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이스탄불 : 이스탄불 공항, sur 호텔에서 정착하기까지 (1일째)

 막상 터어키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터어키에 관한 여행 정보를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현지의 숙박료나 물가는 어떤지...어떻게 유적지를 찾아 다닐 것인지...언어 소통이나 연계되는 교통편은 어떻게 구할지...모든 것이 우리에겐 큰 과제들이었지요.

일단 인터넷에서 '터어키' 라는 단어를 검색하며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성지순례 전문 여행 사이트인 "만나 투어"의 자료들이 우리에겐 아주 유용했고 그 외... 터어키 대사관이나 터어키 포탈 사이트를 표방하는 몇 군데의 사이트에서도 일반적인 정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소아시아 7대 교회가 있었던 곳의 현재 지명과 각 도시 간 거리들을 표시한 만나 투어의 자료는 우리에게 큰 기대감과 자신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재 지명만 제대로 나와 있다면....그 곳을 찾아 나서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인터넷 상에서 현재 터어키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와 접촉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터어키에 거주하는 선교사님들이 현지 가이드 일도 맡아 보신다는데...우리가 접촉한 분은 이스탄불에서 한국 식당도 경영하면서 관광 가이드업에 종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에 자세히 대답해 주셨지만...현지 가이드를 이용하기에는 이용료가 비쌌고 이 분을 통해 알아 본 우리 가족이 묵을 만한 괜찮한 호텔의 숙박료 역시 너무 비쌌습니다.

그래서 우린...숙박이나 여행 일정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일단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난 뒤 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알아 낸 숙박시설들은  가족 단위로 묵기에는 너무 취약한 곳이거나 오히려 너무 비싼 곳들이어서 정하기 어려웠고 여행 일정 역시 현지 지리나 유적의 위치를 전혀 모르는 우리가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이스탄불에 도착할 때까지 관광 일정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1년 6개월 된 형민이를 안고 터어키 행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또...그것이 우리에겐 설레임과 즐거움이었습니다. 단지...터어키로 간다는 사실 하나만이 확실했습니다.

그래도.... 우린 소아시아 7대 교회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 자료들은 인터넷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2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선화가 구입한 한 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국제 전문인 선교회에서 일하고 계시는 김주찬 선생님이 쓰신 "소아시아 7대 교회"라는 책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17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소아시아 7대 교회가 위치했던 옛 도시의 현재 위치와 명칭, 특징, 관련 역사, 유적들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제공하고 있으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더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어 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빌라델비아(현재 지명 알라세히르)에 도착했을 때....무너져 내린 빌라델비아의 사도 요한 기념 교회 관리인으로부터 "한국인 김주찬을 아느냐?"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해...이 책의 저자가 초대 교회 관련 유적들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여기 저기에서 활동을 펼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이스탄불의 어느 한국인 식당(모두 3개가 있습니다.)에서 이 분의 또 다른 저서 "밧모섬에서 돌아 온 사도 요한"을 보기도 해 터어키 기독교 유적에 관한 한 이 분이 전문가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쨋든 제법 굵은 이 책자 덕택에 우리의 터어키 성지 순례는 더욱 알차고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었고 전문 관광 가이드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의 자세한(돌 담의 색깔이나 희미해져 버린 무늬에 담긴 의미까지...) 설명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선화가 이 책을 한국에서 살 때만 하더라도...실제 우리가 소아시아로 떠난다는 것은 하나의 꿈으로 존재했던 일인데...꿈은 현실로 다가 온 셈입니다.

한가지 더 언급한다면....이스탄불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로 된 이스탄불과 터어키 유적 관련 안내 책자들도 아주 내용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물론 7대 교회에 관한 정보는 전무하지만.....) 저희도 몇 권 사서 터어키와 이스탄불 유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앞으로 터어키를 여행하게 되실 분이라면....이스탄불에 도착하셔서 이런 책을 구입하시더라도 옛 유적에 대한 훌륭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이제 터어키로 떠나야 겠네요...

