼 두껍고 공기가 잘 통하는 종이 기저귀를 팔고 있는 것을 본 선화는 그 어떤 것보다 그 사실에 반가와 했습니다. 심지어 까작스딴에 돌아갈 때 기저귀를 많이 사 가지고 가야 겠다는 얘기까지 했으니까요.... 가격도 까작스딴보다 훨씬 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까작스딴은 자국 산업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인지라 거의 모든 공산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람스토르' 같은 까작스딴의 슈퍼마켓에 들어 가 한 번 쭉 돌아 보면...여기가 까작스딴인지 유럽의 어느 나라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물건이 다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터어키는 자국 산업 기반이 탄탄한 지라 기저귀들도 싼 가격에 좋은 것들을 공급하고 있었고...우리는 국가에 따라 아기를 기르는 수고와 경비가 천지 차이로 변하는 현실을 한국 밖에서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식사 후...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새로 산 기저귀 통을 형민이가 들도록 했습니다. 이미 돌이 되기 전부터 물통을 들고 다닐 정도로 팔 힘이 센 형민이는 엄마, 아빠가 뭔가를 들고 가면...그걸 들고 가고 싶어 자기에게 달라고 떼를 쓰지요.

위 사진은 기저귀를 들고 따라 오는 형민이를 뒤에 떨어 뜨려 놓고 우리들만 앞으로 달려 와서 찍은 화면입니다. 기저귀를 들고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형민이의 모습이 보이시지요? 우리는 자기 기저귀를 들고 총총 걸음으로 따라 오는 형민이가 너무 귀여워 돌아 보며 한참 동안이나 깔깔 거렸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조그마한 동양 아기를 바라 보며 발걸음을 멈춰야 했습니다.

기저귀를 든 형민이가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 보는 게 보이세요?  그 당시... 형민이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것은...바로...비둘기 떼입니다. 광장에는 수 많은 비둘기들이 몰려 와서 부리를 바닥에 콕콕 찍어 가며 열심히 모이를 주워 먹고 있었는데...그 모습이 형민이에겐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했나 봅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둘기들이지만... 늘 잊지 않고 다가 가서 손짓하며 비둘기 떼를 챙기는 형민이를 보면서...역시 동물은 아이들의 영원한 친구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호텔로 돌아 온 우리는 이제 한 살 반 밖에 되지 않는 형민이가 행여나 지치지 않도록...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활력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늘 그렇듯이 두 시간동안 낮잠을 잤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 여행의 노하우였던 것 같습니다.

 

두 시간이 흐른 뒤....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외출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익숙해진 바깥 경치를 차분하게 돌아 돌면서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지요. 이스탄불에 온 첫 날 한국 식당에 들러 한국 음식을 먹은 이후... 어제와 오늘 계속 한국 음식을 못 먹은 탓인지...이 날 따라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전에 갔었던 한국 식당 '서울정(서울식당)' 을 다시 방문해서...김치 찌개와 고등어 구이를 시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스탄불의 한국 식당들은 너무 가격이 비쌉니다. 까작스딴 알마티에도 많은 한국 음식점이 있지만...이스탄불의 한국 음식점은 대략 알마티의 두 배 정도로 비싼 가격을 받고 있더군요. 김치찌개가 우리 돈으로 만 3천원 정도 되니까요...

이스탄불에서는 배추를 구할 수 없다지만 양배추로 아주 맛있는 김치를 담궈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양배추 김치였습니다. 그리고 싱싱한 고등어를 보면서 바다가 있는 이스탄불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내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까작스딴...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아스타나에서는 꿈에도 이렇게 싱싱한 고등어를 만날 수 없으니까요...

화면 뒤에 서 있는 아저씨가 이 식당의 종업원인데...한국말도 몇 마디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늘 형민이가 오면... 자기를 가리키며 "아저씨...아저씨..." 라고 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는데...인상도 좋고 서비스도 좋았습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몇 달 전  한국에 계시는 장인 어른께서 까작스딴으로 보내 주신 10개의 월드컵 관련 녹화 비디오를 보던 중 우연히...서울 식당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한국과 터어키가 벌인 월드컵 3-4위 전이 끝난 뒤 방송된 9시 뉴스에서 3-4위전과 관련해 터어키 현지의 표정을 보도하는 특파원의 보도가 나왔었는데...한국 사람들과 터어키 사람들이 같은 식당에 모여 두 팀의 축구 경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바로 그 식당...양 국민이 함께 응원하고 있다는 바로 그 식당이 서울 식당이더군요...뜻 밖의 화면에 그 곳에 다녀온 저로선 무척 반가왔습니다.

