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교회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13-15 일째: 코라교회, 이슬람 박물관, 해변시장 (4월 16-18일)

 버가모에서 저녁 7시 경에 탄 버스는 밤새도록 달려 어슴프레 동이 터 오는 새벽녘에는 이스탄불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는 배에 실려 작은 해협을 건넜고...한 참을 달리자 이스탄불 외곽지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주일 만에 돌아오는 이스탄불...어느 새 내 집처럼 반가운 곳이었습니다. 이스탄불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말자 택시를 잡고 술탄 아흐메트 광장으로 갔고...우린 지난 번에 묵었던  sur 호텔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벨을 눌렀고...잠이 덜 깨어 눈을 비비고 나오는 호텔 직원의 환영을 받으며 이전에 묵었던 맨 꼭대기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짐을 풀자 말자 간단하게 씻고 모두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지요. 아마 오전 내내 그렇게 푹 잤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창문 밖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 낮이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창 밖으로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죠...'야....맑은 날씨다...'  12일 전...우리 가족이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부터 소아시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이스탄불의 하늘은 늘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이 흐린 날씨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소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탄불을 날씨는 너무나도 눈부신 맑은 하늘이었기에 너무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이스탄불에서 3일간 더 머물다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는데....남은 기간 내내 맑고 화창한 날씨로 인해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성 소피아 사원도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더 유서깊게 보입니다.

 술탄 아흐멧트 광장의 잔디와 꽃들도 밝은 태양 아래서 우릴 반겨 줍니다. 아직도 겨울 분위기였던 아스타나에서 온 우리 가족으로선 이렇게 화사하게 핀 꽃들이 놀라울 정도로 반갑기만 합니다.

 잠을 푹 자고 나니 밤새도록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지내야 했던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샤워를 하고 형민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대로 술탄 아흐멧 광장 주변에는 한국 식당이 많습니다. 지난 번에는 서울식당(서울정)을 계속 이용했었는데 이번엔 다른 식당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광장 바로 아랫쪽에 한국 식당이 있는 걸 지난 번에 발견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김치 찌개, 된장 찌개, 고등어 구이등을 시켜 놓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소아시아 여행이 있던 일주일 내내 한국음식을 한 번도 먹지 못한 터라 이 날 먹은 음식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식당 주인 아저씨는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터어키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가장 많이 파송된 10대 국가에 터어키가 포함될 정도니까요...하지만 터어키는 이슬람 국가답게 선교사 비자를 잘 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전문인 선교사, 자비량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식당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터어키는 보안 지역이기에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에서 우린 좀 더 여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지냈습니다.

이번 소아시아 여행을 위해 에베소까지의 교통편과 가이드를 안내해 줬던 여행사의 아가씨와도 재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아가씨는 결혼을 몇 주 앞두고 있다는데 우리 형민이를 보면서 이렇게 눈이 작고 귀여운 아기를 낳고 싶다며 애교를 떨었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면 꼭 연락하라며 메일 주소도 꼼꼼히 적어 주셨죠. 

이 외...이스탄불 도심을 걸어 다니며 수 많은 사람들의 호의를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형민이 덕분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터어키 여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길에서 관광 기념품으로 책갈피를 파는 점원도 형민이를 안아 보고 싶다더군요. 인기폭발입니다.

이스탄불에서 보낸 마지막 3일 동안 우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들을 방문했습니다. 해변 수산시장, 터어키 및 이슬람 예술 박물관, 모자이크 박물관,  그랜드 바자르, 코라 교회가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해변 생선 시장

이스탄불은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바다를 끼고 있다보니 마치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같이 해산물을 파는 어시장이 있습니다. 신선한 생선과 터어키의 바다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이 하루 저녁을 소비해야만 하는 곳이죠. 카자흐스탄에 살며 싱싱한 생선을 접해보지 못했던 우리 가족으로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지금 보이는 바다가 보스포러스 해협입니다.

 싱싱한 생선을 가득 담아 가지고 와 어떤 생선을 먹을지 물어 봅니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에겐 이 보다 더 좋은 메뉴판이 없겠죠?  

 선화는 큰 생선 몇 개와 새우 등을 가리켰고...얼마 있지 않아 이 구워진 생선과 새우 요리가 등장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처럼 회를 먹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생선회를 왜들 먹질 않는지...한국이나 일본 만큼 맑고 큰 바다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다양한 문화와 식습관이 있다는 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터어키 및 이슬람 예술 박물관

우리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사원)의 뒤쪽에 사원의 경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세워졌던 아라스타 시장 안에 있는 모자이크 박물관도 방문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비잔틴 왕국의 홀과 정원이 있던 곳이며 아직도 고고학적 발굴이 끝나지 않은 곳이라고 합니다. 모자이크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된 디자인은 사냥과 전설, 게임, 야생 동물, 사람들의 일상생활 등입니다.

