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서머나   10-12 일째: 서머나 에서 (4월 13-15일)

사데의 유적지를 둘러본 뒤 버스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이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터어키 전역에 걸쳐 잘 갖추어진 버스 교통망과 새로운 여행지로 간다는 기대감이 계속된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을 잊게 해 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찾아갈 곳은 성경에서 '서머나' 로 불렸던 곳으로 현재 지명은 '이즈미르' 입니다. 사도 시대에 융성했다가 현재는 잔해만 남아 있는 다른 소아시아의 도시들과는 달리 서머나의 현재 모습은 인구 300만의 대도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터어키에서는 이스탄불, 앙카라 다음의 세 번째로 큰 도시임과 동시에 두 번째로 큰 항구 도시(이스탄불 다음) 입니다.

터어키 제 1의 도시인 이스탄불이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마르마라 해협에 놓여 있다면 제 3의 도시 이지미르는 에게해에 위치한 지중해의 도시입니다. 이렇게 에게해 연안의 천혜의 요충지에 위치하다 보니 터어키 수출입 물자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산업과 경제의 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게 지역의 연초와 건포도를 비롯한 포도와 관련된 농산물, 대리석, 의류, 피혁 수출로 유명하지요.

사데를 떠난 시외 버스는 한참을 달린 뒤 대 도시로 진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촘촘한 건물과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차량을 보기만 해도 이제 이즈미르에 다 도착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지요. 이스탄불의 시외 버스 터미널에 뒤지지 않을 것 같은 큰 규모의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서 서머나(이즈미르) 에서의 첫 발걸음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즈미르에 도착할 때까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습니다. 낮 동안 사데의 유적지를 둘러 본 까닭에 오늘 저녁은 호텔에서 좀 쉬어야 겟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호텔을 예약해 놓은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시간도 오후 5시가 넘어 조금 지나면 곧 어두워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바가지를 쓸 각오를 하고 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안내책자에서 어렴풋하게 읽은 호텔의 이름을 기사에게 얘기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왜 그 곳으로 가야 하느냐고 제게 물었지만...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사실 다른 호텔 이름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택시 기사에게 호텔 선택을 맡기기엔 뭔가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이즈미르의 번화가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위의 왼쪽 사진이 호텔 입구의 모습입니다. 인근 두 세군데 호텔과 함께 식당을 사용하던데...식사도 괜찮았고 해변가에서도 가까워 우리 가족에겐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이 날 밤...우리 세 식구는 호텔방에서 일찌감치 잠을 청했습니다. 오늘 하루 사데에서 체력을 많이 소비했던 탓에 세상 모르고 잠을 잔 밤이었습니다.

 서머나에 온 둘쨋 날...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식사를 하고... 서머나 도심 지도를 하나 구한 뒤 호텔에서도 가깝고 서머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코낙 광장을 먼저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즈미르를 상징하는 코낙 광장에는 몇 가지 명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1901년에 세워진 모리쉬 스타일의 아름다운 시계탑이고 또 하나는 시계탑 바로 맞은 편에 조그맣게 세워진 코낙 모스크아지요.  이 모스크는 1756년에 건설되었고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옛날 모습 그대로 서 있다고 합니다.

 멀리 선화와 형민이 뒤로 왼쪽에 서 있는 시계탑과 오른 편에 있는 모스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 사진은 우리 나라의 여느 광장과 마찬가지로 비둘기들이 떼지어 날아 다니는 코낙 광장의 모습을 담은 것이고 오른편은 코낙 모스크를 가까이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사람 키와 비교할 때 그리 높지 않은 건축물임을 대번에 알 수 있으시겠죠?

 

코낙 광장의 북쪽에는 공화국 광장이 있고 그 중심지에 아타투르크(터어키 초대 대통령, 독립을 주도함)의 동상이 서 있고 항구까지 바닷가 산책길이 있는데 노천 까페에 앉아 있는 연인들로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 주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보시는 시계탑이 바로 그 유명한 코낙 광장의 시계탑인데 형민이에겐 시계탑보다 그 아래에 조성된 분수가 더 흥미로왔던 것 같습니다.

서머나는 "몰약" 이란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몰약을 스미르나, 즉 서머나라고 불렀습니다. 몰약은 감람과에 속하는 관목의 어린 싹의 송진에서 얻어지는 수지로 성경에서는 섬유나 방부제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향료입니다.(출 30:23, 에 2:12, 시 45:8, 요 19:39) 하지만 서머나에서는 이 향료가 난 적이 없고 지금도 나지 않기 때문에 향료와 관계된 도시 이름은 신비 속에 가려져 있다고 합니다.

