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에서의 추억    9 일째: 고대 도시 라오디게아 유적지에서 (4월 12일)

우리의 소아시아 교회 유적지 탐방은 에베소-->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라오디게아-->필라텔피아-->사데-->서머나-->버가모 의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두아디라'가 빠졌는데...이 곳까지 방문하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하는 등...중복되는 코스로 인해 이중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북쪽에 위치한 두아디라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둘러 봤던 유적지만 찾아 다녀도 지금은 잔해로만 남아 있는 소아시아 교회 유적지에 대한 감동적인 체험은 충분하리라 느껴집니다. 특별히 오늘 소개할 라오디게아 지역은 이번 여행에 있어 가장 험난하고 힘든 일정이었지요.

터어키 현지의 일반 여행사들은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라오디게아, 필라델피아, 사데,서머나, 버가모 지역으로 향하는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지역들은 우리가 일일이 지도를 보고 현재 지명과 대조해서 버스를 타고 찾아 다녀야 했는데 라오디게아의 경우에는 그 곳으로 가는 버스 노선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한국의 만나 투어 같은 전문 여행사는 성지순례 코스로 다루고 있습니다.)

2박 3일간 묵었던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라오디게아로 가는 것은 외국인이 대중 교통만을 가지고선 절대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계획인 것입니다. 우린 물론 그 곳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았지요.

현지인들 말로는 투어 버스가 아니고서 히에라폴리스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자가용 차량 뿐이라고 말했고 주변에 있는 '데니즐리'라는 큰 도시로 나가야만 라오디게아 유적지가 있는 마을('에스키히사르' 라는 마을)에 갈 수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지도상으로 데니즐리는 우리가 위치한 히에라폴리스에서 차로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가이드나 투어 스케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화와 형민 그리고 저...이렇게 세 사람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이번 여행에 있어서 이 같은 교통 상황은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결국 우린....우리가 묵었던 펜션(여관 비슷한 곳입니다.)의 주인 아저씨에게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라오디게아 유적지까지 아저씨 자동차로 데려다 줄 수 있는지 부탁해야 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사례를 하기로 하구요...

그래서 결국...우리는 이틀 밤 동안 사용했던 전기 난로비를 포함해 3천만 터어키 리라(우리 돈으로 3만원)를 주기로 하고 아저씨의 낡은 자동차를 이용해 지금은 폐허가 된 라오디게아 유적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위의 왼쪽 사진이 우리가 묵었던 펜션 앞에 세워져 있던 주인 아저씨의 낡은 자동차입니다. 우측 사진의 운전수가 바로 그 사람이지요. 사실 우리로선 3만원이라는 싼 가격에 도무지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라오디게아 유적지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셈입니다. 물론 아저씨로서도 소일거리로 짭짤한 수입이 생긴 거구요.

차는 우리 나라의 지방도와 같은 좁고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간간히 우측 사진처럼 경운기를 만나기도 해 한국의 시골 풍경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했지요. 지중해변의 4월인지라 날씨도 맑고 좋았습니다.

왼쪽 사진은 이곳의 버스 정류소를 스쳐 지나가면 찍은 영상인데 흐리게 나왔지만 우리의 버스 정류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가로수와 정원을 갖춘 주택들도 도로를 따라 서 있었습니다.

1시간 남짓 달린 뒤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길 입구에 "라오디게아"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터어키에선 현재 지명을 표기하는 표지판과 다른 색깔(노란색)을 사용해 유적지의 옛 지명을 표시하고 있기에 한 눈에 라오디게아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은 좌우에 풀밭만 가득한 평지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을 10여분 달렸을까...약간 언덕진 경사지에 아저씨는 차를 세웠습니다. 여기서부터 자신이 직접 안내해 주겠다는 거지요. ( 터어키에선 관광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영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소통에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관광 대국 터어키의 진면모를 이런 부분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라오디게아에 들어와 최초로 차를 세운 곳입니다. 내리자 말자 형민이에게 신발을 신기고 앞으로의 대장정을 준비시키는 선화의 밝은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요?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라오디게아에는 지금 이런 들판 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아직 이 지역은 유적 발굴 작업이 시행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수 많은 고대 유적들이 이 땅 밑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얘기됩니다. 터어키 정부에서는 이곳에서 함부로 땅을 파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지금 현재의 모습에서도 몇 개의 유적들을 볼 수 있는데...두 개의 원형 경기장, 고대 올림픽 경기장, 물 저장소, 신전, 교회의 폐허 등입니다. 제우스 신전이나 의학 대학이기도 한 카리안 신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린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소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번성해 가던 라오디게아가 이런 폐허로 변하게 된 것은 지진 때문입니다. AD 494년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었고 그후 1094년 셀주크 터어키인들의 침입으로 다시 한 번 파괴되었습니다.

