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히포 드럼, 오벨리스크, 뱀 기둥, 터어키 식사 (첫째 날)

얼마를 잔 것일까?.....6시간 비행의 피로를 씻어 내려는 우리의 낮잠은 의외로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그 때까지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눈을 뜨게 된 이유는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스탄불에서의 첫 날을 낮잠으로만 보낼 수는 없지요.....형민이, 선화 그리고 저...이렇게 세 식구는 무거운 슈트 케이스는 호텔 방에 두고 짐 정리를 하고 난 뒤 가벼운 옷 차림으로 바깥 구경을 나섰습니다.

방금 까지 밖은 꽤 쌀쌀한 날씨였고 비가 오려는 어두운 하늘이었기에 우산도 챙기고 형민이 옷도 단단하게 입힌 채 3층 호텔 방에서 나와 프론트의 아가씨에게 나간다는 인사 한 마디 남기고 바깥을 나섰습니다.

터어키는 터어키어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우리는 이곳 터어키에 온 뒤 언어상의 문제를 전혀 경험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곳 터키 사람들...특히 관광업에 종사하는 터어키 사람들은 모두 짧은 영어를 잘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실제로 중요한 문제들은 영어로도 의사 소통이 충분히 가능했고 굳이 터어키어를 익히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관광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 여행 안내소에 들러 궁금한 것을 물어 보는 것, 음식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주문하는 것....모든 것이 쉬운 생활 영어로 이루어지기에 이슬람 국가인 터어키에 영어권....특히 미국의 영향이 얼마나 강하게 파고 들었는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고 있는 sur 호텔은 이스탄불의 역사적 유적지가 모여 있는 이른 바 '역사적 반도' 에 위치한 성 소피아 사원, 블루 모스크를 끼고 있는 술탄 아흐멧 광장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유적지가 모여 있는 술탄 아흐멧 광장 까지 올라 가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올라가면서 한국의 어느 동네의 골목을 오르고 있다는 착각을 받을 만큼 한국과 유사한 거리 풍경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곳의 가옥 구조는 마당은 없고 가파른 나선 계단만이 윗 층과 연결되고 있는 깎아 지를 듯한 3,4 층 건물이 높게 도로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군데 군데 우리 나라의 구멍 가게 같은 점포도 눈에 띄고 거미줄 같이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골목에다 산복도로 같은 소방 도로가 보이고...마치 부산의 아미동 어딘가를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1년 6개월 된 형민이는 이 즈음...엄마, 아빠의 손을 잡지 않고 혼자 걸어 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만치 가고 형민이는 뒤 따라 오고....이런 식으로 산복 도로 같은 가파른 길을 형민이 혼자서 제법 오랫동안 걷곤 했습니다. 물론 그러다 지치면 제가 품에 안고 걸었지요.

이스탄불이 세계적인 국제 도시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지도를 통해 한 번 더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왼쪽 지도에서 보시면....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이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정치, 경제 적으로 아주 중요한 해협입니다. 흑해의 엄청난 자원들이 서방 세계로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지름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미국이 터어키에 그렇게도 집착하고 오랫동안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중해를 거쳐 대양주로 가려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구 소련의  배 들은 반드시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거쳐야 하는데, 이 해협은 몬트렉스 조약(1936년)에 명시된 것처럼 터키의 통제를 받는 터키의 영해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보스포러스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또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려는 원정 부대가 꼭 거쳐야 할 장애물이었는데 이 곳에 놓여진 최초의 다리는 BC 4세기 경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에 의해 칠십 만의 군사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배와 뗏목을 이어 붙여 만든 다리였다고 합니다.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유럽과 아시아를 양분하니까....이 해협을 중앙에 두고 발달한 도시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가 함께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인 셈입니다.

위 지도는 이스탄불 인근을 포함한 지도인데요...지도에서 빨간 줄을 사각형을 친 것이 이스탄불 도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도심 지역만 확대한 그림이 다음 그림입니다.

이스탄불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동쪽에 위치한 아시아 지역( 주거 지역) 과  보스포러스 해협의 서쪽에 위치한 유럽 지역의 두 부분(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입니다.