서머나는 BC 3000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BC 800 년 경 도리아인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로부터 쫒겨난 이오니아 인들이 이 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습니다. 유명한 장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 곳 서머나였습니다.

한 때 리디아 왕국의 침략을 받아 폐허가 된 이 곳에 알렉산더 대황은 피구스 산 기슭에 성벽을 쌓고 새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 후 서머나는 버가모(Pergamum)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BC 3-2세기 경에 크게 번성하였고 유대인들도 이곳에 많이 살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곳의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고(계 2:9-10) '유대인들의 훼방' 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요.

서머나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유명합니다. 비가 자주 내리는 4개월 동안의 겨울(지중해서 기후니까요...)을 제외하고는 항상 맑고 청면한 하늘을 갖는 이곳은 푸른 산과 조용한 바다가 만나는 천연의 아름다움과 주변의 기름진 땅, 감탄할 만한 기후의 조화로 이곳을 찾는 많은 시인들로부터 예찬을 받아 왔습니다.

도시 뒤편에 이곳에선 "카디페 칼레" 라고 불리는 '파고스의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서 서머나 시를 바라보며 경이로울만큼 아름다운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다에서 내륙쪽으로 길게 뻗은 만과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두 개의 형제산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파고스의 언덕을 올라가 보질 못했습니다. 오랜 여행 탓에 체력도 여의치 않았기에 형민이나 선화를 배려해 휴식을 취하는데 중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파고스의 언덕에서 나중에 얘기할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이 화형 당했다고 합니다.

서머나는 비잔틴 제국, 셀주크-오스만 터어키 제국 등 많은 역사적 변천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현재에도 아주 큰 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기에 과거의 유적지나 기독교적 흔적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보였습니다.

코낙 광장의 시계탑 주변에서 도시 정취를 즐긴 뒤 찾아간 곳은 '이즈미르 고고학 박물관' 이었습니다.

박물관은 코낙 광장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에베소(에페소스)와 버가모(페르가뭄), 밀레도(밀레투스) 등 서머나 부근 지역에서 발굴된 수 많은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박물관 입구에서 형민이를 안고 찍은 사진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박물관을 찾느라 그 주변을 엄청 헤매고 다녔습니다.  남쪽 끝이라고 해서 광장 끝에 서 있는 그럴듯한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 봤더니 그 곳은 그림을 전시하는 화랑이더군요. 다시 밖으로 나와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 보니 박물관 안내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언덕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는데 그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여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우린 박물관 담을 따라 한 바퀴 돌았던 셈이었습니다. 어쨋든 그렇게 어렵게 박물관을 찾아간 덕에 주변 숲이며 박물관 주변의 경치를 많이 볼 수는 있었습니다.

박물관은 언덕배기에 지어져 있었고 숲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정원을 이용해 비석같은 유적들을 세워 놓거나 승리의 여신상, 제우스 제단, 대리석상들, 보석과 황제들의 반신상 등이 전시하고 있어서 그 일대 전체가 평안하고 아름다운 자연 학습장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물관 입구 1층에는 이 지역의 고고학적 흐름을 알 수 있는 판넬들이 한 쪽 벽에 쭉 걸려 있었는데 "힛타이트 문명" 부터 시작되는 소아시아 지역의 고고학적 흐름들을 쉽게 알아 보게 만들어 두었더군요. 왼쪽 사진은 지하 1층에 세워진 많은 대리석상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까지만 공개되어 있었는데 지하에는 각종 대리석상과 청동상이 있었습니다. 조각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두침침한 곳에 놓인 낯선 얼굴들의 석상과 동물상들로 인해 스산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었죠.  그래도 인류의 오래된 문화 유산들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기에 몇 천년 후에도 이곳을 찾고 그 때의 세상을 떠 올릴 수 있는 거겠죠.

 

형민이는 터어키 여행을 하는 동안 말을 많이 배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까까(과자)"입니다. 터어키의 과자는 카자흐스탄의 과자와는 달리 한국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야채 크래커나 새우깡, 자갈치 같은 스낵류와 비슷한 맛을 가진 과자가 많아서 우리도 자주 찾곤 했었지요. 그 바람에 형민이도 과자에 손을 많이 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까까"를 달라고 졸라 댔죠.