식사를 하고...다시 인근의 상가와 오래된 건물들(역대 술탄들의 무덤과 여러 이슬람 사원들)을 돌아 보다 해가 지고 나서 다시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오전에 톱카프 궁에 갔다 온 이후로는 특별한 유적을 관람하진 않았지만...이렇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노점상이나 가게에서 파는 기념품들과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빨랫감들을 정리하고...오는 길에 사온 음료수와 과자를 놓고 TV를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의 TV방송은 아주 다양해 보였습니다. 일단 CNN 만 하더라도...CNN Turkey 라는 채널이 따로 있어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유럽축구연맹에 소속된 국가라 각종 채널에서 축구 경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고...BBC도 볼 수 있어서 마치 영어 문화권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터어키어 방송도 많아서...가끔 밤에 하는 영화도 보곤 했습니다. 까작스딴 TV방송국에서 하는 영화는 남미 영화들이나 오래된 소련 영화, 재미없는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들 뿐이어서 영화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터어키에서는 TV에서도 할리우드의 흥행작이나 명화들을 많이 내 보내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영화 중간 중간에도 CF 방송이 자주 나와 흐름이 끊기는 건 안 좋았지만...터어키의 방송들은 모르는 터어키어로 들어도 재미있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을 내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살 반의 형민이는 터어키로 갔었던 그 때까지도... 아직 분유를 먹고 있었습니다.

밤에 깊이 자다가도...몸을 뒤치닥 거리면서 깨려고 하면...선화는 어느 틈엔가 형민이의 입에 젖병을 물립니다...그러면 형민이는 자기 손으로 젖병을 들고서 한 병을 꿀꺽 마시고 난 다음...다시 다음 날 아침까지 자지요....

그래도...이 때만 해도 형민이도 많이 자라 가끔씩 분유를 안 찾기도 하는 시기라...터어키 여행 기간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만일 형민이가 더 어릴 때 왔더라면....밤새도록 분유 먹인다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을 테고 그 만큼 여행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우리는 형민이 분유 때문이라도....늘 호텔로 오는 길에서 물을 한 병씩 사 들어와야 했습니다. 위 사진에서 선화가 지금 들고 있는 게 바로 형민이의 젖병입니다. 밥도 잘 먹는 형민이지만...꼭 밤에는 분유를 찾더군요. 옆에 보이는 분유가 까작스딴에서 가지고 온 분유인데...네슬레 "난"이라는 분유입니다. "난"이란 말을 까작어로 "빵"을 뜻하는 말인데...우리 말로 하면 "밥" 이란 뜻인 셈입니다. 까작 사람들은 밥을 안 먹고 빵을 먹으니까요...

어쨋든...이렇게 해서 이스탄불에서의 셋째 날도 끝나게 됩니다.

 

이스탄불에서의 네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사실...웬만한 도시 같으면 십자가가 걸려 있는 교회를 찾을 수 있겠지만...이스탄불...그것도 역사적인 반도 한 가운데에 위치한 관광지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개신교회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터어키는 이곳 까작스딴과 달리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순니파)인 철저한 이슬람 국가이기에 사방에 모이는 이슬람 사원 외에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죠.

게다가...이런 이슬람 국가에는 대부분 선교사 비자를 받지 않고...자영업을 하면서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섣불리 교회당의 위치나 모임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기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 이곳에 계시는 UBF 선교사님도 만나 뵙고 이스탄불 한인 교회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 날까지만 해도 개신교회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숙소에서 기도하면서...주일을 맞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넷째 날 아침...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형민이는 빵과 함께 나온 꿀이 신기한 듯 이리 저리 돌려 보고 있고...선화는 호텔 총각이 준비한 특별 요리를 시식하고 있습니다. 오이, 토마토 같은 야채와 함께 피망 안에 고기를 넣은 요리가 나왔는데...지금까지 나온 것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메뉴였습니다. (아침 마다 식사 준비를 해 주던 호텔 총각에 대해선 앞에서 얘기했지요?)

이스탄불에 와서 보낸 지난 삼 일 동안은 늘 비가 오거나 잔뜩 찌뿌린 날씨였는데...이 날은 하늘이 화창하게 개였습니다. 처음으로 이스탄불의 햇볕을 본 날이었지요.

성 소피아 교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인데..이제 눈에 익숙하게 들어 오지요? 선화가 지금 앉아 있는 이 곳이 바로 술탄 아흐멧 광장의 한 쪽 편이고... 그 뒤로 성소피아 교회가...또 그 너머에 톱카프 궁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가 반짝 하고 나오니까..공원 잔디와 꽃들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 왔고, 늘 짙은 안개 속에 가려 있던 블루 모스크의 첨탑들과 돔 꼭대기의 금빛 장식들도 제 빛깔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 날 우리가 가 보기로 결정한 곳은 '탁심 광장' 입니다. 지난 3일 동안 우리는 이스탄불의 문화 유적지가 모여 있는 술탄 아흐멧 광장 주변부 지역에만 맴돌고 있었고...그러다 보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좀 더 생동감이 넘치고 활기찬 풍경이 보고 싶어졌고...역사 속에 남아 있는 곳이 아니라...현재의 이스탄불이 보고 싶었던 것이죠.

게다가 우리의 계획표 상으로는 오늘까지만 이스탄불에 머물고...소아시아 7대 교회를 보기 위해 오늘 밤 버스 편으로 에게 해 연안의 도시들로 이동할 예정이기에 이스탄불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약간 달라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소아시아 7대 교회를 보고 난 뒤...다시 이스탄불로 돌아 와서 며칠 더 머물게 되겠지만...그 때는 또 다른 것을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서울보다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국제 도시 이스탄불의 현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선택한 곳이 '탁심 광장' 이였습니다.