유럽 지역은 골든 혼(Golden Horn) 이라고 불리는 길이 7 Km의 길고 좁은 만에 의해 다시 남북으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골든 혼의 북쪽은 갈라타 지역이라 불리고...골든 혼의 남쪽은 역사적인 반도(구시가지) 로 불리우고 있지요.

이스탄불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이 역사적인 반도(구시가지) 지역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술탄 아흐멧 지역입니다. 이 곳에 유적지가 많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비잔틴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 시대 동안 황제가 사는 궁전이 있는 도시의 심장부는 항상 이곳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 가장 영화로운 사원, 가장 큰 박물관들이 모두 다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요.

구 시가지 내에는 7개의 언덕이 있는데 이 중 2개가 술탄 아흐멧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에는 톱카프 궁전(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살던 궁전) 이 세워져 있고 또 다른 하나에는 술탄 아흐멧 사원(블루 모스크)이 위치하고 있는데...이 두 언덕 사이에 다른 많은 중요한 역사적 기념비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성 소피아 사원, 톱카프 궁전, 술탄 아흐멧 사원(블루 모스크), 고고학 박물관, 터키와 이슬람 예술 박물관, 모자이크 박물관 등이 다 모여 있는 술탄 아흐멧 지역에는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 시대에 도시의 중심지였던 히포 드럼(경기장)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히포 드럼은 길이 400미터, 폭 120미터에 달하는 로마에 있는 시쿠스 맥시무스 다음으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습니다.  당시 'U 자' 모양의 경기장을 중심으로 3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40줄의 계단식 좌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스만 제국 시대 이 자리에 블루 모스크가 세워지는 바람에 과거와 같은 웅장한 경기장을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일대에 넓은 광장이 위치하고 있고 그 광장을 '술탄 아흐멧 광장' 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의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꽃밭 사이를 거닐면서 좌우로 높게 솟아 올라 있는 거대한 유적지...그러니까 성소피아 사원과 블루 모스크를 경이로운 마음으로 올라다 보았고...형민이는 술탄 아흐멧 광장에 모여든 비둘기를 쫓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술탄 아흐멧 광장의 한 쪽 구석에서 소피아 사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서도 짙게 깔린 구름과 흐린 날씨가 느껴집니다.

우리가 아스타나를 떠날 때...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이스탄불은 비록 비가 내릴 것 같긴 하지만...온 세상이 파랗게 변해 있었습니다.

광장 여기 저기에는 잘 다듬어져 있는 잔디밭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빨갛고 노란 꽃들이 예쁘게 앉아 있었습니다.

형민이가 주변 사물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진 10개월 이후로 아스타나에서 우리가 형민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눈 덮인 도로와 벌판 뿐이라 늘 아쉽고 안타까왔는데...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도착한 형민이는 이 모든 푸른 세상이 신기하고 놀라왔나 봅니다. 광장 여기 저기를 뛰어 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꽃잎과 나뭇잎들을 만져 보고...비둘기를 쫓아 다니며 새로운 세상과 만남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술탄 아흐멧 광장.....'술탄 아흐멧' 이란 이름은 1603-1617년 까지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의 14번째 술탄(왕)인 아흐멧 1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종교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한 술탄 아흐멧 사원(블루 모스크라 부르기도 함)을 고대 도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히포 드럼에 세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히포 드럼의 한 쪽에 블루 모스크를 건설하지요. 물론 이 때 히포 드럼의 많은 건축물들은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래도...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영화가 담겨 있는 히포 드럼이 위치했던 술탄 아흐멧 광장에는 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술탄 아흐멧 광장을 거닐고 있는 모습인데...뒤로 보이는 넓은 광장 즉, 술탄 아흐멧 광장 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탑 같은 구조물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중 앞쪽에 보이는 끝이 뾰족한 구조물은 히포 드럼 뿐 아니라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념비인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인데... 이 오벨리스크는 BC 15 세기, 즉 3500년 전에 만들어진 구조물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이집트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이와 유사한 것이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BC 390년 경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의 룩소에 있는 아몬 신전에서 가져 와 현재의 위치에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100년 마다 한 번씩 평균 6.5 강도의 지진이 이 도시를 강타했어도 이 오벨리스크는 지난 1600년 동안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이 곳에 서 있어 왔다고 합니다. 연한 핑크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32.5미터였는데 수송 과정에서 밑부분의 40%가 깨져 현재의 높이는 20미터 라고 합니다.