위 사진이 라오디게아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난 폐허입니다. 선화와 형민이 뒤로 네모 반 듯한 건물의 한 쪽 귀퉁이인 듯한 잔해가 두 개나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화의 왼쪽으로 노란색으로 된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도와 준 가장 큰 가이드북은 뭐니뭐니 해도 김주찬 선생님이 써신 "소아시아 7대 교회(옥합)' 이란 책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렇게 군데군데 유적지 마다 서 있는 노란 안내판들이 우리에게 적잖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어로 역사적 의미를 상세하게 적어 놓은 이 안내판 덕분에 우린 늘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요. 이 안내판에 따르면 선화 뒤로 보이는 저 무너지고 남은 건물 모퉁이 잔해가 바로 중세 시대 라오디게아에 굳게 서 있던 교회당의 유적이라고 합니다.

이 안내판을 확대해 찍은 사진입니다. 안내판의 내용입니다.

"고대 도시 라오디게아는 BC 250년 경 시리아 왕인 안티오쿠스 2세에 의해 재건되어 그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라 라오디게아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BC 190년 경 버가모 왕국에 예속되었다가 BC133년부터는 로마 제국에 병합되어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이 도시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후기 비잔틴 시대까지이다. 이곳은 히에라폴리스에서 기원하는 온천의 치료 효능 덕분에 유명한 치료 장소이기도 했다. 사각형 모양의 교회의 동쪽 벽이 지금도 삼 면을 가지고 서 있는데 이 구조는 로마 스타일의 교회를 본 따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안내문은 안내판의 오른쪽, 즉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폐허가 로마 스타일의 교회 건물의 흔적임을 정확하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관련 내용들도 쭉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99% 이슬람 인으로 이루어진 이슬람 국가, 터어키에서 기독교 관련 유적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과 반가움 그리고 비장함을 이곳에서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한 계시록이나 바울 서신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 같은 교회 건물을 가지기 전의 모임이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큰 건물을 가지게 된 것은 적어도 기독교 공인 시대 이후일 것이고 따라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지만...그 옛날 라오디게아에 서 있었을 교회의 폐허를 뒤로 하고 다음 유적을 보러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2천년이라는 역사의 무게만큼 무거웠습니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시원한 아침이었는데...한 낮이 가까워지면서 뜨거운 태양볕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유적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안내하는 아저씨(좌측 사진)를 따라 비포장 도로를 지나 풀밭으로 가로 질러 들어 갔습니다. 이 풀밭에서 거북이 비슷하게 생긴 파충류를 만나기도 했었는데 이런 종류의 동물을 처음 보는 형민이 덕분에 한참 동안 앉아 있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10여분을 걸은 뒤 우리가 만난 것은 고대 원형 경기장이었습니다. 이 원형 경기장은 그리스 양식이었습니다. 사실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 양식은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많습니다. 로마도 처음엔 그저 그리스 양식를 무조건 따라 했으나 나중에는 아치(arch)를 사용하는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켜 대규모의 목욕탕이나 이런 경기장을 만들었지요. 게다가 로마인은 공중 변소를 설치하고 하수도와 배수구 시절을 갖춰 수준 높은 위생 생활을 유지했고 도시에 깨끗한 물을 보내기 위한 수로도 설치했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히에라폴리스나 에베소의 원형 극장에서는 아치들이나 그 잔해들이 많이 보였었는데 지금 이 경기장은 그런 잔해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뤄 보아도 이 경기장은 로마 양식이라기보다는 그리스 양식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 이렇게 멋진 경기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본 원형 극장들보다 많이 파괴되어 있긴 하지만...그 규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던지라... 그 옛날 라오디게아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경기장의 규모를 보며 놀라와 하고 있을 때 그 곳에 이미 서 있던 또 다른 아저씨 한 사람이 여기서 좀 더 떨어진 곳에 또 다른 경기장이 있다고 말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운전사 아저씨도 그런 사실은 미처 몰랐다며 그 사실에 관심을 가졌고...우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 사람이 안내하는 곳에 한 번 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허리까지 오는 수풀을 지나야 하는 난코스였습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던 곳인 모양인데...아마 이 주변을 자세히 아는 현지인인 듯 했습니다.

