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2: 우리가 본 에베소(Ephesus)   6 일째: 고대 도시 에베소에서 (4월 8일)

맑고 푸른 하늘에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이 푸른 향내를 날리며 불어 오던 아침...에베소 투어를 위해 우리 네 식구는 작은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에베소에 온 둘쨋 날...에베소의 유적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투어를 신청했고 셀주크의 조그만 관광 회사에서 시행하는 투어에 합류하게 되었는데...우리 외에도 몇 몇 커플이 타고 있는 즐거운 승합차였습니다.

우리의 투어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친근하고 귀여운(?) 얼굴에 또박 또박 영어를 잘 하시는 터어키인이었습니다. 가슴에는 공인 가이드 명찰을 달고 에베소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려는 듯 열심히 설명하시던 친절한 분이였지요.

막상 에베소의 고대 도시 유적지를 돌아 본 내용을 적으려 하니...그 내용이 방대해서 한 번 만에 다 적을 수 있을까 적잖게 염려도 되지만 몇 차례로 나누어 소개하게 되면 글이 길어 지고 질질 끌게 되어 터어키 여행기의 재미가 반감이 되겠다 싶어 많은 사진이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번 한 번에 도시 유적을 모두 소개할까 합니다. 도시 유적지를 본 뒤에는 아데미 사원과 마리아의 집, 세례 요한 기념 교회를 방문했었는데...이 부분은 다음 번 얘기에서 이어지게 됩니다.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숲 사이로 달리는 이 작은 승합차 안에는 우리 외에도 벨기에와 독일에서 온 남녀 커플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까지 모두 7명이 이 날 한 팀이 되어 움직였습니다. 모두들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곳을 찾아 간다는 기대감으로 잔뜩 들떠 있던 아침...승합차 안에서부터 에베소에 대한 가이드 아저씨의 유창한 설명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측 화면에 보이는 분이 가이드 아저씨입니다.

에베소의 도시 유적으로 가는 길에서 멀리 산 허리에 남아 있는 성벽의 잔재들과 에베소의 체육관이었다는 유적을 볼 수 있었는데 한 20여 분을 달리니 그 유명한 에베소 유적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수 많은 관광객의 인파였습니다. 어제 소도시 셀주크의 시장 등을 돌아 다닐 때만 해도 관광객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어디서 다들 왔는지...수 많은 관광버스와 관광 인파가 매표소와 출입구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위 화면들이 바로 그 모습인데요...언뜻 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 입구에 모여 있음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빨간 터어키 국기가 보이는 매표소에서 1인당 백 5십만 리라(1만 5천원 정도)의 입장권을 팔고 있었는데...사람들이 너무 밀려 드는 바람에 형민이를 놓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습니다. 간간히 젊은이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우리 처럼 두 살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장권을 내고 에베소 유적지로 들어서자 말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바로 아래 화면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언덕이 솟아 있고 그 사이의 반듯한 평원 지대에 옛 도시의 유적이 남아 있더군요.

이미 수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와 있었고 우리 팀도 가이드 아저씨를 중심으로 모여 에베소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야 겠지요?

에베소는 기원 전 1천년 경 그리이스에서 이주해 온 이오니아 인(그리이스 인)들이 토착민을 추방시키고 이곳에 세운 도시에서 출발합니다.  그 후 에베소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리디아 왕국, 페르시아, 그리이스의 지배 하에 들어 갔다가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부하 리시마쿠스의 지배를 거쳐 페르가뭄(성경의 버가모)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요. 그러다 BC 133년에 페르가뭄의 마지막 왕인 앗탈로스 3세가 로마 제국에 자신의 왕국을 헌납함으로써 로마 제국에 포함되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로마 제국의 속주 중 하나인 아시아 주의 수도를 페르가뭄에서 이 에베소로 옮긴 뒤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 나갔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는 로마의 5대 도시 중 하나가 되기도 했지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에베소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AD 50-54년에 사도 바울이 2차,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해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AD 50년 경 바울은 고린도에서 만난 천막 동업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상업이 활발한 에베소로 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울과 에베소의 첫 만남입니다. 이 당시 바울은 3개월 간 에베소에 머물다 떠납니다.