또 이 맘  때는 엄마 심부름도 잘 했습니다. 과자를 다 먹고 난 빈 봉지는 가까운 휴지통에 집어 넣으라고 보내기도 했는데...넘어질 듯한 총총걸음으로 휴지통까지 걸어가서 몇 번 망설이다 빈봉지를 휴지통 안에 집어 넣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우린 많이 박수를 치곤 했습니다.

이 박물관 앞 마당에는 나이가 아주 오래된 미류나무 같은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형민이와 까까를 먹고 가까운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는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민이가 뒤뚱거리며 박물과 마당을 가로 지르고 있으면 그 곳에 와 있던 많은 관람객들이 저마다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작은 동양인 꼬마는 이곳에서도 많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도 일본 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같은 동양계 사람들을 만나니 참 반갑더군요.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미소를 지으며 무언의 인사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오전에 코낙 광장 일대를 돌아보고 난 뒤 점심은 그 근처 햄버거 집에서 해결했습니다.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였는데...카자흐스탄에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없는 까닭에 반가운 맘에 그 곳에 들어가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오후에는 서머나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바로 폴리갑 순교 기념 교회를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서머나 지도를 인근 "Information center"에 보여 줘 가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교회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마침 이 날은 주일날인지라 그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교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인 현대 건물들 사이에서 나즈막한 지붕을 가진 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사진을 봐도 아시겠지만 선화 뒤로 보이는 황색 건물이 바로 폴리갑 순교 기념 교회입니다. 그 뒤 편으로 보이는 높은 호텔 건물은 힐튼 호텔인데...혹 앞으로 서머나를 방문하실 계획이시라면 이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이 곳을 찾기 수월하실 겁니다. 힐튼 호텔이 바라 보이는 도로 건너편에 폴리갑 기념 교회가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사실 폴리갑 기념 교회는 1600년 프랑스 교구에서 폴리갑을 기념하여 기증한 것으로 초대 교회의 유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의 벽화에는 폴리갑이 로마 군인들에게 연행되는 장면, 원형 경기장에서 화형 당해 순교하는 모습, 폴리갑이 안디옥 교회의 감독 익나티우스를 만나는 장면 등이 있어 초대 교회의 박해 현장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폴리갑은 원래 안디옥 출신으로 구전에 의하면 그는 어느 과부가 안디옥에서 산 노예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너무 똑똑해서 그녀는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지요.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인 폴리갑은 115-116년에 걸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156년에 서머나 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지방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빌라델비아 등지에서 잡아 온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희생시켰습니다. 이 때 폴리갑은 밀고로 체포된 상태였었는데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기 위해 그의 신앙을 부인하라고 종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86년간 나는 그 분을 섬겨 왔고 그 분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 하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화가 난 군중들은 그를 사자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거절했고 이에 군중들은 물러 가지 않고 그를 장작 더미에 올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을 외치던 군중들은 "이 사람은 우리 신의 파괴자다.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다" 라고 외쳤다는데...지금 생각하면 기독교인으로서 최대의 찬사를 받은 셈입니다.

