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 정착기

지난 7월 10일 우리는 알마티에서 또 한 번의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2011년 8월 31일 알마티에 들어와서 1달 동안은 팀에서 미리 구해준 아파트에서 1달 살고 있다가 9월 26일 '마므르 7' 지역의 아파트 5층으로 이사한 지 10개월 만에 다시 이사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파트가 아니라 이곳에서 '땅집'이라고 부르는 허름한 1층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이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공간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1년만 돌아보더라도 병원 진단장비 설치를 위해 이종국 사장님(JM 메디컬) 사장님이 저희 집에서 열흘 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고 안병재 선생님 가족도 심장 초음파 장비 셋팅으로 1주일간 우리와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물론 방문객들은 내색하지 않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손님이나 단기팀을 맞기엔 76 M2 (23평) 아파트가 너무 작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고 6학년. 4학년, 3학년이 되는 삼남매에게도 역시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5-7월 사이에 비교적 저렴한 30평대의 큰 월세 아파트도 나오긴 했지만 형민이 때문에 그런 아파트를 선택할 수도 없었습니다. 형민이의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땅집에 살고 있는 바람에 친구 집에 자주 놀러 다니는 형민이가 계속 땅집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찾기 위해 4월부터 3개월동안 찾았으나 쉽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한 채 7월 중순 이식쿨에서 있었던 컨퍼런스를 참석하고 알마티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적당한 가격대에 깔까만 땅집이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월세와 비슷한 가격대의 땅집이었고 내부 구조도 비교적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집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있습니다. 홍콩보다 비싸다는 알마티 부동산 시장을 생각해볼 때 제대로 갖춘 땅집을 구하려면 적어도 월세 1천 2백불 이상을 줘야 가능하지만 우리로선 이런 지출은 엄두도 못 내는 법.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이런 싼 땅집에는 필연적으로 물, 전기, 가스의 문제가 따라다니게 되지요.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름에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수도관은 연결되어 있지만 수압이 충분하지 못해서 물이 많이 사용되는 여름철에는 변두리의 우리 집까지 물이 공급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5-6일에 한 번씩 물차를 불러서 물을 사야 합니다. 물 값은 1톤 당 1,000 텡게 정도 하는데... 마당에 3톤, 지하에 1톤  도합 4톤을 채워 넣습니다. 사진은 물 차를 부른 날, 가족이 함께 물을 받는 모습입니다.

시은이와 성은이는 물 차에서 새어 나오는 물을 받으려고 양동이를 따로 준비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까우니까요.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우렌' 이라는 물차 기사입니다.

지하 물탱크에 물을 채워 넣고 있으면... 호스에 새는 물을 막아 보려는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과 몸짓이 온 집을 가득 채우지요. 물을 받는 날은 흡사 축제날과 같습니다.

땅집에서 사는 또 하나의 잇점은 텃밭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죠. 나무 하나 없이 헐벗은 우리 마당에는 작은 건물이 허물어져 내린 건물 터가 있는데 그 곳에다 텃밭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집터에 남아 있는 벽돌, 자갈, 시멘트를 들어 내고 그 자리에 상추, 쑥갓, 들깨, 열무, 콩 등의 씨앗을 뿌렸는데 열무가 아주 잘 자랐습니다.  알고보니 상추, 쑥갓 같은 채소는 7,8월에 파종을 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열무는 7월에 파종하는 작물이라고 하구요.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고구마 모종도 받아서 고구마도 심고... 물 안 나오는 땅집에서 농삿일을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위 사진이 초기 텃밭의 모습인데... 열무가 자라 오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약 1달 뒤, 우리는 밭에서 나는 열무로 김치를 만드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콩과 고구마 줄기는 마당을 푸르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내고 있지요. 그래도 여전히 토질이 안 좋은 문제가 있어 기존 집터에 남아 있던 흙을 다 들어내고 마당의 다른 한쪽편의 비교적 괜찮은 흙을 텃밭에 붓고 거름을 섞어 주는 작업도 몇 주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지금도 35도 이상의 기온과 살인적인 직사광선이 채소밭을 짓누르고 있어 조그맣게 자란 상추, 쑥갓은 자리지 못한 채 그저 연명만 하는 듯 합니다. 그래도 배추, 무를 지금 심어야 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최근에는 배추, 무도 파종하고 볕이 잘 들지 않은 응달에다 다시 한 번 상추, 쑥갓 씨앗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텃밭을 조성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물이지요. 사서 쓰는 물을 텃밭에 뿌리는 것이 아까울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푸른 채소를 집에서 기를 수 있다는 꿈이 더 간절해서 지금도 열심히 아침, 저녁으로 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돕고 있지요.