이 후...AD 53년 경...바울은 무려 3년간 에베소에 머물면서(3차 전도 여행 중에) 교회를 굳건히 성숙, 확장시켜 나갑니다. 에베소에 있는 기간 동안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복잡한 문제를 다룬 고린도 전서와 후서를 써 보냈고 바울의 사도권과 율법의 문제로 교회 내 분열이 있는 갈라디아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냅니다.

이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되는데 이 때가 바로 로마에서 발생한 화재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로마의 6대 황제 네로는 자신이 방화를 해 놓고도 이 누명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제국 전체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도록 하는데 박해는 에베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70명이 순교를 당하고 일부 교회는 배교를 하고 맙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가 배교를 했다는 말을 들은 것은 로마의 차가운 감옥 안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정성들여 목양했던 에베소 교회의 배교 소식을 들은 바울은 교회가 파괴된 에베소에 디모데를 보냅니다. 디모데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오기 전까지 에베소 교회 감독직을 맡아 충성했고, AD 80 년 경... 에베소에서 함께 동역할 것을 부탁받은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오게 됩니다.

그 후 디모데는 아데미 여신의 축제 날 우상 숭배하는 군중들을 비난하다 그들로부터 매를 맞고 순교하게 되고(에베소에는 디모데의 순교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붙잡혀 로마로 갔호송되어 독약과 뜨거운 기름 통 속에서도 살아난 뒤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 후...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제자, 요한은 밧모섬에서 다시 에베소로 돌아 와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제자들을 양육한 뒤 주님 품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에베소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역사적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전...소아시아 7대 교회 순례를 마음 먹고 에베소 교회의 역사를 공부한 뒤로 에베소에 대해 남다른 안타까움과 뜨거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유적지를 눈으로 직접 보았던 그 날도...에베소에 대한 이런 특별한 마음이 내 속에 있었기에 에베소와의 만남은 오랫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는 듯한 마음이었지요.

사진은 에베소의 아고라 스테이트(시장터)를 둘러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160 미터 * 56 미터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은 모든 의미에서 도시의 중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판매대만 놓으면 시장이 되지만 그 뿐 아니라 시민들이 문제가 있을 때 총독에게 호소하는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인 문화 행사에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열심히 시장(아고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의 모습이 보이지요? 형민이는 옆에서 흙장난에 열을 올리고 있고.....우리는 가이드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아래를 보세요.

아래 왼쪽이 시장 바닥에 묻혀 있는 상수도 관입니다. 이 관을 통해 이 넓은 도시에 물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는 시장 여기 저기에 놓여 있는 대리석 한 곳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입니다. 이것은 돈을 계산하기 위한 숫자라고 합니다.

이 시장은 시리아, 인도, 아라비아, 이집트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상인들의 의해 식료품, 향품, 고급 옷감, 금은 보석, 도자기, 노예 판매 등 온갖 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양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시장이 형성되면 그에 따른 사람들의 이동도 많은 법...풍부한 물자 뿐 아니라 각처에서 몰려온 상인들, 은행업자, 창고업자, 운수업자들은 물론 그들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률가, 대서업자, 예술가, 철학가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로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넓은 시장 터에는 많은 돌기둥들과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 있었는데...시장 한 가운데에는 신전도 서 있었다고 합니다. 우뚝 솟아 오른 기둥들을 보면서 가이드는 이오니아 양식이라고 연신 얘기했지만...사실 이오니아 식과 고린도 식의 차이는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저...수 많은 대리석과 건축물의 잔해를 바라 보며 그 옛날 찬란했던 에베소 도시를 떠 올려 볼 뿐이었죠.

시장에서 조금 더 가니....의회가 나왔습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했다고 하는데...지금은 지붕이 없지만 예전에는 지붕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의회 건물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깎아 지를 듯 올라가며 배열된 반원형의 좌석들을 바라 보며 2천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윗 쪽 좌석에 앉아 있는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누구나 이 돌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돌계단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 일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눈 앞에는 푸른 기운이 넘치는 언덕 아래 들판이 탁 트여 있었습니다. 이 옛 도시는 피온 산과 그 맞은 편 언덕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바다까지 끼고 있어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지요.

