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의 보물들... 3일째: 톱카프 궁 (II)

 예절의 문 옆에 설치된 매표소에서 어른 티켓 2장을 구입한 우리는 형민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특이한 것은 입구에서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철저한 보안 검색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X-선 검색대 위에서의 가방 검색에다가 몸에 착용하고 있는 금속 탐지까지 하더군요.  톱카프 궁의 첫 관문인 황제의 문 입구에서 총을 들고 서 있던 경비병의 모습에서 이미 알 수 있었듯이 톱카프 궁에 있는 수 많은 보물들로 인해 출입객에 대한 경계가 삼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한 우리 앞에는 넓이 130 미터, 길이 160 미터에 이르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플라타너스 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로 꽉 차 있었고 그 둘레를 따라 나즈막한 건물들이 빙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이 곳이 바로 두번 째 문(예절의 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정원이었습니다.  술탄(왕)이 살던 시대에는 작은 영양 같은 희귀한 동물들을 이곳에 풀어 놓았었다고 하던데... 술탄이 궁전에 있는 경우에는 경호를 위해 정원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금지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처음 며칠 동안은 해가 뜨지 않는,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톱카프 궁으로 들어온 이 날도 약간 쌀쌀한 기온이었고 형민이도 모자로 머리를 덮어 씌운 상태였지요.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가이드도 없고 특별하게 관람 순서도 표시되지 않아 넓은 정원에서 어슬렁 거렸습니다.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일층 짜리 건물들이었고 다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는 곳인 듯 했습니다.

우리는 막 들어온 단체 관람객들이 우측에 가지런하게 놓인 건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그 쪽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두 번째 정원의 모습이구요. 오른쪽 사진은 우리가 처음 들어간 건물의 지붕 만을 확대한 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무슨 굴뚝 같은 것이 건물 위로 삐쭉 솟아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이 궁전의 부엌입니다. 이 톱카프 궁 안에서 살았던 사람은 5천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이 부엌에서 일했던 종사자들이 무려 천 2백명 그러니까 25%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엌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15세기에 만들어졌고 위 사진에서 보시는 굴뚝들은 대 화재 이후 16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매일 2만 명 분의 음식이 이 부엌에서 요리 되었는데...궁전에서 살고 있는 5천 명의 세 끼 식사와 대상 숙소와 무료 식당에 공급되는 것이 5천명 분을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

현재 이 부엌 건물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자기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궁전에는 중국, 독일 등에서 수집한 만 2천여 점의 도자기 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3천 점이 이 곳에 전시되고 있다더군요.  

 전시된 도자기를 쭉 둘러 보았는데..마치 한국 도자기와 흡사했습니다. 당나라(7-9세기), 청나라(10-12세기), 명나라(14-17세기), 일본 도자기, 유럽 도자기들이 보였고...오른쪽 사진처럼...술탄과 그의 신하들이 도자기를 이용해서 음식을 먹고 있는 그림들도 군데 군데 걸려 있었습니다. 술탄은 아마 동양의 도자기들이 맘에 들었었나 봅니다. 청자도 있고 백자도 있더군요.

하지만...개인적으로 볼 때...도자기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 온 우리이기에 도자기만 가득 채워 놓은 이 부엌은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다시 정원을 나온 우리는 가이드 북에서 본 보물 전시실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손뼈, 다윗 왕의 칼, 요셉의 모자(우습죠?), 모세의 지팡이 같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물 전시실을 찾아 나선 우리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보물 전시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산 입장권은 그냥 궁을 돌아보는 일반 입장권이고 '보물 전시실' 이나 '하렘(술탄과 가족들이 거주하던 궁)' 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각각 우리 돈 만 5천원 정도의 입장권을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더군요. 터어키는 국민소득의 15% 이상을 관광 수입으로 거둬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말 입장료 하나는 확실하게 챙기더군요.

부엌의 반대편...그러니까 두번째 정원의 왼쪽 끝에 '하렘' 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하렘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왕자들의 방, 연회실, 내시의 숙소, 식사실 등 술탄의 가족들이 살던 수 많은 방과 생활 용품이 전시되고 있는 이 곳은 터어키 정부에서도 자랑하고 싶은 그들의 문화겠지만 안내 책자의 그림이나 밖에서 둘러 보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알 수 있었고 비싼 입장료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왼쪽 사진은 하렘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하렘으로 들어가면 흑인 내시의 정원, 대비의 정원, 술탄 무라트 3세의 방, 과일의 방, 후궁등릐 정원 등 많은 건물들을 볼 수 있지요.)

