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와 오스만 터어키  2-3일째: 맥도날드, 터어키의 상점, 톱카프 궁(I)

 톱카프 궁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정문에서 되돌아와야 했던 우리는... 내려 오는 길 가의 가판대에서 이스탄불과 터어키에 관한 한국어 관광 안내 책자를 구입했습니다. 한 권에 8불이라고 적혀 있었지만....보통은 좀 더 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한국어 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된 똑같은 내용의 책들이 많은 장소에서 팔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자료들에만 의존해서 움직였었는데...이렇게 꽤 많은 분량의 막강한 자료를 입수하게 되어 더욱 자세하게 또 체계적으로 문명의 요람인 이스탄불을 둘러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일본어로 번역된 것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세계 주요 언어들과 함께 당당히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한국 뿐인데도...다른 UN 공식 언어들과  나란히 안내 책자가 번역되어 있으니까요...그만큼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스탄불을 많이 방문하고 있다는 뜻도 되겠지요.  

오전에 내렸던 비로 거리는 흥건하게 젖었고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이스탄불을 둘러 보기로 한 우리는....다시 뜨람바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수 많은 여행사의 관광 상품들을 눈여겨 보기도 하고...세계 각국으로 떠나는 할인 항공권의 가격을 살펴 보기도 했습니다.

마치 부산 남포동의 한 골목을 걷고 있는 듯한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가다...'맥도날드'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까작스딴에는 맥도날드가 없습니다. 아마...북한이나 일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는 코카콜라나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지 않은 국가는 없을 텐데...하필 까작스딴에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가 없습니다. 모스크바에도 2개나 있다고 하던데...알마티에도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지 않은 탓에 까작스딴에서는 제대로 된 햄버거 맛을 볼 수 없었지요.

위 사진에서..."술탄 아흐메트" 지점 맥도날드를 홍보하는 간판이 확실하게 보이시죠? 사진에 보이는 철길 같은 것은 이미 말씀드린 뜨람바이가 다니는 철길입니다. 마치 지하철 처럼 생긴 열차가 이 레일을 따라 운행하는데...뜨람바이가 지나 가지 않을 때는 사람이나 자동차들이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게 독특합니다.

우리는...들어가서 우리에게 익숙한 치즈 버거를 두 개나 시켜서 형민이와 나눠 먹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온 뒤...처음으로 맛보는 제대로 된 햄버거였지요.

맥도날드에서도 선화는 방금 산 한국어 이스탄불 관광 안내 책자를 열심히 보며...우리가 꼭 눈여겨 봐야 할 문화 유산에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공부한 만큼 여행을 통해 얻는 것도 있을 테니까요...햄버거 가게의 내부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귀여운 형민이를 본 맥도날드 점원은 조그마한 장난감을 선물했고...햄버거를 먹던 어떤 아저씨는 형민이 환심을 사려고 동전을 건네 주기도 했습니다. 어디를 가던지 형민이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다녔습니다. 이 날 저녁에도 형민이를 꼭 만나 보고 싶다는 현지인 아가씨와의 만남이 있었지요.

첫 날 우리를 도와 줬던 김경림 씨가 근무하는 여행사의 매니저인데...한국 아기가 왔다는 얘길 듣고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간청하는 바람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맞은 편 식탁에서 손을 흔들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형민이의 눈을 보면서...."나도 저렇게 생긴 눈을 가진 아기를 갖고 싶어요" 라고 넉살을 부렸습니다. 동양인의 작고 길쭉한 눈매가 맘에 들었나 봅니다. 터키 사람들은 모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는데... 까작인들도 그런 걸 보면...투르크계 인종의 특징 중 하나가 커다란 눈인가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만나 터어키 전통 요리를 함께 먹으면서 터어키의 둘째 날 저녁을 맞았습니다. 터어키 전통 요리는 다들 아시는 대로 케밥이지요. 케밥에도 종류가 많고... 터어키 요리에는 한국과 유사한 재료들이 많이 포함되기 때문에 터어키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비교적 맞았습니다.