우리 가족이 가진 짐은 여행용 가방 하나와 선화와 제 등에 올려진 작은 배낭이 모두 다 입니다. 보름의 여행 치고는 작다고 느끼시겠지만....여행 내내 계속 걸어 다닐 수 없는 형민이를 생각한다면 결코 작은 짐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제 목에는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인화용 카메라의 벨트가 늘 감겨 있어야 했기에...13Kg의 형민이를 안고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스탄불로 떠날 비행기는 4월 4일 아침 8시 10분에 알마티를 출발하는 까작스딴 항공사 소속 보잉 여객기입니다.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는 그 전 날 ...아스타나에서 미리 알마티로 내려와야 했고 알마티 중심부의 제투스 호텔에서 다음 날부터 펼쳐질 모험을 생각하며 하룻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4월 3일...눈 내리는 아스타나를 떠날 때의 우리의 복장은 얇은 옷이었고 배낭에는 반팔 옷이 들어 있었습니다. 곧 도착하게 될 따뜻한 남쪽 나라는 20도 이상의 따뜻한 온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길을 나서는 형민이는 아스타나 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신이 나 있었습니다. 생후 1년 반 만에 형민이만큼 비행기를 많이 타 본 아이도 드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알마티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요.

알마티에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스타나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고등어 구이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맛있게 식사를 한 뒤....어두워져 가는 호텔 주변의 알마티 도심을 운치있게 걷다가 호텔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비록 시설이 열악한 제투스 호텔이지만 내일 새벽에 떠날 여행 생각에 소풍을 앞둔 아이 처럼 설레이는 기대감으로 가득찬 밤이었습니다.

 아침 6시...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우리 세 식구는 호텔을 빠져 나와 호텔 앞에 세워져 있는 택시를 탔습니다. "알마티 공항으로 갑시다..."

여행 기간 내내 캠코더로 여러 상황들을 녹화했었는데..왼쪽 사진이 역사적인 출발을 앞두고 알마티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택시 안에서 잡은 화면입니다. 형민이는 아직 선화 품에서 자고 있고 우리 역시 완전히 잠이 깨진 않았지만....알마티의 밤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8시 10분 출발인지라 7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는데....딱 7시에 도착해서 여유있게 이스탄불 행 항공 수속을 마치고 활주로로 가는 셔틀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만은 까작스딴의 열악한 공항 서비스 시설과 불친절한 공항 직원의 딱딱한 태도들도 쉽게 봐 넘길 수 있었습니다.

사실...까작스딴에서는 국내선 비행기라고 30분 전에 공항에 갔다가는 무거운 수화물을 가지고 비행기에 타야 합니다. 수화물 접수를 30분이 되기 전에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탑승권 검사도 찬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활주로 위에서....비행기에 오르기 바로 직전...비행기로 오르는 트랩 앞에서 승객들을 세워 놓고 실시하기에 형민이를 안고 활주로 위에서 탑승권을 들고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오늘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는 크고 깨끗했습니다. 한국-까작스딴 노선을 비행하는 비행기보다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아마 보잉사의 최고 기종인 것 같은데...까작스딴에 온 이후 많은 비행기를 탔지만..이 날 탄 비행기가 가장 고급 기종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장거리 비행에선 형민이가 조용하게 여행을 잘 마쳐 주는 게 제일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 날도 활주로에서 이륙하자 말자 물병을 입에 대고 물 한 모금 삼키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정말 신기하더군요...작년 한국에서 떠나 올 때부터 형민이와의 비행은 이런 식으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날도 쉽게 잠이 든 형민이를 보며 우리 둘은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형민이는 정말...비행기 체질이야...' 라며...

비행 중에도 엔진 소리 시끄러운 한국-까작스딴 노선 비행기보다 훨씬 조용했습니다. 우리는 전방에 내 걸린 스크린에 표시되는 현재 비행기의 위치를 보며 우리가 지금 어디쯤 날고 있다는 것을 속삭이곤 했습니다.

"지금 바이칼 호수 근처를 지나고 있다...."         "흑해 위를 지나고 있네요...."

기내식은 까작스딴 항공사의 다른 노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샌드위치와 야채, 닭고기 같은 것이 나왔습니다.  6시간 여 달렸을까.....이스탄불 공항에 접근하고 있다는  승무원의 방송이 흘러 나왔고 우리의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구름 아래로 내려온 비행기의 창 밖으로 도시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바다가 보였고 곧 나무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많이 흐려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은 없었고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습니다. 비가 온 것 같았습니다.