의회 돌기둥과 돌 좌석 사이 사이에서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자주 눈에 띄였습니다. 이곳에 사는 녀석들인것 같던데...에베소 의회의 진짜 주인이라고 해야겠지요.

가이드 아저씨는 돌기둥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기둥에는 다 사연이 있고 이름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신전이 있었던 곳의 기둥, 옛날 어느 황제의 조각이 있던 곳의 받침대....

벨기에 아가씨와 선화는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지만...형민이는 이 유적지 주변을 기웃거리는 고양이와 강아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씩 일행에서 떨어져 고양이를 쫓아 가는 형민이를 잡아 오느라 가이드 아저씨의 설명을 들을 수 없었지만 에베소라는 도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붐비던 상업 도시였는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관광객의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은 그리이스와 로마 문화가 녹아 있는 에게해 연안의 에베소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참을 걸어 가니...좌우로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반듯한 도로가 나왔습니다.(왼쪽 사진) 이 도로를 크레테스 도로 라고 부르더군요.

그 옛날...이 도로의 양편은 기둥으로 이어진 회랑이 있었고 이 회랑 뒤로 가게 와 개인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합니다. 에베소 도시를 빛낸 사람들의 동상도 이 도로에 세워졌었다고 합니다.

에베소는 로마 당시 세계적 무역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요로왔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위락 시설로 2만 5천 명이 수용되는 대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음악당, 거대한 목욕탕이 있었고 지식인들을 위한 도서관과 학교, 여행자들을 위한 여관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형민이 뒤로 보이는 도로가 '크레테스 도로'입니다. 크레테스라는 말은 원래 그리이스 신화에서 반신반인의 인물이었으나 에베소에서 크레테스 하면 아르테미스 신전 업무에 종사하는 승려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에베소의 사람들은 여신 아르테미스(성경의 아데미 여신)를 섬기고 있었는데 매년 5월마다 아데미 여신을 위한 축제를 열고 여신을 즐겁게 한다는 목적으로 올림픽까지 개최하여 시장은 말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세계의 여성들이 에베소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고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후 수시로 에베소에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크레테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눈에 띄는 기둥들이 있는데 바로 '헤라크레스의 문'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오전의 역광 때문에 어두운 사진을 처리하는라 화질이 좀 떨어지는데 양쪽의 기둥에 조각된 부조가 모두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라고 하네요..

왼쪽 기둥에 새겨진 신만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바로 승리의 신 "니케" 라고 합니다.

에베소 유적지를 돌아 보던 날은 지중해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 쬐던 날이었습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음산한 이스탄불 날씨의 잠바를 끼어 입고 오들오들 떨어야 했었는데...역시 남쪽 에게해 연안의 기후는 말 그대로 고온 건조였습니다.  5월 초인데도...

크레테스 도로 양쪽으로 의미있는 유적 들이 계속 보였었는데...아래 왼쪽 화면이 "트라얀 우물" 을 잡고 있는 순간입니다. 102-114년에 트라얀 황제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하는데 황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황제 숭배가 유행했음을 알고 계시죠?  아래 오른쪽 화면은 "하드리안 신전" 이라고 불리웁니다. 138년 경 하드리안 황제에게 바쳐진 건물인데...벽과 기둥에 많은 그림들이 부조되어 있지요.

 에베소의 인도(사람 다니는 길)는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습니다. 길 양편에 화려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그 상점들 위로는 3,4층의 건물들이 연립주택처럼 숲을 이루고 있었지요. 아래 왼쪽이 바로 에베소의 인도의 모자이크 이고 오른쪽은 상류층들이 살았던 호화주택(?) 잔해입니다.

목욕탕의 폐허도 3층으로 된 큰 건축물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 체육관과 목욕탕을 열심히 세웠는데 에베소의 경우에도 여러 개의 대형 체육관과 목욕탕이 있었고 시설도 초호화판이었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육체 노동은 노예들에게 맡긴 지배층들은 주로 무역, 유통, 금융 등과 같은 사무직에 종사하는데다 육식을 중심으로 하는 식생활 습관 때문에 비만해지는 경향이 짙었기에 운동 시설과 목욕탕은 필수 였지요.

