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라폴리스 1   파묵갈레의 신비        7-8 일째: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에서 (4월 10-11일)

하루 종일 에베소 일대를 돌아 본 뒤 호텔로 들어 왔을 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캠코더 배터리도 이미 다 방전된 지 오래고... 아침 잠을 설친 형민이는 아빠 어깨에서 깊은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서 산 오이와 오렌지 그리고 딸기를 간식으로 먹고 오랜만에 호텔방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를 다 돌아 봤다는 성취감에 싸인 채 형민이를 침대 한복판에 눕혀 두고 터어키어로 더빙 중인 TV 영화를 보며 우리가 바로 세계사의 중심 무대였던 에게 해변의 한 도시에서 잠을 청하고 있음을 흥분 속에 되새겨 본 밤이기도 했지요.

다음 날 우리는 에베소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히에라폴리스로 이동했습니다. 히에라폴리스는 성경에도 나오는 소아시아 지방의 지명입니다. 사실 소아시아 7대 교회에는 포함되지 않는 곳이지만 이곳에도 고대 도시의 유적지가 남아 있고 사도 빌립이 순교한 장소이며 사도 빌립 기념 교회의 자취가 남아 있어 기독교인으로서 한 번 가 볼 만한 곳이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터어키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히에라폴리스를 놓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파묵칼레 라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파묵칼레 라는 말은 '목화성' 이라는 뜻인데 산 위에서 수천년 동안 흘러 내린 칼슘 성분의 온천수의 화학 반응 때문에 주변 언덕이 마치 하얗게 핀 목화같은 언덕을 이루고 있기 떄문입니다.

파묵칼레로의 이동은 쉬웠습니다. 이스탄불의 여행사마다 에베소나 파묵칼레, 갑바도기아 지방으로의 투어나 교통편을 경쟁적으로 소개하고 있었고 우리 역시 이스탄불에서 에베소에서 파묵칼레로 이동하는 교통편을 미리 예약하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올라 타고 우리는 히에라폴리스로 이동했습니다. 승합차에는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도 함께 타고 있었는데 우리가 한국에 왔다고 하자 한국 월드컵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자기 딸이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하는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가는 길 내내 낯선 프랑스어를 싫증이 나도록 들을 수 있었죠.

중간에 딱 한 번 내려 싱싱한 오렌지를 즉석에서 갈아 주는 쥬스를 마신 것 외에는 계속 달렸던 것 같습니다. 데니즐리에서 17Km 정도 지나고 나니 저 멀리 하얀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지도는 아나톨리아 반도(현재의 터어키)의 에게 해변에 위치한 우리의 여행지들을 다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우리는 1박 2일의 일정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어린 형민이를 데리고 강행군을 하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기에 파묵칼레 아랫쪽의 자그마한 펜션 한 칸을 빌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의 놀라운 유적들을 여유있고 차분하게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히에라폴리스의 내력과 유적지들은 다음 편에서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목화성, 파묵칼레의 모습을 소개할까 합니다.  

왼쪽 사진은 파묵칼레를 처음 찾아 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이 보이시죠? 그 주변으로 마치 눈처럼 흰 언덕들과  찰랑거리는 온천수가 보입니다.

수천년간 흘러 내려 온 온천수에 포함된 칼슘들은 온천수가 지표에 노출되는 순간 산화 반응으로 일으키면서 바위에 침착하게 되었고(석회 성분) 그 결과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온천수가 지나가는 곳은 하얀 언덕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곳의 온천물은 섭씨 35-50도의 탄산수로서 특히 심장병, 소화기 장애,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로마의 황제들도 이곳을 찾아 왔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는 탄산수 온천 외에도 유황 온천이 있습니다.

최근 터어키 관광국에서는 이 온천수가 줄어 드는 것을 의식해서 온천수를 차단하고 일정 시간이 되면 정해진 방향으로 온천수를 흘려 보낸다고 하는데 한 방향으로만 흘려 보내는 게 아니라 부채꼴 모양의 여러 방향으로 온천수가 흘러 나가도록 해서 주변 일대가 계속 하얀 언덕으로 유지되도록 조절하고 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파묵칼레를 만들어 낸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은 수천년 동안 지금의 바로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왼쪽 사진은 파묵칼레에 조성된 히에라폴리스의 온천욕장인데 작은 호수처럼 둥그렇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온천욕장 주변에는 휴식 시설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다리도 온천수 위로 연결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니며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선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방문자들에게 수영복을 대여해 주고 있었고 모두들 커다란 온천 호수를 돌면서 온천을 즐기고 있었지요. 깊은 곳은 수심이 5미터나 되는 큰 온천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살 반 된 형민이가 아직 한 번도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지라 온천욕장 주변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는데 사진 속의 온천욕장을 자세히 보시면 2천 여년 전부터 조성되어 있던 옛날의 흔적(돌기둥, 장식)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터어키 관광국은 수천년 전부터 온천욕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지금도 여전히 물을 받아 온천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파묵칼레에서 발원하는 온천수들은 관광지에 조성해 놓은 온천욕장을 지난 뒤 언덕 아래 마을로 흘러 내려 오는데...덕분에 마을 길을 따라 흐르는 도랑 바닥도 마치 하얀 페인트 칠을 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왼쪽 사진은 파묵칼레 아래에 조성된 숙박시설과 식당들입니다. 온천이다 보니 많은 편의 시설이 있었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했습니다.(이곳의 하루 숙박료는 15불이면 충분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파묵칼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한 때는 그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 아침이였습니다. 파묵칼레의 하얀 언덕을 아래에서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고 운동화를 손에 들고 온천수를 맨발로 밟고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독특한 산행이었죠. (이곳에선 신발을 신고 걷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도 온천욕을 즐겼다는 파묵칼레...이 온천수는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어 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산비탈을 타고 내려 오는 온천수는 테라스 모양의 천연 욕조를 만드는 대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 날 아침, 난생 처음으로 달팽이를 목격하기도 했던 형민이는 백색의 세상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선화 뒤쪽으로 만년설에 덮인 산봉우리도 눈에 들어 오지요?

이렇게 유명한 온천수가 나오다 보니 파묵칼레 일대는 고대와 중세에 걸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최초로 이곳에 도시를 건설한 버가모 왕국의 유메네스 2세 이후 비잔틴 제국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도시 문화를 꽃피웠고 기독교의 대교구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파묵칼레의 온천물은 이곳에서 6.5Km 떨어진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갔는데 라오디게아로 들어갈 때 쯤이면 온천물은 식어 버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계 3:15-16에 나오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믿음'으로 대표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을 상기해 본다면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아시아 7개 교회를 찾아 나선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보다는 현장 속에서 성경과 역사를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히에라폴리스에서 만난 파묵칼레의 모습은 몇 년 간의 외국 생활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아름답고 특별한 풍경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에라폴리스에 와서 파묵칼레만 본 뒤 감탄사를 발휘하고는 곧바로 관광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반해 우린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히에라폴리스의 참 모습을 비교적 상세하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 게 된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과 무덤들, 도미티안의 문과 아고라 터, 사도빌립 기념 교회의 모습은 다음 편에 소개하겠습니다.

온천이라면 한국의 온천도 유명한데...터어키의 칼슘 온천이 빚어내는 석회로 이루어진 목화성의 모습은 과히 압권이었습니다.   2003.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