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블루 모스크   2일째: 푸딩 숖, 블루 모스크, 톱카피 궁 앞에서

성 소피아 교회를 다 둘러 보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이미 가늘어져 있었습니다. 벌써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비로 인한 낮은 기온에다 짙은 구름이 도시를 덮고 있어 전체적으로 스산한 느낌이 드는 4월 초의 이스탄불 날씨였습니다. 우리야 사실....영하 3-40도의 추위를 자랑하는 아스타나에서 왔기에 이 정도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따뜻한 나라로 간다고 일부러 얇은 옷을 준비해 온 탓에 해안 도시 특유의 차가운 바닷 바람이 불어올 때면 "추워요....." 라는 선화의 장난기 섞인 비명을 들어야 했습니다.

1500년의 사연을 간직한 소피아 교회를 뒤로 한 채.... 어딘가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선 우리가 들어간 곳은 술탄 아흐멧 광장 근처 뜨람바이 도로 변에 위치한 "푸딩숖" 이라는 레스토랑 이었습니다. 가랑비에 이미 몸이 완전히 젖은 데다가 많이 걸은 탓에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었지요. 난방 장치가 가동되고 있었는지 레스토랑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고 우리의 움츠려진 몸은 차차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부터 중심가를 지나 다니면서 영어로 뚜렷하게 "푸딩 숖" 이라고 적힌 간판을 자주 봤었는데...밖에서 안이 환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유리 문과 늘 문 입구에 서서 지나 가는 관광객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식사를 권하는 지배인 아저씨의 매너가 맘에 들어 한 번 들어가 볼 참이었습니다.

우리가 나올 때 찍은 사진이지만 이곳의 분위기를 대강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요? 유리 문을 직접 열어 주는 지배인 아저씨는 형민이를 보면 그렇게 신기한지 몇 번이나 이름을 물어보고 장난을 걸어 오곤 했습니다.

이 주변에는 수 많은 식당들과 여행사, 기념품 판매점을 포함한 각종 상가들이 뜨람바이(전차) 철로 변을 따라 들어 서 있어서...여러 모로 관광객들에겐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식사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선화와 전...뭔가 특별한 음료수나 차를 마셔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뜨거운 걸루요...

그리고 메뉴판을 쭉 봤더니..."터어키식 커피", "애플 티(사과 차)", "키위 티"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우리는 "터어키식 커피 1개", "애플 티 1개" 를 주문하고 궁금한 맘으로 기다렸습니다.

터어키식 커피의 맛은 ....뭐라고 할까... "에스프레소 커피" 하고 비슷하기도 하면서... 전혀 달콤한 맛 없이 쓰기만 쓴 마치 커피의 원액의 농축액 같다는 생각이 드는 커피 였습니다. 아니 단순히 커피 원액이라기 보다는 커피에 뭔가 쓴 약초를 빻아 넣었을 것 같은 떫은 맛도 배여 나왔습니다. 저로선...다시는 마셔서는 안 될 커피라고 기억해 놓아야 했지만...어떤 이들은 독특한 맛과 향이 난다고 열심히 찾는다고 합니다. 뭐...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니까요...

각설탕을 든 선화의 오른손 밑에 보이는 게 터어키식 커피 입니다. 보기만 봐도...대강 맛이 짐작하시겠지요? 텁텁한 맛이...

그 옆에는 제법 큰 잔에 애플 티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과로 만든 차 답게 달콤한 맛과 향을 가진 차 였습니다. 이 맛에 만족한 우리는 이후로도 자주 애플 티를 마셨는데...이 푸딩숖 외에는 모두 한결같이...소주잔과 흡사한 조그마한 유리잔에 주황색의 애플티를 담아 내 오더군요. 그게 더 보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애플 티는 터어키의 관광 상품이라고 합니다. 많은 기념품 판매장에서 애플 티를 선물 세트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던데...심지어 에베소에 있는 사도 요한의 무덤과 사도 요한 기념 교회 앞에서도 애플 티 선물 세트를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어쨋든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과 향이라 좋은 선물이 될 듯 싶었습니다.