초기 땅집 적응에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 쥐 때문이었을 겁니다. 매일같이 부엌이나 방에 출현하는 작은 쥐들 때문에 아내는 물론 아이들까지 기겁하며 소리지르기 일쑤였습니다. 집 근처 가게에서 쥐약을 사서 구석 구석에 놓았지만 매일같이 쥐약만 없어질 뿐 여전히 많은 쥐들이 부엌 여기저기에 돌아 다녔고 우리는 씽크대 여기 저기에서 쥐똥을 발견하는 충격적인 일을 2주 동안 겪어야 했습니다. 사진은 현관 근처에서 포착된 쥐새끼입니다. 정말 작은 놈이죠. 한 번은 쓰레기 통에 들어간 쥐를 덥쳐 생포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을 죽이기가 쉽지 않아 비닐 봉지에 넣은 채 이전에 살던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리고 오기도 했지요. 유배를 보낸 셈이죠.

고양이를 기르면 쥐가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도저히 고양이는 못 기르겠다는 아내의 간청에 쥐 끈끈이를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쥐 끈끈이를 공수 받아 부엌 여기 저기에 놓길 시작했습니다.  

이 끈끈이 전법이 약간씩 들어맞기 시작했습니다. 끈끈이에 작은 쥐들이 연거푸 잡히기 시작했고 한 여섯 마리가 잡히고 나니 부엌에서 쥐새끼들을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최근 2주 동안 쥐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씽크대 근처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선화는 금새 예민해 집니다. "이거 쥐 아냐?"

아이들이 땅집을 고집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를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땅집에서 살려면 반드시 꼭 큰 개를 길러야 한다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곳은 외국인들의 아파트나 땅집에서 절도 사건이 빈발하고 있기에 예방 목적으로 개를 기르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개를 무척 무서워 하는데 실제로 사나운 개에게 물려 죽거나 큰 부상을 당했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백 선생님 댁에서 세퍼드 새끼 1마리를 얻어 왔습니다. 생후 4주 때 종이 박스에 넣어 왔는데 첫날은 밤새도록 낑낑거리며 울어대는 강아지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마 갑자기 떨어지게 된 부모, 형제를 무척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자말자 기생충 약을 먹이고 5일 후에는 1차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3주 후인 9월 1일에는 2차 예방접종을 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강아지를 데리고 쟌도스바, 나보이-로즈바끼에바에 있는 동물 병원에 갔었지요.

아이들과 지저분한 강아지를 목욕시키기도 하고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정말 땅집에서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찌나 이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우리집 강아지 이름은 '태풍'입니다. "태풍아... 풍아..." 뭐 이렇게 부르죠.

우리 집에 온 뒤 3주째...태풍이가 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6개월이 되면 거의 다 자라 정말 큰 세퍼드가 될 거랍니다.  

이렇게 땅집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마당 한쪽 구석에 낡은 창고가 있지만 정리가 안되어 있어 잘 사용하진 않습니다. 마당은 돌짝밭이긴 하지만... 비가 잦은 가을이 오면 잔디를 뿌릴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계속 비가 안 오면 이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고구마와 콩이 좀 더 자란 모습입니다. 형민이가 다 자란 열무를 바라보고 있지요?  늘 도시 빈민같은 느낌이지만... 어느새 이 집에서 사는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1주 전, 열무를 수확하던 모습입니다. 그 날 이 밭의 열무를 다 뽑아 김치를 담궜습니다.  

물도 안 나오고 쥐 새끼도 우글거리지만 텃밥도 만들고 태풍이도 있습니다. 이곳 알마티에서 사는 땅집 생활은 또 하나의 어드벤처입니다. 벌써 우리 땅집에는 많은 방문객이 찾아 오고 있습니다. 팀 모임, 교회 모임... 이곳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아이들도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고 공도 찹니다.

이 집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더 많이 흘러 가고 이 장소 때문에 그 분의 사랑이 더 많이 경험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알마티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목표니까요.    201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