두 아저씨를 따라 형민이를 안은 제가 앞장을 섰고 선화는 캠코더를 들고 따라 왔습니다. 남자들은 성큼성큼 앞서 갔지만 가도 선화는 도무지 따라 오기 힘들 정도로 험한 길이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뒤에 쳐져 있는 선화가 찍은 영상입니다. 두 아저씨와 형민이를 안은 제 모습이 보이죠? 두 아저씨를 따라 이 길로 한참 걸었더니 거짓말같이 또 다른 경기장의 잔해(우측 영상)가 나왔습니다. 이번 경기장은 앞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이 파괴되어 있어 제대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지만...그래도 분명히 원형 경기장이었습니다.

우리를 그 곳으로 안내한 현지인 아저씨는 이 경기장은 로마 양식의 경기장이었다고 귀뜸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경기장 중심부에 널려져 있는 기둥들과 바위들 속에서 그런 단서들이 보이나 봅니다. 제대로 서 있는 아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새로 찾은 경기장을 바라 보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이곳으로 우릴 안내한 그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동전 한 닢을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이 경기장에서 주웠다는 것입니다. 그 동전은 가이사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는 로마 시대의 동전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냐는 질문을 받으신 뒤 동전을 가져 오라고 말씀하시고 동전에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이사가 새겨져 있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얘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로마 시대 동전이 이 경기장 바닥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호기심에서 그 동전을 사 보려고 했으나 터무늬 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바람에 그냥 포기했습니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이렇게 관광객들에게 유적지에서 주운 동전들을 팔며 수입을 얻고 있나 봅니다.

멀리 나즈막한 산들이 보이는 광활한 평원...그것이 라오디게아 유적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산업의 도시였습니다. 계곡의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화 재배가 활발하였는데 모와 면직물 공업이 발달해 로마의 상원의원들이 입고 다녔던 흰 옷들은 거의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면직물 공업이 유명했습니다.

그렇게 넓은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헤매 다니느라 선화와 형민이 모두 힘들었습니다. 풀들이 얼마나 거칠었는지...팔이나 다리에도 생채기들이 날 정도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또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많은 은행과 고리 대금업자들이 있었는데 키케로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보내는 20파운드(약 9킬로그램)의 금을 빼앗았다고 기술하고 있고 BC 51년 경 소아시아를 여행할 때 이곳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 타키투스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주후 17년과 60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도시의 피해가 막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나 외부의 원조없이 스스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라오디게아의 경제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런 라오디게아에 복음에 전해진 것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사역할 당시였고 바울의 제자이며 골로새에 있던 에바브라가 개척했고 라오디게의 눔바가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골로새는 히에라폴리스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 12-15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골로새 교회)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그(에바브라)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바울의 라오디게아 편지는 분실되었습니다. 4세기 경에 20문장으로 구성된 라오디게아 편지가 발견되었으니 그것을 검토한 제롬이 가짜라고 무시해 버렸다고 합니다. 골로새 4:17에서 바울이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말한 아킵보가 에바브라의 뒤를 이어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를 돌보았고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 라오디게아의 감독은 아킵보가 아니라 눔바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2세기 후반 라오디게아의 감독 사가리스는 순교하여 라오디게아에 묻혔다고 합니다. 그 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당시 라오디게아 감독 에우게니우스는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곳에 건축했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두 개의 원형 경기장을 본 뒤 우리는 물저장고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길은 이상하게도 길 바닥이 하얗더군요. 돌도 흙도 모두 흰색이던데...여기도 파묵칼레처럼 석회 성분과 관계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라오디게아의 체육 경기장(고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측에 돌 무더기들이 보이는데(좌측 사진) 이곳은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조 건물입니다. 우측 화면은 물 저장소에 도착한 뒤 아저씨가 돌무더기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구요.

