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라폴리스 2    히에라폴리스와 사도 빌립        7-8 일째: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에서 (4월 10-11일)

'히에라폴리스' 라는 단어는 터어키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알고 보니 성경에도 나와 있는 지명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골 4:12-13)

 

우리가 에베소를 떠나 히에라폴리스에 도착한 것은 이미 점심 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 날 히에라폴리스에서의 점심과 오후 관광 스케줄, 숙박지 등은 이미 우리가 신청한 투어 일정에 포함되어 있기에 비교적 부담없이 새로운 곳에 몸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라는 온천 관광지가 있기에 사시사철 늘 많은 사람들로 넘쳐 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히에라폴리스의 커다란 주차장 앞에는 현대식 건물에 깨끗하게 지어진 뷔페 식당까지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그 곳의 모습입니다. 터어키의 음식은 세계 3대 요리에 들어갈 정도로 다양하고 해산물과 나물도 풍부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입니다. 하지만 오랜 여행으로 터어키 음식들이 이제 싫증이 날 때가 되었는지라 과일과 야채 그리고 다양한 음식들로 이루어진 뷔페 식당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렴했거든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그 곳에서 만난 일본인 학생들과 홀로 이곳까지 온 한국인 여학생 한 사람과 함께 팀을 이뤄 히에라폴리스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히에라폴리스 라는 옛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커다란 돌무더기들로 가득한 평지였습니다.

왼쪽이 바로 히에라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길쭉하게 솟아 오른 나무 뒤로 돌무더기들이 보입니다.

이 지역은 공동묘지였습니다. 도시 입구에 이런 공동묘지를 조성한 까닭은 당시 사람들만 알고 있겠지만 도시를 공격하려는 적군이 제일 먼저 지나쳐야 할 곳을 묘지 지역으로 만들어 적의 기세를 꺾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성문 밖 북쪽 문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조성된 이 지역에는 세 가지 형태의 묘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묘는 석관묘였는데 일반 평민들의 묘 라고 합니다. 그러나 석돌집 안에 선반을 만들고 그 선반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방식인 부자들의 묘 들도 있었고 내부에 계단과 방이 있는 영웅들의 묘 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부자의 묘 안으로 들어가 시신이 놓여 있었을 선반을 들여다 보기도 했었는데 서늘한 기운이 온 몸에 싸악 뻗치더군요.

이 곳을 공동 묘지라고 번역하긴 했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현지 가이드의 표현은 "necropolice"였습니다. 이 곳은 죽은 사람들의 도시인 셈입니다.

최초로 이 지역에 도시를 건설한 왕은 버가모 왕국의 유메네스 2세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메네스 왕은 전설적인 버가모의 창건자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히에라폴리스라고 명명했다는데 '성시(holy city)' 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도시는 AD 17 세기 경, 지진에 의해 대파되었으나 복구되어 2-3세기 경에 최전성기를 맞았으며 카페트, 직조, 화훼, 양모 등이 주산업이었으며 석공예가 상당히 발달되어 섬세한 돌조각이 눈에 많이 띄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전성기는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계속되었고 기독교의 대교구가 설치되어 기독교 생활의 중심지였으나 6-11세기 사이에 이곳 주민들이 지금의 테니즐리로 이주하면서 셀주크-오스만 터어키 시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폐허가 된 이 고대 도시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선화의 뒤로 보이는 문(사진)은 3개의 통로와 2개의 둥근 탑으로 되어 있는데 그 곳에 새겨진 문자를 보면 도미티안 황제에게 바쳐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에라폴리스 시민들이 건축한 이 문을 그래서 "도미티안의 문"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개선문' 이나 당시 아시아 총독의 이름을 따 '프론티노의 문' 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개선문에 당도하기 직전에는 3세기 경에 지어졌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목욕탕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 이후로는 교회당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바쳐진 교회였다네요.

휴양 도시이자 자유 도시로 인정받았던 히에라폴리스에는 유대인들도 약 1만여명이나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형민이는 지금 2천년 전...소아시아에서 번영을 누렸던 로마의 한 고대 도시에 앉아 있습니다.

공동 묘지 지역을 지나 들어선 이 곳은 폐허만 남았지만  1 Km의 긴 도로 주변에 있는 허물어진 건물들은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중요한 공공건물들이었다고 합니다. 도미티안의 문을 지나 이 도로를 따라 앞으로 걸어 나가면 커다란 시장터(아고라)와 여러 신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에게해를 끼고 있는 지중해 변의 날씨는 4월임에도 따뜻하다 못해 더울 정도였습니다. 파란 하늘에 솜털 구름이 깔려 있는 아래로 펼쳐진 이 큰 공간이 바로 히에라폴리스의 시장터(아고라)였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기둥 하나는 최근 복원시킨 AD 3세기 경에 지어진 아폴로 신전의 기둥이라고 합니다. 기둥 왼쪽으로 선화가 다가가고 있는 것이 보이시죠?

도로가 끝나는 종점에는 AD 2세기 경에 지어졌다는 분수대와 말라 버린 연못이 보였습니다.

