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국가 외국 학위 및 자격신임 위원회'에 서류 접수하다

지난 5월 2일부터 4일까지 아스타나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 산하 '국가 외국 학위 및 자격 신임 위원회(이하 국가 신임위원회)'에 한국 의사 면허를 카자흐스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인증받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외국에서 받은 학위, 자격 등을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한국 의사가 카자흐스탄에서 어떻게 활동할 수 있는지 속시원히 말해주는 공무원이나 대행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9월부터 현지 의료 허가를 받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의사가 카자흐스탄 의료 면허를 얻으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작년(2011년) 9월 중순, 알마티 시 보건복지국을 방문해서 한국 의사가 어떻게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지 문의했을 때, 보건복지국장은 실무자를 소개해 주었고, 그녀는 아래와 같이 "국가 신임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준비서류 목록을 이미 건네 준 바가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제대로 온 셈이었습니다.

위에 명시된 서류들을 동산의료원 단기팀 편을 통해 모두 확보한 뒤 11월 초, 보건복지국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시 보건복지국의 그 공무원은 우리에게 아스타나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시청 재정경제국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재정 경제국의 "또따" 라는 담당자는 알마티 동산병원이 아직 재등록을 안했다며 병원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 목록을 건넸고 제가 일하기 위해서는 의사 자격으로서 노동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알마티에 왔을 때 가진 비자는 1개월짜리 비자였습니다. 노동 허가가 발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입국했지만 우리가 받은 노동 허가는 의료 활동을 할 수 없는 일반 노동 허가였고 이것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을 맡은 대행사는 "의사로서 카자흐스탄에서 노동 허가를 받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며 지금까지 누구도 받아본 적이 없다. 또 이를 받기 위해서는 현지어 구사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공식 교육기관 졸업장 등이 요구된다" 라며 일단은 일반 노동 허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 공식 언어교육기관(대학)에 등록할 지, 러시아 자격인정시험(TORFL) 에 응시해 볼 것인지 고민하던 차에 아스타나에서 국제협력의사로 근무했다는 경력증명서가 이 모든 과정을 면제해 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지난 3월부터 다시 노동 허가 신청에 들어갔습니다. 관련 법규가 개정되어 이전에 없었던 의료보험, 무범죄사실확인증명서, 신체 검사 등을 다시 준비해야 했습니다. 2개월 정도 소요되었죠.  

이렇게 서류를 갖춰 다시 노동 허가를 신청할 즈음... 먼저 아스타나에서 의사 자격을 인증받고 난 뒤 그 서류룰 첨부해서 노동 위원회에서 서류를 접수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대행사를 통해 아스타나 국가자격신임 위원회에 저의 의대 졸업장과 각종 성적 및 수련 기록, 자격증 등의 서류를 보내 보려고 하였습니다. 대행사 역시 인맥을 동원해 접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3주 내내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고 시간만 흘러 갔지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직접 아스타나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국가 신임 위원회에 서류를 접수하는 곳의 주소를 보니 빠베다 16/1 이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우리가 처음 살았던 집 근처였지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서류 접수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과거 아스타나에서 저를 도왔던 진료실 통역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 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외에도 UBF 의 B 선생님과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김 목사님에게도 아스타나 방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5월 2일 저녁 8시 기차로 아스타나에 올라갔습니다. 돌아보니 가장 최근에 아스타나 갔던 것이 2007년 8월, 부산의대기독학생회와 선린병원팀을 데리고 간 단기진료활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5년만에 올라가는 셈입니다.  항공편을 알아봤더니 5만 텡게가 넘는 거액이어서(40만원 이상) 그냥 급행 열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사진은 알마티 2 기차 역입니다. 5월 1일 민족화합의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네요.

1200 Km 떨어진 아스타나를 12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급행 열차를 탑니다.

이 열차는 우리가 아스타나에 살던 2003년에 처음 운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무척 낯익은 열차입니다. 스페인에서 도입한 열차기에 이곳 사람들은 '이스빤스끼' 라고 부르지요.  

급행 열차 티켓입니다. 18번 차량 19번 좌석이고 금액은 9211 뗑게 라고 적혀 있네요. 요즘 8시 날씨는 그리 어둡지 않습니다. 열차는 4명이서 한 칸에 함께 타는 침대 열차입니다.

열차는 곧 미끄러져 출발했고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12시간 30분 달리는 동안... 열차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알마티에 온 지 8개월 만에 현지 의료허가를 얻기 위해 직접 아스타나로 올라가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사실 현지 의료 허가를 못 받을 가능성도 더 높은게 사실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사역 방향을 한국의 의료 기술(소화기 내시경 등)을 알마티 동산병원에서 직접 시행하기 보다는 현지 의사와 함께 현지 환자를 보며 협진 형식으로 현지 의사를 양성하는 쪽으로 무게를 둬야 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어쨋든 이번 방문을 통해 향후 병원 사역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인 셈입니다.

열차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해가 밝았습니다. 중부 카자흐스탄으로 올라오면 남부와는 좀 다른 모습이 많습니다. 노란 밀밭이 인상적이지요. 호수도 곳곳에 보입니다. 중부 카자흐스탄은 구 소련 연방시절에도 우크라이나와 함께 질 좋은 밀로 유명한 곡창지대였답니다.  