하렘은 술탄의 가족들과 이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만 드나들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술탄의 부인들과 하인들을 포함해서 하렘에서 거주하는 거의 모든 여자들은 식민지에서 사로 잡혔거나, 노예 시장에서 사 왔거나, 술탄에게 선물로 보내져 후에 이슬람 교도가 된 여자들이라고 하더군요. 오스만 왕조에서는 왕위가 장자 계승이기에 모든 술탄의 여자들의 목표는 첫 번째 아들을 낳아서 술탄의 '하세키(총애를 받는 부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술탄의 여자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했었고...술탄의 여자들과 술탄의 어머니(대비) 사이에도 알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렘의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 갔습니다. 그 곳은 바로 의회(쿱베알트)가 열리던 장소라고 하는데...장관들은 일주일에 4일씩 크고 아름답게 장식된 이 곳에서 제국의 중요 사안들을 의논하고 결정했고, 외국의 사신들과 중요한 국가적 타협을 할 때도 이곳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의회 안의 모습인데...벽이나 천장 등이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처럼 형민이가 이곳에서 깊은 잠에 빠지는 바람에...한 동안 안고 다녀야 했답니다.

두 번째 정원에는 이외에도 무기 전시실이 있는데 우린 모르고 그냥 통과해 버렸습니다. 워낙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많아 빠짐없이 다 들어가 보기도 쉽지 않더군요.

두 번째 정원에서 세 번째 정원으로 넘어가려면 지복문(또는 백인 내시의 문) 이라고 불리는 큰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400여년 동안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새로운 술탄의 대관식, 군대의 출정식 등...) 들이 바로 이 문 앞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왼쪽이 바로 그 지복문의 모습인데요. 사실 이 날은 날씨도 흐리고 햇볕도 없어서 캠코더로 촬영한 화면의 색상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구한 자료 사진들을 올려 드릴 수도 있지만... 이 글은 저희 가족의 터어키 여행기 이기에 우리가 촬영한 사진들로 보여드리는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대로 실었습니다. 문에는 황금빛 장식들이 있고 지붕의 아랫면은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무늬들로 수 놓아져 있습니다.

세 번째 문인 이 '지복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마주치게 되는 곳이 술탄의 접견실입니다. 이 접견실의 오른쪽 벽에는 왕좌와 조그마한 분수가 있는데...이곳에서 의회의 결정 사항이 술탄에게 보고 되었고...외국의 사신들을 영접하기도 했었답니다.

선화와 형민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곳이 바로... 지복문을 통과하자 말자 만나게 되는... 그 왕좌입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선화의 머리 너머로 술탄이 앉았던 자리가 보이시죠? 그런데 웬지...좀 초라해 보이더군요. 물론 이미 지나간 왕조의 유물이라 그렇겠지만...

접견실을 돌아 오른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 다음 건물을 찾아 내려 갔습니다. 왼쪽 사진이 접견실에서 오른쪽을 보고 찍은 화면인데요...멀리 보이는 파란 지붕에 흰 건물이 바로 우리가 들어 갔던 건물입니다 .

그 건물은 "의상 전시실" 이더군요. 그 곳에는 술탄과 왕자들이 있던 옷과 섬유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20세기 초 까지 입었던 옷들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옷감이나 디자인은 우리와는 다른 먼 나라의 것임에 분명하지만 ...웬지...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옷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통점도 많았습니다.

아래는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술탄의 의상 2벌과 헬멧입니다. (의상 전시실에서는 촬영을 금하고 있더군요...자료 사진입니다.)

의상 전시실을 둘러 본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 전시실' 이 어디에 있는지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맞은 편 건물로 가 보았더니...그 곳은 역대 술탄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방이었습니다. 술탄 아저씨들의 얼굴만 잔뜩 보고 나왔습니다.