이스탄불 여행 둘쨋 날은 이렇게 마감했습니다. 첫 날 저녁에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을 잊어 버려 1시간 동안 헤매고 다녔었는데...이 날은 쉽게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오는 길에서 호텔 근처 한 가게에 들러 우리에게 필요한 음료수(물)와 형민이 과자를 샀었는데...이후로 거의 매일 이 가게에 들러 물이랑...쨈, 빵 등 간식 거리를 챙겼습니다. 가게는 한국의 상점과 똑같았습니다. 아래에 대강의 모습을 포착해 놓았습니다.

 선화는...이 가게가 맘에 드는지 매일 저녁 이곳에 들러 형민이가 좋아하는 빼빼로 과자(우리 나라 빼빼로 처럼 생겼거든요...)를 샀습니다. 사실...까작스딴의 가게는 한국과 달리 물건을 수북히 갖다 놓지도 않고...과자나 빵의 품질도 한국보다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우리가 터어키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아침마다 먹는 터어키 빵의 그 부드러운 촉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운 빵을 저렴한 가격에 구워 내는지....할 수 만 있다면 터어키의 빵을 한 보따라 사 가지고 까작스딴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니...할 수 만 있다면 까작스딴의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기왕 굽는 빵이라면 터어키 빵처럼 구워 국민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도록 제빵 기술자들을 몇 명이라도 터어키로 보내 기술 이전을 받아 오라고 말해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과자 역시...한국 과자 못지 않게 다양하고 맛있는 제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GNP는 한국보다 낮지만 터어키의 사회적, 경제적 수준은 한국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너무나도 한국과 유사한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거리 풍경이나 상점 내부까지....게다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터어키 사람들은 한국이 터어키에 대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터어키 사람들은 터어키는 과거 6.25때 한국전에 함께 참전했던 피를 나눈 형제 국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한국과 터어키의 우호 친선을 부르짖습니다. 하지만...한국에 살고 있는 일반 국민들은 터어키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말하기 힘든 사실이니....참 여러 면으로 우리에게 고마운 나라 임에 틀림없습니다.

형민이는 이 가게에 오면 아래 사진처럼 늘 카운터 앞에 수북히 쌓여 있는 계란들에 슬며시 손을 대 봅니다. 집에서 자주 먹던 익숙한 계란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 게 항상 반가운가 봅니다.

호텔에 들어 오면...언제나 처럼 형민이부터 씻기고...우리도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합니다. 눈만 말똥 말똥하는 형민이를 침대에 눕히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형민이가 먼저 잠 들고...그리고 누가 먼저 일 것도 없이 우리도 형민이를 따라 갑니다.

이스탄불에서의 셋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창문으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하늘은 오늘도 '흐림' 이지만....따뜻한 방 안에서 푹 자고 일어난 우리의 기분은 전 날의 피로를 다 씻은 '맑음'  입니다. 방을 나와....호텔 총각이 준비해 주는 맛있는 빵과 차, 계란과 쨈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출발 준비는 끝이 납니다.

호텔에서 술탄 아흐멧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비탈길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이스탄불에 온 뒤로 형민이는 독립을 선언하고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지 않은 채 혼자 걸으려 했습니다.

비디오 캡처 사진보다 디지털 카메라 사진이 확실히 화질이 앞서지요?

마치 한국의 어느 산복도로와 같은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성소피아 교회와 블루 모스크가 마주 보고 있는 술탄 아흐멧 광장이 나오고 성소피아 교회를 돌아 가면 오늘의 방문지인 톱카프 궁전이 나오게 됩니다.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행정 중심지였던 톱카프 궁전은 방문 제 1위의 유적지입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왕) 메흐멧은 처음에는 그랜드 바자르 근처에 세운 조그만 궁전에서 머무르다가  1475-1478년에 동로마 도시의 폐허 위에 톱카프 궁전을 짓게 합니다. 그 후 새로운 궁전 '돌바마체'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곳은 공식적인 왕의 저택이었고 모든 오스만 술탄들이 거하면서 새로운 건축물들을 짓고 장식하면서 궁전을 넓혀 나갔습니다.