오벨리스크의 사면에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의 용맹성을 말해주는 이집트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오벨리스크를 이스탄불에서 보게 되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그 오래된 역사에 입만 벌어질 뿐 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이 술탄 아흐멧 광장으로 출근(?) 했습니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탁심 광장 같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이 곳의 여행 안내소에 들러 다른 유적지를 찾아 다녔지요. 이곳을 지나 다니며 3500년 전의 오벨리스크를 볼 때 마다 기껏해야 백 년밖에 안 되는 사람의 유한성이 짙게 느껴졌고 역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장엄함과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속에서 일하셨을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터어키에 와서 일주일 간이나 이스탄불에 머물렀지만 술탄 아흐멧 광장의 오벨리스크나 다른 역사적 구조물들에 대해선 처음과 변함없는 감동으로 늘 바라 보았습니다....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수 많은 관광 버스, 관광객과 가이드의 행렬을 바라 보며...왜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 다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일상에서 맛 볼 수 없는 숭고함과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에 대한 진지함...그리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장소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오벨리스크의 아래 부분은 글자가 떨어져 나가 버렸지만...맨 아랫 부분에 389년에 만들어졌다는 대리석 받침대가 있었습니다.

이 받침대의 사면에는 히포드럼의 황제의 자리에 앉아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을 지켜 보는 황제의 모습, 전차 경기 후 무희들의 춤추는 모습, 전차 경기 모습, 외국의 사신들로부터 공물을 받는 황제의 모습 등 옛날 히포 드럼에서 행해진 일들이 부조되어 있었습니다.

오벨리스크 옆에 솟아 올라 있는 또 하나의 탑은 '콘스탄틴 기둥' 이라 불리는데 10세기 경 콘스탄틴 7세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히포 드럼 광장의 중심부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높이는 32미터이며 외부는 청동으로 입혀져 있었다고 하는데...우리가 가선 본 것은 그저 벽돌로 쌓아 올렸을 것 같은 탑이었습니다.

13세기 초..라틴 군이 이 도시를 점령한 후 탑에 붙어 있는 청동을 떼어 내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하는 바람에 이렇게 벽돌만 남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러 차례 지진으로 심하게 부서진 것을 최근에 다시 복구했다고 합니다.

히포 드럼...그러니까 지금의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 우리 눈을 끈 또 다른 역사적 유물은 '뱀 기둥'입니다.

히포 드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기념비인 이것은 BC 479년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세워졌던 뱀 기둥이라고 합니다. 326년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에서 가져와 이 곳에 세워 놓은 이 뱀기둥은 원래 팔라테아 전투에서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처음 우리가 이 뱀기둥을 봤을 때는....뱀기둥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 있어서....이게 무엇인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냥 봐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요... 

원래 뱀기둥의 모습은 세 마리의 뱀이 몸을 서로 꼬고 올라간 모습이고 머리 위에는 직경 2미터나 되는 거대한 황금 트로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황금 트로피는 뱀기둥이 이스탄불에 옮겨 오기 전에 분실 되었고 뱀들의 머리는 오스만 시대에 돌에 맞아 부서졌다고 하는데....이 머리 중 하나가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또 하나는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원래 6.5 미터였다고 하는데...지금은 5미터 정도입니다.