체포되기 사흘 전, 폴리갑은 기도 중에 자기가 베고 자던 베게에 갑자기 불이 붙는 환상을 보고 즉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길 속에서 목숨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해질 무렵 그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폴리갑이 있는 곳으로 들이 닥쳤을 때 그는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집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그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굳건하고 장엄한 얼굴을 한 노인이었던 폴리갑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라고 말했고 음식을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 동안만 방해를 받지 않고 기도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그의 기도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의 기도 속에는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 제목과 전 세계의 모든 보편적 교회를 위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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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폴리갑 순교 기념 교회에 도착했을 때...교회의 모든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교회라고 생각했기에 주일 날에는 개방되어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모스크로 둘러 싸인 기독교 처소인지라 오전 11부터 1시간 동안만 이 곳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에 의해 미사가 드려질 뿐...그 후로는 이렇게 철통같은 보안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전 닫혀진 문 옆에 설치된 초인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인터폰을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온 개신교인이며 이 역사적인 교회를 둘러 보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지요. 그리고 잠시 뒤...이 교회를 관리하는 듯한 사람으로부터 교회 내부를 둘러 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두근거리는 맘을 안고 이 역사적인 장소로 들어 갔습니다. 주일 낮이었지만 교회 안은 나즈막한 불빛만 밝혀져 있었고 어두웠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차분한 실내 분위기에 길다란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단상 뒤쪽에는 개신교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여러 성인들의 초상화와 조각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교회의 지붕과 벽면 상부 쪽을 채우고 있는 수 많은 벽화 속에서는 성경 속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와  영광을 받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한 주제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과 관련된 여러 성화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성화였습니다.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캠코더로 촬영해서 화질은 떨어지지만 아래 편 왼쪽 사진이 바로 폴리갑의 순교 장면을 담은 성화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십자가 상에서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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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단이 마련된 뒤 폴리갑은 옷을 벗고 신을 벗었습니다. 그들은 폴리갑을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고 했지만  폴리갑은 거절했습니다.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그 분은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폴리갑은 두 손을 말뚝 뒤에 묶인 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복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에 관한 지식을 주신 아버지시여! 모든 천군, 천사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요!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 그리스도의 잔에 참예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는 축복 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이하 중략)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그가 아멘으로 기도를 끝내자 집행인들은 불을 붙였습니다. 불길이 크게 솟아 올랐을 때 주변 사람들은 기적같은 일을 보았습니다.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아치의 형태를 이루면서 순교자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싸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선 폴리갑의 몸은 전혀 불타는 육체 같지 않았고 마치 용광로에서 정련되는 금이나 은 같았습니다. 그 순간 귀한 향료에서 풍기는 듯한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그의 육신이 불에 타지 않는 것을 본 박해자들은 집행인에게 그를 칼로 찌르라고 명령했고 칼로 그의 몸을 찌르자 피가 솟구쳐 불이 꺼져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 사실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터어키 관광청이 제공하고 있는 폴리갑 교회의 실내 모습입니다. 우리 가족이 들어가 봤던 때와는 달리 조명을 밝히고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폴리갑 순교 기념 교회가 간직한 참 아름다움은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아닐 것입니다.

폴리갑이 순교하던 당시 서머나의 인구는 20만을 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 오는 환락의 인파로 흥청거니는 서머나에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즈미르의 빌딩 숲 속에 남아 있는 이 황색의 작은 건물 속에는 그렇게 죽어간 믿음의 조상들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며 소리 치는 것 같습니다.

폴리갑이 순교한 후 이레니우스가 서머나 교회의 장로로 봉사했고 2세기의 서머나 교회는 파피리우스, 카메리우스, 트라시우스 등의 감독을 거쳐 갔습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순교 역사 이후 이방 종교가 서머나에서 크게 성황을 이루게 되었고 하드리안 황제 통치 기간(AD 117-138) 에는 이방 신상을 만드는 학교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AD178-180 년 큰 지진이 있었지만 재건되었고 이후 비잔틴 제국 때는 이곳의 기독교 공동체가 강력해서 대주교가 배출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후 주후 673년 아랍인들의 침공이 있었고 1071년 셀주크 터어키의 술레이만에 의해 이 도시는 이슬람 세력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저 쉽게 바라볼 수 만은 없었던 폴리갑 순교 기념 교회를 나온 우리는 해가 지는 저녁 무렵에 해변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즈미르(서머나)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해변을 따라 예쁜 호텔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형민이는 이곳 아이들과 모래 장난을 하며 에게해변에서의 한 때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중해를 지나온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서머나의 해거름을 보고 있습니다. 서머나에는 지금도 많은 카톨릭 교회와 그리이스 정교회, 성공회가 있고 개신교 성도들도 다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머나에서도 우리가 본 것은 촘촘히 세워진 모스크와 저녁 때마다 골목 골목에서 축구 중계 방송을 열심히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계시록의 편지에는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은 교회로 서머나 교회가 나타납니다.

 그 유명한 로마 황제 숭배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바로 이곳 서머나에서였습니다. BC 195년 신격화된 황제를 위해 최초로 건축된 신전이 바로 이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킴으로 산업과 재산이 몰수 당하는 궁핍에 처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지요.

그러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는 약속의 말씀이 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론 부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죽도록 충성하며 복음을 지킨 폴리갑의 순교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돌인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즈미르(서머나)의 한 공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모습을 모은 것입니다.

이즈미르에 온 삼일째 ...우린 뒤로 보이는 공원을 찾아 갔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키 큰 종려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공원 중심에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고 있지요.

 

이 공원 안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갖추고 있습니다.

 

공원 내에는 동물원이 있습니다. 동물원 입구에서 한 장 찰칵...

 

이 곳에 와서 양을 구경하고 있는 선화와 형민이...형민이는 터어키에서 양을 여러 번 봤지요...

 

 

이즈미르 고고학 박물관 2층에서....    200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