이렇게 크레테스 도로 주변에는 많은 볼 것들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제 눈을 끄는 것은 조그마한 돌기둥에 새겨진 무늬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의사인 제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레테스 도로 가에 세워진 이 비석은 이정표로 사용되던 돌인데 눈에 익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혹시...병원이나 의사를 상징하는 기호를 자세히 보신 적이 있으세요? 무슨 지팡이 같은 것에 뱀이 말려 올라가는 듯한 모습인데....왜 의료의 상징으로 뱀을 사용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그 이유는 바로....그리이스 신화에서 건강의 신으로 나오는 "아스클레피우스"가 뱀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이스-로마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서양 문화는 의료를 나타내는 기호로 그리이스 시절부터 사용되던 아스클레피우스의 문양을 사용했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2천년 아니....그 이전부터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던 에베소 폐허지의 돌기둥에서 지금 시대에도 통용되는 기호를 발견하고 나니...웬지 에베소의 폐허가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오늘이 존재하고 있음을 수 없이 많이 들어 왔지만....에베소 유적지에서 발견한 이 문양만큼 역사의 연속성을 내게 가르쳐 준 사건은 일찌기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크레테스 도로가 끝 부분에서 우리는 에베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라는 '셀수스 도서관'을 만나게 됩니다.

135년에 로마의 아시아 주 총독으로 부임한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는 이 건물은 원형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보존 상태가 좋았습니다.

11미터 * 18미터 면적의 크지 않은 이 도서관 내부에는 1만 2천 권의 양피지나 파피루스로 된 책이 있었고 습기나 벌레의 피해를 막기 위해 환풍이 잘 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의 우측으로 약간 보이는 또 다른 건물은 마치 로마의 개선문처럼 3개의 통로로 되어 있는데 황제를 기리는 기념문이라고 합니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데 지혜, 행운, 지식, 선행을 상징하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에베소의 도서관을 바라 보며 가이드 아저씨로부터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민이 보이시는가요? 동양에서 온 조그만 아이 형민이의 출현은 에베소의 도서관 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손을 잡으려거나 사진을 찍으려 했고 이름을 물어 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터어키 사람들은 동양인 가족인 우리를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접경에 살면서도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을 대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지...길을 가다가 우리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항상 다양한 언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가끔 한국어....)로 말을 걸며 친근감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런 친절은 여행 내내 낯선 곳을 찾아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지요.

아래 화면은 셀수스 도서관의 일부를 확대해서 바라본 것입니다. 왼쪽은 도서관 지붕 맨 위에 새겨져 있는 이상한 문양(해바라기? 햇님? 여신?) 을 보여주고 있고 오른쪽은 도서관의 입구에 장식되어 있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 중 하나입니다.

에베소의 도시 유적지를 돌아 다니며  보게 된 수 많은 문자들도 가슴 깊게 와 닿았습니다. 그리이스 문자(헬라어)로 쓰여진 많은 글들은 현대에도 해독되는 것들이고... 그러다 보니 이 유적지에 대한 많은 사연들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게 된 것이죠. 사람은 죽고 건물은 쓰러지지만 문자는 긴 세월동안 남아 그 옛날 찬란했던 이곳 역사를 쓸쓸하게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도서관 앞에서 찍은 아래 사진은 아직까지도 우리 집 거실 한 쪽에 놓여 있습니다. 여행 6일째...이제 지칠 때도 되었지만 역사를 여행하는 우리의 얼굴은 밝기만 합니다. 아마 벨기에 친구가 찍어 준 사진인 것 같은데...사진 속의 아이는 이제 엄청 자라 버렸지요.

도서관 유적을 구경했을 때는 에베소 도시 유적지의 2/3을 관광했을 무렵이었습니다. 특별하게 가지고 나온 음료수도 없고...갈증도 심해졌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조금씩 배도 고파졌지만....유적지 한 쪽에서 팔고 있는 음료수 캔을 하나 사서 나눠 먹었습니다. 아주 비싸게 받고 팔고 있던데....]