아스타나 기차 역입니다. 한 때 이곳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했던 시절이 있었죠. 기차역은 이전보다 훨씬 깔끔해져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아스타나 UBF의 B 선생님이 마중 나와 주셨습니다. 반가운 만남을 가지고 B 선생님의 사업장으로 가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도 하고 한국 의사를 만나길 원하는 남자 아이도 만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측 팔꿈치 아래가 없는 이 소년의 엄마는 한국에서 보조기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문의하기로 하고 사진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국가 신임 위원회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통역으로 도와 줄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를 마나사 길의 도요다 센터 근처에서 만나 빠베다의 접수처로 향했습니다. 다른 젊고 똑똑한 현지인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아스타나에서 진료 통역으로 수고해 준 라이사 아주머니와 함께 서류 접수를 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65세의 나이로 이미 암 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는 아주머니는 무척 감격스러워하며 저를 전심으로 도왔습니다.  

이곳이 국가 신임위원회 서류 접수처가 있는 빠베다 길입니다. 노란색 네모... 그러니까 '카자흐스탄 쁘라브다 '신문사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접수처로 갈 수 있습니다.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였지요.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접수처가 있는 곳입니다.

5층 건물의 4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와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4층에 국가 신임위원회 라고 적힌 명패가 보입니다. (빨간색으로 줄 친 곳입니다.)

그 안에는 여러개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서류 접수는 바로 이 방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5-6명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40분 가량 후 바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정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방 안에는 2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앞 책상에 앉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가져온 서류를 내 보였습니다. 한국 의사 면허를 이곳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우리 서류를 하나 하나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고 현지에서 번역, 공증 받은 문서들로 의대 졸업장, 6년간 성적 증명서, 의사 면허증, 내과 전공의 수료증, 내과 전문의 면허증, 좋은강안병원, 포항선린병원 재직 증명, 소화기내시경 전문의 등 각종 서류들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90-91년 의예과 시절 성적 증명서, 92-95년 의대 성적 증명서를 보며 의대가 6년인데 왜 4년, 2년으로 나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명을 해주고 졸업장은 의대 4년 후에 나온다고 말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럴 때는 예과가 없는 대학이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설명이 필요없으니까요^^

접수 담당자는 이 서류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서류를 처음 다루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을 불러 왔습니다.  그 사람은 좀 더 나이 든 경험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서류 자체에 많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녀는 4년간의 내과 전공의 수료증에 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몇 시간동안 수련받았다고 적혀 있지 않냐고 문제시 했습니다. 사실 우리 기준으로보면 내과 전공의 수료증에 그런 내용을 적을리 만무하고 국가에서 발급한 내과 전문의 면허증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녀는 계속 미흡하다고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문의 면허 말고 일반 의사 면허라도 받을 수 없냐고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예과 과정의 과목들을 꼼꼼히 보면서 예과 1,2학년에는 의학 과목이 별로 없다면서 실제로는 4.5년 정도밖에 의대 공부를 안 한 것 같다고 생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예과 1학년에는 당연히 교양 과목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데 이 사람은 정말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자기 말을 제대로 안 듣는다며 역정을 부리기까지 했지요. 도무지 서류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의료 선진국 대한민국의 의대 교육 자체의 효용성을 카자흐스탄에서 무시 당하는 현실이 정말 황당하고 답답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지금은 서류를 받을 수 없고 일단 서류 일부를 복사해서 두고 가면 이 서류를 접수할 수 있는지 검사관들에게 물어보고 며칠 후 그 결과를 알려 주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죠.

이런 황당한 상황 앞에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는가 보다 생각할 수 밖에 없었죠. 사실 이런 결론도 오래 전부터 맘 속으로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 때....바로 앞에 있는 처음 접수 담당자가 제게 어디서 사는지 물어 왔습니다. "알마티에서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다시 알마티로 가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알마티로 내려가면 다시 서류를 접수하러 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다시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아까 그 담당자가 나오더니 우리더러 오후에 다시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이 검사관들에게 문의해서 접수 여부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 인도를 확증받기 위해 그러겠노라고 말하곤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오후 3시쯤 다시 오기로 하고 그 사이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목사님 내외분과 점심 식사를 나누며 교회의 어려운 점과 앞으로의 계획도 들었습니다. 시간은 금새 흘러... 다시 접수처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김 목사님이 접수처 앞까지 태워 주셨지요.

아직 통역 라이사 아주머니는 오지 않았고, 1층 현관 안으로 들어가 비오는 바깥을 한참동안 쳐다보며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통역과 함께 다시 국가 인증위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접수를 시켜도 됩니다." 라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류 접수비에 해당하는 11,800 텡게를 접수하라는 입금처와 함께 오늘은 일단 접수 시간이 끝났으니 월요일 오전에 다시 오라고 안내까지 해주었습니다.

기쁜 맘을 안고 접수처 밖으로 나왔습니다. 접수처 앞 골목에서 바라본 빠베다 길입니다. 멀리 재정경제부 건물도 보이네요.

접수비를 내기 위해 인근 은행에 갔습니다. 접수처에서 적어준 위 계좌로 입금하고 영수증을 통역 아주머니에게 건넸습니다. 제 대신 접수를 해야하는 만큼 인근 공증사무소로 가서 아주머니에게 이와 관련된 제반업무를 위임한다는 공증서까지 작성했습니다. 이것으로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가 제 대신 월요일 오전에 모든 서류를 접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알마티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5월 7일 저녁, 라이사 아줌마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오늘 무사히 접수를 마쳤어요. 접수증도 잘 보관하고 있으니 염려마세요."

                                                                                                                                                                                                         2012.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