분수대와 연못 사이에는 물을 흘러 보내는 관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왼쪽 사진 속에서 우리 일행의 발 밑으로 보이는 돌로 된 긴 구조물이 바로  수로 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은 오후 한나절 동안 우리와 함께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을 돌아 보았던 일행들입니다.

선화와 형민, 그 옆에는 혼자의 몸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한국인 여학생의 모습이 보이고 3명의 일본인 남학생의 모습도 있습니다. 우연히 동양인들끼리 뭉친 이 팀의 가이드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현지인입니다.

여기까지 둘러본 뒤 방문한 곳은 파묵칼레였습니다. (파묵칼레에 대한 얘기는 지난 번에 해 드렸지요?)히에라폴리스에서의 가이드가 안내한 투어 일정은 파묵칼레의 온천 수영장을 둘러 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진은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지를 내려와 찍은 것인데 도로 위쪽에는 탄산 온천수가 빚어낸 파묵칼레의 하얀 언덕이 보이고 있습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원형 극장과 사도 빌립 기념 교회의 유적은 이 날 투어 일정 중에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무슬만(이슬람 신자)일 가이드로의 입장에는 기독교 유적지인 사도 빌립 기념 교회는 별 관심도 없었을 테고 원형 경기장을 보려면 한참 동안 오르막을 걸어야 하기에 그냥 이렇게만 하고 마쳤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소아시아 교회 탐방을 하는 데 있어 현지 여행사에 의뢰한 투어 일정은 히에라폴리스에서의 첫 날 까지이고 이후 돌아봐야 할 라오디게아, 사데, 서머나, 버가모 등으로의 여정은 여행사의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유적지들을 연결하는 현지 투어 상품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어쨋든 투어 일정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우리 가족은 이 날부터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히에라폴리스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한 것도 형민이와 우리의 체력을 고려해 여유있게 소아시아를 둘러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일행들이 다음 목적지로 승합차를 타고 떠난 뒤 우리는 숙소로 내려왔습니다.

히에라폴리스에서의 첫 날,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갔던 어느 식당에서의 모습입니다. 파묵칼레에서 흘러 내려오는 온천물은 이런 식당에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커다란 수영장이 조성되어 있었고 지금 형민이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는 물고기도 헤엄치는 도랑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도랑 사이로 지나가는 물고기를 쳐다 보며 무척 좋아하던 형민이의 모습이 사진에도 그대로 나와 있네요.

히에라폴리스의 숙박료는 약 15불 정도였습니다. 엄청 싸지요?

아침에는 터어키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아침 식사가 나왔습니다. 말랑말랑한 터어키 빵, 쨈과 꿀,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삶은 계란이 바로 그것입니다.

히에라폴리스의 식당과 숙박 시설은 도로를 중심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사진은 우리가 묵었던 자그마한 펜션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집을 개조한 숙박 시설을 만들어 놓고 인근 도시로의 버스표 매매와 차를 이용한 인근 골로새, 라오디게아 관광을 알선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집의 아저씨는 그 당시 한창이던 9.11 사태 이후 일어났던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얘기하면서 미국은 나쁜 나라이고 안타깝게도 터어키는 이슬람 동족보다는 미국 편을 들고 있다며 소리를 높이는 다혈질의 아저씨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사태에 있어서도 미국은 이스라엘 편만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오래된 문명의 흔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펜션은 한국말로 표현하면 깔끔한 여인숙 이었습니다. 그래도 더운 물도 나오고 쌀쌀해지는 밤을 위해 아저씨가 가져다 준 가스 난로도 있던 포근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그 날 밤...가스 난로 위에 올려 놓았다가 형민이 옷을 태웠던 순간(왼쪽 사진)도 있었고 그 때까지도 밤에는 꼭 분유를 먹여야 했던 형민이의 모습(오른쪽 사진)도 기억납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하룻 밤을 잔 뒤 다음 날 아침 일찍....파묵칼레의 흰 언덕을 올랐습니다. 지난 번에 올린 파묵칼레의 사진들은 바로 이 날 아침에 찍은 것들입니다. 파묵칼레를 다 돌아본 뒤에는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유적지인 원형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경기장은 AD 2세기 하드리안 황제 시기에 지어졌습니다. 관중석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20줄, 상단에는 25줄의 좌석이 배열되어 약 1만 5천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대에는 각종 신화의 내용을 조각한 부조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 아폴로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칼리굴라 황제의 동상들도 있습니다.

형민이를 데리고 극장 맨 윗 자리까지 올라가니 숨이 턱 밑에까지 차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원형 극장들이 그렇듯이 이 곳도 아주 음향학적으로 설계가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스탠드 맨 윗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다른 외국인 한 사람이 저 아래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말....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목소리가 전달되었고 지금도 이곳에서 음악 공연이 열린다는 말이 믿겨졌습니다.

