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룬다이 가는 길

우리 가정이 이곳에 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 분 안에서 함께 자라가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맘에는 언제나 그 분이 보내 주시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마 28장에 나오는 대위임령에도 제자 삼으라는 문구가 나와 있지만, 사실 이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역시 그 분의 제자로 더 자라는 기쁨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9월 처음 알마티에 도착한 뒤 꽤 오랜 시간을 노동허가 관련 행정절차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의 있는 현지인 형제를 인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제가 알마티 동산병원에 오기 전부터 매주 1주일에 한 번씩 이곳 병원을 방문해서 직원들과 말씀을 나누는 젊은 현지인 사역자 '바실리'는 처음부터 눈에 확 들어온 현지인 형제였습니다.

언젠가 한 번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2012년 새해가 밝아왔고, 1월의 어느 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도록 이끄시는 그 분의 은혜 속에서 이 형제와 개인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부산' 이라는 이름의 고려인 식당이었습니다. 고려인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는 바실리는 어디가 좋겠느냐는 제 질문에 이 식당을 추천했답니다.

바실리는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 눈에도 단단한 체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는 그는 타쉬켄트에서 '학기도' 선수 생활을 하며 십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어둠과 방황 속에서 헤맸다고 합니다. 희망 없는 삶의 나락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교회 출석을 시작한 그는, 수 년 전 알마티로 건너와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신앙이 성장한 끝에 신학 교육까지 받고 말씀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많은 얘기를 다 나눌 순 없었지만 이후 우리는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흐른 2012년 봄, 바실리는 알마티의 한 교회에서 알게 된 '빅토리아' 라는 이름의 고려인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의 아내 '빅토리아(비까)'는 그가 알마티로 건너 와 교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 그를 가르쳤던 성경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이 뜻깊은 결혼식에 저도 참석했던 것은 물론입니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3년이 되었습니다.

2013년 1월에는 포항선린병원 전공의 선생님 내외가 우리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이 때가 좋은 기회다 싶어 우리 부부, 전공의 선생님 부부 그리고 바실리와 비까(빅또리아) 부부가 함께 모여 점심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부끼리 만났기에 좀 더 편안하고 다양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지요. 물론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전공의 선생님 부부였기에 의사 소통이 쉽지 않았을 법하지만 웬지... 모든 것이 부드럽고 쉽게 소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때 임신 중인 비까의 모습을 이 때 처음 봤었는데... 이후 비까는 13년 4월에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부룬다이는 알마티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012년 말부터 바실리가 사역하고 있는 알마티 외곽의 '부룬다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방문 진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내 생각이 아니라 그 분이 길을 열어주셔야 가능하지요. 그렇게 전공의 선생님 부부와 함께 식사 모임을 가진 후 얼마 뒤의 어느 날, 바실리가 부룬다이의 한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온 적이 있습니다. 심장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할아버지는 바실리에게 부탁을 해서 우리 병원에 온 것입니다. 심전도를 체크하고 근육통을 위한 파스도 나눠 드렸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부룬다이로 가서 진료하는 것은 어떨지에 대한 얘기가 오가게 되었지요.

이렇게 되어 2013년 2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부룬다이로 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진료도 진료지만 이보다는 그 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 분이 보여 주실 일들을 기대하며 시작된 일입니다.

부룬다이 교회에 가면 벽면 사진들에서 과거 교회 역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15년 전부터 개척된 교회이고 바실리 목사님은 이곳의 두 번째 담임 교역자입니다. 1대 사역자는 고려인이었고 한국에서의 지원도 많았음으로 사진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매월 진료가 계속되면서 한번씩 우리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는 교회 본당이 보수 공사로 어수선할 때였지요.

삼남매는 교회 안 이것 저것을 보고 들으며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카작 교회와는 다른 고려인, 러시아인 중심의 지역 교회의 특징,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었죠.

얘들을 데리고 우리 가족이 교회를 찾았을 때는 마침 출산을 앞두고 있는 빅토리아의 부모님(친정) 내외분이 와 계신 때였고 우리 가족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매번 갈 때마다 바실리 내외는 특별한 현지 음식을 준비하곤 하는데 어떨 때는 마음 한 켠에는 미안함과 부담감도 있지만 이것도 제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서로 주고 받으며 관계가 자라가는 것이니까요.

만삭의 빅토리아와 바실리 목사님과 함께 부룬다이 교회 현관에 서 있는 장면입니다. 이 교회 건물은 아파트 1층을 개조해서 만든 것입니다.  정식 명칭은 '부룬다이 감리교회' 이미 현지 당국에 교회 등록이 되어 있고 허가를 받은 곳이기에 보안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이 아파트 1층이죠.

교회 본당 모습입니다. 정면에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고 적혀 있네요.

시간은 또 흘러 갔습니다. 빅토리아는 출산을 했고... 우리는 지난 5월, 아기의 40일 기념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백일을 기념하지만 이곳에서는 40일 되는 날에 가족, 친지가 함께 모여 새 생명을 축복합니다. 바실리의 첫 아기의 40일을 맞아 가족 모두가 주일 오후, 부룬다이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이날은 주일이었는데 주일 예배 후에는 본 교회 교인들 위주로 축하 시간을 가졌고 오후 2시에는 외부 인사 중심으로 축하 순서를 가졌다고 합니다. 우리도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시간에 늦지 않게 부룬다이로 이동했습니다.

교회 본당 뒤쪽에 놓여 있는 새 아기의 유모차로 다가가 빅토리아와 반가운 인사와 축복의 말을 주고 받았죠. 곤하게 자는 아기 얼굴도 보고...

바실리의 인도를 받아 성대하게 차려진 40일 잔치 자리에 함께 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식탁에는 타쉬켄트에서 온 바실리 어머님이 만드신 '쁠롭' 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정말 특별 요리입니다.

노릇노릇한 기름밥 '쁠롭'은 남방계 유목민의 대표 음식입니다. 타쉬켄트 쁠롭이 맛있는 걸로 유명하지요.  마침 함께 초청받은 인근 ** 교회의 젊은 현지인 사역자 부부와 담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요.  

부룬다이에서 알마티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남쪽에 길게 펼쳐진 텐샨산맥 줄기 아래에 알마티가 놓여 있습니다.

그 분이 보여주시는 것만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바실리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씩 열어 주시는 관계와 만남들이 소중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있던 바실리는 이번에 카자흐스탄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 남짓 짧은 시간동안,  이곳에서 만난 현지인 청년 사역자와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큰 일을 놀라움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은 여기 저기에서 이런 만남과 만남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 분을 찬양합니다.   2013.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