A.D. 330년...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히포 드럼에서 도시의 완공식을 갖고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화려하게 시작된 비잔틴 제국은 쥬스티니안 황제의 통치기인 AD 6세기에 정치, 문화적으로 절정기를 이루게 됩니다. 바로 그 때 성 소피아 교회도 건설되었지요. 쥬스티니안 황제의 황금기를 지나서부터 비잔틴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AD 7세기 전반부터 AD 9세기 후반까지 계속된 아라비아(아랍)와의 싸움은 비잔틴 제국을 흔들어 놓습니다.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페르시아 원정이 성공한 지 9년 뒤 재빨리 시리아에 침입한 아라비아 군대는 비잔틴 제국의 군대를 대파해 버리지요. 이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같은 비잔틴 제국의 중요한 영토들이 순식간에 제국령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소아시아는 물론 수도마저 2번에 걸쳐 이슬람 세력인 아라비아 군에 포위되는 형편에 놓이게 됩니다. 638년에 성지 예루살렘은 아라비아 인들의 수중에 들어가 버리고 소아시아 지방은 그 후 수백년 동안 아라비아(아랍)의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 때부터 에게해의 수 많은 기독교 도시(에베소, 라오디게아, 골로새 등...)들이 폐허가 되기 시작합니다. 비잔틴 제국은 9세기 후반에 들어서 아라비아에 대해 공세를 취하고 소아시아의 영토를 일부 회복할 수 있었으나 또 다른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 로 말미암아 다시 내리막 길을 가게 됩니다.  

1071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4세가 또 다른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 군을 만지켈트에서 공격했으나 패하는 바람에 소아시아는 다시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인들에게 개방되고 ...거의 전 소아시아를 점령한 셀주크 인들은 다시 여러 개의 소부족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오스만 부족도 있었습니다. 1326년 이스탄불 근처의 거점 도시였던 불사가 오스만에 점령되면서 오스만 터어키의 최초의 수도가 되었고...1400-1402년 간의 몽고 침략 후 소아시아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완전히 들어가면서...콘스탄티노플 마저 1453년 술탄 메흐멧 2세에게 완전히 점령당함으로 비잔틴 제국의 역사는 막을 내리지요.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터어키)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포함하는 대 제국을 형성하며 강자로 군림하는데... AD 16-17 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까지 점령합니다. 다음 지도를 보시면 오스만 세력이 얼마나 강성했는지 한 눈에 아실 수 있습니다.

헝가리, 보스니아, 세르비아, 그리이스, 체코슬로바키아, 몰다비아, 터어키, 시리아 등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라비아 일부,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 바로 오스만 투르크입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술탄 슐레이만 대제 시절(1520-1566년)에 제국의 전성기를 맞게 되고 1683년 오스트리아 침공시 카렌버그에서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이 후 100년 동안 제국의 영토가 축소되기 시작합니다. 술탄들은 정치를 재상들과 측근에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1911년 발칸 전쟁의 결과로 그리이스와 불가리아가 독립하고 1914년 독일과 함께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함으로써 결국 영토가 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 때 전에 말씀드린 대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지휘하에 전개된 터어키 독립 전쟁이 이어지고...마지막 술탄인 마흐멧 6세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1923년 10월 29일 터어키 공화국이 선포되고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집니다. 물론 초대 대통령은 아타투르크 입니다.

톱카프 궁전은 현존하는 오스만 제국의 건축물 중 가장 광범위하고 훌륭한 거대한 궁전입니다. 면적은 약 21만 평에 달하는데...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해안 성벽을 따라 도시 성벽을 쌓고 모두 28개의 탑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왕족, 고관들, 지배 계급들, 하인들, 군인들을 포함해 모두 약 5천명이 거주했던 이 궁전은 AD 15-16 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이 도입된 복합체이기도 한데...수백 개의 방이 있는 넓고 긴 건물과 건물 앞 뒤에 놓인 넓은 정원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궁전 건축 양식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로 건축되어 있습니다. 톱카프 궁전을 건축하기 전 수세기 동안 유목 생활을 했던 오스만 인들은 궁전 건축에도 유목민적 전통을 반영시켜...먹고 즐기기 위한 커다란 공간을 중심으로 그들의 텐트를 쳤던 것처럼... 톱카프 궁전을 지을 때 역시 거대한 정원을 중심으로 해서 주위에 건물을 세우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죠.

