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로 가는 날을 기다리며..

이곳에 온지 만 7개월이 훨씬 지났습니다. 작년 7월 9일 저녁에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이제 8개월째 접어드는 셈입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이곳 '테 아와무투'에 뚝 떨어져 훈련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어설프고 쉽지 않은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있는 곳이 뉴질랜드의 시골 중 시골이란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기에 모든 게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우리가 와야 할 곳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죠.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인터넷은 쉽게 접속할 줄 알았는데... 파송 교회 어느 집사님의 말처럼 뉴질랜드가 마치 아프리카 오지 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통상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가면 6개월을 지나면서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하는데 저희가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젠 모든 면에서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깁니다. 공부하는 것도 이제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빨리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가고 싶은 맘이 많습니다. 모든 훈련이 다 그렇듯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맘도 있습니다. 훈련은 언제나 앞으로 다가 올 실제 상황을 대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요즘 들어 우리의 실제 상황인 알마티를 더 자주 그려 보게 되고 훈련 이후의 시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남아 있는 이곳에서의 훈련 시간도 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곳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 익숙했던 삶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많은 부분에서 정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팀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구 동산의료원 측 소개로 알마티 현지에서 비자 대행 업무를 맡을 사무실과 연락이 된 상태입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7월 4일 경 비자 획득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가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으로부터 워크 비자를 발부 받고 바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알마티로 보낼 짐이나 다른 소소한 일들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기에 알마티로 들어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알마티 동산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워크 비자가 제대로 나오느냐에 있습니다. 현지의 행정 업무 처리 속도를 감안하면 2월 말 경에는 문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대구 동산병원에서 알마티 동산병원 관련 서류와 인감 등의 업무를 맡을 분을 현지 대행 사무소에 연결 시켜야 하는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알마티 동산병원으로 들어갈 임상병리장비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비자 문제는 이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일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워크 비자가 발부되려면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카자흐스탄 현지에 등록된 법인이 현지 당국에 노동력 유치를 원한다는 서신을 보내야 하고 이에 대해 현지 당국이 외국인 노동력 유치 허가를 내 주어야 하고 카자흐스탄 외교부의 비자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외교부 비자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초청 기관(알마티 동산병원)이 외교부 영사국에 초청장, 영사 비용 지불 영수증, 정관 사본(꽁증), 카자흐스탄 법무부 등록증, 통계카드, 납세자 증명서, 세무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모든 업무는 알마티 현지의 비자 대행 업체를 통해 하려고 합니다. 물론 대구 동산의료원과 비자 대행 업체와의 계약이 우선되어야 하겠지요.   

이 모든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단계는 카자흐스탄 노동부로부터 노동력 유치 허가를 받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계명대 대구동산의료원과 알마티 시가 작년 8월에 맺은 MOU가 크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대구 시는 1990년부터 알마티 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습니다. 알마티 의 '알마' 가 사과(apple)를 뜻하는 카작 말인데 이런 연유에서인지'사과의 도시' 로 알려진 대구와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었습니다.  대구 동산의료원은 1995년부터 알마티 시에서 의료 봉사를 해 오면서 1996년 알마티 동산 진료소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2000년에 알마티 동산병원을 설립하는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1899년 미국 북장로교회가 대구에 동산병원을 세운지 100년 된 것을 기억하며 받은 사랑을 되갚는 일이었습니다.  

2010년은 대구-알마티 자매 결연이 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자매 결연 2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 8월 5일(목)부터 10일(일)까지 대구시청과 계명대학교 등지에서 알마티 문화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카자흐스탄 양정상간 합의에 의해 지정된 '2010년 한국에서의 카자흐스탄의 해 를 맞이하여 대구시 자매도시인 알마티 시가 개최하는 '2010년 대구에서의 알마티 문화의 날' 행사였습니다. 우리 가정이 뉴질랜드에 와 있는 동안 이뤄진 일입니다.

