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 8. 룩소르 2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장례신전) (2013.4.3)

왕가의 계곡에서 시간을 보낸 뒤 차를 타고 찾아간 곳이 바로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입니다.

위치는 왕가의 계곡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가는 길에서 본 풍경이란 이런 것들 뿐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병풍모양의 석회암 절벽 아래 보이는 3단 건물이 바로 핫셉수트 장제전이지요. 이 지역을 아랍어로 '다이르알바리' 부르는데 고대 도시 테베의 북쪽 끝입니다. '북쪽 사원' 이란 뜻이라는데 때로는 이 지역을, 때로는 이 사원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된다 합니다.  

핫셉수트 장제전은 핫셉수트 (Hatshepsut 1504-1484 BC) 핫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3,500 여년이 지난 지금도 보존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고대 이집트 신 왕국 18 왕조의 3대 파라오 투트모세 1 세는 왕비(王妃)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고 핫셉수트 공주만을 두었는데 후궁(後宮)을 통해 왕자가 태어나자 핫셉수트 공주를 이복동생과 결혼을 시키고 죽었다고 합니다. 핫셉수트는 이복동생 투트모세 2 세와 결혼하였으나 투트모세 2 세가 후궁의 소생만을 남기고 병사하자 나이 어린 투트모세 3 세의 섭정을 하였으며 이후에 공동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를 20여 년간 통치하였다고 합니다.  이 장례신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입니다. 15-16세기에는 기독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에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지만 건물을 가까이에서 구경해야겠지요? 가 봅시다.

건물의 1층 벽면에는 아직도 채색이 남아 있는 벽화들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는데 우리 눈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층 벽화를 휙 둘러보고

2층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햇볕을 피해서....

핫셉수트 여왕은 남장을 하고 수염을 달고서 이집트를 지배했는데 여인은 파라오가 될 수 없다는 금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출애굽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니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잠깐 보면...... 핫셉수트 여왕이 통치하기 80년 전, 셈 종족이었던 힉소스 왕조는 신 왕국의 시조이자, 원주민 파라오인 아흐모세(Ahmoses) I세에게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함락당하고 팔레스타인의 샤루헨(Sharuhen)에서 완전히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여파로 그동안 힉소스 왕조의 호의 속에 번창하던 히브리 민족(셈 종족)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출 1:8)의 통치로 말미암아 자유를 빼앗기고 국고 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데 동원됩니다.(출 1:11).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역으로 고통당하던 때는 이집트 신 왕국 제 18 왕조 시기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간의 가장 극심한 충돌이 일어난 기간이었습니다.  핫셉수트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 이집트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지속되었다고 하며 그녀의 재위 기간 동안 수도 테베의 서안에는 가장 정교한 장제전이 건립되고 상업과 건축술이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CDN 크리츠천데일리뉴스)

그녀가 왕위에 있었던 기간 동안 투트모스3세는 항상 생명의 위협과 함께 왕위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삶을 살았고 후에 왕권을 되찾은 뒤 핫셉수트 여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그녀가 세운 장제전에서 핫셉수트라는 글자를 모두 지웠다고 합니다.

 

2층 기둥에 서 있는 파라오 석상의 모습에서 남장을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핫셉수트 여왕이 모세를 구한 이집트 공주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글입니다. 재미로 보세요.

모세가 탄생한 때(BC1526년)는 투트모스 1세가 애굽을 통치 할 때였다. 투트모스 1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바로 모세를 강에서 건진 핫셉수트 공주였다. 공주의 아버지인 투트모스 1세는 정실부인을 통해서 4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모두 죽고, 핫셉수트 공주만 살아남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왕실에 남은 유일한 법적인 상속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자였기 때문에 후처가 낳은 아들과 결혼하여 왕위를 잇게 되었다. 공주의 남편은 후에 투트모스 2세가 되었는데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모세의 나이는 12살~20살 정도였다. 그는 핫셉수트 밑에서 애굽의 모든 학문과 문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투트모스 2세 역시 핫셉수트를 통해 아들 없이 딸 하나만을 낳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의 딸 역시 후처가 낳은 다른 아들과 결혼하여 왕권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후에 핫셉수트의 딸과 결혼하여 왕이 된 사람은 투트모스 3세라고 불렀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겨우 10살도 안된 나이였다. 그러므로 당시의 모든 권력은 핫셉수트 여왕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2층 내부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습니다. 지금도 진행중인 조사, 탐사 작업도 볼 수 있었구요.

이쯤 되니 우리도 숨 막히는 고온과 뜨거운 햇살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은이는 다리에 뭐가 물렸나 봅니다.

안되겠다... 다시 내려가자^^  후퇴....

1층으로 내려왔지만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장제전 우측을 보러 갑니다. 야속한 엄마....

이곳에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네요.

핫셉수트 여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인근 국가들과 통상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직접 향로를 생산해서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들과 통상하는 장면이 벽화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한가지 얘기를 덧붙이면 공동 파라오 핫셉수트 여왕이 죽고, 유일한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 3 세는 팔레스타인의 오론테스(Orontes) 강 상류에 위치한 케데쉬(Kedesh) 왕과 메깃도(Megiddo) 왕을 중심으로 하는 가나안 동맹군과 혈전을 벌였고 이것이 유명한 메깃도(Megiddo) 전투입니다.1480 BC.). 이것은 단순한 팔레스타인 토후들의 반란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미탄니 왕국과 힉소스 잔존 세력 그리고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동맹군과 이집트 군이 정면충돌한 고대의 세계 대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젠 아이들이 폭발 직전!!

장제전 앞에는 이렇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아주 비싸게 청량음료를 파는 가게가 있었지요. 이곳에서 열기를 조금 식히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것을 타고 매표소까지 내려 갑니다.

환타를 든 성은이가 아주 만족해 하네요.

다시 매표소 입구로 돌아왔습니다.

죽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 가이드가 우리를 이곳 암석으로 만든 기념품 가게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풍부하게 나는 암석으로 어떤 물건들을 만드는지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관광객에게 파는 비즈니스지요.

바로 이 돌을 가지고 별의별 걸 다 만든답니다.

이 항아리 안에 조명을 두면 은은한 불빛이 온 집안을 비추지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그 돌로 만든 피라밋 모형을 하나 사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 있지요.

오전 관광은 이것으로 종료하고 우리는 나일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식사하러 가는 길에 멤논의 거상을 잠깐 구경하고...

 

 

 

식사 뒤 오후 관광이 계속됩니다. 체력이 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