비디오 캡쳐한 사진인데....어떠세요?  세 마리의 뱀이 몸을 서로 꼬며 올라가는 게 보이시나요? 터어키는 참 복 받은 나라입니다. 사실...터어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터어키) 제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시대의 역사 유물들...즉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역사적 유물 덕에 세계 적인 관광국이 되어 버렸으니까요...물론 오스만 제국의 유물도 있지만... 길어 봤자 600년 밖에 되지 않는 오스만 제국의 유물보다 몇 천년 전의 이런 유적들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나중에 보게 될 에게해 연안의 소아시아 유적지 역시 그렇습니다....그들은 투르크 인들과는 다른 민족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슬람 제국, 투르크 민족의 침입으로 그들의 영화로왔던 도시 국가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이교도(이슬람교)의 침범은,  잦은 지진과 함께....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상의 지명...라오디게아, 사데, 골로새, 에베소 같은 도시가 폐허가 된 채 우리 앞에 남아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술탄 아흐멧 광장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사진입니다.

여유로운 광장과 벤치, 잔디, 화초...그리고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높은 문화적 건축물들.....

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을 거닐면서...내일부터 시작할 본격적인 여행에 잔뜩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성 소피아 사원과 블루 모스크는 지금이라도 당장 들어가고 싶었지만...필요한 자료도 충분히 읽어 보고 맑은 정신으로 감상하고 싶어 좀 더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은 과거 히포 드럼이었던 술탄 아흐멧 광장을 둘러 본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히포 드럼의 원래 모습은 지금은 찾아 볼 수 없지만 16세기에 그려진 히포 드럼의 삽화를 보면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히포 드럼의 건축은 로마의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통치 기간 중인 203년에 시작되어 비잔틴의 황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330년 5월 11일에 완성되었습니다.

왼쪽 사진을 보시면...U자 모양의 경기장 중앙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통해 그 곳이 바로 히포드럼의 중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히포드럼은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의 격투가 열리기도 했던 경기장이기도 했고 동시에 비잔틴 황제들에 의해 훌륭하게 장식된 야외 박물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전 세게에서 가져 온 각종 기둥, 동상, 해시계, 오벨리스크 등이 있었던 것이죠.

 술탄 아흐멧 광장을 다 둘러 본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스탄불에 위치한 한국 식당을 찾아 갔습니다. 그 곳은 이곳에서 만난 김경림 씨가 소개한 서울 식당(또는 서울정) 이었습니다.

술탄 아흐멧 지역에서 찾을 수 있었던 한국 식당은 3개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블루 모스크 아래에는 '서울식당'과 '한국관' 이라는 음식점이 있었고 톱카피 궁전 근처에 '한 사랑' 이라는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로 서울 식당에 갔었고...한국관에도 들렀었는데...음식이 다 맛있었고 다양한 메뉴가 있었습니다. 특히...바닷가에 위치한 이스탄불이다 보니...고등어 구이도 있었고 각종 한국 찌개류가 다 들어와 있었습니다. 물론 해물 음식도 접하기 쉬웠습니다.

정신 없이 우리는 김치 찌개, 된장 찌개, 육계장, 고등어 구이 등을 시켜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고 보니...가격은 까작스딴 알마티의 쟁쟁한 한국 식당들보다 오히려 더 비싸더군요. 뭐...그래도 자주 먹을 것도 아니다 싶어 기쁜 맘으로 식당을 나섰지만...음식값이 조금만 더 싸면 더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찾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계장 12불, 김치찌개 10불, 고등어 구이 9불)