그런데 한가지 의미있는 사실은 이 물 저장소 옆에 5세기에 만들어진 십자가 표시가 아직도 남아 있어 아마도 이 근처에 교회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린... 그 곳에 가서도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고 나중에 돌아와서야 책을 통해 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릴 안내해 주던 운전사 아저씨는 이 건물을 가리키며 옛날에 교회로 쓰여졌다는 투로 얘기했었는데....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니 이 건물은 물 저장소이고 이 근처에 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게 맞는 얘기더군요. 아저씨는 아마도 조그마한 아기를 데리고 어렵게 라오디게아의 여기 저기를 둘러 보는 우리 부부의 여행 목적이 종교적인 것에 있음을 눈치채고 기독교 관련 유적에 대해 약간 오버해서 얘기해 준 모양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헤로필로스(BC 330-250)가 '혼합된 병은 혼합된 약을 원한다'는 제조법의 원칙을 세워 합병 진단법과 치료법을 채택했는데 라오디게아에서 그 제조법을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헤로필로스의 의료법에 따른 의과대학이 있었고 유명 제약 회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특히 고약과 안약은 특효약이었는데 당시 이곳의 의학 교수의 이름들이 동전에 새겨지지까지 했다고 합니다.

또 라오디게아는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유황 온천물과 탄산 온천물이 식어서 미지근한 상태로 도달하는 곳이었습니다. 골로새 뒷산에서 이곳으로 흐르는 차가운 물도 이곳에 오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로 변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물의 오염이 심각했다는 점인데 섬유 공장의 폐수, 신전에 바치는 짐승의 피와 오물 들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온천물을 오염시키는 바람에 이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귓병과 눈병을 야기시켰고 라오디게아의 토산약인 고약과 안약을 사용해서 치료했었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온천물이 오염되지 않고 라오디게아까지 흐르도록 터널을 만들고 그 곳에 수도관을 설치했는데 히에라볼리의 탄산수 온천물은 석회 성분이 많은 까닭에 마치 콜레스테롤이 혈관을 막듯이 자주 수도관이 막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침식된 수도관을 새 것으로 매번씩 바꿔야 했는데 왼쪽 사진이 바로 올림픽 경기장 뒤쪽에서 발견한 그 때의 수도관의 모습입니다.

왼쪽 바위를 자세히 보시면 수 많은 수도관들이 통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돌아본 것은 로마 하드리안 황제에게 바쳐졌다는 체육관(좌측)과 고대 올림픽 경기장(우측)의 폐허들이었습니다.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라오디게아로 출발해서 정오가 넘을 때까지 이 넓은 초원을 이런 식으로 헤매다 보니 선화나 형민이는 그야 말로 빈사 직전이었습니다. 돌아볼 때는 이것 저것 볼 욕심으로 뛰어 다녔는데 이쯤되자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게다가 오늘 스케줄은 오전에는 이렇게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돌아보고 오후에 빌라델피아 까지 이동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아시아 7대 교회가 있던 곳을 방문해 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광대한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이 계획이 얼마나 크고 힘든 일이었는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형민이를 안고 네 시간 동안 들판을 헤매다 보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왔습니다. 우린 그런 먹거리도 안 챙기고 왔었거든요.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이니...이 곳이 이런 곳인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힘든 만큼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당시 라오디게아의 지리적, 경제적 상황등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유적지를 보면서 라오디게아 라는 도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베소처럼 악한 자들도, 자칭 사도라 하는 자도, 니골라 당도 없었고 서머나 교회처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핍박이나 로마 황제의 심한 박해도 별로 없었습니다. 버가모나 두아디라처럼 발람과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도 없었고 필라델피아 교회처럼 거짓말하는 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데 교회와 함께 예수님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책망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였기에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두 개의 극장과 검투사 경기장으로 눈요기가 늘 있었고 금덩어리가 화폐 대신 각 집에 있었고 발달된 섬유 산업으로 만든 좋은 옷을 입고 산해진미와 최고급 술에 취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육의 삶은 풍요로왔으나 그들의 영적인 삶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권면하십니다. 이 얼마나 라오디게아의 당시 상황에 맞는 표현입니까?

무서운 박해를 이겨낸 기독교의 능력도 국교 공인 시대 이후 주어진 안락함과 세속화 앞에서 끝없이 변질되고 무력해져 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풀만 무성하게 피어나고 있는 라오디게아의 평원을 걸으며 기독교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복음의 능력은 육신의 자랑에 있지 않다고 폐허가 된 라오디게아는 오늘도 외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난과 역경들은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이자 통로이기에... 그렇지 못했던 라오디게아가 주는 교훈은 오늘도 우리 귓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2004.2.3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네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