도서관을 지나....그 유명한 대원형 극장까지 가는 길을 '대리석 도로' 라고 따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크고 고른 대리석이 깔려 있었는데 이 도로변 바닥 한 곳에서 발 모양과 하트 모양의 기호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게 뭐지?.... "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서 있는 것으로 봐선 이것도 뭔가 의미가 있는 표지임에 분명했습니다.

이 때...가이드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모아 놓고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 앞에는 '창녀의 집' 이 하나 있었는데 이것을 가리켜 '사랑의 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대리석 도로 바닥에서 발견한 이 기호는 바로 그 곳으로 안내하는 안내판이라고 하더군요.

이 안내판에는 발 모양과 하트, 그리고 조그마한 동그라미와 머리 모양을 아름답게 장식한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로마 여인들에게는 발 모양은 하나의 상징이었는데 그 시대에는 발이 예뻐야 몸매와 성품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답니다.

하트는 마음과 사랑을 뜻하는 것이고 동그라미는 돈을 나타내는 것.....여인의 가슴에는 이제는 지워져서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없지만 이런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은 발자국이 표시하는 방향으로 오세요. 이곳에 올 때는 약간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들의 사랑과 마음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 발자국 보다 작은 미성년자는 오지 마세요."

재미있지요? 2천년 전 에베소 도시에서도 오늘날과 별 다를 것 없는 사회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가이드 아저씨 말로는 셀수스 도서관 지하와 창녀의 집 사이에 비밀 통로가 발견되었다고 하던데....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것 역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엿보게 하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에베소의 유적지에서 우리의 시선을 끈 또 하나의 건물은 바로 사진 속의 건물이었습니다.

선화와 형민이 뒤로 구멍이 빠끔 빠끔 뚫려 있는 대리석들이 보이시죠?

이게 바로 에베소 고대 도시의 공중 화장실입니다. 도시는 다 무너졌지만 화장실의 모습은 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게 재미있습니다. 변기 주변에는 작은 수로가 있었는데 항상 깨끗한 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선화 뒤로 보이는 뚱뚱한 아저씨 보이시죠? 이 분은 다른 팀의 가이드 인데...그 팀은 바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 이루어진 관광객들이었는데...이 화장실에서 우리와 맞닥드렸죠...화장실이라는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이는 가이드 아저씨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던 일본 관광객들의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이제 마지막 볼 거리만 남은 것 같습니다. 에베소의 대극장만 남았으니까요...우리는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를 동원해 에베소의 모습을 남기는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는 건 사진 뿐이잖아요....

캠코더를 들고 있는 선화의 뒤로 보이는 곳이 바로 대극장으로 들어 가는 입구입니다.

에베소의 대극장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의 장소이기도 한데...사도행전 19장 33절부터 41절까지를 읽어 보면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3년간이나 머물며 활동했던 바울의 복음 전파에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많은 이적이 따라 다녔고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방 신을 버리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인의 수가 에베소에서 늘어나게 되자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신상을 사 가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 들어 아데미 신상에 은을 입히는 일을 하던 은세공업자들은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데메드리오 라는 은세공업자가 동업자들을 부추겨 바울 사도를 대항해 큰 소동을 일으킵니다. 데메드리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여러분도 알듯이 우리는 이 직업을 통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바울이란 자가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체를 다니며 많은 사람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도 이미 보고 들어 아시는 일일 겁니다. 이러다간 우리의 직업도 천해지고 큰 여신 아데미(아르테미스)의 전각 뿐 아니라 온 아시아와 천하가 받드는 아데미의 위엄이 땅에 떨어질까 두렵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데메드리오의 말을 듣고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면서 온 성을 요란케 했습니다. 그리고...바울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잡아 바로 이 대극장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바울은 대극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제자들은 말렸지요.

이렇게 성난 폭도들과 맞닥뜨린 바울은 위험에 직면하게 되지만 결국 에베소 서기장의 중재로 간신히 위기에서 모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에베소에서 바울이 겪었던 위험은 아주 심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그가 당했던 어려움들을 다른 서신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고전 15:32, 새번역)

왼쪽 사진이 2천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며 에베소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해 주는 곳...바로 대극장입니다.

원래 이 극장은 리스마쿠스(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시대에 지어졌는데 지금의 모습은 트라얀 황제 시대에 지어진 것입니다.

