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 버가모   12 일째: 버가모 에서 (4월 15일)

서머나(이즈미르)에서 3일간을 지내며 여유를 찾은 우리는 버가모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인근 여행사로 갔습니다.  터어키 시외버스에 익숙해진 우린... 버가모로 가는 시외버스 티켓을 쉽게 구했고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버가모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90 Km 지점에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대강 하고 나왔기에 우린 현지 분위기도 접할 겸 버스 터미널 근처 식당에 들어 갔습니다. 뭘 먹었냐구요? 뭐 케밥이죠...도네르 케밥이라고... 바비큐처럼 동글동글 돌아가는 고기를 썰어 주는 케밥을 신선한 야채(오이, 토마토...)와 함께 먹었죠. 터어키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 것도 여행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친절한 식당 아저씨를 만나 버가모의 유적지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소개해 준 택시를 타고 갔는데...이 택시 아저씨도 대개 친절하고 호감이 가는 아저씨였습니다. 터어키는 이런 국민성이 가장 큰 관광 자원인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런지....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에게해 연한 소도시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던 우리 가족 눈에는 그토록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친절한 사람들 모두.....

버가모는 무시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 무시아를 지나 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행16:6-8)"

버가모에서는 세가지 중요한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고대 버가모 도시(아크로폴리스) 유적, 둘째는 산비탈에 세워진 이집트 태양신 세라피스 신전 유적, 셋째는 고대 병원인 아스클레피온 입니다. 우리는 아스클레피온 -->세라피스신전-->아크로폴리스 순으로 돌아 봤습니다.

 

버가모의 찬란한 유적들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있었습니다. 1878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의 철도 공사를 감독하던 독일 토목기사 칼 휴만에 의해 이 유적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는데 현재도 발굴 작업이 20-30퍼센트 수준이라 합니다.

버가모는 에베소나 서머나와는 달리 교역 도시나 산업 도시가 아니라 정치적 중심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리디아를 거쳐 페르시아에 속해 있다 알렉산더 장군이 바로 이 버가모 지역에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9세를 격퇴시키면서 헬레니즘 세계로 들어갑니다. 알렉산더 사후 리시마마쿠스의 장군 필레타리우스가 리시마쿠스를 배반하고 왕국을 세웠던 BC 282년부터 앗탈레스 3세가 자신의 방대한 국가를 로마 제국에 헌납했던 BC 133 년까지 독립국으로 존립하였습니다. 그 후 로마제국이 버가모를 아시아 전체의 수도로 삼아 AD 130 년경까지 인구 16만의 번영을 누렸습니다.

로마는 총독과 원로원 의원을 파견하여 직접적인 속주 통치를 시행하였습니다. 트라얀 황제 시절, 버가모 주민들은 황제의 신전을 건축할 특권을 얻게 되었고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이 신전이 여전히 서 있습니다. AD 17년 서부 아나톨리아 반도를 휩쓴 지진으로 크게 파괴었고 티베리우스, 하드리안 황제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드리안 황제 시기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산기슭에 이집트의 신인 세라피스 신전을 세우고 아스클레피온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으로 만들었죠. 카라칼라 황제가 아스클레피온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이 때 버가모의 인구가 15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후 지진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어 들었고 로마제국의 수도가 에베소로 옮겨지면서 차차 쇠퇴의 길을 걸었죠.

 

고대 버가모 중심인 아크로폴리스는 경사가 심한 산 꼭대기에 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곳으로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서서 산 밑을 내려다 보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이 도시가 산 위에 서 있음을 아시겠죠?  아래 사진처럼 커다란 댐도 눈 아래 펼쳐지는 산꼭대기입니다.  390 미터 높이의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지다 보니 이 도시는 외적에 대한 강력한 방어벽을 갖춘 천연 요새인 반면 물의 공급이 가장 취약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끌어 오는 수로 유적들을 볼 수 있지요.

 

 아크로폴리스 입구는 자그마한 기념품 가게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대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곳이니까요.