애플 티로 온 몸이 따뜻해 지고 젖었던 옷이 다 마르자...우리는 용기를 내어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블루 모스크 인데...정식 이름은 술탄 아흐멧 사원입니다. 현재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스크 지요. 이 사원이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 이유는 사원 내부의 벽과 돔에 사용된 타일과 그림의 색들이 거의 푸른 색과 녹색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1603-1617 년까지 통치했던 오스만 터어키의 14번째 술탄(왕) 아흐멧 1세에 의해 세워진 이 건물은 다른 오스만 제국의 어떤 건축물보다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건물이 완성된 시기는 1616년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386년 전의 일이죠..

블루 모스크는 이스탄불과 터키에서는 볼 수 있는 이슬람 사원 중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원 첨탑에 관해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술탄 아흐멧 1세는 이 사원을 건축한 건축가 '메흐멧 아아'에게 첨탑을 황금 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금의 터키어 발음은 숫자 '여섯'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메흐멧 아아는 이 점을 잘 못 이해했고 금 대신에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6개의 첨탑이 있는 사원을 건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선화와 형민이 뒤로 보이는 게 바로 블루 모스크입니다. 첨탑이 6개 인 것이 다른 이슬람 사원과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했는데...이 사진에서는 4개 밖에 안 보이는 군요..

그래서...참고가 될 만한 다른 사진 하나를 소개합니다.  맑은 날 블루 모스크가 다 나오게 찍은 이 전경을 보시면 이 건물이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건물 뒤로는 지중해의 일부인 마르마라 해가 푸르게 펼쳐져 있습니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성 소피아 교회는 1453년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면서 그 후 481년 간 이슬람 사원으로 용도 변경(?) 되어 사용되었다고 말씀 드렸었는데...바로 그 때.. 지금까지 남아 있는대로... 성 소피아 교회 주변에도 다른 모스크들처럼 4개의 첨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사원의 특징적인 건축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끝이 뾰족뾰족한 첨탑을 주변에 세우는 것인가 봅니다. 성 소피아 교회 주변에 세워진 뾰족한 첨탑들을 보고 있으면 한 때 불행했던 흘러간 역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습니다.

1453년 이스탄불이 오스만 터어키 제국에 넘어간 뒤 163년이 지난 뒤에서야 이 블루 모스크가 세워지게 되었는데....그 때까지는 성 소피아 교회가 이스탄불의 중심 모스크였을 것입니다.

블루 모스크의 건축을 지시한 술탄 아흐멧 1세는 "비잔틴 제국의 훌륭한 건축물인 성 소피아 교회를 능가할 만한 모스크를 그 맞은 편에 세우라" 고 명령했고...그 때문에 블루 모스크는 성 소피아 교회 바로 맞은 편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종교 행사가 거행되는 모스크인 블루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 소피아 교회(박물관)는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었지만...블루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그 어떤 입장료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출구 한 쪽에서 모스크의 수리를 위한 모금함을 마련해 두고 방문객들로부터 헌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단지 기도 시간에만 관광객들이 사원 내부로 들어오는 게 금지되어 있을 뿐...그 외에는 언제든지 사원의 내부를 편하게 둘러 볼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사원 내부 정원을 둘러 보았습니다. 물론 이교도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터어키의 유산을 가까이서 보니...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때 이슬람 세력의 확장은 전 유럽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수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이루어졌었습니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지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을 이슬람 교도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8차례에 걸쳐 대 원정을 감행했는데 이 때 참여했던 기사들은 모두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하고 있어서 십자군이라고 불립니다.

