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4: 에베소에서 만난 선교사  6 일째: 고대 도시 에베소에서 (4월 9일)

에베소에서의 둘쨋 날...아침 일찍 시작된 도시 투어는 에베소 고대 유적지, 아르테미스 신전, 마리아의 집을 둘러 본 뒤 산 기슭을 내려와 종려 나무가 우거진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봐도 장난기 넘치는 가이드 아저씨는 지금부터는 창 밖에 이어지는 풍경을 자세히 보라고 얘기하면서 작은 산들로 이어진 들판과 작은 키에 촘촘하게 심겨진 각종 나무들을 가리키며 지중해성 농업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초록 세상은 한국과도 별 다를 것 없는 자그마한 구릉지들의 연속이지만 그 곳에 조성된 것은 벼가 촘촘히 심겨 있는 논이나 밭 고랑이 아니라 각종 나무들로 채워진, 전체가 하나의 과수원이었습니다. 하계 고온 건조 기후라고 설명할 수 있는 지중해성 기후에는 건조한 기후에 강한 수목 농업이 활발할 수밖에 없고 오렌지 나무나 올리브 나무들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끝없는 초원의 나라...까작스딴에서 1년간 살다가 온 탓에 산을 보는 것 자체가 우리들에겐 큰 감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는 산 기슭을 따라 난 도로를 따라 다시 꼬불꼬불 올라가기 시작했고 가이드 아저씨는 과일주를 만들어 파는 산골 마을로 우리를 데려다 주겠다며 산 봉우리들이 보이는 높은 지대로 안내했습니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집들이 오목조목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 왔는데... 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아 살아가는 마을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들어오는 도로 입구에서부터 각종 기념품과 특산물, 공예품들이 널려 있었고 과일주 처럼 보이는 병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1시간의 자유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두들 호기심에 끌리는 대로 마을 여기 저기로 흩어졌는데 형민이와 우린 전시된 물건들을 잠시 살펴본 뒤 과일주를 판다는 조그마한 야외 까페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뭘 마셔볼까?"

호기심 많은 선화는 메뉴판을 이리 저리 보더니 "딸기"로 된 과일주를 맛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과일주라고 하더라도 알콜 도수가 높으면 맛이 없을텐데...' 어떤 맛이 될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한 잔만 시켜 놓고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 물을 한 모금 삼켰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쥬스처럼 달콤하고 시원하고...너무 맛있었습니다. 알콜 도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태껏 한 번씩 맛 봤던 포도주와는 달리 산 속 맑은 공기와 어우러진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의 맛 그대로였습니다. 이렇게만 계속 만들어 낸다면 전 세계 과일주 시장은 분명 석권할 거라며 모두가 호들갑을 떨었지요.

엄마가 딸기주에 홀딱 빠져 있을 때 형민이는 아빠 손을 끌고 까페 뒤 쪽으로 난 길로 걸어 갔습니다. 새로운 곳에 오면 여기 저길 탐색하길 좋아하던 형민이....벌써 사진 속의 모습이 가물가물해 지려고 하네요.

포도주를 만드는 산골 마을에서 형민이가 찾아낸 건 바로 '닭' 이었습니다.

어디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흰 닭, 누른 닭, 병아리들이 한가로이 모여 있는 허름한 농가로 찾아 들어간 형민이는 닭의 절도 있는(?) 움직임이 재미있었던지 좀처럼 돌아 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빡빡한 스케줄에 이런 여유를 가진 것도 큰 휴식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린 한 동안 산골 마을에서의 여유를 즐긴 뒤 다시 투어 길에 올라습니다.

아직도 이 마을 이름이나 그 밖의 정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에베소에 가시게 되면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과실주를 만드는 산골 마을로 가 보자고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산골 마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일행은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이사베이 모스크'로 향했습니다. 사실 에베소에 있는 그 유명한 사도 요한의 무덤과 기념 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당연히 투어 일정에 들어 가야 하겠지만 투어를 진행하는 가이드의 생각으로는 기독교 유적지의 사도 요한 기념 교회 보다는 1375년 셀주크 터어키의 술탄 '이사 베이'에 의해 세워진 이사베이 모스크를 방문하는 것이 훨씬 더 자국 문화 홍보에 유리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또 터어키 인구의 98.2 %가 이슬람 교도들인지라 당연히 교회보다는 모스크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러나..이사베이 모스크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가 보고 싶었던 사도 요한 기념 교회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 교회의 서쪽에 모스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린 서로 "이 투어가 끝나면 우리 끼리 저 교회로 가 보자" 고 약속했습니다.

이사베이 모스크는 셀주크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하는데 왼쪽 사진처럼 웅장한 모스크였습니다. 터어키의 모스크는 까작스딴에서 볼 수 있는 모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웅장하고 큰 모스크를 보면서 아나톨리아 반도를 몇 백년간 휩쓸었던 터어키인들의 시대를 가름해 볼 수 있었습니다.