이전 글에서 소개된 이스탄불 지도인데...탁심 광장의 위치 설명을 위해 한 번 더 보여 드립니다.

우리가 지난 3일 동안 지냈던 곳은 파란 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역사적 반도의 끝 부분입니다. 골든 혼을 경계로 나누어지는 유럽 지역의 아래 부분이지요.

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골든 혼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갈라타 지역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경계이기에...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라고 말씀드렸었죠?

'갈라타 브릿지' 라고 부르는 큰 다리를 건너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면서 20여분 달리면 탁심 광장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우리는...이스탄불에서 가장 활동적인 도시 중심지 중 하나인 이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눈 덮인 도시 아스타나 밖에 모르는 형민이도 재미있어 할 테니까요...

 여행을 위해 형민이에게 줄 과자도 충분히 구비했고...물도 챙겼습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버스가 도착했고...우리 세 식구는 과감하게 버스에 올라 미지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형민이는 이스탄불에 와서부터 "까까" 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터어키의 맛있는 과자들을 건네 주며 "까까" 라고 말해 주자...어느 새 "까까" 라는 말을 배워 여행 내내..."엄마...까까..." 하면서 졸라댔지요. 버스에 올라 탄 선화와 형민이 모두 즐거운 표정입니다.

버스 내부의 모습은 한국이랑 비슷한 것 같았는데...양쪽 의자 사이의 간격이 좁다 싶었습니다. 아마...관광지 내에서 운행되는 일종의 셔틀 버스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선화와 형민이가 저렇게 둘만 앉아 있으니까...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동양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터어키 사람들인데다...특히 조그마한 형민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지라 좋은 구경 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잠깐 동안만 캠코더 촬영을 한 뒤...바로 가족 옆으로 가서 든든한 아빠가 함께 있음을 알렸습니다.

첫 날 공항에서 역사적 반도의 남단으로 올 때는 별 생각없이 택시를 타고 달려 왔는데...이 날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 본 이스탄불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치고 신선했습니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지라...더욱 친근하고 아름답게 와 닿은 것 같습니다.

 계속 바닷가를 끼고 달렸는데...중간 중간에 생선 시장도 나오고 연안 여객 터미널(한국식이네요..)도 나오고 바다만 쳐다 보고 있는 연인들도 나왔습니다. 짠 바닷 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는 것을 느끼며 달리다 보니 지금까지의 시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기더군요. ( 왼쪽 사진처럼...여기 택시는 다 노랑색입니다. )

 왼쪽 사진을 보시면...버스 창 밖으로 뜨람바이(일종의 전철)가 달리고 있고 그 뒤쪽으로 이슬람 사원인지 궁전인지 알 수 없는 멋있는 건축물 하나가 서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 보니...도시 곳곳에 이런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더군요 .

오른쪽 사진이 바로 골든 혼을 가로지르는 '갈라타 브릿지'를 건널 때의 모습인데요...인상적인 것은 다리 난간에 길게 줄 지어 서서 낚싯대를 바다로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건너간 '갈라타 브릿지' 의 모습입니다.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바다가 바로... 폭은 좁지만 내륙 깊숙이 이어지고 있는 '골든 혼' 이라는 만입니다.

이 사진에서도 다리 난간 위에 사람들이 쭉 줄 지어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게 보이는데...어렵게 구한 사진의 스캔 화질이 그리 좋지 않네요.

사진 아래에 뜨람바이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지요?  다리 건너 멀리 보이는 지역이 바로 앞에서 말씀 드린 갈라타 지역입니다.

다리를 건너 한동안 가니까 커다란 운동장이 나오고...간판에 커다랗게 적힌 "DAEWOO"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도 우리 나라 기업이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동안 버스는 비탈진 길을 올라 갔고 이내 커다란 도심이 눈 앞에 펼쳐 졌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침 시간에 도달했지만...활기찬 도심이었고...뭐랄까 부산의 서면 한 복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타리도 있고... 멀리 오래된 건물도 보이고...또 높은 고층 빌딩들도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 한국의 어느 대도시 한 복판과 꼭 닮은 모습이었지요.

멀리 삼성의 휴대폰 광고도 보이고 현대 버스가 시내 버스로 운행되고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이런 것이 먼저 눈에 띄게 되는 모양입니다. 명동이나 남포동 같이 상가가 밀집된 좁은 도로들이 여기 저기에 연결되고 있는 게 보여.... 저 안으로 들어가면 구경거리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탁심 광장에서 우리는 현재의 이스탄불의 활기찬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위 사진은 탁심 광장 중앙 부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인데요...이 주변으로 각종 버스들의 정류소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민이가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그곳에도 비둘기 떼들이 열심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사 하러 간 거죠..뭐...

이번 얘기는 여기 까지입니다. 다음 얘기에선...이곳에서 만난 이스탄불의 번화가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다음 얘기에서 다시 만나요...  200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