이쯤 되니까 우리도 슬슬 지치더군요. 잠에서 깨어난 형민이는 엄마, 아빠를 따라 열심히 쫓아 오다가도...가끔씩 자신만의 활동(?)을 위해 우리의 목적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좀 지난 뒤부터는 아예 따라 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복문을 지나면 나오는 세 번째 정원에서 형민이는 아예 길가에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엄마, 아빠가 앞에서..."형민아..우리 간다..안녕..안녕..." 이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파랗게 핀 잔디밭 옆에서 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밑에 나오는 화면이 그 때 촬영한 것인데요. 잔디밭이 보이는 이곳이 바로 지복문을 통과하면 나오는 세 번째 정원입니다. 다른 정원들과 마찬가지로 정원을 둘러 싸면서 많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로부터 멀리 떨어진 형민이가 혼자 잔디밭에 앉아 있을 때...지나 가던 터어키 아가씨가 귀여운 형민이에게 말을 거는 장면입니다. 어디 가나...형민이는 인기가 좋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사실 앞에서 봤던 "의상 전시실" 바로 옆 건물이 "보물 전시실" 이었습니다. 세 번째 정원에는 의상 전시실, 보물 전시실, 술탄의 초상화 전시실, 시계 전시실, 종교 전시실이 다 모여 있는데 성질 급한 우리는 다른 건물을 들어가 보지도 않고 세 번째 정원을 통과해서 또 다른 건물이 있는지 알아 보려 궁전의 끝...그러니까 네 번째 정원까지 올라가 버렸습니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관광 선진국인 터어키가 왜 모든 건물의 입구에 영어로 건물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궁전 구석을 샅샅이 뒤져야 했습니다.  보물을 찾으려고...

네 번째 정원에서는 이렇게 마르마라 바다가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근처에는 몇 개의 정자들도 보였습니다. (소파 정자, 레반 정자, 바그다드 정자....각각 다 이름이 붙어 있더군요...)

마르마르 바다는 이스탄불 인근의 지중해를 일컫는 말인데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흑해와 이어지는 곳입니다.

마치 부산의 송도 어디 쯤에서 영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익숙한 경치를 보이는 이곳에서...그리운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는 선박들과 멀리 보이는 나즈막한 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까작스딴에는 바다가 없고...게다가 아스타나에는 산 마저 없거든요...그냥 광활한 평지에서 살다온 우리로선...반가운 풍경이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정원 한쪽에는 사진과 같은 돌로 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유리로 된 안내문에는 므랏 4세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앉았던 자리라고 적혀 있던데 그냥 돌로 만들어진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의자였습니다.

궁전의 끝까지 다 올라간 우리는 다시 내려오면서 세 번째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을 한 번 더 살펴 보기 시작했습니다. 건물 사이를 미로처럼 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방은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는 컴컴한 방이었습니다.

방 한쪽에서 마이크를 대고 누군가가 계속 기도문을 외고 있었고(노래처럼 부르던데...아마 기도문인 듯 합니다.) 컴컴한 방 안의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 수 많은 칼과 활, 자물통과 열쇠, 단검, 반지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바로 종교 전시실이었습니다. 모든 이슬람 세계를 다스리는 최고의 지도자를 '칼리프' 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아라비아(아랍)의 최고 통지차가 이 칼리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17년에 술탄 셀림이 이집트를 정복한 후 "칼리프" 직분을 가져왔고 그 때부터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 이슬람 세계의 최고 지도자인 칼리프의 지위를 겸임했다고 합니다.

칼리프의 직분을 가지고 올 때 선지자 모하멧의 유품들을 이스탄불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바로 그 유품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모하멧의 망토, 칼, 깃발, 활, 발자국,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선지자 모하멧 이후 초대 4인의 칼리프의 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아래 화면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솔직히 '모하멧' 이니..'메흐멧' 이니...하는 이름이 워낙 많아 어떤 칼이 선지자 모하멧의 칼이고 어떤 칼이 다른 칼리프의 칼인지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톱카프 궁전에 다윗 왕의 칼, 요셉의 모자, 모세의 지팡이 같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정확하게 어느 전시실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보가 없어 이곳을 볼 적에는 그렇게 관심있게 살펴 보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바로 이 종교 전시실에 그런 종교적 유물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 때까지만 해도 보물 전시실에 있는 줄 알았었거든요.(그런데 이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자료마다 다르고...현지에서 판매하는 가이드 북에도 이에 대해 확실하게 명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다시 한 번 톱카프 궁에 갈 수 있다면 이 종교 전시실을 이잡듯 뒤져 볼 생각입니다. 혹시 가시게 되는 분이 있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종교 전시실에 그런 유물들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별 생각없이 찍은 비디오 화면이지만...이곳에서 지팡이처럼 보이는 것은 위의 맨 마지막에 보이는 막대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이게 모세의 지팡이 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게다가 결정적으로 캠코더를 촬영하던 중 촬영 금지 구역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려 종교 전시실의 내부를 더 이상 살펴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들어간 종교 전시실의 입구는 뒷 문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들어가는 종교 전시실의 앞문에는 촬영 금지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네 번째 정원에서 이상한 문을 열고 우여 곡절 끝에 종교 전시실로 들어간 우리로선 아무런 표시도 보지 못했던 거지요.