아침 일찍 톱카프 궁전을 찾아 나섰기에...공기는 쌀쌀한 나머지 춥게 느껴졌습니다. 왼쪽 사진에서....톱카프 궁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있네요...멀리 보이는 성벽 같은 것이 톱카프 궁의 첫 번째 문입니다. '황제의 문' 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톱카프 궁전은 무장이 단단이 되어 있는 성벽에 의해 둘러 싸여 있는 데다...궁 정문 앞에 있었다는 거대한 대포 때문에...'대포문' 이라는 의미인 "톱카프" 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형민이와 함께 톱카프 궁 정문에 거의 다 도착한 모습입니다.

처음 만나는 문의 명칭이 '황제의 문' 이라고 알려 드렸는데요....이 문으로 사람은 물론 관광 버스들도 많이 출입하고 있었고...문 입구에서는 아래와 같이 무장을 한 군인들이 궁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말씀 드리겠지만....이 궁전 안에는 어마 어마한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폭이 5 미터나 되는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 싸인 톱카피 궁전의 첫 번째 문인 ' 황제의 문' 의 오른쪽 앞에는 아름다운 우물 건물 하나가 있는데 1728년 술탄 아흐멧 3세에 의해 건축된 것입니다. 지난 번 글에 이미 사진이 소개 되었는데요....다시 한 번 보시면...

기억 나시죠? 선화 뒤로 보이는 버스에 가려 있는 출입구가 바로 '황제의 문' 이고...바로 그 오른쪽에 보이는 독립된 건물이 바로 다섯 개의 돔과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우물 건물입니다. 

우리는 이 황제의 문을 지나 넓고 긴 '첫 번째 정원' 으로 들어 갔습니다. 이 문을 지나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입장료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정원은 현재 주차장으로 일부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병원, 제빵집, 무기고, 저장고, 경비하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형민이를 앞세우고 톱카프 궁전의 매표소가 위치한 두 번째 문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첫 번째 정원을 지나면서...나무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오른쪽에는 마르마라 바다의 푸른 파도가 눈에 들어 왔고 ...나뭇 가지 사이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까치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파란 잎사귀들이 여기 저기 보이는 길을 걸으며...우리는 눈밭 아스타나와 달리 푸르른 이곳이 좋아졌습니다.

선화도 기분이 좋은지...V자를 지어 보이며 사진을 찍고 있네요...멀리 길 끝에 보이는 성벽 같은 것이 바로 두 번째 문인 '예절의 문'입니다.

이 '예절의 문' 옆에 매표소가 있는데...표를 사야만 본격적인 톱카프 궁 방문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메흐멧 2세의 통치 기간 중 만들어졌다는 이 문은 '중앙 문' 이라고도 불리는데 1524년에 쇠를 정련하여 만들어진 이 문의 왼쪽 탑은 오스만 시대에 범죄를 저지른 고위 관리들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선화가 예절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문 앞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입장을 하기 위해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도 톱카프 궁을 구경하기 위해 1인당 150만 터어키 리라...그러니까 만 5천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톱카피 궁을 꼭 보려고 하는 이유는 이곳에 살았던 술탄의 생활 모습이나 오스만 터어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을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몇 가지 보물 때문입니다. 비잔틴 제국을 정복했던 오스만 제국은 성지 예루살렘과 초대 교회의 중심 교구였던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교구 그리고...사도 요한이 전도 여행을 통해 세워 놓았던 수 많은 소아시아 교회들의 중심지를 점령하면서 많은 기독교 관련 유물들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궁전에 보관해 두었는데...그 중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유물은 술탄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방에 전시되어 있다는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손뼈 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톱카프 궁에는 다윗 왕의 칼, 요셉의 모자, 모세의 지팡이 등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많은 종교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예절의 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형민이는 터어키 여행 동안 자주 이렇게 아빠 어깨 위에서 목마를 타고 다녔는데..지나가는 사람마다 형민이의 얼굴과 제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 짓더군요.

톱카프 궁 안의 모습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모세의 지팡이를 정말 보았을까요?

계속 이어지는 터어키 여행기를 기대해 주세요.  200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