왼쪽 사진이 비행기 안에서 이스탄불 공항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잿빛 하늘과 짙게 깔린 안개가 보이시죠? 이스탄불의 첫 인상은 '흐린 날의 이스탄불' 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스탄불 여행도 첫 4일간은 이렇게 비가 간간이 내리는 흐린 날씨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4일후 이곳을 떠나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는 에게해(지중해 일부) 연안의 소아시아 교회를 8일 정도 둘러 보고 난 뒤 다시 이스탄불에 올라왔을 때에야 비로소 파란 하늘의 맑은 날의 이스탄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명의 요람이라고도 불리는 이스탄불은 서울보다 더 큰 도시입니다. 전체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천 2백만에서 천 5백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방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로 인구는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고...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가 합쳐져 또 다른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매년 2백만병의 관광객이 찾아 와... 과거 비잔틴 제국(로마시대)과 오스만 제국(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던 이곳에 남아 있는 위대한 문화 유산들을 둘러 보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이 세계적인 국제 도시로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도시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위 48도, 경도 28도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을 연결하는 도시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경계는 흑해와 마르마라해(지중해의 일부)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인데...이 도시는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양쪽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 말자 달리기 시작하는 형민이..

입국 심사하는 곳의 모습입니다.

 공항에 내려서 입국 장소로 갈 때까지는 인천 국제 공항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끗한 바닥과 밝게 비추는 조명들이 까작스딴을 벗어나 또 다른 국가에 들어 왔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인구 천 2백 만 이상의 대도시이지만.... 비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기에 입국에는 특별한 수속이 필요없었고 그냥 여권에 도장 하나 찍고 컴퓨터에 국가별 분류와 여권 번호 입력하는 게 다였습니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더니 짐 찾는 곳과 면세점들이 한 눈에 들어 오는 공항 내부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왼쪽에 "Duty Free(면세점)" 가 보이시죠?

사실 인천 국제 공항은 입국하는 통로에는 면세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로 출국장과 연결된 통로를 따라 백화점과 같이  많은 면세점과 편의시설이 위치해 있는데 이스탄불 국제공항은 입국장에도 이렇게 많은 면세점이 위치해 그야 말로 관광을 위한 나라인 듯 보였습니다.

짐을 찾는 것도 쉬웠습니다. 거의 승객들이 나오는 시점과 동시에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수화물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까작스딴은 입국하는데만 1시간이 걸리는 낙후된 공항 서비스를 보여주는데 반해...터어키는 10분이면 모든 게 끝나는 그야말로 관광 선진국이었습니다.) 짐을 찾은 뒤...우리가 찾은 곳은 환전소 입니다. 지금부터는 터어키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기에 까작스딴 화폐 '뗑게'는 필요 없고 터어키의 화폐 단위인 "터어키 리라"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공항 내부에 위치한 여러 은행의 환전소를 돌아보고는 어마어마한 터어키 화폐 단위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1달러는 한국 돈으로 1300원 정도, 까작스딴 돈으로 154 뗑게 정도 하는데....터어키 리라는 자그마치 1달러에 1백 3십만 터어키 리라에 환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터어키를 지나갔음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100달러를 환전소에 건넸더니...2천만 리라 짜리 지폐와 천만 리라, 백만 리라 짜리 지폐가 가득 담겨 돌아 왔습니다.

왼쪽이 백만 리라 짜리 지폐입니다 .'백만' 이라고는 하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천 원인 셈입니다. 어마어마한 화폐 단위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아예 동그라마 3개를 떼 버리고 생각하는지...마지막 동그라마 3개의 색상이 다른 게 눈에 금방 들어 옵니다.

터어키의 모든 지폐의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화폐의 단위는 달라도 항상 만날 수 있는 이 사람은 모든 터어키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터어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입니다.

터어키의 전신이 오스만 투르크(터어키) 제국인 건 알고 계시죠? 이슬람 제국 '오스만 터어키' 는 한 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대 제국을 완성시킵니다. 1453년 술탄(왕이란 뜻) 마흐멧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더욱 세력이 확장되어 술탄 슐레이만 대제 시절(1520-1566년)에는 가장 전성기를 맞게 되지요. 하지만 시간은 제국을 변화시키고 1683년 오스만 터어키가 오스트리아 침공에 실패하면서부터 100년 동안 영토가 축소되어 갔고 1911년 발칸 전쟁의 결과 그리이스,불가리아가 독립하게 되고 1914년 독일과 함께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는 바람에 영토가 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바로 위의 사람 "무스타파 케말 아타루르크" 가 터어키에 공화정을 세우려는 "터어키 독립 전쟁'을 일으켰고 마지막 술탄 마흐멧 6세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마침내 1923년 10월 29일 터어키 공화국이 선포됩니다. 이 때 아타투르크는 터어키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지게 되지요....