고대 로마 제국이 동서로 양분된 후 시리아는 동로마 제국 통치하의 속주가 되었지만 7세기 전반에 이르러 이슬람 교도인 아라비아 인들에게 정복되었고 마침내... 638년... 성지 예루살렘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예루살렘을 숭앙하는 생각이 점차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떠나고 있었고 동방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셀주크 투르크(터어키) 왕조의  통일이 1092년에 깨어지면서 영토가 왕족간에 분열된 시기라....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부흥을 꾀하여 군사적 원조를 청하는 사절을 로마 교황청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최초로 십자군을 제창하였는데 동방 원정이라는 어려운 사업을 통해 유럽에서 교황권을 확립하고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정교회를 로마 교회 산하에 통일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제 1회 십자군은 1099년 7월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였지만 그 성공은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분열에 편승한 바가 컸었고 그 후 이슬람 세력이 통일되자 반격을 당하는 상태가 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되던 십자군 원정은 그 자체의 정체와 더불어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블루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입구에서 나누어 주는 비닐 봉지에 신발과 우산을 집어 넣은 뒤...내부 복도를 따라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 들어서자 말자...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벽과 무늬의 색상이 정말 푸른 색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성 소피아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고 흐린 날씨 때문에 내부가 아주 어두워 제대로 색을 감별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자세히 보니...내부 벽의 색상이 마치 우리 나라 고려 청자 빛깔처럼 푸른 빛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밖에서 기대하고 들어왔던 대로 완전히 푸른 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푸른 빛이 난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았습니다.

어두운 모스크의 내부를 밝혀 주고 있는 수 백개의 전등과 총 260개의 창문에 포함되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들이 보입니다.

관광객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나무로 된 경계선 바로 앞에 까지 온 선화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선화는 이곳에서 터어키와 이 모스크를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참 종교를 발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형민이의 옆에는 신발과 우산이 담긴 비닐 봉지들, 이스탄불 유적에 대한 자료가 담긴 바인더 들이 흩어져 있어서 우리들이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 왔는지를 더욱 실감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선화가 앉아 있는 모스크의 바닥을 보세요....양탄자(카페트)가 깔려 있지요? 이슬람 기도회는 항상 이렇게 양탄자가 깔린 모스크의 바닥에서 행해집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슬람 사회에서는 양탄자가 크게 발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탄자 생산국들은 모두 이슬람 국가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독교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일반적으로 의자에 앉기 때문에 양탄자가 발달될 조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하겠습니다. 블루 모스크의 양탄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색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손으로 짠 훌륭한 것이었다고 하는데...지금은 기계로 짠 양탄자라고 합니다.

블루 모스크의 내부를 푸른 색으로 만들고 있는 벽에 붙은 타일들 역시 터어키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타일 제조업은 12세기 이래로 터키가 전승해 오고 있는 수공업 중 한 가지 인데... 양탄자처럼 타일 역시 각 지역마다 독특한 디자인과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모스크 내부에 주로 사용되는 디자인은 봄, 나뭇잎, 꽃받침, 튤립, 장미, 히야신스, 카네이션, 석류 꽃, 포도 그리고 기하학적 모양들이라고 합니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오고 있었는데...어떤 이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경계를 벗어나 기도하고 있는 신도들의 무리에 섞여 기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양탄자가 깔린 블루 모스크에서 휴식을 취한 뒤...밖으로 나와 미처 보지 못한 모스크 주변을 샅샅이 돌아 보았습니다.

우람함이나 스케일은 성 소피아 교회보다 크지만...그래도 우리가 보기에는 성 소피아 교회가 더 멋져 보였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객관적인 요소 보다 주관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겠죠?

블루 모스크를 나온 때는 점심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까 방문했던 "푸딩 숖"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오기로 했습니다. 다시 술탄 아흐멧 광장을 가로 질러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보기에 먹음직해 보이는 음식들을 선화가 직접 주문했습니다. 주로 닭고기, 감자, 쌀밥 등이었는데...우리가 먹는 음식이랑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실제로 먹어 보면 모든 음식에 기름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좀 느끼한 편입니다.