장엄한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들로 장식된 이 원형 극장은 66층의 계단식 좌석에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앞 무대 쪽은 3층으로 되어 있어 배우들의 분장실 또는 소도구실로도 이용되었다고 하네요...약 40미터 지름의 중앙 무대는 정교한 음향적 구조로 되어 있어 지금도 한 번씩 특별한 콘서트가 열리곤 한다더군요.

대 원형 극장에 도착했을 때 우린 일단의 무리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입는 것으로 봐선 어떤 지역에서 연합체를 이루어 이곳으로 온 것 같아 보이던데...손에는 성경, 찬송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중 앞 쪽에는 성경을 굳게 잡은 여자 한 분이 청중을 향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장면은 촬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무대 앞 쪽에 배열된 촬영 장비들이 녹화하고 있는 이 장면은 아마도 에베소 대극장에서의 드려지는 예배 장면을 촬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온 예배팀인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사도 요한 기념 교회에서도 이 곳에서 본 예배 인도자들이 어떤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많은 기독교 단체들과 성지 순례팀이 에베소를 자주 방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를 비롯한 은세공업자들의 소동이 일어 났던 대극장에 앉아 그 날의 아우성을 들어 봅니다. 그 아우성 이후 수 많은 시간이 흘러 갔고 세대는 바뀌고 수 천년이 흘러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에베소는 지금 폐허가 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655-717년 사이에 아랍인들이 이곳을 침입해 지배했고 많은 사람들은 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12세기 셀주크 터어키인들이 에베소를 정복한 이래 터어키 인들의 손에 초대 교회의 전통을 가진 에베소는 이슬람 권으로 넘어가게 되지요. 이교도 터어키인들의 칼날과 말라리아, 지진으로 인해 이곳은 이제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폐허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붕괴는 외부 여건 보다는 내부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변절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모든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이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로마 박해 시대에 그들의 신앙을 저 버리기도 했었고 영지주의 사상의 교회 유입으로 인해 기본 신앙에 타격을 입고 계속되는 교리 싸움 속에서 성도 간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431년 경 에베소에서 열린 종교 회의에서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신앙을 낳게 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라는 알렉산드리아 주교 시릴의 주장을 받아 들이므로써 교회사에 큰 우를 범하게까지 됩니다. 마리아 숭배의 교리적 뒷받침을 초래한 것이죠.

 에베소 대극장을 뒤로 하고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뒤로 보이는 대극장을 다시 한 번 바라 보세요...얼마나 웅장합니까? 2천년 전의 문명이라고 해서 지금보다 못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문명이라 하더라도....하나님이 엎으시면 아무 것도 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는 신앙에서 떠나갈 때에는 가차없이 징계를 베푸신다는 것을 에베소 교회와 도시의 역사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국가마저 심판하신다는 것도.....구약 시대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리고 그들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 이집트, 바빌론,페르시아 가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이 공식은 오늘 날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그의 뜻 안에 있을 때에만 참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에베소 도시에서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대극장을 뒤로 한 채 바닷가로 향해 이어지는 항구 도로의 모습입니다. 길이 500미터, 폭 11미터의 이 도로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아르카디우스가 400년 경에 개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하네요...

사진의 형민이가 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이 동작은 형민이가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한 살 반 밖에 안 된 형민이지만 아빠, 엄마가 열심히 사진 찍는 것을 본 뒤로 이렇게 두 손을 눈에 가져 가면서 "하나, 둘, 셋, 찰칵" 하고 사진을 찍고 다닙니다.

여기까지 온 우리는 에베소 옛 도시 유적 답사를 끝내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인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곳에 뿌려진 믿음의 씨앗이 오늘 날 전세계에 퍼진 복음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로 우리의 섭섭함을 달래야 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는 성경 말씀이 딱 들어 맞는 소아시아...어느 지역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지금은 인구의 99%가 이슬람교 신자인 이교도의 땅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서 다시 한 번 초대 교회 시절의 불길 같은 복음 전파가 반복될 수는 없는지...에베소의 폐허를 바라 보며 또 다른 기도 제목을 품고 그 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20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