이스탄불 국제 공항 청사

돈 얘기를 하다...터어키 공화국 성립 배경까지 이어졌네요....어쨋든 우린 100달러를 환전한 뒤... 공항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막상 이스탄불에 오긴 했지만...공항을 나서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데다....숙소가 될 호텔도 정하지 않았기에 막막한 상황이었지요.

일단 공항의 관광 안내소를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Information center" 라고 적힌 곳을 찾아 호텔을 찾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몇 가지 고급 호텔들의 팜플렛이 수북히 쌓였고 가장 싼 호텔도 하룻 밤에 70불 정도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싼 호텔의 팜플렛을 들고 이걸 어쩌나...하고 있는데....뒤에서 한국말이 들렸습니다. "여기서 호텔 구하시면 안되요...."

뒤를 돌아 보았더니...20대 말이나 30대 초로 보이는 여자분이 한국 말을 하면서 안타까와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호텔을 구해선 싸고 좋은 호텔을 구할 수 없다고 하면서...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줄 테니 그 친구을 만나 보라고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유럽에서 살고 있는데...혼자 터어키에 왔다가 오늘 남편이 터어키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어 마중 나온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이 분의 편안한 첫 인상과 친절한 안내에 우리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얘기하고 친구라는 분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습니다.

"그런데....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니 그것도 모르고 오셨어요? 일단 술탄 아흐멧 광장 으로 가셔야 해요...그 곳에 좋은 호텔과 대표적인 문화 유적지들이 모여 있지요...택시를 타고 '술탄 아흐멧' 으로 가자고 말씀하세요...아마 천만 리라 정도 할 거예요...."

이스탄불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하던 우리에겐 ...이 여자분과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인도자로 다가 왔습니다. 너무나 고마워 여러 번 인사를 건넸지요....

"고마워 하실 거 없어요...사실...이곳에선 한국인 끼리도 서로 잘 믿질 못한답니다. 한국인 여행자를 노리는 호객꾼들이 많기 때문이죠..그래서 저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요....같이 있는 애기가 너무 귀여워 도무지 그냥 지나가질 못하겠더라구요....형민이라고 했지요? 어쩜 이렇게 아빠를 닮았어요?"

이스탄불에 도착하자 마자...형민이 덕을 톡톡히 본 우리는 공항을 빠져 나와 '술탄 아흐멧' 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이 화면은 그 당시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찍은 비디오 화면입니다. 공항 안에서는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스탄불의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푸린 날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공항은 아마 도심에서 외곽에 떨어져 있는지 한참 동안을 이렇게 달려야 했습니다.

택시 운전기사는  가는 내내...어느 호텔로 가는지를 물어 왔고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우리말에 자기가 잘 아는 호텔에 데려다 주겠다며 이 말 저 말로 조건들을 제의해 왔습니다. 하지만...이곳에 사는 한국인을 만나기로 했기에 어떤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운전 기사는 술탄 아흐멧 광장에 도착하자 말자 자기가 아는 사람이 경영한다는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는 우리 짐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제가 화를 냈습니다.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등 뒤에 두고 우린 짐을  다 들고 다시 길 가로 나왔습니다. 터어키에서의 관광이 쉽지 않음을 쉽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지요.

호텔 앞에서 골목을 따라 내려 와....길 가에 서 있는 경찰 아저씨에게 술탄 아흐멧 광장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광장은 몇 미터 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개를 받은  분에게 전화 하기 위해 광장 옆 공중 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었고(공중 전화 카드는 그 친절한 분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샀습니다. 천만 리라 짜리였지요...) 성공적으로 연락이 되었습니다.  김 경림 이라고 이름을 밝힌 젊은 여자 분이었습니다. 전화 박스 위에 보이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앞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이 당시 전화 박스 앞에 있던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의 뒤로 보이는 건물이 나중에 설명 드리겠지만 성 소피아 사원의 일부이구요....오른쪽에 전화 박스가 놓여 있습니다 .

4월의 터어키는 따뜻하다고 해서 얇은 옷을 입고 왔는데....이게 웬걸? 이스탄불은 추웠습니다. 아니..정확하게 말하면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씨 때문에 온도가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따뜻하다 더니...이게 뭐고...' 라며 투덜거리기도 했지요....