위 사진에서 "푸딩 숖"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음식들과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을 잘 보시면 메뉴의 가격이 "3백 5십만 터어키 리라" 라고 적힌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단위가 엄청 높지요?... 하지만 우리 돈으로 하면 3천 5백원 정도의 가격입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숙소인 SUR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커텐을 치고... 잠이 와서 눈꺼풀이 감기고 있는 형민이를 눕힌 뒤 우리 역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터어키 여행 내내 항상 낮잠을 자야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형민이가 낮잠을 꼭 자야 하기 때문이지만...또 한 편으로는 어린 형민이를 데리고 여행을 해야 하는 우리로서도 2주 이상의 긴 여행을 별 탈 없이 소화해 내려면 이렇게 낮에 규칙적으로 쉬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모두 건강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깜빡 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 떴을 때...시계는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후에 톱카피 궁을 방문하기로 계획했었기에...다시 출동 준비를 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형민이도 다시 활기를 띠고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더군요.

우리의 이스탄불 여행 일정은 전적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내 책자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 위치를 파악해서 떠나는  방식이었지요. 톱카피 궁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고 지도 상에 성 소피아 교회, 블루 모스크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나와 있어서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사방을 둘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 소피아 교회나 블루 모스크 처럼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 옆에 위치한 관광객들을 위한 "Information center"를 방문했고 그 곳에서 톱카피 궁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성 소피아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워낙 넓은 곳이라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톱카피 궁 입구에 서 있는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형민이는 저렇게 아빠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자신만의 포즈를 취합니다. 톱카피 궁 입구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오후 4시 10분 경 이었습니다. 그런데...이게 뭐야?...관람을 위한 입장은 오후 4시까지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관람 시간은 5시까지 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려면 4시 이전까지는 입장을 해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었습니다. 이 궁을 돌아 보는데는 적어도 1시간은 소요된다는 얘기지요. 할 수 없이 우리는 돌아서야 했고 톱카피 궁 방문은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톱카피 궁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방문 제 1위" 의 유적이라고 하는데...이 날도 사진에서 보듯이 수학 여행단으로 보이는 버스 행렬들이 톱카피 궁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도 현재의 터어키 공화국의 전신인 오스만 터어키의 궁궐인 톱카피 궁을 "방문 1위" 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터어키 정부도 하고 있을 거라고 여겨 집니다.

내일을 기약하고 돌아서는 톱카피 궁 앞에서 우리는 수 많은 수학 여행단을 만났고...많은 터어키 학생들이 우리에게 짧은 영어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특히 형민이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제가 터키 사람들은 동양인에 대해 아주 특별한 환대를 보이는 것 같다고 얘기드렸지요? 터키에 머무는 2주 동안 우리는 이들이 보여주는 환대와 관심에 오히려 황송할 정도였습니다.

 위 사진도...길을 지나던 터어키 아가씨들이 형민이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카메라를 맡기는 바람에 빚어진 일입니다. 형민이는 이렇게 여행 내내 사진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비록 톱카리 궁은 보지 못했지만...흐믓한 경험들을 많이 하고 다시 술탄 아흐멧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기왕 밖으로 나왔으니 주변 일대를 좀 더 돌아 보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

술탄 아흐멧 광장의 예쁜 화단 옆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여전히 바닥은 비가 온 탓에 젖어 있고 물도 여기 저기 고여 있지만...4월 초의 이스탄불은 우리에게 기쁨과 휴식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어제... 눈 벌판 아스타나에서 날아 왔으니까요...

선화 뒤로 보이는 짙은 남색의 정복을 입고 오는 분들이 이곳 경찰 아저씨들입니다.

까작스딴에 있다 와서 그런지 이곳 터어키 경찰 아저씨들은 복장부터 세련되고 매너도 아주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술탄 아흐멧 광장에는 이렇게 경찰들이 자주 순찰하면서 관광객들을 보호하고 돕고 있는데...형민이는 저런 경찰 아저씨들로부터 "메두사의 눈"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기념품을 세 번이나 받기도 했습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 만으로....

이번 이야기는 여기서 접을까 합니다. 이스탄불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기대해 주세요.....200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