모스크의 경내를 둘러본 뒤...투어 일정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우리 가족만 따로 이사베이 모스크 앞에서 다른 일행들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사베이 모스크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올 때 봤던 사도 요한 교회의 안내판을 기억하면서 길을 따라 내려 갔습니다. 커다란 종려 나무가 길을 따라 심겨져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지중해의 한 낮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형민이에게 물도 먹이고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고 쉬엄 쉬엄 한 참을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 가도 우리가 봤던 그 안내판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헤메고 있을 때 "어! 여기 교회가 있네..." 우리가 우연히 발견한 간판은 이슬람의 나라인 터어키에 세워진 개신 교회의 간판이었습니다.

잔해만 남아 있을 로마 시대에 세워진 사도 요한 기념 교회를 찾아 가다 우연히 보게 된 건...현재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왼쪽 사진에 "EPHESUS PROTESTANT CHURCH"(에베소 개신교회)가 선명하게 보이시죠?

'아!... 이 교회 신자들은 성경 속에서 에베소서를 읽을 때마다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젠 이슬람 세계로 변해 버린 에베소의 한 거리에서 만난 작은 교회당 건물 앞에서 우린 밀려 오는 감격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건물 입구의 초인종을 무작정 눌렀지요.

'누가 있는지 알아나 봐야지....'

잠시 후 터어키 현지인 한 사람이 나왔는데 우리가 영어로 "우리는 한국에서 온 개신교인들인데 이 교회당 건물을 보고 반가워서 초인종을 눌렀다" 고 말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다시 들어가 이 곳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사실 터어키는 1924년에 제정한 최초의 공화국 헌법에서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하였으나 1928년에 삽입된 헌법 수정안을 통해 이를 폐지했고 현재의 헌법(1961년 제정) 제 19조에는 "모든 개인은 양심과 종교적 신앙과 의견의 자유를 가지며 모든 종류의 예배나 종교 행사 및 의식은 도덕 및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자유이다" 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터어키는 국민의 98.2%가 무슬림(이슬람 신자)이기 때문에 이슬람의 전통과 관행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으며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종교적 율례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결국 이슬람 국가인 셈이죠.

국민의 50% 남짓이 이슬람인 까작스딴에서도 외국계 선교사들이 말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98%가 이슬람인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는 이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게다가 교회 간판까지 버젓하게 내 걸고....

잠시 후 인상 좋은 아저씨 한 사람이 밝은 미소로 우리에게 악수를 청해 왔는데 그가 바로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였습니다.

일전에 얘기 드렸듯이 캐나다는 교회 출석하는 교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밖에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예상 외로 적은 숫자지요? 한국은 25% 나 되는데 말이죠...대부분의 캐나다 인들에게는 신앙은 이미 낧아 버린 전통으로 남아 있을 뿐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은 이처럼 적은 수라고 합니다.(까작스딴에 와 있는 캐나다인 선교사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그의 말로는 캐나다야 말로 선교 대상국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선교지에 나와 보면 영어권 선교사들 중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입니다. 여기 까작스딴 '아스타나'도 마찬가지구요. 전 이 사실을 보면서 비록 수는 적을 지 모르지만 캐나다의 신자들의 저력이 얼마나 큰지 놀라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마리아의 집에서 만난 수녀가 알려 준 에베소에서 사역한다는 선교사도 바로 이 분이었습니다. 사도 요한 교회를 찾다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우리 부부는 이제는 남의 땅이 되 버린 이곳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까작스딴의 선교 현황을 소개하기도 했고 우리 가족이 터어키까지 오게 된 사연도 얘기했습니다. 국적과 언어는 다르지만 이슬람 땅에서 만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도 생각 못했던 만남이었지만 하나님 안에 한 형제라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기쁘고 반가울 수 있다니....내심 스스로 놀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성경의 내용을 이곳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성경 학교 사역을 주된 일로 삼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곳으로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린 짧은 시간이지만 그 곳에서 교회의 설립 배경에 대해 선교사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고 우리가 곧 가게 될 '사도 요한 기념 교회'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예비된 만남이었지요.

이사베이 모스크에서 사도 요한 교회로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온 탓에 에베소 개신 교회를 만나게 된 것은 우리의 실수를 통해 더 좋은 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복음 전파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민주 헌법상 개인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터어키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 단체에서 사역하고 있고 사역자의 수는 약 6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중 한국인 사역자도 약 12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회는 지하 교회가 지상 교회를 합해 약 16개가 있고 그리스도인은 터어키 전역에서 약 6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경은 다 번역이 되어 있으며 복음의 문은 조금씩 계속해서 열려 가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16개로 알려진 교회 중 하나인 에베소 개신 교회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극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선교사님과 인사를 나눈 우리 가족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가서 이사베이 모스크를 다시 지난 뒤 언덕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비탈길을 따라 '사도 요한 기념 교회'를 찾아갈 때의 모습입니다.

이 비탈길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렇게 찾아 헤메던 교회 건물을 볼 수 있었지요.

에베소 방문을 통틀어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소였던 사도 요한 기념 교회 얘기는 다음 번 얘기에 계속됩니다.

불과 1600년 전 만 하더라도 유명한 종교 회의가 잇달아 열리기도 했던 기독교 도시 '에베소'...요한 계시록에 나타나신 일곱 별을 갖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던 주님께서도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의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고 말씀하셨던 곳이었습니다.

역사는 흘러...이제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모스크만 가득 들어 찬 이교도의 나라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처음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 교회를 세우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영롱하게 빛나는 곳이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200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