버가모에는 6개의 그리스 신전, 이집트의 세라피스 신전, 로마 황제들의 신전이 모여 있어 그야말로 이방 종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 아크로폴리스에는 옛날 왕궁터, 제우스 신전, 원형 경기장, 디오니소스 신전, 트라얀 황제 신전, 아데나 신전, 도서관, 우물 등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할 때 버가모는 이런 이방 신전과 함께 전 아시아의 로마 황제 숭배 중심지였습니다. 이런 신전들에서 버가모 주민들은 황제 숭배와 함께 로마 제국에 충성을 다짐해야 했던 것이죠. 사도 바울과 요한을 통해 복음을 받아 들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도 로마 제국의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예배하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언제부터 버가모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들을 권하여 복음을 전한 것(행 19:26)으로 보아 바울 당시 이곳에 복음이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버가모 교회 최초의 감독은 "사랑하는 가이오"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안디바' 가 감독이 되었는데 그는 치과 의사였고 후에 순교하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버가모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계 2:13)

사단의 위에 대한 해석은  황제 숭배, 제우스 신전, 아스클레피우스의 뱀 등 분분하지만...분명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간에 버가모의 극심한 우상 숭배를 일컫는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예수 이름을 굳게 잡고 순교하는 안디바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세상과 타협한 발람, 니골라와 같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3세기 경 데시안 황제 때 버가모의 3명의 기독교인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요세푸스는 아가토도루스와 아가토니케 자매가 영광스러운 신앙고백을 하고 순교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건축물 들 사이로...물이 남지 않은 우물 사이로 우리 가족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곳곳에 세워진 게시판과 참고 서적을 들쳐 가며....(선화의 오른 손에 책이 들려 있지요?)

 

아직 다 발굴이 되지 않은 유적이지만 소아시아의 여느 유적보다 더 흥미 진진했던 것 같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따라가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이 통로 끝에 서서 밖을 내다 보면 아래 사진의 풍경이 펼쳐 집니다.

 

 바로 원형 경기장 유적 이죠.  

 

지금 보이는 유적지가 바로 트라얀 황제(AD 98-117) 신전입니다. 로마 시대 아시아의 각 도시는 황제 신전 건축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이 특권을 따내기 위해 도시 간 많은 경쟁이 있었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버가모 주민들은 가파른 V자형 절벽 사이에 트라얀 신전을 건축하기로 합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죠. 지형을 고르게 하기 위해 축대를 쌓기 시작한 공사는 신전이 완공되기도 전인 BC 177 년 경 트라얀 황제가 사망하는 바람에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특권을 잃어 버릴  위기에 처한 버가모 주민들은 매우 초조했죠.

트라얀 황제의 뒤를 이은 하드리안 황제는 이 사실을 알고 버가모의 특권이 계속 유효하다고 선포했고 버가모 주민들은 이에 보답코자 신전이 완공된 후 트라얀 황제의 석상과 나란히 하드리안 황제의 것도 신전 내부에 세웠습니다.

 

지금 선화와 형민이가 앉아 있는 이 신전은 지금까지도 보존 상태가 좋으며 이 외에도 세베루스(ADF 193-211) 신전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황제 신전 안에 앉아 간식을 먹었죠.

초기 기독교 박해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황제 숭배에 대한 거부였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우리가 앉아 있는 이 황제 신전이 바로 요한 계시록의 "사단의 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선화와 형민이 서 있는 곳이 우물입니다.  물은 없지만 동전들이 아래에 깔려 있더군요. 우리도 하나 던졌죠...

이 외에도 제우스 신전 유적지도 유명한데...이 유적이 발견되 후 이 곳의 신전 유물들은 동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왜 동베를린 박물관이냐구요? 앞서 말했듯이 1871년 이 아크로폴리스 유적을 발견한 사람이 독일인 칼 휴만이기 때문입니다.

 

아크로폴리스 산 기슭에는 세라피스 신전이 있습니다.

세라피스는 태양 신입니다. 이집트 신전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신전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 길이 60미터, 폭 26미터, 높이 19미터의 대형 신전입니다.

신전 중심부는 삼면이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색적인 건...이 기둥들이 당시 흔히 사용되던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 기둥이 아니라 서로 맞대고 있는 조각 기둥으로 되 있다는 점입니다.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과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이 서로 등을 붙인 모양입니다.

 

 

신전 안에는 수로와 물탱크가 남아 있습니다. 이 신전은 앞서 말했듯이 하드리안 황제 때 건축되었으면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을 만났습니다. 한국인 가이드를 앞세워 10여명이 모여 있었는데..덕분에 우리도 옆에 끼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죠. 이런 단체 관광객을 볼 때마다 생후 1년 6개월의 형민이를 데리고 일주일 째 터어키 동부 해안, 에게해 주변 도시를 돌아 다니고 있음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소아시아 고대 유적지를 따라 쉬고 싶을 때 쉬고...가고 싶을 때 가면 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여행이니까요.

 

이 건물은 단지 세라피스 신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 공인 이후 바닥을 높여 버가모 기념 교회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세기 화재로 불타 버렸고 다시 양 옆에 교회를 건축해 사용해 오다 터키 지배를 받으면서 한 곳은 이슬람 사원으로 다른 한 곳은 이 박물관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사진처럼 지하 통로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로, 물저장고로 내려가는 통로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버가모에서 꼭 살펴봐야 할 곳은 버가모 시 입구에서 왼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아스클레피온입니다.