블루 모스크의 맞은 편에는 터어키 및 이슬람 예술 박물관이 있습니다. 필사본 책자, 석공예품, 세라믹, 나무와 금속 작품 등 많은 소장품이 있는데 1985년 유네스크에 의해 찬사를 받은 곳이라 합니다. 이 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크기의 손으로 짠 터어키 카펫입니다.

 이런 카펫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릎을 꿇고 절하는 이슬람교의 사원 문화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박물관 정원 모습입니다.

 이 박물관에서 본 이 천막은 카자흐인들의 이동 가옥 '유르트'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자흐인들도 터어키인의 한 갈래이기에 이렇게 흡사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랜드 바자르

바자르는 '시장'이란 말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시장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자르'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요.

그랜드 바자르는 외국인들이 이스탄불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린 아니지만...) 수천개의 상점에서 판매되는 수백만 종류의 물건들은 서구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끈다고 합니다. 100년전부터 동양적인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관광객들에겐 한 번은 방문해 볼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12번의 강한 지진과 9번의 대화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건물은 1954년 대화재 이후 복구된 거라고 합니다. 1만 5천여명의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천장이 화려한 문양들로 장식되어 있는 정신 하나도 없는 시장이었습니다. 주로 장신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올래 둘러볼 곳은 아니었죠.

 

 

코라 교회(카리예 박물관)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곳은 바로 코라 교회였습니다.

 4세기에 지어진 '시골에 있는' 이라는 뜻의 '코라' 라는 이름이 붙은 이 교회는 도시의 성벽이 확장되어 도시 안에 들어온 뒤에도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교회는 11세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코라 교회가 유명한 이유는 현존하는 가장 휼륭한 비잔틴 모자이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랬습니다.

교회 입구입니다. 처음 호텔을 나와서 코라 교회로 가자고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카리예 무제이(카리예 박물관)" 라고 말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위치는 술탄 아흐멧 광장에서도 매우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택시로 3-40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터어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코라 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을 이곳에 할여했죠. 사실 그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다른 박물관처럼 휴관하는 날이었던지라 오늘에서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자...교회 입구에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한 모자이크입니다. 한 낮이었지만 교회 안은 어두웠고 조명이 모자이크들을 밝혀 주고 있었죠.

비전문가인 제 눈으로 봐도 이 교회에서 만난 모자이크들은 이전에 우리가 봤던 비잔틴 제국의 어떤 모자이크들보다 깊이 있고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또 마치...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이 금빛이 많이 배어 나왔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는 내랑과 외랑에 있는 것들입니다. 다양한 주제, 색채의 풍부함과 세밀함은 다른 어떤 비잔틴 교회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합니다. 모자이크에 묘사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성경의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내용들을 모자이크로 만든 것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것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이저한 모자이크들을 만들기 위해 이스탄불의 강들과 마르마라 바다의 해안에서 수집한 색 있는 조약돌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외랑에 보이는 '사탄에 의해 유혹을 받는 예수' 가 묘사되어 있고 바로 위에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묘사하는 모자이크....

가이드가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었지만 안내책을 보며 그림의 내용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 모자이크가 말고도 프레스코화들도 그려져 있었는데...여태껏 본 터어키의 어떤 교회보다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코라 교회 밖에서 빵을 파는 아이와 형민....

 

코라 교회를 돌아본 뒤 우린 이스탄불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1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출국 심사장의 모습입니다.

 화려한 공항 면세점의 모습도 카자흐스탄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겐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생후 1년 6개월이던 형민이를 데리고 선화와 함께 나섰던 터어키 여행...너무도 소중한 우리 가족만의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이드나 투어 일정에 속했던 것이 아니라...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 세 사람이 떠났던 여행이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쉬고 싶을 때 쉬고...떠날 때 떠나고...

터어키는 큰 나라입니다. 갑바도기아나 안탈리야 같은 서부, 서남부 지역은 이번에 가 보질 못했습니다. 훗날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꼭 다시 한 번 선화와 함께 터어키를 찾고 싶습니다. 터어키는 정말 백번이라도 다시 가고 싶은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을 터어키 팬으로 만들어 준, 우리가 만났던 수 많은 터어키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터어키 여행은 2002년에 다녀 왔지만...이 여행기는 2006년 1월에서야 끝나게 되었네요. 늘 숙제처럼 여겨지던 것을 정리한 기쁨도 큽니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도 늙어 가겠지만...형민이와 함께 우리 두 사람이 펼쳤던 젊은 날의 터어키 이야기는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 입가에 미소짓게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더 많은 은혜로 채워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