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 7. 룩소르 1 알왕의 계곡 (2013.4.2-3)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을 들른 그 날 저녁, 우리는 룩소르 행 침대열차를 타고 룩소르로 이동하게 됩니다. 중간에 침대열차 티켓을 분실한 바람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기차역에서 재발급 절차를 밟아 줘서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룩소르 행 기차를 타기 위해 카이로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세계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우리 부부도 그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플랫폼에 앉아 있었죠.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다섯 명이니까 두 객실을 예약했고 객실 사이는 이렇게 내부로 이동 가능합니다.

옆 방의 성은이가 보이네요. 마치 비행기처럼 기내식 서바스가 있습니다.

늘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지치기도 하겠지요. 모두들 흔들거리는 기차 품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도 대부분 침대 열차를 이용하기에 어색한 점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 밖이 밝아왔고 철로 옆으로 달리는 나일강이 보입니다.

아이들은 뭐하고 있을까.... 성은이는 벌써 깼고....

대추아자나무가 많고 사탕수수 밭도 보이는 것 같고.... 이집트는 농업국가입니다. 나일강이 있으니까...

룩소르가 가까워지자 우리도 내릴 준비를 합니다.

시은이가 위에서 잤네요^^

이집트의 강한 자외선을 이겨내려면 썬크림은 필수....

드디어 룩소르 에 도착했습니다.

룩소르는 이집트 고대 신왕국 시대의 수도인 테베입니다.

우리는 현지에서 알게된 룩소르의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우리 가족만을 위한 차량과  가이드를 예약했습니다. 기차역에서 만날 예정이었지요. 그러데 우리를 기다려야 할 가이드를 만나지 못해 당황해야 했고 스스로 택시를 잡아 타고 우리가 숙소로 예약했던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상황을 알아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한 승합차와 가이드가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어쨋든 당초 예약된 차량과 가이드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뒤 이날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나일강을 따라 농사가 한창입니다. 사탕수수를 수확해서 옮기는 모습도 보이구요.

룩소르 역에서 기차를 니려 나일강을 건너 룩소르 서쪽 지역에 위치한 왕가의 무덤(Valley of the Kings) 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룩소르 관광은 1일 여행입니다. 오늘 하루종일 룩소르 일대를 본 뒤 오늘 밤 침대열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로 돌아가는 일정이죠.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룩소르에 와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었죠.

몇 년전과 달리 최근 이집트의 정세 변화로 인해 관광객이 뚝 줄어들었습니다. 관광객 안전이 크게 문제가 되다보니 찾아오는 국제 관광객 수는 줄고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모두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고들 합니다.

이집트 관광업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보이고 우리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는 왕가의 계곡, 핫셉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 오후 일정은 룩소르 신전과 카르낙 신전입니다. 원래 이 일정은 이틀 일정인데 압축해서 빨리 돌아볼 에정입니다.

지금은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묘역을 조성한 시대는 이집트의 신왕국(New Kingdom) 시대입니다. 다시 파라오들은 중왕국(Middle Kingdom) 때까지 사용하던 피라밋 같이 눈에 띄기 쉬운 형식을 피하고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 틈이나 벼량에 그들의 묘를 만들어 도굴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당시로선 큰 변화였지만 먼 훗날 자신의 신체인 미라를 이용해서 다시 생전처럼 부활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이쯤 되면 이집트 역사 시대 구분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지요^^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니 관광버스가 도열한 주차장이 보입니다. 여기가 거긴가 봅니다.

지난 1997년 왕가의 계곡 검문소에서 이슬람원리주의 과격파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외국인 관광객 70여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 열차를 타고 왕가의 계곡으로 진입합니다.

여기까지만 카메라 사용이 가능하고 이후 왕가의 계곡으로 들어가면 카메라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현지법을 준수하는 맘으로 이후 촬영르 하지 않았지만 기억을 남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현지 이집트 관광청에서 발행한 자료들을 최대한 사용해서 묘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룩소르 역에 내려 나일강을 건너 왕가의 계곡이 있는 테베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위에 보여드린 연대표에서 이집트 신왕국 시대는 18,19,20 왕조에 해당함을 보여드렸습니다. 이 골짜기에는 이 시대의 왕들의 무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Kings' Vally 의 첫 자를 따서 KV 그리고 식별을 위한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각 무덤이 어느 왕의 것인지도 대략 알려져 있습니다. 도굴을 막기 위해 피라미드를 짓지 않고 골짜기에 공동묘역을 만든 만큼 도굴 방지를 위해 수직 갱도를 만들고 관을 숨기는 등 별의 별 방법을 다 썼지만 도굴꾼들의 신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도굴당하지 않은 묘는 투탄카멘 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각 무덤 내 벽화, 미라 등 유물은 대부분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건립연대는 BC 1519 - 1000 년이고 토트모세 1세에서 람세스 11세까지의 역대 파라오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을 발굴한 사람은 조반니 베르지오니, 에드워드 아일튼, 하워드 카터 등입니다. 물론 도굴꾼들이 먼저지만^^

엔하위키 미러에서 발췌한 내용을 좀 덧붙이면... 건설 시기는 앞서 말했다시피 대략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으로 500년간 이용되었습니다. 18 왕조의 제3대 파라오 투트모세 1세가 최초로 묻혔고 마지막으로 묻힌 파라오는 20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람세스 11세입니다. 다만 주인을 알 수 없는 KV39가 있어서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왕가의 계곡은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하는데 동쪽에 대부분의 무덤이 있고 서쪽의 무덤은 WV로 표기한다고 합니다. 파라오의 묘역이라고 하지만 왕비, 왕자, 공주를 비롯한 왕족들과 왕이 총애하던 신하들은 물론 심지어 왕들의 애완동물들도 묻혀 있다고 합니다.

도굴을 피하기 위해 만든 묘역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왕국 말기에는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는 바람에 무덤 노동자들에게 임금 체불이 일상화되었고 그동안의 후한 대우에 익숙해 있던 노동자들은 몰래 무덤 입구와 도굴로를 동시에 만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당연히 장례식이 끝나면 도굴로를 열어서 전부 털었겠지요. 이런 일은 파라오뿐만이 아니라 왕비, 왕족, 귀족, 평민들까지 가리지를 않았는데 귀족의 경우에도 장례식을 하는 동안에 몰래 침입해서 데드 마스크를 털어가는 사례가 있었고 람세스 3세의 왕비 이시스의 경우에는 무덤 노동자들이 몰래 뒤에 굴을 파고 털어버리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값비싼 부장품들이 시중에 공공연히 유통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집트 경제는 더욱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도굴을 피해 살아남은 무덤이 바로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드가 발견한 18왕조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입니다. 물론 완전히 도굴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무덤의 봉인을 보면 2번 정도 도굴당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교적 가볍고도 가치가 높은 귀금속류와 귀한 연고류 위주로 분실되었는데 이후 도굴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람세스 3세 (KV 11)의 무덤 내부 통로입니다.

왼쪽은 세토스 1세 (KV 17), 오른쪽은 람세스 1세 (KV 16)  무덤 내 벽화입니다.

투타카멘의 묘입니다. 관 내의 황금 마스크는 모조품입니다. 진품은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 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우리는 세 군데 묘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무덤 내로 들어가 다양한 벽화를 보며 놀라워 했지요. 정말 죽은 자들의 나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