경상 매일일보 기사입니다. 알마티 시장 포함 158명의 대규모 방문객을 맞게 된 '알마티 문화의 날' 행사 기간 중,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알마티 시와 MOU(상호양해각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지난 2000년에 개원한 알마티 동산병원을 통해 의료기술선진화 지원과 시민건강증진을 돕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MOU 로 인해 알마티 동산병원에 한국인 의사가 일하도록 워크 비자를 내 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입니다.

알마티 문화의 날 개막식 및 갈라 콘서트 모습입니다. 연설을 하는 알마티 시장과 그 옆의 대구 시장 모습이 나란히 보입니다.

 제가 인터서브에 지원서를 낼 때가지만해도 알마티 동산병원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가정의 앞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의료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카자흐스탄에서는 한국인 의사가 진료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자흐스탄 현지 법인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이렇게 열어 주시는 걸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앞으로 어떤 돌발 변수나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두려운 맘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비자가 나오는 순간까지가 첫 번째 고비인 셈입니다.

대구 동산의료원은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 2008년 한국-카자흐스탄 친선협외 주관으로 동산의료원에서 열린 한국-카자흐스탄 친선의 밤 행사 모습입니다. 이 자리에는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도 와 있었고 역대 주 카자흐스탄 한국 대사들도 참석한 자리였죠. 한국-카자흐스탄 친선 협회 회장이 바로 동산의료원장님이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적어도 제게는 알마티로 우리 가정을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 속에 엮여져 있습니다.

 

지난 2월 3일(목), 정확하게 한국 설날이기도 했던 이 날.. 클라이브 & 샐리 가정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여 주인인 샐리는 지난 6년간 타지키스탄 두산베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분인지라 중앙 아시아를 향한 남다른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샐리는 어떻게 자신이 타지키스탄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뉴질랜드로 돌아온 뒤 어떻게 여전히 타지키스탄을 섬기고 있는지 뜨거운 열정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남편의 알츠하이머 병세가 심해지고 극도의 우울증이 찾아올 무렵, 우연히 해밀턴 성서 유니온 모임에서 신명기 말씀을 받게 되었고 이후 교회에서 타지키스탄에서 온 선교사의 선교보고를 들으며 그 땅을 자신의 산지로 받아들이게 된 그 모든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훈련으로 인해 힘들어질 무렵... 하나님은 이런 분들을 보내셔서 우리 맘이 시들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샐리의 남편 역시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조언을 해 주셨고  우리 부부에게 무엇이 가장 어렵나며 물어 오셨습니다. 우리 부부가 하나씩 얘기를 꺼내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영적 권위가 느껴지는 말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성격(?) 좋은 양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선화가 손으로 주는 음식을 잘 받아 먹는 양이었죠.

뉴질랜드는 서구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자손이 살고 있어 그런지... 현지 교회가 많이 성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만큼 특정 나라에 뜨거운 맘을 품고 눈물 흘리며 헌신하는 분들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에 온지 7개월 만에 하나님께서 본받고 싶은 귀한 분들을 만나도록 인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간이 흘러 우리도 나이를 먹게 된다면 이 분들과 같은 모습과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 서로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꼭 그렇게 변해 가고  싶습니다.

최근 한국인 선교사가 22,000명을 넘었다는 통계를 접했습니다. KWMA 에서는 앞으로는 선교사의 수보다는 선교사의 질적 향상에 매진하겠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선교사의 선발 과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현지 교회 중심의 선교 활동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역자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잘 압니다. 주님 앞에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내가 어떤 존재로 서 있느냐가 더 의미있다는 것을... 남은 훈련 시간을 통해 언제, 어느 곳에 서 있더라도 주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종으로 다듬어져 가길 기대합니다.

이곳도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텃밭의 옥수수는 이제 다 익어 뽑아 버렸습니다. 오이 넝쿨도 말라 버렸고 이젠 새로운 단계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짧은 여름 동안 오이 넝쿨에는 커다란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남은 인생 길에서 우리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주렁 주렁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내가 정말 그걸 간절히 원하고 있느냐는 것이기에... 그 분께 끊임없이 맡기는 훈련을 계속 해 가며 구하려고 합니다.  2011.2.20