바로 이 사진이 종교 전시실의 '정상적인' 입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종교 전시실의 특이한 분위기에서 빠져 나온 우리는 보물 전시실이 어디인지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어떻게 물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영어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그는 바로 앞의 건물을 가리켰고 그 건물은 의상 전시실의 바로 옆 건물이었습니다.

"야...드디어 보물을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습기만 한...우리의 행적을 떠 올리며 선화와 전...형민이의 손을 이끌고 씩씩하게 보물 전시실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1인당 만 5천원의 관람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했지만 톱카프 궁에 들어온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 정도는 아깝지 않았습니다.  

보물 전시실 입구에서 형민이를 안고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건물이 "ㄱ" 자로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아실 수 있습니다.

건물이 돌아가는 코너를 기준으로 해서 오른쪽이 의상 전시실이고...왼쪽이 보물 전시실인데....아무리 봐도 특별한 차이도 없고 표시가 나지도 않지요?

그저 똑같은 문에 똑같은 기둥만 서 있을 뿐입니다. 입구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고...이러다 보니...보물섬을 찾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겁니다. 가이드가 있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었겠지만...

보물 전시실은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오는 고급 관료들에게만 보물들의 관람을 허용했다는데...1924년 톱카프 궁이 일반에게 공개된 이후 이 보물들은 체계적으로 진열되어 오스만 제국의 부(富)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대부분의 보물들은 궁전에 소속되어 있던 보석 세공업자들의 작품이라고 하는데..예를 들자면 15세기에는 이 궁전에 70명의 보석 세공업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선물로 받은 귀중한 보석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각 방마다 왕좌가 하나씩 놓여 있고 각종 진귀한 보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실...전...그냥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곰곰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값비싼 물건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세 번째 방에 있는 "스픈 메이커스 다이아몬드" 라고 불리우는 보석입니다. 86캐럿이고 주위에 49개의 조그만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모하멧의 무덤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황금 촛대는 6천 6백 6십 6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왼쪽 사진은 톱카프의 단검이라 불리우는 칼입니다.

오스만 술탄 마흐뭇 1세가 페르시아 술탄인 나디르에게 선물로 만들어 보낸 것인데... 페르시아로 운반되어 가는 도중 술탄 나디르가 사망해서 다시 궁전으로 되돌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수 많은 보석들이 있었지만...우리의 생각은 오직 '사도 요한의 뼈 가 어디에 있는지...' 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보석 전시실의 맨 마지막 방...네 번째 방에서 우리가 찾던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이....(정말 똑같습니다.)  말없이 전시실의 한쪽 코너에 놓여 있더군요.

이 유골이 정말 사도 요한의 유골이다 아니다...라는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유골을 보면서 사도 요한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위에 상관없이 어떻게 이런 유물이 술탄의 궁 안에 있는 보물 창고에 보관되어야 했는지.... 흘러간 세계 역사에 대한 아쉬움만 흘렀습니다.

유골 옆에는 영어로 적힌 제법 긴 설명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유골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설명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가이드 북에 소개되어 있을 것 같아 그냥 대강 훑어 보았었는데 나중에 보니 어떤 책을 뒤져도 이 유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더군요. 어쩌면 이슬람 문화나 오스만 터어키와는 상관없는 유적이기에 현지 가이드 책자에서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나 봅니다.

보물 전시실 역시 어떠한 형태의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서 우두커니 그 유골 앞에 서 있다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이 두개골 사진도 현지 가이드 책자에는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이고 성지 순례 전문 여행사 사이트인 만나 투어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그 때 설명서를 읽었던 기억으로는 기독교의 전성 시대를 맞고 있던 로마 시대에 이 뼈 조각을 포함한 몇 개의 요한의 뼈 조각이 전 세계에 흩어진 몇몇 유력한 교구들로 보내어져 보관되고 있었는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터어키가 동방 교회의 어떤 교구(이스탄불이나 안디옥...)를 점령한 뒤 이 유골을 획득해서 톱카프 궁으로 가져왔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뼈가 진짜 요한의 뼈가 맞냐는 질문은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고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무것도 없겠지요.

그저...요한의 유골이라고 불리는 뼈 앞에서... 죽음을 앞둔 말년에 에베소 교회에서 움직이기도 힘드는 노구를 이끌고 그를 바라보던 성도들을 향해 조용히 얘기하던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일 뿐입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 : 7-8) "     200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