아스클레피온은 당시 의과대학이었습니다. 아스클레피온이라는 말도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우스' 에서 유래하는데 그는 의료의 신이며 구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스클레피온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

 

아스클레피우스의 상징으로 뱀의 형상이 사용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지금도 의학을 상징하는 문양에는 항상 뱀 형상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스클레피우스에서 기인한 것이죠. 지금 형민이와 함께 앉아 있는 돌기둥에도 자세히 보시면 뱀 형상이 있습니다. 온 동네에 뱀 형상이 그려져 있더군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바로 이 곳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그는 인간의 대부분의 병은 정신적인 문제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 몸에 자생력으로 인해 병은 저절로 낫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전제하에 치료법 역시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약을 쓰지 않고 물리적인 자연 요법 (맨발로 자갈 걷기, 진흙으로 목욕하기, 일광욕, 음악 듣기, 완치된 사람의 경험담 듣기, 예술적 취미 갖기, 신에 귀착하는 방법) 들이 사용되어진 것이죠.

① 이 기록을 보면 환자들은 우선 맨발로 성스러운 길이라고 불리우는 대리석 바닥을 한 걸음씩 천천히 들어 옵니다. 이 과정부터 치료의 시작이죠. 그들은 죽음의 신 하데스로부터 멀어지면서 건강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게 가까이 간다고 믿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바로 이 길이 치료가 시작되는 길입니다.

 

② 치료의 다음 단계는 정원 한가운데서 흘러 나오는 샘물로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물이 나오고 있는데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합니다.

우리도 샘물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믿거나 말거나....몸에 좋다는데...우린 이 샘물로 세수도 하고 형민이를 씻겼습니다.

 

형민이도 이 시원한 샘물이 좋았나 봅니다. 샘물을 만지작거리며 오래 놀았죠.

③ 이 외 진흙 목욕도 있다고 합니다.

④ 목욕이 끝나면 지하 터널을 통해 치료실로 들어 갑니다. 80 미터 길이의 이 지하 터널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운데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은 신의 음성처럼 말하면서 환자들에게 회복에 대한 믿음을 심어 줍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그 지하 통로입니다. 천장에 나 있는 구멍이 보이시죠.

⑤ 이 통로를 지나면 오른쪽 사진처럼 둥근 돔이 있는 치료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치료실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아래층만 남아 있고 2층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환자들이 잘 수 있는 침대가 놓여 있는데 환자들은 잠들기 전 건강의 신에게 기도드릴 것을 권유받았고 잠이 깬 후에는 의사들의 환자의 꿈해몽을 해 줬다고 합니다. 이 경우 해몽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했다고 합니다.

⑥ 이 치료실 남쪽에는 환자들의 일광욕실로 사용되던 테라스가 있고 북쪽에는 가장 중요한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있습니다.

⑦ 환자들에게 삶의 의욕을 심어 주기 위해 연극과 음악회가 공연되던 원형 극장도 있습니다.

 

형민이가 현지 아이들에게 안겨 있는 모습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당시 사용되던 원형 극장입니다.

 

원형 극장 위에서 바라 본 모습입니다. 한참 올라가야 했습니다.

 

어때요? 참 흥미롭지요.

물론 현재의 근거 중심 의학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면도 있지만...2000 년 전, 모든 병은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깊이 새겨 들을 만 했습니다. 의사로 일하는 제게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AD 716-171년 당시 칼리프였던 슐레이만의 형제 마슬람에 의해 버가모는 파괴됩니다. 이 후 기독교인의 숫자는 줄어들게 됩니다. 14세기 초 오스만 터어키에 정복된 후 교회들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고 1453년 비잔틴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 오스만 터키에 넘어간 뒤로는 소아시아 전역의 교회들이 회교 사원으로 바뀝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 관련 내용입니다.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것으로 소아시아 7대 교회 유적지 답사는 마칩니다.  사실 두아디라 지역을 방문하지 못했는데..여행 스케줄 상 왔던 길로 다시 가야 하고 오랫동안 에게해 연안에서 헤매느라 심신이 피로했기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세 가족은 일주일(02년 4월 8일-15일)에 걸쳐 에베소-->히에라폴리스-->라오디게아-->빌라델비아-->사데-->서머나-->버가모 둘러보고 다시 이스탄불로 갑니다. 버가모에서 하룻 밤을 잔 뒤 다음날 아침 이스탄불로 가는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다음 내용이 터어키 여행기 마지막 편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   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