 점심도 먹고 술탄 아흐멧 광장의 유적들을 다 살펴 본 우리는 일단 다시 호텔로 돌아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형민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우리로선...형민이가 무리하지 않도록 이렇게 자주 우리의 베이스 캠프(?) 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긴 일정의 여행을 무리없이 소화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전망 좋은 호텔 방에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다시 눈이 감기는 형민이를 쳐다 보며 우리도 잠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 났을 때는...이미 날이 어둑어둑 해져 있었지요. 사진은 당시 일어나서 형민이와 선화가 자는 모습 그리고.. 호텔 창밖으로 비치는 주변의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습도가 많고 방 안 공기가 따뜻해서 그런지 창에는 뿌옇게 성에 같은 것이 끼여 있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주변 건물 사이로 멀리 블루 모스크의 탑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첫째 날 저녁을 맞았습니다. 까작스딴과 터어키의 시차를 감안하면 오늘 하루는 5시간이나 늘어 났기에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형민이는 자게 두고...우리 부부만 일어 나서....관광 안내소에서 받아 온 이스탄불 지도와 터어키와 이스탄불 가이드 책을 자세히 읽으며 우리의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작전을 세워 두고 움직여야 당황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저녁 풍경도 보고 싶고 형민이의 저녁 식사도 챙겨야 하겠기에....점심 때 서울식당에서 챙겨 온 밥을 배낭에 넣고 술탄 아흐멧 광장을 통해 주변의 번화가로 나가 보았습니다.  성 소피아 사원 주변의 저녁 풍경인데...건물을 밝히는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에도 뜨람바이가 있습니다. 지상으로 달리는 전철과 비슷한 것인데.. 지나가는 택시나 버스가  철로를 막으면 잠시 섰다가 다시 달리는 버스 같은 전철입니다. 알마티에도 이런 뜨람바이가 있긴 하지만....한 칸 뿐인데 비해...이곳은 기차처럼 5-6개의 칸을 이어 달리는 열차였습니다. 게다가 이스탄불의 뜨람바이는 한국의 지하철 차량처럼 깨끗하고 훌륭한 시설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정류소도 한국의 지하철 타는 것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 두었더군요. 이 뜨람바이 길을 따라 각종 상가와 음식점들이 줄 지어 늘어 서 있었습니다.

 

선화와 전....형민이를 안고 길 가에 쭉 늘어 선 음식점 창 안에 진열된 음식들을 바라 보며...어떤 음식을 먹어야 우리 입맛에 맞을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물론 까작스딴에서도 터어키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이곳 아스타나에도 한 동안 터어키 음식점이 들어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케밥으로 대표되는 터어키 요리는 세계 3대 요리(중국, 프랑스, 터어키 요리) 에 포함될 만큼 다양한 메뉴와 맛을 자랑하는 음식들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터어키의 음식점마다 휘황 찬란한 요리들이 유리 진열대 안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선화나 저나...일단 먹어 봤던 것을 먹고 싶었고 형민이가 먹기 쉬운 것을 골라야 했기에....뜨람 바이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 오면서 음식점들을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 들어 가 위 사진처럼...선화가 직접 "이거...한 개...", " 이거...한 개.." 이런 식으로 직접 주문해서 첫 현지 식사를 시도했습니다.물론...우리가 알 만한 요리 재료들만 일단 골랐지요...

 아래가 그 날 저녁...우리가 주문한 요리입니다. 감자와 닭고기가 섞인 요리, 콩으로 보이는 요리, 쌀밥 한 접시...이렇게 시켜서 세 사람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터어키의 쌀은 길쭉하고 끈기가 하나도 없는 쌀이어서 압력 밥솥에서 맛있게 만든 한국의 쌀밥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형민이의 저녁 식사로는 서울 식당에서 가져온 쌀밥을 사용했는데...형민이는 터어키 쌀밥도 별로 싫지 않은 듯 잘 먹어줘서 우리에겐 큰 다행이었습니다. .

 맛있게 식사를 하고....밤 거리를 돌아 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 갔습니다.   이 날 밤의 가장 큰 사건은 호텔로 가는 길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제가 호텔 주변이 거미줄 같은 골목으로 통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밤이 되어 버리자...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도대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괜찮았었는데....다른 골목을 이용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방향에서 찾아 들어 갔던 것이 큰 낭패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낯선 곳인데다...날이 갑자기 캄캄해지자 아무 것도 식별되지 않고....계속 똑같은 골목만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습니다.

1시간 이상 호텔을 찾기 위해 이스탄불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물론 형민이를 안구요....형민이는 이때 12 Kg 정도 되는 무게였는데...그 날 밤...겨우 호텔을 찾아 들어 와선 모두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이스탄불의 첫째 날이 끝나게 됩니다. 내일...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 하나인 성 소피아 사원을 방문하고 블루 모스크도 가 볼 계획입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200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