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진단검사장비 설치하다

알마티 동산병원은 2000년 대구 동산의료원 직원선교복지회에 의해 현재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현지인 의료인 체제로 운영되었지만 최초 비전을 수행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재정 보조를 계속하던 대구 동산의료원 직원들의 피로감도 시간이 갈 수록 더해져만 갔죠.

알마티 주민들은 물론 카자흐스탄, 중앙 아시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겠다는 알마티 동산병원의 비전은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 제공을 뛰어 넘는, 영적인 영향력을 유물론의 잔해 위에 인본주의와 물질 주의로 가득한 메마른 이곳 사람들 마음 속에 미치겠다는 것이었기에 너무도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6,000 Km밖에 세워진 이 병원의 실제적인 운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비전을 이룰 수 없는 이유만을 하나둘씩 추가해 가며 조금씩 쇠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지난 2010년 대구 동산의료원과 포항 선린병원, 충진교회는 저를 알마티 동산병원 사역자로 파송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맞춰 대구 동산의료원은 알마티 동산병원의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기본 진단검사장비를 지원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관련된 예산만 해도 2억에 가까운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10년 만에 단행된 재투자의 결과로, 알마티 동산병원은 2011년 5월에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고 이번 단기의료선교팀 방문 기간 동안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단검사장비 도입 계획은 순탄치 않았죠.

원래 이 검사 장비들은 단기의료팀이 도착하기 전에 설치가 완료되어 증,개축 감사예배 및 재개원식 때 함께 축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사 장비가 실려 있던 컨테이너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는 바람에, 컨테이너는 중국-카자흐스탄 접경에서 몇 주 동안 묶여 있어야 했고 결국 예정된 시간 내에 장비는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인데... 장비가 실려있던 컨테이너 안에 함께 들어있던 '용접 상태를 확인하는 특수 장비'에서 감마선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단검사장비 도착이 늦어지고 있던 지난 10월 13일(목) 오후, PLS(주) 의 알마티 현지 지사로부터 한국에서 어떤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진단검사 장비에 쓰이는 시약들이었습니다. 시약은 유효기간이 있고 냉장 보관이 필요한 것들이라 진단검사장비가 도착할 시점에 맞춰 항공편으로 부쳐졌고 이 때문에 장비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물건이 도착해 있는 창고 위치를 확인해서 물건을 가지러 직접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묵직한 나무 상자에 가득찬 시약을 확인할 수 있었죠. 얼마나 기뻤든지...

나무 궤짝을 덮고 있는 덮개조차 열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게 포장된 나무 궤짝이었습니다. 창고 주변 트럭 기사의 도움을 받아 나무 뚜껑을 겨우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는 이렇게 많은 시약을 넣어둘 냉장고가 없는지라 일단 집으로 옮겨 가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까지 운반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었고, 냉장고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시약들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죠.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인 10월 14일(금) 밤에 진단검사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JM 메디컬 이종국 사장님이 도착했고 10월 18일(화) 밤에는 대구 동산의료원 단기팀이 도착하게 됩니다. 대구 동산의료원과 장비 도입 계약을 맺은 JM 메디컬 사장님은 장비 도착이 여의치 않은 것을 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무작정 알마티로 날아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단기팀이 방문하는 동안 계속 한국과 알마티 현지로 전화하며 진단검사장비의 도착을 염원했는데... 결국 장비는 단기팀이 와 있는 동안 도착하지 않았고, 단기팀이 떠나간 후인 지난 10월 24일(월) 오전에서야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4일 밤에 알마티에 도착했던 이종국 사장님은 그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자그마치 열흘 동안... 알마티의 숙박 요금이 엄청 비싼데다 저 역시 단기팀 준비로 워낙 바쁜 와중인지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장비 도착이 연일 지연되자 사장님은 무조건 25일(화) 밤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꼭 장비를 설치하고 돌아가고자 했지만 오랫동안 회사와 가정을 비워둘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4일(월)에 전격적으로 검사장비가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이고 극적이었는지...

무거운 나무 궤짝으로 모두 800 Kg 정도였습니다. 트럭에 가득 싣고 병원 앞으로 가져가서 설레는 맘으로 나무 궤짝을 뜯어내며 하나씩 진단검사실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새도록 사장님은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단순히 설치하는 것 뿐 아니라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표준을 설치하는 작업은 몇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알마티 동산병원에서도 급하게 임상병리사를 구해서 하루만에 장비 사용법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전에 알마티 동산병원에서 일했다는 러시아인 "발렌티나"를 다시 현직으로 복귀시켜 사용법을 배우도록 했는데...저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알고 있어야 하겠기에 함께 배웠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마치고 10월 25일(화) 밤 비행기로 이종국 사장님은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11일 동안 우리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아이들이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출국할 때 모두가 공항에 나가 석별의 정을 나눴죠. 극적으로 출국 바로 전날, 진단검사장비가 도착하고 설치 및 교육까지 마쳤지만... 통상 이런 작업은 3-5일 정도 걸리는 일인지라... 너무 짧은 시간밖에 없었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너무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단 이 사장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나머지 과제는 제가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진단검사장비 운용과 임상병리사 발렌티나의 교육까지 모든 것이 또 하나의 짐으로 주어진 셈입니다.

병원에 들어서면 1층 왼쪽에는 접수실, 오른쪽에는 진단검사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측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설치된 진단검사 장비들과 함께 임상병리사 발랴(발렌티나의 약칭)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발랴는 딸 하나를 둔 젊은 새댁입니다.  이전에 국군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이전에 우리 병원에서도 일할 때도 총 혈액 검사(CBC) 나 소변 검사(UA)를 맡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화학 검사 장비가 들어온 것이기에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완전 자동 장비 1개에, 백업으로 반자동 장비 2개가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이종국 사장님이 돌아가고 난 다음, 표준 혈청을 가지고 생화학 자동장비를 돌려 보고 결과지를 가져와 보라고 얘기했더니 다음 날 충격적인 대답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 한국인 남자가 너무 빨리 설명을 하는 바람에 하나도 모르겠다" 는 것이었죠.

결국 제가 한글로 된 매뉴얼을 들고 자동화 장비를 이해하며 하나씩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반자동 장비 역시 사용법을 설명하고 만일 표준 혈청 값과 다른 생화학 검사 결과치가 나왔을 때 어떻게 보정해야 하는지 Factor 값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1주일의 시간 후... 발랴는 이제 우리 병원에 있는 진단검사장비를 제대로 다룰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작업 끝에 귀가하는 발랴를 향해 "오늘 수고했어요" 라고 얘기했더니 "오히려 선생님께 더 감사해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알마티 땅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 뭘요. 이게 다 내 일인걸요.." 라고 웃음짓고 2층 진료실로 올라가는 제 맘은 진단검사장비에 얽힌 짐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