이스탄불과 까작스딴 사이의 시차는 5시간이나 됩니다.( 두 나라 모두 섬머 타임제를 실시하구요.....) 아침 8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알마티를 출발해 6시간 이상을 날아 왔지만....아침 9시 반에 이스탄불에 도착한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새벽부터 잠을 설쳤기 때문이죠...까작스딴 같으면 벌써 오후 3시가 가까워지는데...형민이도 낮잠을 자야 했고....어서 빨리 호텔을 정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리고 있다....소개를 받은 한국인 김경림 씨를 만났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분인데..터어키에서 앞으로 관광업을 해 보고 싶은 꿈에 이곳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는 분이었습니다.  옆의 사진에 나오는 분이죠..

그녀는 이곳 현지의 여행사에서 일 하면서 실무를 익히고 있는데 호텔 같은 숙박 업소에 대해선 환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터어키식 까페에 앉아 이것 저것 얘기를 나눈 후...우리 가족에게 딱 맞을 것 같다며 "sur 호텔" 이란 곳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처음 터어키에 왔을 때 묵었던 호텔이라고 하더군요.

친절한 도움으로 호텔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이 분과 자주 만나 이스탄불에서 살아가는 얘기도 듣고 이 분이 혼자 자취하고 있는 숙소를 찾아 가 불가리아에서 수입된 라면을 함께 끓여 먹기도 했었습니다. (위 사진)  아직까지는 힘들 게 살고 있지만 꿈이 있어서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있는 대한의 딸(?) 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받은 끝에....우리는 술탄 아흐멧 광장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는 깨끗하고 예쁜 "sur 호텔"에 투숙할 수 있었습니다. 하룻밤 숙박에 35불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지 호텔에선 손님을 소개한 사람에게 커미션을 지불하는 게 관례인데...우리를 소개한 한국인 김경림 씨는 커미션을 받지 않고 우리 호텔료를 그 만큼 낮춰 주셨습니다. 참 감사하지요....

터어키에서 꼭 기억 하실 것 중 한 가지는 호텔 프런트 뒤에 써 있는 호텔 숙박료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가격은 성수기 때나 받을 수 있는 가격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가격의 50%를 지불하면 웬만한 호텔에는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군요...우리가 들어간 sur 호텔도 호텔 프론트 뒤에는 single 40 달러, double 80달러 라고 적혀 있었지만...실제로 우리가 지불한 돈은 35 달러 ...결국 50% 정도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이곳 호텔에선 일반적으로 다 통용되는 관례인 듯 합니다.

sur 호텔은 3층 건물인데...우리가 3층에 위치한 객실을 차지했습니다. 3층에는 객실이 둘밖에 없고....식당으로 쓰이는 넓은 공간이 있는 데다가.... 마르마라 바다(지중해의 일부)가 환하게 내다 보이는 테라스가 있어서 장난꾸러기 형민이와 함께 있기에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바로 그 호텔 3층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선화 뒤에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 방이 나옵니다. 멀리 뒤에 보이는 총각은 이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아침마다 따뜻한 빵을 사와서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마치 가정집과 같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호텔에서 우리는 매일 편안한 잠을 자고 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어느 날 아침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호텔을 정하고 난 뒤....우리가 결정한 일은 뭘까요? 우리는 일단 ....샤워를 하고 푹 자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고 일어난 뒤....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요.....

왼쪽이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방 내부의 모습입니다. 같은 가격대의 알마티의 제투스 호텔에 비교하면 이곳은 황실과 같은 곳입니다. 조그마한 창으로 블루 모스크가 한 눈에 들어 오는 이곳에서 터어키의 생활 수준이 까작스딴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반가운 것은 터어키의 욕실 구조입니다. 까작스딴은 목욕탕 바닥에 물을 흘려서는 안됩니다. 금방 아래층으로 물이 새기 때문이죠...까작스딴에선 반드시 욕조 안이나 세면기 안에서만 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국은 욕실 안에서 물을 얼마든지 뿌려도 되는데..그게 불가능한 까작스딴은 그래서 더욱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김장을 한다거나...큰 빨래를 할 때....

그런데...터어키는 한국처럼...욕실 바닥에 물을 얼마든지 뿌려도 배수가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게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형민이 눈꺼풀도 이제 무거워져... 자지 않고선 견딜 수 없어 보였습니다. 우린....한 낮 기도 시간임을 알리는 이슬람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낮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스탄불에 무사히 도착했고 좋은 호텔에서 이렇게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계속 느껴지는 것은...우리 뒤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우리의 터어키 여행기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첫째 날 저녁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할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계속 얘기 드리기로 하지요... 기대해 주세요.   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