2천년 전...히에라폴리스는 유명한 온천 파묵칼레를 찾아 온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하루종일 흥청거리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큰 관광지였을 것입니다. 온천을 찾아 온 사람들은 이 원형 극장에는 밤마다 벌어지는 다채로운 공연들을 맛보며 여흥을 즐겼을 것 같습니다. 허물어진 극장 벽에는 아직도 그 날의 함성들이 울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원형 극장 북쪽... 성문밖에 해당되는 지역에 사도 빌립 순교 기념 교회가 있다는 안내 지도 표시를 보고 그 곳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가이드도 없었지만 뭔가 건물 흔적이 보일 거라는 생각에 일단 발걸음을 옮긴 거지요.

사람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곤 하지만 사도 빌립 기념 교회는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교회를 찾아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지금까지 완벽하다 싶어 칭찬만 해 왔던 터어키 관광 행정에 대해 불만이 생겼습니다. 사도 빌립 기념 교회라면 찾는 사람들이 꽤 있을텐데 그 곳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죠. 도로를 따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고 지나 가는 사람들도 없어 물어 볼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올라 왔던 길을 다시 내려와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버스 운전 기사에게 길을 물어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버스 기사는 그 장소를 알고 있었고 길을 따라 가지 말고 어떤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소들만 한적하게 노니는 시골길을 지나 언덕을 넘었습니다. (사진) 형민이가 무겁게 느껴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습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비탈을 한참 올랐을 때 무너진 성처럼 보이는 잔해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땐 그냥 돌무더기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갈수록 돌로 이루어진 짜임새있는 건축물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찾던 건물...사도 빌립 기념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바깥 쪽에서 봤을 때의 모습입니다. 돌로 담을 쌓고 기둥을 올린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요?

이 건물은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건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사도 빌립은 말년에 히에라폴리스로 와서 전도하다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을 맞고 감옥에 갇힌 뒤 결국 그 감옥에서 숨지고 말았는데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그가 숨진 곳에 빌립 사도의 기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성문 밖에 있는 이 건물...즉 옛날에 감옥으로 사용되던 그 터에 세워진 이 건물이 바로 사도 빌립 기념 교회인 것입니다.

이 교회는 폭 20미터, 길이 20미터의 정방형이며 AD 5세기 후반에 화재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빌립에 대해 서머나 감독 폴리갑은 빌립 사도의 순교로 해석하고 있지만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빌립 집사가 4명의 딸과 함께 히에라폴리스에 묻혀 있다고만 적고 있습니다.)

원형 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가 발견한 이 건물이 사도 빌립 기념 교회라고 확신했던 이유는 바로 이 건물의 독특한 구조 때문입니다.

기록을 보면 이 교회는 직경 20 미터의 중앙 홀에서 사도 빌립의 추모 행사를 개최했고 그 둘레를 따라 팔각형 모양으로 8개의 기도실이 배치되어 있다고 적혀 있는데 우리가 본 건물이 바로 8각형으로 배치된 건축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오늘 날에는 어느 교회당에도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교회당의 건물 배치가 독특했습니다. 중앙에는 예배실을 두고 그 주변을 돌아가며 기도실을 배치했다는 구조는 우리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8각을 이루던 기도 건물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모습들이 눈 앞에 떠 올랐습니다.  

기도실 바깥 쪽으로도 몇 개의 건물들이 보였는데 그 곳은 교육관 혹은 손님 접대용 방이나 창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기도실로 사용되던 건물 벽에 새겨진 기호들입니다. 십자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에서 보였던 각종 기호들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에서 선화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앙 홀입니다. 건물의 기초가 있던 자리가 하얀 대리석으로 표시되어 있고 교회의 앞 쪽 단상에 해당되는 곳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사진에도 보입니다.)

에베소에서 봤던 사도 요한 기념 교회에서 요한의 무덤이 있었던 위치에 해당되는 곳에 바위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봐선 아마도 사도 빌립의 무덤이 있던 곳을 암시하는 자리인 듯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교회당의 잔해 속에서 우리는 한참을 보냈습니다. 이곳은 찾았다고 해서 "만세"를 외친 뒤 그냥 내려가면 그 뿐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 곳은 사도 빌립과 히에라폴리스 복음 전파의 역사가 숨쉬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이 바로 8개의 기도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기도실에서 1500년 전의 기독교인들이 기도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자리입니다. 사도 빌립의 무덤이 놓였을 것만 같던 중앙 홀 앞 쪽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제는 99% 이슬람인 터어키의 한 구석에 놓인 유적이지만 이 곳은 사도의 체취가 남아 있는 기독교 대교구가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파묵칼레의 온천물은 언덕을 타고 인근의 골로새와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형민이는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또 한 명의 방문객이 교회터로 들어 왔습니다. 아마 그도 사도 빌립의 발자취를 찾아 이 곳에 온 모양입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언덕 위에서... 이제는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히에라폴리스에 남아 있는 교회의 흔적을 보고 내려 갑니다.

소아시아 교회를 찾아 가는 발걸음은 이렇게 파괴되어진 교회터를 보는 일의 연속이지만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이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이어져 왔고 그 신앙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이 순간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한국 땅에 전해진 복음...히에라폴리스에 있는 초대 교회의 폐허....이 두 사실은 금보다 귀한 복음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에만 집착하고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게 될 때....그 곳에 남는 곳은 돌무더기 뿐임을 사도 빌립 기념 교회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2003.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